이른 아침, 목욕탕 가기 위해 차 세울려고
근처 방배동 성당에 들어갔습니다.
아주아주 예전에 한번 들어간 기억 납니다.
엄마 살아있을 때 같이.. 왜 갔는지는 모르겠고..
차만 세워놓고 달랑 나오기 뭣해서
슬쩍 둘러보니, 건물 뒤편 마리아상 앞에
체육복 차림을 한 머리 희끗한 아저씨
기도하고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나도 묵념했습니다.
...
목욕 끝나고 젖은 머리 채로
성당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산이라고 하기도 뭣할 정도로
야트막한 언덕입니다.
나무 박아놓은 계단 오르면서
희미하게 옛 생각이 납니다.
이렇게 올라가 저 뒤쪽으로 넘어가면...
아, 이게 우리 옛날에 다니던 그 산이구나.
야산이라고 했지, 우리끼리..
이십여 년 전 방배동에 둥지 틀고 나서
애들 다 어렸을 때 시간 나면
아버지 우리들 델꼬 산책삼아
야산 걸어갔다오곤 했지..
개도 데리고..
(누렁이, 검둥이, 세퍼드 잡종, 똥개...
그 동안 키웠던 개들이 다 떠오르네..)
바로 여기가 거기였는데...
야산 한귀퉁이 깎아 큰 찻길 내고
높은 아파트 몇 채 들어서면서
예전 동네 모습 찾을 수 없고,
아파트 뒤에 가려 산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길 나기 전에는 가볍게 걸어갈 거리였는데
길 닦이고 차들 다니면서 더 멀게 느껴지고...
하긴, 처음 이 동네 이사왔을 땐
군데군데 빈터 많았고 허허벌판인 곳도 있었지.
밤에 다니기 무서울 정도로..
그래, 고3때 자율학습 끝나고 휘경동에서부터 오면
10시도 넘어 도착하는데, 엄마 밤마다 버스정류장에
나와 기다리곤 했지. 어쩔 땐 졸다가 내릴 곳
놓치기도 했고...
그런데 이렇게 변했습니다,
이십 년 세월 속에..
산천만 변했겠습니까.. 사람은..
우리 식구들..
엄마, 아빠, 딸 여섯, 모두 여덟 식구..
두 사람 저세상 가 있고,
또 둘이 물 건너 가 있고,
언니 시집가서 강 건너에 살고..
지금 이곳엔 셋이 남았네요.
이십 년 만에 여덟 식구 여섯으로 줄었구요,
(아니, 형부, 제부, 조카들 치면
오히려 식구가 늘었나요..)
모습들은 또 얼마나 변했을까요..
겉모습, 속 모양...
옛 생각 하며 언덕 오르는데
저만치 분홍 진달래!
올해 첨 봤습니다. 무더기는 아니지만
한 그루라도 반갑지요..
다가가 수줍은 듯 옹크린 진분홍 꽃잎에
살짝 입맞춰 주었습니다.
여기저기 연둣빛이 눈에 들어오구요,
꽃봉오리들 맺혀 있는 거 보니 좋네요.
근데, 왜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기뻐서... 행복해서........?
요즘 자꾸 눈물이 날라 해요, 옛일 떠올리면..
........
산 내려와 마리아상 앞에서 합장하고
성당 건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2층 미사실엔 세 분이 앉아 있습니다.
육십대, 칠십대의 할머니들
조용히 기도 드리고 있습니다.
나도 가만히 앉습니다.
넓지도 않고 그리 높지도 않아
안정된 공간입니다.
장식도 거의 없는데
벽, 천정, 긴 걸상 모두 낙타색이어서
마음이 더 차분해지겠습니다.
자그마하고 소박한 방배동 성당..
옛 추억을 떠올려 준 야트막한 뒷산..
가끔 돌아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