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나리오 형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장면 장면을 영화를 보듯이 상상하시면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 5-눈물고지
(FI되면 오리걸음으로 비탈진 산을 오르는 불합격 훈련병들.
비탈을 오르기엔 그들의 자세가 불합리하다. 뒤따르지 못하고
처지는 훈련병들의 등을 탄띠로 마구 내갈기는 조교 1,2,3.
한 훈련병이 비탈을 또르르 굴러 골짜 기로 처박힌다.
훈련병들의 등을 군화 발뒤꿈치로 내지르는 조교 1,2,3.
서로 앞장을 서려고 다투어 산을 오르는 훈련병들.
가까스로 정상에 올라섰다.)
조교 1-지금부터 군가를 한다. 군가는 ‘울려고 내가 왔나’.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훈련병들, 입을 떼지 않는다.
버럭 화를 내며) 이 새끼들 보게. 아직 정신이 덜 들었나?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 군가는 ‘울려고 내가 왔나’.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훈련병 소수가 입을 연다. 발로 걷어차고 탄띠로 후려갈기는
조교 1,2,3. 그 기세에 몰려 모두가 입을 열어 대중가요
‘울려고 내가 왔나’를 합창한다.)
훈병들-울려고 내가 왔나 / 누굴 찾아 여기 왔나 / 낯 설은 타향 땅에 /
내가 왜왔나 / 하늘마저 나를 울려 / 궂은비는 내리고 /
무정할사 옛 사람아 / 그대 찾아 천리길을 / 울려고 내가 왔나.
해설-콩나물 대가리 같은 눈물 방울이 이마에서부터 흐르는
땀에 섞이고, 그 짭짤한 맛이 입술에 감촉되면 이들의 합창은
통곡으로 변했습니다. 눈물 고지! 사전에 익히 들어왔던
이 고지의 전설을 재현한다는 것, 그것은 참혹한
시련이었습니다. ‘낯 설은 타향 땅’이라는 노랫말은 고향을
절감하게 했고, 가수 ‘남진’의 노래가 먼저냐, 이 고지의
고해가 먼저냐 하는 논리는 아마 후자에 속할 것입니다.
가수 남진이 이 노래를 발표한 것은 1967년입니다.
예수 없는 골고다 산상엔 오리걸음인 도둑과, 탄띠를 든 로마
병정이 존재할 뿐입니다. 이것도 훈련일까요? 그렇습니다.
특수훈련이라는 게 있습니다. 적이 고지에 진을 치고 있다면
우리는 뻣뻣이 상체를 세우고 ‘공격 앞으로 가!’ 하는
것보다는 오리걸음으로 가는 것이 더 유리할 것입니다.
(화면이 점점 어두워지며, 훈병 김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잡는다.
엠원소총 A 표적지가 거기에 흩날려오면 어느 손이 그걸 집어
갈기갈기찢는다.)
# 6-엠원소총 1,000인치 기록사격장 공터
(좌측 전면으로 사격장이 보이고, 우측 후사면에 PRI통제대가 보인다.
그 중앙 공터에 중대 전원이 양팔 간격으로 넓혀 철모를 땅에 벗어
놓고 거기에 대가리박아를 하고 있다. 두 손은 열중쉬엇 자세다.
그들 앞에 성난 표정으로 서 있는 중대장. 냉기류를 느끼며 자세를
바로잡지 못하는 조교들이 훈련병 사이사이에서 기압 감독이랍시고
서성댄다.)
해설-실탄이 두 발 부족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사격 전에 나눠진
실탄 숫자와 사격이 끝났을 때 회수된 탄피 숫자가 서로 틀리다면,
그것도 남는 것이 아닌 부족 상태라면 중대장은 노해 있어야
하고, 아울러 어느 정도 겁에 질려있어야 마땅합니다.
은닉된 두 발의 실탄은 어떤 종류의 사고를 일으킬 지도
모릅니다. 그 문제의 실탄을 은닉한 훈련병의 엠원소총은,
동료를 겨냥할지, 조교를 겨냥할지, 아니면 중대장 자신을
겨냥할지도 모릅니다. ‘은닉된 두 발의 실탄 찾기 작전’에 우리는
엑스트라처럼 등장해야만 했습니다.
(OL)
# 7-같은 장소
(중대 전원이 철모에 대가리박아를 하고 있는 옆이다.
10명으로 구성된 1개조가 조교 앞에 횡대로 정렬해 있다.
이들은 실탄이 없어졌다고 조교들이 추측한 조다.
좌로부터 차례 차례로 진술을 듣고 있는 조교. OL.)
