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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고록 下-
1. 게 송(偈頌)
고정(古鼎)-용천 온장로(龍泉溫長老) 호(號)
위음왕불(威音王佛) 저쪽, 공겁(空劫)전부터
무쇠처럼 단단한 어떤 것이 있었네
입을 벌렸으나 묵묵히 말이 없어
세 아승지겁 걸릴 행을 이미 마쳤네
온몸을 불구덩이 속에 던져버리니
뱃속에는 만난 음식, 그 향기 방에 가득하네
무심히 다리를 옮김에 싸늘하더니
배와 창자 기울여 선열(禪悅)을 토해낸다
납승들은 여기서 잔뜩 배부르니
부처님의 자손들은 지금도 끊김 없다
절암(節庵)-하무시자(霞霧侍者)
하산(霞山)의 언덕에서 늙은 그대
눈 서리 모르면서 서리와 눈을 지냈네
달이 뜨면 달 그림자 쫒고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맡겨두네
소슬한 바람소리 가장 가까운데
좋은 소식 듣더라도 누설하지 말아라
맑고 빈 그림자 속을 잠깐 스쳐가려거든
그 가운데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아차리라
모든 것 놓아버리고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무엇 때문에 금가루를 눈에 넣으랴
안다 모른다는 생각을 두지 않아야
비로소 좋은 시절 보게 되리라
덕산(德山)의 방망이를 꺾어버리고
임제(臨濟)의 할(喝)을 부숴버려서
어디 가나 누구에게도 속지 않으면
그때서야 바람과 달을 마주하리라
바람만 있고 달이 없으면 좋은 광명이 없고
달만 있고 바람 없으면 좋은 설법 없으리라
좋은 바람도 있고 좋은 달도 있거니
내 집의 법(法)놀이 끊이지 않네
철우(鐵牛)
계묘년 봄에 종서당(宗西堂)이 나를 찾아 가지산(迦智山)으로 와서 여름 안거를 지냈는데 그의 행동을 보니 치밀하고 조용하여 도를 받을 만한 자질임이 분명하였다. 가을이 되어 하직을 고하면서 호(號)를 구하기에 ‘철우(鐵牛)’라 하라 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젓번 해제(解制)때, 대중에게 날마다 하는 공부를 물었더니 서당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전에는 부처의 소리와 부처의 모양을 알고자 힘썼지만 이 회중에 와서 본분의 가르침을 받은 뒤로는 전에 했던 공부가 모두 없어졌습니다. 다만 냉정하게 조주스님의 무(無)자를 참구할 때에는 마치 모기가 쇠로 만든 소를 무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다지다가 호를 짓고, 다음의 게송을 지어 주고는 “철우를 호되게 채찍질해서 땀을 내게 하면 곧 조주스님과 만나게 될 것이다. 열심히 하여라”라고 하였다.
그저 어리석고 완고하여 뒤를 돌아보지 않는구나
아무 것도 모르니 어찌 사자의 외침을 두려워하랴
자지 않고 자면서 천지 사이에 편히 누웠으니
모래 같은 대천세계에 가거나 머무르지 않는다
몇 번이나 봄을 지내고 가을을 지냈지만
여여(如如)한 그 바탕은 고금이 없다
활활 타는 겁화(劫火)도 그것은 불사르지 못하나니
꽃다운 풀을 틔우는 빗발에 그 뿔은 어렴풋하구나
어둔하고 뒤뚱대는 이 소걸음을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이 세상에 아무도 그를 끌고 가지 못한다.
가엾다, 소 치는 이는 고비를 놓쳤거니
이떻게 할 수 없은 지 이미 오래 되었다.
나는 지금 소 치는 이에게 권하노니
갈 때는 빨리 타고 뻐가 저리도록 채찍질하라
벼가 저리도록 땀내고 피를 내겸
가주(嘉州)의 큰 석상(石像)이*:당(唐)나라 현종(玄宗)황제 때, 사문(沙門)이 해통(海通)이 가주의 대강(大江)에 높이 18장(丈)되는 미륵불의 석상을 만들었다 와서 구원을 청하리라
구원할 수 없어도 어찌할 수 없는데
한산(寒山)은 손뻑치며 크게 웃나니
그때 부디 종사를 찾아보면
결정코 고삐를 잡고 한가히 태평가를 부르리
혜암(慧菴)-송광총장로(松廣聰長老)
먼 바람은 그윽한 솔숲에 불고
서늘한 달은 맑은 허공에 비치는데
난간도 없고 문도 없나니
푸른 산은 고요하고, 흰 구름은 분명하네
복판은 비어서 고적한데
바깥 경계도 여여(如如)하여라
그 때의 보안(普眼)은 찾을 곳 없고
흰구름 무더기 속에 띠풀 초막뿐
꽃다운 풀, 떨어지는 꽃에 봄비는 내리는데
자고새 소리 멎고 대숲만 쓸쓸하다
남방을 찾는 동자는 어디로 갔나
티끌티끌이 모두 그가 사는 곳이다.
