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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참하게 패퇴당한 루사와의 싸움
아쉬움이 한 주간 내내 자리 한 지난 주의 도중 하차.
풀밭동인회라는 이대의가 이끈 모임으로 인해 겨우 출발만
하고 중지한 정맥의 인력 또한 대단했다.
태풍 '루사'가 제주도에 진을 치고 있다는 기상 특보가 간단
없이 발표되고 있음에도 배낭을 꾸리게 할 정도였다.
무지의 소치일까 불신의 탓일까.
대단한 위력을 가진 태풍임을 힘주어 강조하며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건만 이를 일축한 것이나,
아무리 좁은 땅이라 해도 아직 제주에 머물고 있는 놈이 설마
강원도 산간까지 좌지우지 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한 것이.
통리에서 하차해 곧 바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을
고려하여 영주 봉화 경유 강릉행 심야 열차를 탔다.
적잖이 우회함에도 이렇게 한 것은 전적으로 혈리골쉼터의
김영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였다.
자기는 자의(Volunteer)라 하지만 대간길 접근과 탈출에서
얼마나 많이 폐를 끼쳤던가.
벼룩도 낯이 있다는데 하물며...
비(雨)야 서울에서 부터 이미 동행한 터지만 미명의 통리역
일대가 벌써 루사의 공포에 떨고 있는 듯 했다.
역사(驛舍) 옆 철로를 가로 질러 백병산 입구 태현사 앞에
도착하는데 1시간여가 소요되었다.
지척이나 진배없는 거리, 그 것도 평지나 다름 없는 지역에서
전진을 못하고 일진 일퇴하며 비틀거린 것이다.
새벽이라 해도 평소라면 일터에 나가거나 운동하는 이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차량들의 질주에 도로가 흔들리는 듯 할 때다.
그러나 인기척은 커녕 만물이 루사 공포에 전율하고 있는지
소름끼치는 바람소리를 빼면 적막일 뿐이었다.
태현사의 여러 분도 정녕 떨고 있는 것인가.
아침 예불과 부처님 공양마저 포기했는가.
기척해도 죽은 듯 응답이 없는 절을 지나 나무들을 붇들고
늘어지며 능선에 오르려 했다.
그러나 붙들기는 고사하고 버들가지 처럼 늘어지며 흔들어
대는 나무들에 얻어 맞느라 혼줄이 나고 있었다.
반보 전진에 이보 밀리기를 거듭하는 어처구니 없는 싸움
3시간여 만에 겨우 7부 능선 쯤에 올라 돌아서고 말았다.
이제는루사가 퇴각해 준다 해도 전진할 체력이 바닥났고
시간도 절대 부족이었다.
한 판 붙겠다며 호기와 비장한 각오로 출발했으나 포악한
루사에게 무참하게 당한 것이다.
본대도 아닌 전위대에게.
(치열한 악전고투의 보람 없이 패퇴당한 백병산 전투는
나의 3년에 걸친 만리장정에서 유일한 패배 기록이다)
착오, 착각의 날
본대가 제주에서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해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는데 머나 먼 강원도 태백, 삼척에서 벌써 떨고 있다면?
이건 분명 겁장이 짓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정상이다.
여간한 태풍에는 울창한 숲이 바람의 사주를 받아 회초리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방풍림 구실을 한다.
이것이 경험칙이며 자연현상이다.
루사는 이 질서를 깨버렸다.
판단의 착오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전위대의 세력이 이토록 막강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정상적 판단을 착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초췌한 패잔병의 몰골로 다시 혈리골쉼터를 찾았다.
전사통지를 받았던 형의 생환인양 반기는 김영규 내외.
폐를 주지 않으려던 이전 행동은 어데로 잠적해 버렸는가.
나의 사고와 행동은 이미 착각의 길로 매진하고 있는 것인가.
허탈감을 달래려고 강릉을 거쳐 속초의 친구(백두대간 31회
참조)에게 갈 요량을 했으니.
철로의 침수로 종착역이 강릉 아닌 동해라는데도 동해에서
버스편을 이용하면 된다며 강행했으니.
궤도차보다 훨씬 먼저 모든 교통수단이 이미 두절된 상태인데
버스편으로 가겠다며 나섰으니.
수라장이 된 동해역의 진풍경이 쇽크가 되어 비로소 착각으로
부터 탈출하게 되었다 할까.
일체의 발이 묶여 좌왕우왕하는 현장에서 어렵잖게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만도 착오와 착각으로 일관된 이 날의 내겐
행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곧 있은 청량리행 열차의 남은 좌석이 내 차지가 된 것이.
내가 간신히 탄 열차는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주말관광열차였으며 이후로는 모든 열차가 끊겼음을 귀경차
안에서 알게 되었다.
기상 특보(정상적인 일기예보 아닌) 외에는 일체의 뉴스와
담을 쌓고 사는 응보를 톡톡히 받은 하루였다.
가공할 태풍이라는 특보까지 외면했으니 더 무거운 벌이
합당했을 텐데.
폭군 루사의 포악성을 확인하며
낙동정맥이 초반부터 왜 이리 까탈을 부리는 걸까.
한 주간이 길기만 했다.
9월 7일 새벽 3시 반, 심야 열차편으로 태벽역에 내렸다.
통리역에 비해 양호한 대합실과 주변 식당이 이유다.
통리행 첫 버스에서 내린 6시 30분 낙동정맥을 다시 잇기
시작했다.
태백과 통리의 외견상 모습은 전과 별로 다를 게 없으나
피해의 심각상을 실감하는 정맥길이었다.
장송이 뿌리 뽑혀 쓰러지는데 사목, 고목 쯤이야.
넘어지고 부러진 나무들이 길을 막고 머리 숙여 큰 절하지
않으면 보내줄 수 없단다.
