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생활의 성공과 일의 성공을 분리하려는 것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욕심’ 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캘리포니아의 상원의원인 다이안 파인스타인은 미국에서도 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으로 꼽힌다. 그런데 그녀조차 그토록 벅차게 바깥일을 하면서 ‘집안일은 항상 여성이 꾸려가는 것’ 으로 생각하고 매스컴 인터뷰에도 그렇게 말하곤 했다.
세계적인 세일즈 우먼이고 ‘메리 케이 코스메틱’ 이라는 화장품 회사의 회장인 메리 케이 애쉬조차, 일을 가정 서열 다음에 놓아야 했다.
“신이 첫째요, 가정이 둘째요, 일은 셋째입니다.”
미국이 이럴진대 한국에서 일하는 여성의 괴로움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남자가 직장일로 전근을 하면 아내는 따라간다. 그러나 아내의 직장 전근은 사표 제출로 귀결되는 것이 이 나라에서의 일하는 여성이 겪는 실상이다.
남편이 밖에서 사회 정의에 관심과 힘을 투자할 때 여성은 남편과 아이들과 가정을 보살피는 일에 투자한다.
실패한 사회의 실패한 남자들은 갈 곳이 집밖에 없다. 집에 있기가 민망하고, 가족들에게 직업적 실패를 알리고 싶지 않은 남자는 ‘넥타이 메고 등산하는 남자’가 되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남자들은 부인하고 싶어 하겠지만 성공하고 있을 때는 별로 집 생각을 안 하다가 실패하면 갑자기 가정의 따스함을 그리워한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그런 남자들이 너무 많이 늘어나서 걱정이다. 실패하고 나서야 가정의 따스함을 아는 남자가 늘어났다고 해서, 그 가운데 내 남편이 들어 있다 해서 남편을 미워하지 말라.
남편이 실패하고도 그 실패를 아내에게 털어 놓을 수 없을 때의 심각함에 비하면, 남편의 실패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실패할 자유조차 없는 남자라면 성공할 의무도 없는 남자다. 아니 의무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남자는 성공할 만한 기력 자체를 소유하고 있지 않는 남자로 보아도 틀림이 없다.
만약 강제 퇴직을 당한 남편이 그 사실을 아내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몇날 며칠을 숨겨 왔다면, 그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반드시 문제가 있다.
그런가 하면 남편이 회사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을 1개월 이상 모르고 있었다는 아내는 남편보다 더 문제가 심각하다. 얼마나 남편에게 무관심했으면 남편 신변에 그토록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남편이 말하지 않고 있어도 귀가한 남편의 눈을 2분 정도만 들여다본다면 그날 남편 신상에 일어난 일을 쉽게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막힘없는 관심과 열린 마음이 있으면 눈치만 보고서도 남편의 마음과 일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이제는 올라가는 성공학이 아니라 내리막길로 추락하는 시대의 성공학을 공부해야 하는 시대이다. 어리광 떨고 철딱서니 없는 푼수 짓으로 한몫 보면서 사랑받는 베이비 와이프보다는 때론 누님 같은 아내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밖으로 나도는 남편들의 시대가 아니라 보살핌을 기다리는 남편들의 시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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