겹겹이 다함없는 화장세계의 바다
그것은 모두 이 암자 안에 있는데
그 속에 있는 미묘한 이치는
본래 알음알이를 용납하지는 않는다
주인 가운데 그저 이와 같아서
언제고 암자 문 밖을 나가지 않나니
욕심이 없어 거짓도 없고 사사로움도 없으며
얽매임 없어 자유롭고 자재하여라
털끝만한 범부나 성인의 견해도 모두 없애버리고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나니
아아, 이 무엇인고
암자 앞의 소나무.잣나무는 추위에도 변하지 않네
월담(月潭)
고요하고 커다란 허공에
두렷한 광명이 홀로 드러나니
그림자는 깊은 못에 떨어지고
빛은 수많은 물결에 갈라진다
묘한 밝음이여
만상을 용납하여 하나도 빠뜨림이 없고
묘한 맑음이여
모든 냇물을 받아들여도 항상 넘치지 않네
대천(大千)에 사무치고도 그 빛은 남음이 있고
천하(八絃)를 뛰우고도 그 물결 넘치지 않네
달이 못에 비치매 둘이 아니요
못이 달을 비추매 하나 아닐세
둘도 아니요 하나도 아님은 곧 마음이요
둘오 없고 하나도 없음은 곧 부처이러니
아아아, 이 무슨 말인고
큰 달은 원래 30일인 것을
밤은 길고 하늘은 맑은데
맑은 솔바람 불어오누나
이것이 걸림없는 월담의 신비한 경지이거니
어찌 다만 밤마나 한결같은 가을색분이랴
구봉(九峯)
이 세계 안에 구산(九山)이 벌려 있어
인간세상 아닌 별천지로다
하늘도 삼삼이요, 땅도 삼삼이라
삼삼은 구와 같으니 구는 삼이 아니다
삼이 곧 구요, 구가 곧 일인데
모든 사물은 삼도 이도 아니다
어허허, 아아아!
구구는 원래 팔십일이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소림산의 오랑캐 늙은이 하나는
9년 동안 잠자코 눈썹이 길었나니
흰 눈이 뜰에 가득한 일 없는 그 경계에
어떤 사람 오래 서서 괴로움을 잊었다
또 보지 못했는가
1천 5백 설봉공(雪峯公)은
세 번 투자산(投子山)에 오르고 아홉 번 동산(洞山)에 가서야
그 공을 이루었다
그대는 지금 어찌 살가죽 밑에 피가 없겠는가마는
그저 시르시름 세월만 보내면서
맑은 서리치는 9월 9일 산속에서
무엇하러 삼삼으로 짝을 지어 노니는가
그대에게 권하노니 부디 구천(九天)에도 오르지 말고
구주(九州)땅에 한가히 놀지도 말라
다니거나 섰거나 앉거나 눕거나 진공(眞空)만을 깨치면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구봉(九峯)에 오르리라
북쪽 봉은 우뚝 솟아 천지를 누르는데
다만 흰 구름 와서 서로 쫒아다니나니
부질없이 오고가는 흰 구름에 맡겨두라
푸른 담쟁이, 소나무의 달은 맑은 바람 끌어온다
한가한 틈에 천천히 걸어 딴 봉우리로 가면
손을 드리워 아이를 가리킨들 어떠리
영장로(英長老)에게*번역자가 보완해 넣었다【편집자 주】
계묘(契卯)년 가을에 우연히 월남정사(月南精舍)에서 놀다가 이 게송을 지어 당두(堂頭) 고저영(古樗英)장로에게 주어 그 일상생활을 경책하다
이 맑은 시절에 우연히 서로 만나
푸른 산, 맑은 시내의 달에 함께 누웠네
만나기 어려운 이 좋은 때를 헛되이 보낼건가
푸른 대숲 속에는 물소리 잔잔하구나
푸른 대숲 속에 잔잔히 물소리는
천금을 주어도 사기 어렵나니
그대는 마음을 비우고 내 말 들어라
봄바람 가을달이 어찌 그대의 흰 머리를 위해 가다려주겠는가
철봉(哲峯)
지혜도 미치지 못하고 슬기로도 다하지 못하며
천지를 떠받치고 유(宥)와 공(空)을 벗어났으니
그 어디 석양 밖에 홀로 섰는가
선재(善財)는 딴 봉우리를 물어 헛수고를 했구나
만고에 흰 구름 날아도 이르지 못하는데
하루 아침에 붉은 해 새어들어 미리 알렸다
몇 번이나 겁화(劫火)를 겪어도 그저 이러했던가
천고에 우뚝 솟아 조사의 풍모를 떨치네
동곡(東谷)
사시(四時)의 처음이요 만화(萬化)의 기틀*원문의 ‘幾’는‘機’의 오자인 듯하다이니
북두성이 굴러 부상(扶桑)이 희미하고
새벽이 밝아 해가 빛나는데
가운데는 비어 묘하고 깊으며 위는 트이어 그윽하고 미묘하다
가여워라, 예나 이제나 시냇가에 고기 낚는 이
하루종일 낚싯줄 드리우고 시냇가에 앉아서
물을 따라 흘러오는 떨어진 꽃만을 보고
이 땅이 언제나 봄인 줄을 모르네
중암(中菴)-수윤(壽允)
일본의 윤(允)스님이 자기 호에 대해 게송을 청하였다. 내 나이 76세로 눈이 어두워 붓을 놓은 지 오래되었으나, 간절하게 청하기에 굳이 노필(老筆)을 들었다.
