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31일
제목: 고상한 감사 3가지
본문: 빌립보서 1:3-4
게임방 앞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레벨에 잠이 오냐?” 아이들은 게임의 레벨을 한 단계 올리기 위해 잠을 설쳐가며 몰두합니다. 그런데 게임은 레벨이 높아질수록 해로운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높아질수록 좋은 것도 있습니다. 바로 감사의 수준입니다. 믿음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교회의 역사가 오래될수록 감사의 수준도 함께 높아져야 합니다. 오늘은 고상한 감사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고통 중에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고상한 감사는 감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드릴 수 있는 감사입니다. 바울은 편지를 시작하자마자 감사를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의 실제 상황은 감사가 쉽게 나올 만한 형편이 아닙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그가 겪는 불편함과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고난 가운데서 수준 높은 감사를 합니다.
바울도 우리와 같은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라고 해서 저절로 감사가 나왔겠습니까? 누가 감옥을 좋아하겠습니까? 고통스러운 일을 겪으며 감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이 감사할 이유는 하나님의 역설적인 섭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을 겪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려운 일을 통해서도 선한 일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어떤 일이든 하나님의 손에서 선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는 이 약속을 믿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역사하셨습니다. 빌립보서 1장 12절에서 18절에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갇힘을 복음 전파의 기회로 바꾸셨습니다. 요셉도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참으로 억울하고 악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시편 기자도 고난 가운데서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 백성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을 축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 중에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감사합니다. 가족에게 좋은 일이 생겨도 감사합니다. 그러나 더 높은 수준의 감사는 다른 사람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만을 위한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 때문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했습니다. 바울의 매임과 복음 사역에 함께했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진보를 기쁨의 재료로 삼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 때문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웃에게 축하할 일이 생길 때도 함께 기뻐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가까운 이웃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진심으로 축하해 주십시오. 내게는 감사할 일이 없어도 형제의 일로 감사할 수 있다면 감사의 제목은 얼마나 많아지겠습니까?
어제 한 집사님의 아들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한때 방황하셨던 분입니다. 아내와 직장을 잃고 빈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셋집에서 막노동하며 성실하게 살아오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경찰이 되었으며, 이제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으며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었습니다. 마치 제 가족의 일처럼 기뻤습니다.
내게 주어진 것만 감사의 조건으로 삼는다면 감사할 일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과 형제 때문에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수십 배로 많아질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도 이웃과 형제에게 기쁜 일이 생기거든 함께 기뻐하고 함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형제가 잘될 때 축하하기보다 시기와 질투를 품기 쉽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한 감정을 이용합니다. 가인은 아벨을 시기하다가 결국 살인에까지 이르지 않았습니까? 형제를 시기하고 질투하면 인격이 손상되고 신앙도 상처를 입습니다. 내가 가진 행복마저 빼앗기게 됩니다. 사울도 다윗을 시기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결국 왕위도 잃고, 가족도 잃고, 신하들도 잃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무너졌습니다.
이웃과 형제를 인하여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내가 먼저 행복해집니다. 기쁨이 두 배가 됩니다. 마음은 부요해지고 인격은 고상해지며 믿음도 성장하게 됩니다. 형제에게 주어진 축복을 나의 축복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고상한 감사, 수준 높은 감사입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로버트와 미셀 루트번스타인은『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대한 통찰은 일상의 장엄함, 즉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는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을 감지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온다.” 일상에서 장엄함과 숭고함, 그리고 고상함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런 눈을 갖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위대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남들이 지나치는 것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발견합니다. 작은 것, 평범한 것까지도 감사의 제목으로 삼습니다. 그것을 기적이라고 믿고, 은혜라고 여기며 감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를 손에 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 작은 것에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겨자씨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셨고, 한 영혼의 가치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대처럼 흔들리는 베드로 안에서 장차 반석이 될 모습을 보셨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평범함 속에 담긴 장엄함을 봅니다. 일상에서 감사를 발견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기적처럼 보이고 축복처럼 느껴집니다. 기적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적은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감사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기적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벼 한 알을 심으면 수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도토리 한 알을 심으면서 떡갈나무 숲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기적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사사로운 일상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풍성한 은혜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고상한 감사란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이웃 잘 됨을 감사하며, 작고 미미한 것까지 감사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선으로 바꾸실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십시오, 내게 주어진 축복만 아니라 형제와 이웃에게 주어진 축복까지 함께 감사하십시오. 또한 작은 것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감격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고상한 감사가 우리 모두의 삶 가운데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