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겸재 정선이 64세 때 그린 노년기 진경산수화의 걸작 '청풍계(淸楓溪)'이다.
청풍계는 인왕산 동쪽 기슭의 북쪽 종로구 청운동(靑雲洞) 54번지 일대의 골짜기를 일컫는 이름이다.
원래는 푸른 단풍나무가 많아서 청풍계(靑楓溪)라 불렀다.
청운동이란 조선시대 때는 청풍계와 백운동으로 나뉘어 있었던 마을이다.
1914년 4월, 청풍계의 ‘청’, 백운동의 ‘운’ 두 글자를 합쳐 청운동이라고 했다.
백운동은 대체로 자하문 터널에 바짝 붙은 지역이고 청풍계는 지금 청운초등학교에 붙은 지역이다.
청풍계의 오랜 주인은 16세기 이래 장동김문이라 부르는 명문세가였다.
실제로 이들 장동김문은 인조 시대 이래 무려 250년 동안 서인 노론 당의 핵심을 이루며 때로 왕권을 능가하는 권력을 구가했다.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이 선조 36년(1608) 이 곳을 별장으로 꾸민다.
김상용이 해 2월에 선조가 돌아가고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8월 한성부(漢城府) 우윤(右尹·현재 서울시 제2부시장 격)이 된다.
아마 이때쯤에 이뤄진 이 곳을 별장으로 꾸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이 별장에 청풍지각(靑楓池閣)이란 이름을 붙였다. 최고의 명필 한석봉에게 글씨를 받아 새겨두었다.
또한 선조 대왕께서 ‘청풍계’ 세 자를 써서 내려주시니 이를 새겨 걸었으며 남쪽 창문에는 소현세자의 시를 새겨 걸었다.
이 곳은 그의 고조부인 사헌부 장령 김영수(金永銖·1446∼1502)가 살던 집터였다.
그의 맏형인 학조(學祖)대사가 잡아준 명당터라는 것이다.
학조대사는 세조 때부터 중종 때까지 왕실의 귀의를 한몸에 받았던 불교계의 대표였다.
당연히 풍수지리에 정통했던 그가 자신을 극진하게 공경하는 막내 제수 강릉 김씨를 위해 잡아준 집터라 하니
한양 도성 안에서 가장 빼어난 명당터였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실 이 곳은 훗날 안동 김씨 200년 집권, 60년 세도의 산실이 되었던 것이다.
그 장동김문의 인물 가운데 병자호란 때 강화도를 지키려다 순국한 영의정 김상용이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다.
장동김문의 적자인 김상용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적군에게 창고를 넘기지 않으려고 폭탄을 부여안고
죽음을 마다치 않은 불사의 전설을 남긴 주인공이다.
척화론을 주장하다 청나라에 끌려간 죄의정 청음 김상헌이 그의 동생이다.
김상용 후손으로는 우의정 김이교 판서 김이양 판서 김영순 등이고 김상헌의 후손으로 영의정 김수항, 영의정 김수황등이있다,
영의정 김수황 아들이 당시 학문과 정절로 이름날린 6창(昌) 김창집, 김창엽, 김창읍, 김창업, 김창즙, 김창립 여섯형제이다,
이 장동김문에서는 진경문화의 선두주자들을 배출하게 되고 그들의 문하에서 진경문화의 주역인 겸재 정선과
사천 이병연(·1671∼1751) 등이 출현하여 진경문화를 절정으로 이끌어간다.
순조때 세도 정치로 떠들석 하게한 김조순이 김창집의 후손이고 김조순의 후손이 김문근, 김홍근 등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