# 8-같은 장소
(1개조가 횡대로 서서 군장을 해제하고 있다. 철모와 파이버를
분리시켜 발 앞에 놓고 통일화를 벗는다. 혁대를 풀어놓는다.
차례차례 뒤져오는 조교. 뒤지기가 끝난다. 대기해 있던 다른
1개조가 횡대로 정열하며 군장을 해제한다. OL.)
# 9-같은 장소
(문제의 1개조가 ‘낮은포폭 선착순 1명’ 기압을 받고 있다.)
# 10-같은 장소
(철모에 대가리를 박고 있는 훈련병들. 이제 조교들은,
기압을 끝내고 일어나서 자세가 흐트러지는 훈련병들을 발로
내리 밟고 걷어차고 있다.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높고,
견디다 못해 픽픽 쓰러져 눕는다. 그런 훈련병들을 마구 내리
밟는 조교들의 발, 발, 발.)
해설-끝내 중대장의 은닉된 두 발의 실탄 찾기 작전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중대장이 우리에게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우리가 중대장으로부터 얻은 것은 머리통에 봉분처럼
부풀어오른 혹이었습니다. 거의 한 시간 후, 기압이 끝나
일어났을 때엔 그 혹이 있던 자리는 그 높이만큼 아래로
내리 눌려 있었지만, 이내 부풀어오르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머리꼭지에 솟아오른 혹이 원위치가 되기까지는
여러 날이 걸렸습니다. 중대장이 염려했던 모종의 사고는
그 후에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려는 준비운동도 없었습니다.
그 모종의 사고는 은닉된 그 순간부터 벌써 끝났는지도 모릅니다.
# 10-엠원소총 200KD 기록사격장
(감적고의 커다란 표적 하나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총성, 총성, 그 것이 멎으면.)
교도대 조교 1의 소리-좌선 사격 끝!
교도대 조교 2의 소리-우선 사격 끝!
교도대 조교 3의 소리-전 사선 사격 끝!
통제관 소리-(스피커) 사수, 자물쇠 잠그고 감적고 확인!
(표적, 기운다. 이내 다시 올라오는 표적. 거기에 제로 점수를
표시하는 ‘감적대’가 표적 중앙에서 좌우로 흔들어 댄다. OL.
표적 중앙에서 좌우로 흔들어 대는 제로 점수의 감적대. )
해설-어처구니없게도 나는 이 엠원소총 200KD 기록사격에서
한 발도 맞추지 못했습니다. 이 기록사격에 주어지는
실탄은 모두 24발입니다. 스물 네 번이나 방아쇠를 잡아
당겼는데도 한 발도 들어가지 않은 것입니다.
눈을 감고 쏜다고 해도 서너 발 정도는 들어갔을 것입니다.
조교들의 말을 빌리면, 이런 경우엔 땅바닥에 혀를 박고
죽어야만 합니다. 어쩌자고 총이 그렇게 안 맞아줬는지.
총이 폐총이라서 그랬을까요? 그래서 영점이 흐트러져서
그랬을까요? 내가 이 기록사 격에서 등외사수가 된 것은 순전히
총 탓이라고 자위했고, 그러면서도 머잖아 다가올 ‘유급’과
직면해 있는 기압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나는 유급과 기압에 나의 전 재산인 300원을 헌납했던
것입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약’을 썼던 것입니다.
# 12-기록사격장 감적고 입구 근처
(중대 병력의 훈련병들이 정돈되면 흰띠를 두른 파이버를 쓴
교도대 조교 하나가 앞에 서서.)
교도대 조교 1-몇 중대지?
훈련병 1-6중대입니다.
교도대 조교 1-6중대? 좋았어. 여러분들은 오늘 엠원소총
200KD 기록사 격을 한다. 잘 들어왔기 때문에 유급이
어떤 것인 지 알 것이다. 유급을 당할 수 있는 케이스는
오늘의 기록사격과 숙달훈련에서다. 하나, 이 기록사격이
유급엔 숙달훈련보다 더 영향을 끼친다고 난 믿는다.
오늘 사격에 자신 없는 사람 있나? 자신 없는 사람은
솔직하게 손을 들어 봐! 우리가 잘 해 줄 테니까. 어서!
(손드는 사람이 없다.) 눈치 볼 필요 없다. 전원 고개
숙이고 눈감아. (고개 숙이고 눈감는다) 자, 그럼 손들어봐!
하나, 둘, 셋, 넷…. (아무도 손드는 사람이 없는 데도
교도대 조교의 이 말에 여기저기서 하나 둘 손을 들기
시작한다) 그래, 됐다. 손든 사람은 좌측으로 열외!