천 겹의 푸른 산속
만 발의 푸른 언덕 옆에
굽이치는 시내와 흐르는 샘물은 나직이 목 메이고
깊은 수풀과 뒤섞인 나무들은 허허로이 우거졌는데
그 가운데 조그만 암자 없는 듯 있어
아침 저녁으로 임금을 축원하는 향연기만 보이네
꽃은 지고 또 피지만 새는 오지 않고
흰 구름만 때때로 문 앞을 찾네
뉘라서 그 절 주인의 생활을 아는가
오랫동안 세상 인연 꿈도 안 꾸네
적멸(寂滅)한 경계에서 적멸을 짝했나니
푸른 담쟁이와 소나무에는 맑은 바람과 맑은 달
식목수(中菴)-수윤(壽允)
지난해 소 먹이며 언덕 위에 앉았을 때
시냇가 꽃다운 풀에 보슬비 내리더니
금년에 소 먹이며 언덕 위에 누웠나니
푸른 버들 그늘 밑에 더운 기운 거의 없네
소는 늙고 소 먹이는 이가 누구인지 모르기에
고비를 놓아 두고 무생가(無生歌) 한 곡조를 한가로이 부르다가
고개를 돌리면 먼 산에는 저녁 해가 붉었는데
늦은 봄 산중에는 지는 꽃이 여기저기 바람에 날린다
설매헌(雪梅軒)
섣달 눈이 하늘에 가득 차 내리는데
찬 매화는 꽃이 한창 피었네
송이송이 송이송이
매화에 흩어져내리매 분간할 수 없구나
난간에 기대 종일 보아도, 그래도 부족하여
화공(畵工)을 시켜 붓과 벼루를 가까이하여
병풍에다 몇 가지를 옮겨놓나니
6월이 불 같은 구름에서도 사람 마음을 시원케 한다
설애(雪崖)
설산 가운데 눈언덕이 있는데
위에는 흰 눈 쌓여 봉우리를 이루었고
밑에는 새파란 향기로운 풀이 곱다
비니(肥膩)*:식용의 살진 풀. 중국에서는 흉년이 들면 풀을 먹엇느느데, 이 풀을 비니라했다.라는 풀이여, 삼동을 지나왔구나
떨기마다 잎마다 아름답기 옥과 같은데
빛과 맛이 다르면서도 같음이 있네
그 가운데 하얀 소가 있어
고운 털이 눈처럼 하얗지만
흰 소의 흰 것은 아니나
흰 것 아닌 가운데 따로이 흰 것이 있네
권하노니 그대는 이 소를 타고
마음껏 피리를 불어 보아라
풀은 향기롭고 물은 맛이 있나니
설산 속에서 즐거움은 즐거움이 아니거니
알아주는 친구와 즐거움 같이하라
그대들에게 권하노니
청춘을 놀면서 허송하지 말고
부디 종사를 가까이하여
때때로 묻고*원문의 ‘間’은 ‘問’의 오자인 듯하다단련을 받을지어다
스승이 넌에게 본분(本分)의 먹이를 준 뒤에야
인연을 따라가거나 머물거나 마음대로 하라
고송(古松)
개천 온(開天昷)장로가 호를 구하기에 고송(古松)이라 지어 주었는데, 그 뒤를 임금께서 그리신(御畵) 고송을 월암(月庵)의 청으로 찬(讚)을 짓다
어필(御筆)을 휘둘러
작은 방에 옮겨오니
만고의 먼 하늘에
한 조각 시원한 달이로다
바위에 우거진 솔이여
그윽한 소리는 가장 가까운데
가장 가까운 그 소리 누가 듣고 아는가
임금을 축원하는 향불에 중의 마음 간절하여라
중의 마음 간절하거니
성군(聖君)은 천년 만년 오래 사시어
서른 여섯 나라의 길(途轍)을 함께 하시오이다
무설(無說)
연서당(演西堂)이 무설(無說)이라는 두 자로 자호를 짓고 삼가 어필(御筆)을 받아든 뒤에 찬(讚)을 구하다
점(點)과 획(畫)은 별처럼 이어졌고
용과 뱀은 굽이치기를 다투는데
또 하늘의 이슬이 구슬을 내려 가을달을 적신다
그것을 가져다 옥쟁반에 담고
언제고 보배로이 감상한다
선사(禪師)의 도는 짝할 이 없고
글재주는 신기할이만차 뛰어나며
명예는 천하에 가득 차고
말과 행실은 한결같아서
선비도 스님네도 깊은 풍모를 사모하여
세상 인연은 다 없어졌도다
그저 잠자코 오는 학인을 대하며
편안히 스스로 즐거워하나니
더구나 자상한 그 마음을
무어라 다 말할 수 없어라
신재(愼齋)
삼간다는 뜻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 그것은 반드시 조심스럽고 독실한 군자의 말과 행실에서 온 것이리라. 말을 삼가면 말이 천하에 가득해도 허물이 적을 것이요, 행실을 삼가면 행실이 천하에 가득해도 후회가 적을 뿐이겠는가. 한마디 말과 한 가지 행실은 모두 천하와 국가에 만년토록 큰 벼리와 큰 법이 될 것이다.
