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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문화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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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를 다녀와서... 스크랩 봉림사지 3층 석탑
월곡 추천 0 조회 44 10.04.07 14:36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봉림사지 3층 석탑


 

-   봉림사지 3층 석탑(안동 서후면)  -

 


인간들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 할 수는 없지요 .

어떠한 미사여구를 동원 한다고 하여도 잘나면 잘난데로 또 못나면 못난데로 구구절절하고 하물며 종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 확고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오늘날에도 정치권에 따라서 미묘한 갈등들이 칼날을 세우고 찌를 듯 말 듯 신경전을 벌입니다 .

어느 안전이라고 검문을 하냐며 말이냐 되느냐고 하면서 거리로 나서지요 마치 우리는 법에서 특별대우를 받아왔고 특별대우를 해 달라고 그러니 임금 나와서 사과하라며.....

그 특별함에는 반드시 그에 따르는 행동과 정신이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 합니다 .

그렇다면 오늘날 민족에게 민중에게 특별함을 선사 하였다라고 말 할 수가 있을까요 .

글세요....

단지 일시적인 소외감에서 주목을 받고자 응석부리는 어린 자식이라면 귀엽기도 하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군중집회로 목소리를 드높이 외치며 나무통을 치드군요.....


아시듯이 과거에는 임금의 성향에 따라서 정책의 변화가 뚜렸 하였지요 , 지금보다 더 강하게 그래서 단체라고 할 수 있는 종교인들은 항거도 하고 불만도 토로하지만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새로운 본거지를 찾아서 떠나기도 하고 쫓겨나 인적 드문 곳에 둥지를 마련하지요 .

그러한 변화의 시점은 왕조가 바뀌는 시기이기도 하고 더 크게는 국가의 운명이 결정되는 시점이 되는 것을 우리는 누누이 보아왔습니다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소의 부풀림도 있겠지만 일인 즉 청년이 청운의 뜻을 품고 과장에 나서기를 수십년 그러나 그 임금은 연륜이 있는자를 원하는지라 자연히 나이든 사람들이 등용되기를 십수년 그 임금이 하직하고 청년의 임금이 등장하자 자연히 청년들을 등용기회로 그 선비는 일생 과장만 들락거리다 말았다네요.....정책변화의 희생양인지 과거운이 없었는지 참...

 

-  봉림사지 3층 석탑(기단의 안상 1)  -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빗나가고 말았네요 이곳 안동의 천등산 자락 봉림사지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출발 하였다라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 한 국가의 흥망성쇄

우리뿐만 아니라 인간들은 스스로 역사를 과대 포장하는 경우가 많지요 유형이든 무형이든 문화재 역시 그러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치 오~~랜 것만이 소중하고 훌륭한 것인 양 정확한 연대를 모르는 경우에는 시대를 앞서서 표기 합니다 , 그것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나 앞으로는 반드시 시정 하여야 할 부분 중의 하나라고 생각 합니다 .

후기 신라면 어떻고 초기 고려면 어떻든가만 굳이 통일신라로 표현 하지요 .

봉림사지가 어떠한 경로로 자리한 것인지는 모르나 경황이 없었을 것임에는 분명하고 분주히 불탑을 세우다가 보니까 그나마 유지되어온 형태적 요소와 규모의 요소 그리고 조각의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따로 노는 듯한 느낌 입니다 .

풍수가 별것인가 마는 양지는 양지인데 앞을 가로 막은 것이나 온화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일까요 이미 조선전기에 그 운명을 마감하고 후일에는 아랫마을에 사는 장 아무게님이  부모의 여묘 살이 하던 장소로 사용한 듯 하고 더 후일에는 그의 후손이 여막을 마련하여 자신의 수양처로 또 학문을 익히고 전달하는 장소로써 활용되었다 합니다 .

 

-  봉림사지 3층 석탑(기단의 안상 2)  -


어찌 되었든 간에 탑에 대하여 살펴보지 않을 수 없지요 .

