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로 천만관객 신화를 쓴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소품(小品)이지만 제기하는 문제는 흥미롭다. 한 시대를 풍미(風靡)한 왕년의 스타 최곤은 서울을 떠나 영월로 간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는 작지만 인간적인 사건과 마주치게 된다. 서울을 기준으로 세상사를 재단했던 철없던 인간의 변모과정을 유쾌하게 그려낸 <라디오 스타>.
매일 아침 독자 여러분은 일기예보를 보고 들으실 것이다. 주관 방송사가 어디든 여러분은 거의 똑같은 내용을 확인하실 거라 믿는다. 진행자들이 입에 달고 사는 몇 가지 어휘가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현재 서울 기온은, 지금까지...”
다른 것은 참겠는데, 일기예보가 ‘서울을 비롯한’ 이른바 ‘수도권 중심’으로 진행되는 점은 견디기 어렵다. 한국의 인구 5천만 가운데 2천만이 그곳에 몰려 있음은 주지(周知)하는 바다. 그러하되 나머지 3천만은 ‘호갱이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서울에서 시작하여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끝나는 일기예보는 중앙(中央)의 폭력성(暴力性)을 집약적(集約的)으로 표현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식으로 일기예보를 하지 않는다.
유럽의 경우 북부에서 시작하여 남부로 내려가거나 (그 반대이거나), 서부에서 시작하여 동부로 (혹은 동부에서 서부로) 옮아간다. 이것은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프랑스나 러시아처럼 우심(尤甚)한 중앙집권국가 경험을 한 나라조차 ‘파리를 비롯한 (모스크바를 비롯한) 수도권’이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거주 지역을 가지고 국민을 양분하는 행위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이외의 권역에 사는 사람은 2등 국민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위화감 (違和感) 조성을 최대한 피하려는 최소한의 배려(配慮)다. 부모와 조국을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출생지를 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그럼에도 태어나자마자 1등과 2등 내지 3등 국민으로 거주자를 구분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흥미로운 점은 대경지역의 방송사들도 똑같은 행태를 답습(踏襲)한다는 사실이다. 대경에서는 “현재, 대구를 비롯한 대구경북 지역은”으로 시작해서, “현재 대구기온은...”으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茶飯事)다. 시청자나 청취자가 울진이나 영덕, 봉화나 청송, 안동이나 의성, 영천이나 경산, 구미나 김천, 왜관이나 청도 등지에 산다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허구한 날 되풀이되는 대도시 중심주의가 우리나라 시민들을 옥죄고 있다. 대경 지역민들은 대구로, 대구 사람들은 속속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몰려간다. 지방분권(地方分權)과 지방자치(地方自治)를 목 놓아 부르짖는 사람들도 있지만, 마음속은 중앙을 넘본다. 이런 연유로 지방 공동화 (空洞化)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내가 일기예보에 특히 주목하는 것은 언어가 가지는 중독성(中毒性)과 주술성 (呪術性) 때문이다. 날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듣노라면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자동화된 무의식으로 그 내용을 수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상화되고 내면화된 국민 편 가르기를 당연지사(當然之事)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한 지방자치와 국민통합(國民統合)은 그만큼 어려워진다.
<라디오 스타>에서 주인공은 소도시 거주민들의 소소하되 애잔하고 정감 어린 사연들을 전달하면서 인간적인 정리(情理)를 깨닫는다. 자기중심주의, 서울과 수도권 중심주의의 편벽하고 고루하며 완고한 아집(我執)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21세기 개명천지에서 5천만 국민 모두가 평온하고 다채롭게 세상과 만나는 첩경(捷徑)일지 모른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임원항의 하늘은 잔뜩 흐려있고, 북서풍이 초속 5미터 내외로 불고 있습니다.” 하는 방송이 나온다면?! 아마 그날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이 온전하게 시작되는 첫 번째 날이 될 것이다!
경북매일신문, 2105년 1월 16일, 칼럼 <파안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