지금 안산공(安相公)이 그 호를 신재(愼齋)라 하고 한마디 부탁하기에 나는 부득이 글(詞)을 짓는다
천하와 국가의 예나 이제나
행세하는 보배는 이것이 제일이니
땅은 끊임없이 복을 보내고
하늘은 빈틈없이 은혜를 내린다
상서로운 기린은 날마다 문 앞에 나타나고
의젓한 봉황은 때때로 모여와 운다
꽃다운 풀에는 봄비 내리고
붉은 단풍에는 가을서리 친다
마음을 비워 사물의 변화를 관찰하면
아무 일 없는 그저 평범함뿐이리
이암(理菴)
이치란 천하 국가의 큰 벼리이다. 성인은 그것으로 세상 사람을 편하게 하고 사람도 그 덕의 교화를 받아 모두 본연의 선(善)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이른바 순박한 바람이 천하에 두루 불면 눕지 않는 풀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지신사 상국 흥방(知申事相國興邦)이 호를 구하기에 이암(理菴)이라 짓고, 이어서 게송으로 그 듯을 밝히니, 상국은 살펴보고 혹 생각이 있으면 금어(金魚)*옛날 중국에서 황금으로 물고기 모양의 주머니를 만들어 벼슬있는 사람에게 차게 했다. 금어대(金魚袋)를 차고 오시오
지식으로도 헤아릴 수 없고
지혜로도 알 수 없으니
천지를 모두 휩싸고
고금을 꿰어 뚫었다
원래 그러하여 하늘보다 먼저 되었고
사방에는 문이 없다
무너진 언덕, 끊긴 시냇물에 석양이 붉었는데
꽃 지고 꽃 피기 그 몇 해이던가
주인 중의 주인이여
오랫동안 왕래가 끊겼는데
마음을 비워 고요히 솔바람을 듣느니
흰 구름 가고옴을 물으려 하지 말라
이 암자에는 원래 이치의 길 막혔거니
어은(漁隱)
옛날의 통달한 사람들은 숨어 살면서 고기를 잡기도 하고 혹은 나무를 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기회를 보고 때를 기다리다가 조정에 나타나 한 번 말을 꺼내면, 구름이 용을 따르듯 물이 바다로 들어오듯 세상 사람들이 모두 스스로 귀의하니, 아느 것 하나인들 그 은혜를 입지 않겠는가. 저 위수(渭水)의 강태공(姜太公)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 어진 재상 이암(理菴)이 ‘어은(漁隱)’이라 별호를 지은 뜻도 거기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글(詞)을 짓는다.
긴 강의 밝은 거울 속에
평생의 뜻을 맡겨두노니
세상의 무궁한 일이
낚싯대 휘두름에 있다
만 리의 외로운 배에 한 조각 달이 뜨고
몇 가닥 긴 젓대소리에 흰 갈매기 나는데
삼황오제는 지금 어디 있는가
천고의 흥망을 그저 스스로 알 뿐이다
빨리 황하(黃河)가 맑을 날을 기다려
바람과 구름을 타고 태평세상을 만나리라
벽운(碧雲)
동재 양공(東齋楊公)이 호는 벽운(碧雲)이요, 자는 자연(自然)이다 지금 왕명을 받들어 그 자와 호에 대한 말을 구하러 특별히 성륜산(聖輪山)으로 나를 찾아왔는데, 청하는 마음이 매우 간절하기에 나는 부득이 붓을 든다.
세상에 누가 푸른 구름처럼 한가한가
언제나 맑은 허공과 함께 찬 달을 마주한다
사해(四海)를 내 집으로 삼아도 아무 일 없고
한 평생의 가고 머무는 것이 아무 이유 없네
만 리의 넓는 들과
곳곳의 푸른 산을
자재로이 소요하다가
혹은 샘물과 둘 사이로 중의 집을 찾는다
동재(東齋)
온갖 변화가 여기서 일어나고
원형이정(元亨利貞)*역(易)에서의 건(乾=하늘)의 네 가지 우너리, 즉 사물의 근본 원리라는 말. 원은 만물의 시초로서 봄에 속하고, 형은 만물의 자람으로서 여름에 속하고, 이는 만물의 갖춤으로서 가을에 속하고, 정은 만물의 완성으로서 겨울에 속한다이 비로소 생겨나다
일양(一陽)의 덕이 천하에 두루하여
사람과 물건이 자연의 이치에 편안해 한다
근본은 고요하나
그 공용은 크고 넓다
꽃다운 풀, 지는 꽃에 봄비가 내리는데
그대와 술잔 드는 그 뜻이 어떠한가
수암(壽菴)
공겁 이전에 이미 이루어졌나니
비바람에 갈수록 견고하다
주인 가운데의 주인이여, 얼굴이 옥 같은데
이금을 축원하는 한 향로의 연기, 아침 저녁 끊이지 않고
바위의 꽃은 몇 번이나 피고 또 졌던가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세상 인연을 씻는다
대송(對松)
솔이란 초목 가운데 군자요, 이것을 사랑하는 이는 사람 가운데 군자이다. 내시 이 부(李 榑)가 임금의 명을 받들어, 이 소설산(小雪山)에 와서 호를 구하기에 대송(對松)이라 짓고, 게송으로 그 뜻을 밝힌다.