(10명 가량이 좌측으로 빠져나간다) 또 자신 없는 사람은
서슴없이 좌측으로 나와라. (10명 가량이 좌측으로 빠진다)
됐다. 너희 새끼들은 모두 자신 있단 말이지?
(악의를 품고) 좋다! 어떻게 쏘나보자. (다시 부드럽게)
좋게 얘기할 때 자신 없는 사람은 좌측으로 빠져라.
유급을 가고 싶나? 너희 중대에서 전번기생들이 유급을
몇 명이나 간 줄 알아? 자그마치 20명이었단 말이야.
동기생들 보다 일주일을 더 훈련받고 싶나?
그 지긋지긋한 훈련을 말이야. 유급생, 그 낙제생이란
닉네임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것인 줄 잘 알 텐데.
(또 10여 명이 좌측으로 빠진다. 교도대 조교 2에게 )
이 새끼들 교육시켜!
(교도대 조교 1은 좌측으로 열외한 30여 명을 인솔하여
어두컴컴한 감적고 안으로 사라지고, 교도대 조교 2가 앞에 선다.)
교도대 조교 2-(지독한 악의로) 이 새끼들, 사격장에 와 가지고 군기가
개판이야! 너, 기준!
훈련병 2-(우수를 치켜들며) 기준!
교도대 조교 2-양팔 간격 좌우로 나란히!
훈련병들-(양팔 간격으로 벌린다)
교도대 조교 2-주먹 쥐고 엎드려!
(아무 반항도 없이 주먹을 쥐고 엎드리는 훈련병들)
# 13-감적고 안
(카메라, 훈련병들이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교도대 조교 1에게
주는 광경을 멀리서 잡는다.)
해설-아직 나는 저기에 없습니다. 아까 나의 심중은, 나갈까 말까,
나갈까 말까 라는 가부가 서로 다투며 괴롭혔습니다.
그런 갈등은, 난 자신 있다, 난 유급으로부터 벗어날 자신이
있다 라는 마음으로 추스르며 일단락을 보았지만….
# 14-감적고 위 배수로
(10여 명의 훈련병들이, 허리 높이의 시멘트로 된 배수로에
쪼그리고 앉아 눈을 감고 있고, 그 중간에 교도대 조교 2가 서 있다.)
교도대 조교 2-자신 없으면 손들어! (아무도 손들지 않는다.) 그래!
한 명, 두 명, 세 명…. 또 손들어봐! (하나 둘 손을 드는
훈련병들. 훈병 김도 손을 든다.) 눈 떠! 500원 있는 사람
손들어봐! (손을 드는 훈련병들. 들까말까 망설이는 훈병 김)
훈병 김-저…난 300원 뿐입니다.
교도대 조교 2-300원? 더 없나?
훈병 김-네, 가진 것이라곤….
교도대 조교 2-곤란한데….그래, 됐어! 300원, 봐줬다! 자, 그럼 돈을
꺼내도록!
(호주머니를 뒤지는 훈련병들. 훈병 김은 접힌 담뱃갑 속에 감춘
꼬깃꼬깃한 지전을 꺼낸다. 300원이다.)
해설-내가 치사스럽다고 생각했던 저 녀석들의 대열에 개입했다는
사실 앞에서 난 내 자신을 어떻게 변명해야만 합니까?
# 15-기록사격장 사선
(엎드려쏴를 하고 있는 사수, 사수들. 그들이 오른발을 구부려
쳐들어 올리면 통제 조교들이 붉은 깃발을 쳐들었다가 내리치며
사격 완료 신호를 보낸다.)
통제 조교 1-좌선 3000원!
통제 조교 2-우선 5000원!
통제관-전 사선 8000원!
해설-좌선 3000원, 우선 5000원, 전 사선 8000원! 좌선에서 약을 쓴
녀석들의 액수를 합하면 3000원이 되고, 우선에서 약을 쓴
녀석들의 액수를 합하면 5000원이 되고, 이를 모두 합하면
8000원이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는 훈련병들이 뒷맛
씁쓰레하면서 던지는 조크입니다.
첫댓글 6공시절까지 제일 무서운법이 군법과 군기강! 사회에서 잘났던자나. 힘쎈자나 조교 앞에서는 모두 재봉틀. 인간기계화 집단속에! 이나라에 군이란 조직이 없었다면 우리의 현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대한 예비역 모두는 악몽같은 훈병시절 고통을 이젠 회심의 미소속에 아들. 조카.후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