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문화다] 21. 무지크바움
부산 연제구 거제1동 도시철도 부산교대역 5번 출구에 있는 고전음악감상실 '무지크바움'.
저녁 7시 30분, 하루의 일상을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인다. 서른 평이 채 안 되는 아늑한 실내 공간이다. 실내 전면에는 스피커와 DVD 화면이 배치되어 있다. 바닥에는 20여 석의 의자가 놓여 있다. 10여 명이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모인 사람들은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오늘의 감상 주제는 '음악과 그림의 만남'이다. 벽면에 고흐의 '론강의 별밤'이 걸려 있다. 금빛과 푸른빛의 대비가 강렬함을 주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 무슨 음악이 숨어 있을까. 방문객들은 감상실 주인 강경옥(53) 씨로부터 해설을 경청한다.
서른 평 남짓한 고전음악감상실
'음악과 그림의 만남' 등
다양한 형태 음악 감상 시도
"음악으로 샤워… 일상의 때 씻어"
'론강의 별밤'은 1888년 작으로 화가 고흐가 프로방스의 작은 마을인 아를의 야경을 그린 것이다. 하늘에는 별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내려와 있다. 강 건너 마을 가로등이 물에 반사되어 청동색으로 어른거린다. 강렬한 원색들은 물 위에 반사되는 물빛처럼 흔들리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고흐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음이 분명하다. 원색의 강렬함과 화면 속 연인의 다정함이 말해 준다.
주인 강경옥 씨가 DVD를 튼다. 시골마을 아를에서 그린 고흐의 다른 작품들이 하나씩 화면에 나타난다. 고흐는 고갱과 아를에서 공동작업실을 차리고 200여 점을 쏟아 내었다. 고흐가 그린 아름다운 꽃과 인물화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빛과 색의 조화를 추구한 후기 인상주의 그림들이 펼쳐진다.
이제 음악을 감상할 시간. 먼저 라벨의 피아노곡 '밤의 가스파르'(전 3곡)가 스피커를 타고 실내를 감싼다. 회원들은 눈으로는 고흐의 그림에, 귀로는 라벨의 피아노에 빠져 든다.
'밤의 가스파르'는 당대의 유명한 시를 옮긴 곡으로 '물의 요정' '교수대' '스카르보' 3곡으로 구성된다. 나른하면서도 공포스러운, 격렬한 질주와 악센트가 겹치는 곡이다. 라벨의 피아노곡이 한 곡 더 이어진다. 인상주의 음악의 대표작이라고 불리는 라벨의 '물의 희롱'이다. 이어 브로딘의 '현악4중주 2번' 중 '녹턴'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4악장을 들려준다. 한 시간 반이 넘는 그림 여행, 음악 여행이 끝난다.
음악과 그림을 선정하고 준비하는 일, 해설을 하는 일 모두 주인 강경옥 씨의 몫이다.
"고흐의 그림과 그 그림에서 연상할 수 있는 음악을 이번 감상회 주제로 마련해 보았습니다. 고흐와 라벨은 모두 후기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였고 작곡가였지요. 이들은 수시로 변화하는 자연현상을 현장에서 그대로 화폭에 담는 인상주의의 추종자였지요. 브로딘의 '녹턴'이나 베토벤의 '합창'도 고흐의 '론강의 별밤'과 잘 어울릴 것 같아 같이 감상해 보았습니다."
강 씨는 음악에서 절대적인 정답은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각자 들은 대로, 느낀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고전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무지크바움의 음악 감상은 감상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감상회가 끝나면 음악을 두고 수다를 떨 듯 정담을 나눈다. 자신의 소감을 피력하며 소통하기도 한다. 10여 명, 20여 명이 모이다 보니 가족적인 분위기다.
"그림을 매개로 이토록 다양한 음악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즐겁습니다."
컨설팅 프리랜서로 일하는 손명균(40) 씨의 소감이다. 그는 재즈감상 동호회를 다니다 클래식 감상을 하고 싶어 찾아온 사람이다.
"음악을 듣고 난 느낌은 다 다른 것 같아요. 저는 라벨의 피아노곡을 들으며 고흐의 작품 속 별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흐와 라벨과 인상주의를 알고 나서 듣는 음악은 각별하고 더욱 감동적인 것 같아요."