산과 물은 겹겹하고
구름과 솔은 높디 높은데
이것을 마주한 군자 있으니
성은 이(李)요, 이름은 부(榑)인 농서공(隴西公)이다
그윽한 소리는 달을 띠어(帶) 귓가에 울리고
뼈에 사무치는 맑고 찬 기운은 마음의 어둠을 부순다
때로는 흰 구름이 찾아와 소식 전하니
시절이 맑아지면 푸른 용을 탈 수 있으리
명곡(明谷)
안개 사라진 가을
만 리에 구름 걷히고
해는 왼쪽에 걸려 언제고 꼼짝 않는데
달은 오른쪽에 걸려 항상 그 곳을 비춘다
넓고 빛나 고금에 통하고
그윽하고 아득해 시종이 같다
여기다 조그만 암자를 지어
평생살이를 맡길 만하거니
백 년, 3만 6천 날에
날마다 더욱 이 이치 참구하라
무현(無顯)- 경문(景文)
밝고 신령한 한 물건이 천지를 덮었는데
안팎을 찾아봐도 잡을 곳 없네
생각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도 어쩔 수 없거니
그대가 꽃을 들어 보이려 하지 않음을 알겠네
하하하, 이것이 무엇인고
다급하고 자세히 참구하여 허송세월 하지 말아라*원문의 ‘母’는 ‘毋’의 오자인 듯하다
꽃다운 풀, 지는 꽃, 뿌연 빛 속인데
푸른 구름, 찬 대나무, 띠풀집에 누워 있다
누가 와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을 묻거든
삼삼은 구요, 그 나머지는 없다고 하라
죽암(竹菴)
한 물건도 그 속에 없어 본래 청청하니
그 뜰 안 엿볼 사람 세상에 없네
봉이 휘파람 불고 용이 읊조려 선정의 고요함을 깨뜨리나니
한 낚싯대, 밝은 달이 강성(江城)에 가득하네
반원(返愿)
몇 해나 강회(江淮)로 떠돌아다녔던가
오늘에야 배를 돌려 본원(本愿)에 돌아왔네
웃으며 만나는 손과 주인의 마음은
그저 기쁘고 좋아서 무어라 말할 수 없네
말할 수 없고 거리낌 없으매
맑고 고요하여 아무 맛 없네
자천(自天)
비록 땅에 서서 다니지만
본래 하늘을 찌를 뜻이 있나니
온갖 변화가 다르면서 같음을 사람들은 보지마는
다른 가운데의 다름은 성인도 알지 못하리
차문(此門)
눈앞의 한 가닥 길이 바로 그것을 가리키나
마음 먹고 달려가면 더욱 아득하리라
철저히 마음 없애고 모두 놓아버려야
비로소 여여한 본체를 알게 되리라
정암(珽菴)
신령스레 밝고 철저히 깨끗하여 그 문이 없는 곳
나그네는 부질없이 찾아 달리다 해가 저무나니
만일 별봉(別峰)에 이르러 덕운(德雲) 찾으려 하면
밟은 적 없는 길에는 여전히 없으리라
도암(道菴)
지극히 고요하고 단단하여 때려도 열리지 않건만
흰 구름 무더기 속에 어렴풋이 보이네
지금 사람으로 만일 가업을 전하려거든
모름지기 유마힐의 방장실로 돌아가야 하리라
철문(鐵門)
높아서 잡을 수 없고 가까워도 만질 수 없는데
구름은 날고 비는 흩어져 푸른 이끼에 잠겼다
온갖 생각 한꺼번에 버린다는 그것도 없으면
그제야 본래 활짝 열려 있었음을 믿겠구나
은계(隱溪)
구름이 자욱한 골짝에 세상 번뇌를 끊었는데
밤낮으로 흐르는 시냇물은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구나
소부(巢父)*.중국 요(堯)임금 때의 고사(高士). 요임금이 천하를 맡기고자 하여도 사양하고 받지 않고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물에 나가 귀를 씼었다 한다
허유(許由)*고대 중국 전설상이 인물. 요임금이 천하를 물려주려 하였으나 거절하고 기산(萁山)에 들어가 숨었다 한다를 배워
부질없이 물가에서 귀 씻지 말고
우뚝이 앉아 임금과 신하의 대의(大義)을 잊어버려라
중리(中理)
때에 맞게 행동함이 그 가운데 있어
온갖 변화로 중생들을 고루 이롭게 한다
어디에서 손을 놓을까, 천성 밖이로다
그러한 큰 일로 우리 가풍을 이어라
반운(伴雲)
위에도 밑에도 잘 어울리매
펴고 말아들이며 나가고 숨음이 한가하고 맑아라
크게 펴면 끝이 없고 작기로는 틈이 없나니
청산은 첩첩하고 평야는 만 리에 뻗쳤네
화원(化元)
물물마다 그대로가 참이라 본래 아무 것도 없어
근원에 돌아오면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
마하반야의 존귀하신 법왕(法王)이
바로 지금의 화신불(化身佛)이다
요암(了菴)
경계는 없어지고 사람도 없으며 새도 드문데
지는 꽃은 조용히 푸른 이끼에 떨어진다
노승은 일이 없어 소나무 달을 바라보다가
때로 오가는 흰 구름 보고 한 번 웃는다
사리의 빛나는 광채 옥문(玉門)을 비추었다
구름 끝에 솟아난 저 푸른 삼각산
그 밑에 탑을 세우니 나라와 함께 길이 편안하며
스님의 풍도는 대동(大東)에 널리 퍼지리
산은 절하고 명(銘)을 짓노니 무궁하도록 전해지이다
홍무18년(1385)을축 9월11일, 문인 전 송광사 주지 대선사 석굉(釋宏)이 비석을 세우다.
