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한국작가 봄호 양효숙 신작수필(20200127).hwp
곡선의 꿈
동네 한 바퀴를 돈다. 심심해서 돌 때도 있지만 대부분 목적지가 있다. 직선거리와 곡선거리를 비교하며 가늠하는 재미가 있다. 생각이 많거나 예민해져 있을 때 일부러 구부러진 길을 선택해 걷는다. 빠른 걸음과 느린 걸음이 보폭 사이를 오간다. 아트 헤어와의 인연도 그렇게 시작됐다. 예술이 들어간 미용실 미용사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머리칼은 미용사의 손길로 구부러져 아트가 되고 머릿속 생각은 유연성을 발휘해야 예술적 감각이 되살아난다. 간판 이름을 예사로 보지 않는 평소 습관이 생활 감각과 작품 창작에 도움을 준다. 미용실 이름이 미용사의 머릿결이 아닌 머릿속을 반영하듯 지금 찾고 있는 첫 수필집 제목도 생애주기곡선을 담아낼 것이다.
내 머리를 만져준 미용사들이 스친다. 중화제로 중화 처리를 해줄 때마다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중화제의 역할과 기능도 생각한다. 염색이나 파마를 할 때 씌워주는 모자가 열 받으면 모락모락 김이 새나온다. 인간굴뚝처럼 앉아 있는데 마술에 걸려들 듯 머릿속 생각물고기가 연어처럼 고향을 향한다. 면소재지에 하나뿐인 오래된 이발관 이발사는 지금도 고향을 지키면서 아버지의 흰 머리칼을 다듬었다. 추억을 불러내고 세월마저 다듬는 그런 곳들이 대부분 곡선을 닮았다. 조금 더디고 느려서 담을 게 많은 곳이다.
여자의 생명은 머리모양에 있다고 말한 할매 목소리도 들린다. 평생 비녀를 꽂은 채 20세기 여인으로 살다간 할매다. 숱 없는 머리칼에 헝겊을 덧대어 비녀를 꽂다가 그마저도 감당이 안 돼 커트를 했다. 양지바른 곳에서 보자기 천을 두른 채 투박한 가위로 엄마가 내 머리카락을 자르듯 할매 머리카락도 아랫목에서 잘랐을 것이다. 할매가 아랫목에서 내 탯줄을 자르던 가위로 엄마가 할매 머리카락을 자른 후 할매는 아기처럼 몸집을 작게 모은 후 영면하셨다.
오랜 시간 여자로 살면서 생머리를 고집했던 이유들이 불거진다. 커트와 단발머리를 오가며 파도타기 하듯 흔들리며 내달렸다. 긴 생머리와 네일 아트는 왠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고집스러운 신념이 걸어온 발자국 사이로 묻어난다. 직선과 곡선의 조화로움이 교차되기도 하고 이정표를 만들기도 한다.
핸드피스를 쥐고 치과 치료하는 의사 옆에서 간호조무사로 가만히 머무르거나 서있지 않고 움직였다. 나만의 길을 가려니 나만의 동선이 그려지고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났다.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걸 인지한 채 한 걸음씩 내딛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라는 성경 말씀에 의지하고 나아갔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긍정적인 의미 부여였다. 직선의 길보다 곡선의 길로 되돌아오니 돌아볼 게 많다. 곡선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더 소중하고 애틋하다.
얼마 전 교직원 앨범사진을 찍는데 후덕해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누군가 써놓은 걸 봤다. 나또한 후덕해 보인다는 착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만만하게 보이고 이용당하기 쉬운 착한 이미지를 직선의 차가운 머리칼로 보완하려는 무의식이 보였다. 흰 머리칼과 주름살을 보정해 달라고 말하려다 접었다. 사진사의 감각이 발휘되도록 남겨둘 일이다. 해마다 찍는 교직원 사진에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미용사의 하루도 제각각일 테다. 미용실의 시계는 미용사에 의해 빨리 가기도 하고 더디 흐르기도 한다. 미용실에 들어서면 미용사가 하라는 대로 움직인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알려준다. 가운을 입고 어떤 거울 앞 의자에 앉으라는 것부터 따른다. 물론 치과에 들려도 같은 맥락이다. 내 머리칼이고 내 치아여도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고 맡겨야 한다.
자기 이름을 브랜드화 해서 내거는 이들의 손길은 예술이다. 헤어가 아트이고 내 이처럼 사용하는 의치도 치과의사의 하나뿐인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동네 한 바퀴 걷는 일은 곡선의 꿈을 향해 내딛는 걸음으로 의미부여 된다. 아트를 찾고 감지하는 이들의 손길과 발길이 맞닿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굵직한 직선의 힘과 곡선의 꿈이 어우러져 시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별일 없는 무난한 하루와 창조적인 하루가 자연스레 스치듯 교차된다.
다른 누군가를 비교대상으로 삼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예민한 직선의 꿈을 꾸도록 만든 그 시간도 필요하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비교대상으로 찾아들면서 곡선의 꿈을 꾼다. 핸드피스를 쥔 치과의사의 손과 미용사 가위에 짓눌리지 않고 그들의 머릿속과 내 머릿속을 연결시킨다.
미용사는 그 사람의 머리 모양을 보고 판단할 것이고 치과의사는 치아 상태를 보고 가늠할 것이다. 성급한 판단 오류와 함께 반전이 그 안에 있어 재밌다. 스펙보다는 스토리에 방점이 찍힌 채 자기만의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이 아닌 내 이름을 소리 내 불러보면서 거울 속 주름살에도 말을 건넨다. 빗살무늬토기의 빗살이 내 얼굴 주름살로 내려앉아 주름잡았다고 해석하면서 염화시중의 미소로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