변호사인 이경우(41·여) 씨의 감상평이다. 그가 무지크바움 회원이 된 것은 한 달 전의 일이다. 페이스북 친구로부터 소개받았다. 지금은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들른다. 무지크바움에 들어서면 음악으로 샤워를 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일상의 때를 말끔히 씻어 내는 느낌.
학원을 운영하는 김정희(48) 씨는 "음악을 더 깊게 듣게 하는 미술작품, 미술작품을 더 깊게 보게 만든 음악의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무지크바움에서는 '음악과 그림의 만남'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음악 감상을 시도한다. 부산의 여러 클래식 음악 감상 모임 가운데 가장 다양한 구색을 갖추었다. 8월 한 달 일정표를 보면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함에 입이 벌어진다.
정기 감상회(고전·낭만 교향곡), 전곡 듣기(브람스의 독일레퀴엠), 대학생 클래식 입문 동호회(고전·낭만 작품들), 안 디 무직(재즈·크로스오버·팝), 문학과 영화의 만남(셰익스피어), 오페라(도니체티의 안나 볼레나), 프랑스 뮤지컬(로미오와 줄리엣), 월드뮤직(그리스의 렘베티카), 발레, 뮤지컬, 고전명화 감상, 테마가 있는 음악 강좌 등이 준비돼 있다. 그야말로 음악 감상의 종합선물세트다.
무지크바움은 어떤 곳? 특정 예술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공간
고전음악감상실 무지크바움의 주인 강경옥(53) 씨.
그는 부산 주재 독일선급협회의 직원이었다. 28년간 근무하다 3년 전 그만두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그의 꿈이었던 클래식 감상실을 열었다. 작년 3월의 일이었다.
그는 음악을 전공하거나 공부한 적이 없다. 스물두 살 때 부산문화회관 앞 필하모니 음악감상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인연을 맺었다. 감상자로서의 경력이 30년에 이른다. 3천여 장에 이르는 CD, DVD, LP판은 30년간 월급을 쪼개 사 모은 것들이다.
주인이 30년 모은 음반 3천 장 눈길
매달 한두 차례 '살롱음악회'도 인기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주인 강 씨는 특정 음악이나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다. 문학, 그림, 발레, 월드뮤직, 오페라,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룬다. 한 달 일정표를 보면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다양성은 아마도 무지크바움만이 가진 특허가 아닌가 싶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 다양한 예술을, 다양한 형식으로 감상하고, 다양한 느낌을 갖고 돌아가는 곳이 바로 무지크바움이다.
"음악은 수용하는 사람의 느낌입니다. 자신의 느낌을 발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감상회가 할 일이고요. 자신의 감각과 느낌을 기르기 위해선 큰 공연장보다 작은 감상 공간이 더욱 유용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큰 공간에만 익숙해 있어요. 음악이 더 많이 울려 퍼지게 하려면 작은 공간인 카페나 홀, 살롱음악회가 많아져야 합니다."
강 씨는 그래서 30평에 불과한 무지크바움이야말로 생활 속에서 음악적 감각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공간이라고 믿는다. 오다가다 들러 부담 없이 듣고 즐기는 것, 그것이 음악이다.
음악 연주가를 초청해 연주무대를 마련하는 살롱음악회도 인기다. 연주자와 무릎을 맞대고 한 공간에서 마주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살롱음악회는 전자기기로 재현되는 음악의 한계를 넘어 감상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무지크바움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로 매달 한두 차례 열린다.
강 씨는 "살롱음악회는 올해부터 시작됐는데 회원들 간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작은 공간의 작은 음악이 관객에겐 더 크게 울린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덟 번의 무대가 마련됐다. 이번 달에는 24일 오후 7시에 열린다. 성악가 박상희 최부경 채희진이 초청돼 국내외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 팝페라 등을 들려준다.
무지크바움은 거제1동 평생교육기관 역할도 맡았다. 지역주민들에게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다.
cafe.daum.net/musikbaum.busan, 070-7692-0747. 이상민 선임기자
첫댓글 좋아요. 꾸욱~ 근디 저 문장 밑의 알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페북이 아니라서 "좋아요" 누르는 기능은 없지만 "좋아요"로 알아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