문도(門徒)
국사 지웅존자 혼수(國師智雄尊者混修), 왕사 원응존자 찬영(王師圓應尊者粲英), 내원당 묘엄존자 조이(內願堂妙嚴尊者祖異),내원당 국일도대선사 원규(內願堂國一都大禪師元珪), 도대선사 광화군 현엄(都大禪師廣化君玄嚴)
대선사(大禪師):수서(守西), 조굉(祖宏), 자소(慈紹), 선진(旋軫),일녕(一寧), 정유(定柔), 상총(尙聰),혜렴(惠廉), 혜심(慧深), 경돈(慶敦)등 90인
선사(禪師):신규(信規), 계교(屆皎), 덕제(德濟), 의경(義瓊), 수윤(壽允), 내유(乃由), 내규(乃圭), 성잠(省岑), 천긍(天亘), 유창(惟昌)등 1백7인
운수(雲水):법공(法空), 정유(定乳), 환여(幻如), 달생(達生), 성명(省明), 중철(中哲), 복남(卜南), 정일(定一), 조행(祖行),성인省因), 법자(法慈), 법순(法淳), 달심(達心), 성여(省如), 희엄(希儼),명회(明會), 각명(覺明), 선견(善見), 희오(希悟), 가신(可信), 가생(可生), 지천(止川), 운잉(雲仍), 선정(宣正), 가운(可雲), 가인(可印), 운상(雲祥), 설강(雪岡), 설사(雪思), 요환(了幻), 설진(雪珍), 가송(可松), 가순(可淳), 내녕(乃寧)등 약1천3인.
칠원부원군 운항령 삼사사 이인임(漆原府院君伊桓領三司事李仁任), 판문하 최영(判門下 崔瑩), 문하시중 임견미(門下侍中林堅味), 수문하시중 이성림(守門下侍中李成林), 판삼사사 이성계(判
三司事李成桂), 철성부원군 이림(鐵城府院君李琳),삼사좌사 염흥방(三司左使廉興邦), 찬성사 우인열(贊成事 禹仁烈), 연흥군 박형(延興君朴形), 개성군 왕복명(開城君王福命), 상당군 한천(上黨君韓蕆), 문하평리 반익순(門下評理潘益淳), 정당문학 이인민(正堂文學李仁敏), 김해군 김사행(金海君金師幸), 밀산군 박성량(密山君朴成亮), 지신사 염정수(知申事廉廷秀), 전공판서 최경만(典工判書崔敬萬), 김해부사 이희계(金海府使李希桂), 삼한국대부인 이씨(三韓國大夫人李氏), 비구니 묘안(比丘尼妙安), 전공판서 김귀인(典工判書金仁貴)
비석의 높이는 7척 5촌. 넓이는 3척5촌5분. 글자의 이름은 9분 해서(楷書)요, 전제(篆題)글자의 지름은 3척2분인데,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북한리 태고사(京畿道 高揚君 神道面 北漢里 太古寺)에 있다.
소봉(小峯)
수미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어라
활활 타는 겁화도 태우지 못하나니
옛처럼 푸르게 흰 구름 속에 있네
사도(斯道)
지난날 영산회상에서 직접 부촉하신 것
오늘도 여전히 띠풀집에서 마주하네
만일 마음을 가지고 헤아리려 한다면
믿음만 더욱 고되게 할 뿐이리
과운(過雲)
평생의 행동이 아주 자유롭나니
구함이 없으면 어디서나 편안하다
그 행이 천하에 가득해도 자취가 없이
오늘도 예처럼 푸른 산에 누워 있다
즉공(卽空)
허(虛)이면서 신령하고 공(空)이면서 묘하니
지각 없는 밝은 깨달음 도리어 환하도다
비록 모든 법에 상대를 끊었으나
상황에 따라 한량없는 삼매 바다를 나타낸다
단암(斷菴)
청산에 길이 막혀 세상 인연 끊었더니
부처도 조사도 문 앞에 오지 않네
꽃을 문 온갖 새도 오가지 않고
임금을 축수하는 향불만 타오르네
무외(無畏)
겁화(劫火)로도 태우지 못하고
큰 바람(毘藍風)*매우 빨라 지나는 곳마다 모두 파괴하고 흩어지게 되는 폭풍 어려워라
우뚝이 앉아 일이 없어 푸른 산을 마주하니
사해(四海)에 높은 눈, 천마도 예배한다
은계(隱溪)
영천(潁川)*소부(巢父).허유(許由)가 귀를 씻었다는 강물에 귀를 씻지 말고
수양산(首陽山) 고사리를 먹지 말아라
세상의 시비에 전연 관계하지 않고
날마다 맑은 물로 밝은 달을 씻으리라
석암(石菴)
큰 바람(毘藍風)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겁화가 일어나도 더욱 든든하나니
무위(無爲)의 참사람이 무주(無住)에 머무르매
