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라
글/재즈 피아니스트 이노경
자신 보다 약한 존재를 향한 인간의 잔학상을 볼 때 마다 “저러다 더 크고 강한 존재가 나타나면 우리 인간도 심하게 당할 때가 올텐데..” 걱정된다. <원숭이 시대>가 진화하여 <인간시대>가 왔듯이 언젠간 <로봇시대>나<외계인이 지배하는 시대>가 올른 지 모른다. ‘외계인, 사이보그, 복제인간, 괴물, 귀신등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대체물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외계인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 인간은 그들의 외계인이다. 그들이 지배하는 시대가 오면 우리 인간도 그들의 애완동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먹거리 라는 이름하에 소나 돼지, 닭등에게 인간이 범한 살육행위가 지배계층인 로봇이나 외계인에 의해 그대로 다시 인간에게 전이되는 현상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외계생물에 의해 정복당한 인류의 대부분은 그렇게 고통 받다가 사라질 것이다. 몇몇은 그래도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아 지도계층에 아부 떨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발버둥 칠 것이며, 소수의 지도자격 몇몇은 예전의 영예를 찾고 인간 지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영화 터미네이터(Terminator)나, 매트릭스(The Matrix)속 주인공들처럼 투쟁할른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미래나 ‘내 가족’ 잘되기만 바라면서 사는 일도 힘든데, 미디어에서 떠들어 주면 가끔씩 생각 해 주는 ‘내 나라’ 걱정이나 ‘세계 평화’에 대한 고민도 아닌, ‘로봇’, ‘기계문명’, ‘외계인’에 대항하는 ‘지구의 운명’, ‘우주의 미래’를 걱정하고 예견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몸은 여기 있지만 머리는 딴 세계 사람들 소속인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Allan Spielberg) 나, 조지 루카스(George Lucas),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같은 사람들이나 그려 볼 법한 세상 같지만, 역사는 싫든 좋든, 그것이 올바른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지간에 ’변화‘하려는 쪽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고, 이미 생각의 그릇이 큰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 평범한 대중들도 자신이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SF나 호러물, 애니메이션을 통해, <바람의 나라>,<리니지>,<라그나로크>,<Sun>,<마비노기>,<서든어택>등의 게임등을 통해, 가상현실이 주는 상상력 크기의 한계를 무한정으로 바꾼 지 오래다.
그렇다면 음악세계는 어떠한가!
얼마 전, 서울 칸토라이 합창단과 한국 종합예술학교(KNUA) 음악 테크놀러지(Music Technology)과의 정기연주회를 다녀왔다. 다소 극단적인 두 공연, 그러나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그 곳에 모인 청중들의 상상력을 조장시켜, 음악을 통해 공간 이동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칸토라이 합창단의 경우, 신약성서의 《요한의 복음서》 제18∼19장에 의거, 예수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를 쓴 종교성악곡인 “바하(J.S.Bach)의 요한 수난곡(BWV245 Johannes Passion)”을 연주하였는데, 자막과 함께 스크린을 통해 영화<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Christ,2004)>장면을 보여줌으로서 마치 모두가 그날 그때 그 곳에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도록 유도하였다. 마지막 코랄을 마치고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청중 모두 일어서서 야코프 한들의 성가 [보라, 의인이 어떻게 죽었는지를]를 부르는 것으로 연주는 끝이 났는데, 중간 휴식(Intermission) 포함하여 거의 3시간동안 진행된 긴 연주시간에도 불구하고 졸거나 딴 짓을 하거나 밖에 나가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없었을 만큼 청중들은 몰입하였고, 마지막에는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아~멘’을 외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함께 애도하였다.
한국 종합예술학교 연주회의 경우엔 스크린 이미지를 사용하여 청각을 가상현실화하도록 돕거나, 조명을 아예 끄고 음악만 틀어줌으로서 청중 각자가 청각에 집중하여 소리가 이동하는 것을 공간화하여 듣거나 상상하도록 유도하였다. 가령 불꽃놀이(Fireworks display)를 청각화하거나, ‘집착’을 수학 공식화하여 소리와 이미지로 표현하기도 하였고, 마음속 시각적 상(像)을 청각으로 형상화 시키거나, 기존의 작곡가나 인디밴드의 음원을 다시 재편집, 재조직하여 또 하나의 창작물로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음을 이용하여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음 자체를 만드는 그들의 작업들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소음(Noise)으로 들리거나, 배운 자들의 현학적 허세를 채워주는 배설물로 폄하될 우려도 없지 않아 보였지만, 적어도 추상적이기에 되려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보인다는 점에서 나는 매우 흥미로왔다.
어쩜, 청각이 시각적 이미지의 도움을 얻어 듣는 사람의 상상력을 유도하거나, 듣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스스로 이미지를 만들어 각자의 마음에 상상의 집을 짓도록 하는 순기능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 것이다. 다만 모든 음악이 다 상상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음악이 다 청중을 가상현실세계로 안내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러한 음악들이 더 필요하게 될 것이며 그렇지 않은 음악 보다 더 각광 받을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아니 모든 음악이 다 그런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PC부문 최고기술책임자인 필 맥키니 부사장은 "20년 후면 세컨드 라이프 등으로 대표되는 가상 공동체가 일반화될 것이며 인간이 장치에 적응하는 게 아닌 장치가 인간에게 적응하는 단계, 즉 ‘인간이 정보에 접근하는 시대'가 아니라 '정보가 스스로 인간에게 접근하는 시대가 온다"고 했다. ‘개방’과 ‘공유’ ‘독립성’과 ‘휴머니티’가 공존하는 웹 2.0세대들과 새로운 밀레니엄을 이끌어나갈 3.0버전의 신 인류들에게 “요즘 트랜드가 뭐냐?”고 물으면 “컴퓨터”라고 말한다.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숨어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음악이 나아갈 방향도 어쩌면 팻 매스니(Pat Metheny)가 이미 20년 전에 앨범<Off Ramp(1982)>,<Still Life(Talking)>,<First Circle(1984)>,<All Falls Wichita, So Falls Wichita Fall(1981)>,<Travels(1983)>,<The Falcon and the Snowman>을 통해 구축해 놓은 팬타노닉 위주의 꽉찬 전자 사운드와 스토리위주로 전개되는 서사적인 곡들처럼 한없는 상상력과 가상현실의 경계를 무한정 제공하는 음악이어야 할런 지 모른다.
그래서, 100% 기계치 인간 이노경
10년 만에 신디사이저 하나, 덜렁 큰 돈 주고 질러 버렸다.
“야아~기계다~!!”
감동의 고함소리 한번 지르고, 지금껏 스위치조차 켜보지 않은 재, 골방에다가 모셔 놨다.
[mmjazz 2008.8월호 글기고]
첫댓글 ^ ^ 저두 신디사이저 너무 복잡해서 못하고, 또한 미디작업도 제대로 해본적이 없는 컴퓨터 음악 컴맹이랍니다. 게다가 또.. 세상의 흐름에 관심없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카페활동만 예외.. 제가 사회와 통하는 출구하나이므로.. ㅋㅋ) 어쨌든 그런 사람인데요.. 저한텐 컴퓨터가 제 삶의 일부 가능성을 열어준 고마운 친구이면서 제 삶을 방해하는 적이기도 하지만서두.. 이렇게 좋은 뮤지션들과 직접 간접으로 만날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대단하고 고마운 점인 거 같습니다. 한예종의 그 공연 나도 접했더라면 노경씨의 글이 더 이해가 쏙쏙 잘 되었을 터인데.. 좀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