1.259m 백병산에서 지난 주를 회상했다.
3시간도 채 안걸리는 이 산을 4시간여의 사투끝에 포기하고
중도 하차하게 한 루사의 포악성을 지금 확인하며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루사에게 할퀴고 짓밟힌 자국들만 참담하기 이를 데 없을 뿐
그 후로는 아직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다.
그 자는 정맥 마루금마저 희미하게 흐트러 뜨려버렸다.
'지나고'를 간단 없이 챙겨야 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대간에서 이미 무수히 확인한 바지만 편편한 능선이 오히려
비정상일 정도로 끝이 없는 오르내림의 반복이다.
내려가는 길이 싫다는 고백은 다시 올라야 하기 때문에 나오는
아이러니(Irony) 아닌가.
그러므로 종주자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이런 지루한 경사나
된비알의 지형적 조건이 아니라 루사의 횡포같은 돌발 사태다.
백병산 일대처럼.
군락을 이룬 산죽의 훼방과 가파른 오름은 오히려 당연한 것.
루사가 꺾어버린 나무가지들이 산죽 속에 숨어 있다가 발을
걸어 넘어뜨릴 때마다 체력이 급감하는 듯 했다.
사고의 위험도도 높고.
태백과 삼척을 가르며 남하하는 정맥은 토산령에서 삼척의
가곡자연휴양림으로 내려설 수 있다.
루사 이전에는 그랬다.
그러나 루사는 이 휴야림을 날려버렸다.
구랄곡과 배월곡의 하류를 틀어 막은 휴양림의 잔해로 인해
아랫마을 풍곡리는 한 순간에 매몰되고 통곡이 온 산을 진동
시킨 비극의 마을이 되고 말았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거망동이 주원인이라면 인재인가
천재일까?
도지다
토산령에서 멈춰야 했다.
휴양림이 살아 있다면 내려 갔을 것이다.
추락사고의 다리가 도지는 듯 했기 때문이다.
잘 가던 다리에 돌연 설명할 수 없는 이상이 온 것이다.
오늘의 목적지 석개재에는 반남아 왔을 뿐인데 어찌 한담.
요리조리 달래며 도착한 1.072m 구랄산 부터는 심각했다.
1.245m 면산(두리봉) 까지의 오름이 많은 연봉들에서는
어느 만큼 이겨 낼 수 있었으나 이후의 내리막은 도저히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구랄산 정상
마지막 발악(?)이었던 대간의 재연인가.
가능한 온갖 연기가 총동원된 끔찍한 시간.
언제쯤 나는 이 무리(無理)라는 악습을 극복하게 될까.
내 어머니의 도움 없이 자립할 수 있을까.
마지막 급경사의 내리막에서는 다시 뻗장다리 앉은뱅이로
환원되었고 썰매타듯 궁둥이로 밀고 내려와야 했다.
길디 긴 고행은 석개재에 내려 섬으로서 마감되었다.
석개재
낙동정맥은 면산에서 태백과 교체된 경북 봉화가 당분간
삼척과 동행하게 된다.
따라서 오지중 오지의 교통난을 감안하여 석개재에서 비박
하려 한 것이 당초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또 다시 철수해야만 했다.
추락사고의 후유증에 루사의 후유증 까지 겹쳐서 간단 없이
진행을 막고 있다.
초반부터 악조건이며 장애물 투성이인 천백리길 낙동정맥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계속>
* 아래 글은 낙동정맥 통리 ~ 석개재를 마치고 적은 단상의
요약이다.
낙동정맥 험로 예고?
"대간 끝낸 후 53일이 지나갔다.
어머니께서 무척 기다리시겠다.
빨리 회복되도록 손 써 줬는데도 늑장부렸다고
야단치진 않으실까"
너무 오랜 공백이라 어머니께 죄송한 맘 금할 길 없어 서둘었건만
시작부터 엇나가는 건가?
<중략 >
9월 6일 23시,
마음 다잡고 다시 출발했건만 겨우 한 구간에 그쳤다.
야간열차에다 급강하한 태백의 기온에 대비치 못한 무비유환 탓일까?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몸은 천근이고 배낭은 더 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게..
전 구간에 걸쳐 울창한 산죽은 키재기 하자고 붙들고 늘어진다.
노우(No) 하면 가로막는다.
진행을 강행하려 하면 아예 길을 덮어버린다.
그래도 막무가내면 이번엔 물대포를 펑펑 쏘아댄다.
비옷에다 배낭 커버까지 완전무장했음에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수중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이다.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무거운 배낭은 더더욱 무거워지고, 진행은 자꾸
지연되고, 체력 소모는 가속되는듯 하고...
마루금 거리 11km 구랄산 부터는 지난 번 추락사고 때 치명적이었던
왼 쪽 다리에 이상까지.
갈 길은 아직도 먼 데.
이상한 다리의 경우 오르막 보다 더 어려운 게 내리막인데 남은 구간은
대부분 심한 내리막이고.
수심의 무게까지 겹쳐 더욱 무거워진 몸, 다시 미끄러지기를 거듭하며
간신히 석개재에 당도는 했지만 이제는 내일의 일정이 문제다.
유사한 대개의 경우 한 밤 편히 자고 나면 말끔해 지는 게 오랜 경험칙
이지만 저번의 추락사고의 연장선상에 있는 거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석포까지 갈 셈으로 세운 첫번의 차는 태백까지 간단다.
그나마 다행이다.
나 스스로 인정해 본다.
"백두대간이 나를 hitch-hike의 귀재로 만들었나 보다"고.
이 몸 상태로 bivouac 하기는 무리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또 다시 후퇴할
수 밖에.
작전상?
백암온천 근처에 가 있어야 할 지금 겨우 석개재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니?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