흰 구름만 부질없이 그 문 앞을 찾는다
은봉(隱峯)
백억의 수미산이 그 안에 있나니
둘러싼 흰 구름은 몇 천 겹인가
저녁 별 아득한 그 어느 밖에
우뚝이 높이 서서 옛 바람을 날리는가
하주(何住)
두 쪽에 모두 머무르지 않거니
중도인들 어찌 편안해 하랴
물마다 산마다 자유로이 노닐면서
물결 위에 한가한 흰 갈매기를 웃는다
남곡(南谷)
아이가 찾아왔던 지 천 년 뒤
적막하고 텅 비어 맑기만 한데
늙은 중은 일이 없어 구름 속에 누웠나니
한낮의 푸른 산만이 암자를 마주하네
무지(無智)
항상 혼자 앉으면 멍청한 이 같더니
찬 바위 마른 나무가 청춘을 맞이하듯 하네
홍진(紅塵)의 길에서 치달리기를 그만두고
한결같이 구름산에 이 몸을 숨기리라
운산(雲山)
흰 구름 속에 푸른 산 첩첩하고
푸른 산 속에 흰 구름 많다
날마다 항상 산과 구름 벗하나니
몸이 편하여 어디고 다 내 집이다
무내(無奈)
마음과 경계를 모두 버리면 그것은 무엇인고
갈대꽃인지 눈(雪)인지 같은 듯 다른 듯하구나
오묘한 저쪽 길, 끝까지 가기 어려운데
천 강의 그림자 없는 달을 모두 밟는다
묘봉(妙峯)
높고 미묘하여 색이면서 색 아닌데
구름 밖의 그 모습 아득하여 끝이 없다
뛰어난 빛이 온 천하를 억누르건만
이 세상엔 아무도 그것을 못 찾는다
무착(無着)
이렇게 행해도 본래 구함이 없고
이렇게 행하지 않아도 자유로워라
동서남북으로 두루 통한 길이거니
날마다 마음대로 가고 머물고 하네
무문(無文)
그 물건은 빛깔도 소리도 다한 것
형상도 없고 이름도 없다
거기서 만물이 일어나나니
그 변화는 신령(神靈)과 같다
석우(石牛)-의여(義如)
다섯 장정*촉왕(蜀王) 본기(本紀)에 나오는 다섯 명의 힘센 장사이 끌어도 움직이지 않고
여섯 나라를*전국시대(戰國時代)의 여섯 제후국(諸侯國).제(齊).초(楚).연(燕).한(韓).위(魏).조(趙) 다 찾아도 자취 없네
천 강의 달을 두루 다니다
봄 눈 쌓인 산에서 한가히 자네
무증(無證)
완전한 깨달음이란 빛 그림자 같아서
깨쳐도 오히려 아득하구나
그윽학 묘한 이치 모두 없애면
맑고 시원함이 골수에 사무치리라
효산(?山)
높고 또 높아 주(周)의 경계 누르고
뻗고 또 뻗어 한(漢)의 땅에 다달았네
장정(長亭)*①10리마다 두었던 역.②멀리 여행하는 사람을 전송하는 곳이 나그네에게 말하노니
모름지기 빨리 돌아가야 하리라
공계(空溪)
백만 사람의 자취가 끊어졌고
삼아승지의 나그네 길 막혔네
지는 꽃은 푸른 물에 떠 있는데
밝은 해는 동서에 사무친다
석계(石溪)
하나는 흐르고 하나는 흐르지 않으며
잠잠한 것도 있고 잠잠하지 않은 것도 있다
목 메인 소리로 어디로 돌아가나
먼 하늘의 한 빛을 생각한다
중해(中海)
시방은 이 자리에서 생기고
모든 법은 이 종(宗)에 모이나니
백억 겹의 큰 바닷물이
겨자씨 하나에 감추어진다
해운(海蕓)
아득한 푸른 바다 위에
흰 구름이 둥실둥실 떠가네
그 가운데 흰 갈매기의 즐거움이여
그대에게 이 한 생을 맡기리라
운간(雲澗)
한낮에는 구름이 벗이 되고
맑은 밤에는 물이 이웃 되나니
세상 밖의 무궁한 즐거움이여
누가 있어 이 즐거움 함께하랴
공도(空道)
이 공(空)은 공이 아니면서 공이요
이 도(道)는 도가 아니면서 도일세
적멸마저 모두 사라진 곳에
두렷이 밝아 언제나 분명하네
일문(一門)
세계에는 오직 한 문이 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들어오지 않는가
조주의 ‘무(無)’를 참구해 뚫으면
비로소 자물쇠가 저절로 열리리라
일계(一溪)
천고를 뚫고 계속 흘러서
양쪽(二邊)의 그림자를 씻어 없앤다
우스워라, 진(晋)나라 황공(黃公)이여
몇 번을 묻고도 요령 얻지 못하누나
무정(無定)
두 쪽에 다 머물지 않고
삼제(三際)와도 인연 끊었네
만일 이 물건 깊이 믿으면
그 가슴은 푸른 하늘 덮으리
증암(證菴)
시방에도 벽이 없고
사면에도 문이 없네
부처와 조사도 여기에는 오지 못하나니
흰 구름에 누워 한가히 잔다
