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조씨, 조중훈 집안
조중훈은 양주조씨 조존성 가문의 후손이다. 조존성의 아들 창원의
딸이 인조의 비(妃; 장렬왕후)가 되었다. 조계원은 창원의 동생으로
아들 7형제를 두었다. 7형제 중 둘째 구석, 셋째 희석, 넷째 사석,
다섯째 가석 등 4형제의 후손이 번창하였다. 조중훈은 셋째 희석의 후손이다.
노론 4대신의 일인 조태채는 희석의 아들이며 조중훈의 직계 선조이다.
조태채는 조선조 5백년 집권 세력인 노론의 인물 중 서열 제4위 안에 드는
중량급 상신으로 6조의 판서를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풍채가 좋고
도량이 컸으며 공평무사하여 세인들의 칭송을 들었다.
현대 유명 인사 중 직계 선조로 조중훈만한 선조가 그리 흔하지 않다.
조중훈 집안의 문벌은 LG의 구인회를 무색하게 만든다.
조중훈의 집안은 과환과 벌력에서 한양 경기의 제왕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구인회 집안에서 상신을 한 명 배출한 반면
조중훈 집안은 상신을 무려 7명을 배출하였다.
이것은 소단위 가문별로 따지면 안동김씨 김생해 가문, 동래정씨 정유길 가문 ,
대구[달성]서씨 서성 가문 다음으로 상신을 많이 배출한 숫자이다.
상신 숫자 하나만으로도 한양의 족벌 중에서 조중훈 집안은
제4위를 랭크하고 있다.
한진그룹의 재계 서열 제5위에 비하면 조중훈의 선조들이 오늘날 한양기업의
제왕인 조중훈의 실력을 일찍이 앞지르고 있었다. 그래서 조중훈의 오늘날의
성공이 우연은 아닌 듯하다. 다 그 연원이 깊기 때문이라고 본다.
조태채의 아들 관빈은 대제학을 지냈으며 조관빈 역시 중훈의
직계 선조가 된다. 조중훈은 직계 선조에 상신과 대제학이 다 있으니
선조 복은 많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구인회 집안은 대제학을 한 명도
못 냈지만 조중훈 집안은 조태억 조관빈 조두순 등 3명을 배출하였다.
또한 구인회 집안은 판서급 인물을 예닐곱 정도 냈지만 조중훈 집안은
판서급 인물이 20명 가까이 배출 되었다. 또한 관찰사를 지낸 이가
무려 30명 가까우며 승지를 지낸 이도 30명을 넘어선다.
이 가문의 과환과 벌력은 한양 족벌 슈퍼 빅3의 안동김씨 김생해 가문이나
반남박씨 박소 가문, 여흥민씨 민유중 가문보다는 못하고
또 3대 대제학 4대 가문, 즉 광산김씨 김장생 가문, 월사 이정구 가문,
대구서씨 서성 가문, 전주이씨 이경여 가문보다도 못하지만
남양홍씨 홍춘경 가문, 풍산홍씨 홍수 가문, 해평윤씨 윤변 가문과
함께 한양4강에 드는 유수 족벌의 하나이다.
한진 그룹의 조중훈은 재벌 제5위의 기록을 세웠으니
자기 집안의 명예를 크게 빛낸 셈이다. 조중훈의 한진그룹은
한국의 미래를 이끄는 기업으로 명가의 성장 엔진의 위력을
LG와 함께 세계만방에 크게 떨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