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둘러싼 IOC위원들의 뇌물스캔들이 터지자 IOC는 1999년 개혁 차원에서 위원 선출방식을 다양화했다.
위원 수를 115명으로 제한하면서 개인 자격 위원을 70명으로 줄였고 선수 가운데서도 15명을 위원으로 뽑기로 한 것이다.
국제경기단체 대표 중 15명, 각국 올림픽위원회(NOC) 위원장 중에서도 15명을 뽑았다. 선수위원은 올림픽 개최지 선정과 종목 결정 투표 등에서 IOC위원과 똑같은 권한을 갖는다.
▶우리는 이기붕 전 부통령이 첫 IOC위원이었고, 이상백(학자) 장기영(언론인) 김택수(정치인) 박종규(전 대통령경호실장)씨 등이 IOC위원을 지냈다.
2000년대 초 한때 김운용 전 대한체육회장, 박용성 두산 회장,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등 3명의 IOC위원이 있었지만 김 전 회장과 박 회장은 사퇴했다.
2002년엔 쇼트트랙의 전이경, 2006년엔 루지 봅슬레이의 강광배가 선수위원에 출마했지만 떨어졌다. 전이경은 IOC 선수분과위원으로 활동하긴 했지만 선수위원은 아니었다.
▶21일 베이징올림픽 출전 선수 1만2000여 명이 참가한 선수위원 선출 투표에서 우리 태권도 영웅 문대성(동아대 교수)이 뽑혔다. 29명 후보 중 1위였다.
중국 육상스타 류샹이나 수영의 그랜트 해켓 같은 스타들도 따돌렸다. 금메달 못지않은 쾌거였다. 문대성은 3주 동안 하루 15시간씩 선수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처음엔 '이상한 동양인'이라고 부르던 외국선수들도 30도 넘는 폭염 속에서도 끈기 있게 득표 활동을 한 그를 인정하게 됐다.
▶문대성은 작년 말엔 뉴질랜드로 건너가 하루 7~8시간 영어공부를 했고 체육 행정도 배웠다. 선수위원 당선엔 이런 노력이 바탕이 됐다.
그의 당선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무산으로 침체했던 한국 스포츠외교도 활력을 얻게 됐다. 국제행사 유치만이 아니라 편파 판정 다툼에서도 든든한 힘이 될 것 같다. 그가 국제무대에서 스포츠 외교관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도록 국민이 뒤에서 밀어주는 일만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