이중의 기단이니 3층이니 층급이니 하는 것들은 이 탑에서 별다른 의미를 느끼지 못하여 안상에 대하여 이야기 할까 합니다 .

안상(眼象)은 무엇일까요....? 그래 코끼리 눈 형상입니다...!

왜 코끼리 인지는 알 것이고 그 당시 우리의 땅에는 교류에 의하여 인도쪽의 코끼리가 사육되고 있었고 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멀리 그리고 밝은 것을 보라는 눈 말입니다

조상님들은 찍어 붙이기도 잘도 하시지 어찌하여 생각한 것인지 지금은 아무런 의의 없이 안상이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석 구조물(불탑 ,석등 , 석비 건축의 기단...)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목구조의 난간에도 문 하부 궁판과 단청의 한 부분으로 다양하게 사용한 문양중의 하나입니다 , 그림에서 보듯이 연화장식으로 연 봉우리나 연잎 물결무늬로 장식을 하고 모양이나 크기 기법 등은 시대적으로 차이점이 있고 석수장의 솜씨에 따라서 예술로써 가치를 인정받기도 합니다 .

 

 -  봉림사지 3층 석탑 (탑신석의 남측 문비와 잠금장치 양각) -

 

-  봉림사지 3층 석탑(탑신석의 북측 문비와 잠금장치 양각)  -


또 한가지 불탑에는 탑신에 감실이라 하여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 불상을 모시거나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기도 합니다 .

불상을 모시는 경우에는 개폐의 문을 두어 개방형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진신사리를 모시는 경우에는 폐쇄형으로 합니다 ,이는 모르긴 하여도 종교적 존엄성과 비밀스러움을 표현한 의지라고 할 수도 있고 또 도난 등 훼손에 대한 방비책이라 생각하여도 무방하겠지요.

봉림사지의 경우에는 위 두 가지 방법에서 벗어나는데 하나가 불상을 모시지 못하는 마음을 위로하고 진신사리를 구득하기 불가능하여 마음속으로 뫼시어 놓고 조석으로 문안인사를 드렸다고 생각 할 수도 있고 다른 하나는 억지지만 불제자나 석수장이 마음의 눈을 떠 밀적체 내부에 우리가 볼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보호목적으로 잠금장치를 하지 않았나 생각 합니다 .

문을 보니까 생각이 나네요 전 대통령 중에는 대도무문~~ 대도무문 입에 달고 다니는 이가 있었지요 무슨놈의 화두처럼 그래요 민주화의 선봉에서 민주화의 큰길에서 감히 누구가 나의 앞길을 막는다 말인가...? 오직 자신만이 진정 민주화의 지름길 이라고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되는 문이 없는 곳으로 가노라.....! 그때는 와~~아 와~~아 했지요 .

 

그런데 아전인수(我田引水) 해석으론 더 큰것을 득할 수가  없어요....!

“大道無門”큰(높은 경지)도로 통하는 문은 반드시 있으나 아둔하여 미치지 못하고 보이지 않음에 통하는 문이 없다드라

천여년 전 석수장이 마음의 눈을 뜬 것일까요....?

아니면 그 천년 후 대통령이 말로 하는 민주화에 눈 뜬 것인가요.....?

 

-  봉림사지 3층 석탑 (안동 서후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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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4.08 10:12

    첫댓글 월곡님께서 출판할 수 있는 글을 올리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늘 기행문에도 못 미치는 글을 써 왔는데...

  • 10.04.10 13:09

    월곡님은 나중에 모아서 책을 내고 싶은 바람을 가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슈렉님 기행문도 늘 좋았어요. 전 아직 사진 못 올렸어요. ㅠㅠ

  • 10.04.10 13:10

    그날 월곡님 아니셨으면 봉림사지 삼층석탑은 못 찾았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도 올려주시고, 앞으로 답사때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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