석계(石溪)
돌을 굽이쳐 흐르는 물소리
치우침 없는 장광설인데
비록 평등한 교화라 하나
귀머거리 위해서는 설법하지를 않네
공곡(空谷)
넓고 넓어 천지를 덮고
그윽하여 맑고 빔을 간직했다
부처나 조사도 찾아오지 못하나니
여기에 암자를 지을 만하구나
연해(演海)
넓고 넓은 큰 물결 위에
뱃사공의 피리소리 길기도 한데
그 소리에 세상 시름 잊나니
흰 갈매기들 춤추며 날아오르네
차계(此溪)
흐르지 않은 것은 어느 쪽의 달이며
흘러 지나가는 것은 어느 쪽 구름인가
천고에 짓푸름을 간직했나니
지는 꽃만 부질없이 어지럽구나
우산(友山)
나그네의 돌아갈 길을 바로 가리켜 주어
그 은혜는 수미산보다 높으니
몸을 가루낸들 어찌 갚으리
옛과 이제의 반연을 끊어야 하리
적조(寂照)
본래 여여(如如)하여 움직이지 않더니
오늘은 도리어 더욱 밝구나
대천세계가 모두 다 없어져도
이 물건만은 언제나 신령하네
중적(中寂)
부처의 눈도 오히려 미혹한데
범부의 마음은 어찌 구제되겠는가
앞도 삼삼, 뒤도 삼삼이니
그 하나하나를 밝히기 어려워라
묘봉(妙峯)
높고 높아 대천세계 누르고
우뚝이 솟아 하늘을 뚫는다
멀고 가까운 산은 다 우러러보는데
가고 오는 구름은 나부끼네
초산(楚山)
이 산중에 아름다운 옥이 있는데
마음 먹고 찾으면 찾기 어렵네
그것을 찾아가다 길이 막힌 곳에서야
비로소 온 천하가 구슬(璧)*원문의 ‘壁’은 ‘璧’의 오자인 듯하다임을 알리라
청간(凊澗)
푸른 산 골짜기에서 나와
흐르고 흘러 푸른 바다에서 조회한다
졸졸졸 흐르는 소리 가장 가깝건만
가까이 들은들 그 누가 알리
중월(中月)
동쪽에도 서쪽에도 머무르지 않고
끝까지 맑은 빛이 사무치도다
모든 형상 가운데 홀로 드러났나니
두렷이 밝아서 언제나 멸하지 않네
비보(非寶)
금과 옥이 아무리 집에 가득해도
원래 나를 구하는 보내는 아닐세
세세생생 나를 따르는 보배는
참선하는 진실한 한 생각뿐이네
고림(古林)
가지도 없고 잎도 없는 이 나무
봄바람 불어 그 뿌리 흔든다
푸르지도 희지도 않은 빛깔은
꽃이 피어도 흔적이 없네
천산(天山)
수미산 꼭대기를 모두 다 덮고
하늘의 중심을 찔러 여나니
8풍(八風)*8법(八法)이라고도 한다. 즉 이익.쇠약.비방.명예.칭찬.조롱.고통.즐거움으로 이것들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으므로 바람이라한다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겁화(劫火)도 마침내 침노하기 어려워라
평시(平時)
한번 휘둘러 천하를 평정하매
모든 나라가 다투어 와서 축하하네
벽 위에 삼한(三韓)의 공이여*나라에 공이 큰 사람은 영정을 따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아이들까지 무어라 웅얼거리네
충근(忠謹)
맑은 절개는 삼한(三韓)을 덮고
공과 이름은 만대(萬代)에 드리웠네
때때로 임금을 섬기나니
아차하는 사이에도 그 마음 변하지 않네
낙암(樂菴)
산중의 한 초막은
꿈 속에서 받은 큰 국록(千鍾祿)*1종은 쌀6섬. 천 종의 녹이란 많은 국록(國祿)이란 뜻일세
염불하여 공을 이루었거니
반드시 극락세계에 나리라
무능(無能)
이것은 본래 남(生)이 없지만
인연을 따라 곳곳에 분명하네
이러한 뜻을 확실히 믿으면
집에 돌아갈 길 묻기를 그만두리라
자정백(子庭栢) 선인(禪人)이 게송을 청하다
납승의 선(禪)은 아주 분명하여
천고에 잣나무가 뜰에 가득 우거졌네
우스워라, 그때 그 선재동자(福城子)*복성(福城)은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뵈온 곳
남방의 백여 성을 다니면서 물었구나
인(璘)선인이 게송을 청하다
뚜렷이 밝은 한 알의 흰 구슬이
가는 곳마다 그 빛이 찬란하네
움직였다 하면 값을 칠 수 없는 보배를 일으키나니
그대가 중생을 이롭게 함이 끊임없음을 알겠네
일본의 석옹(石翁)장로에게 주는 글
나는 이렇게 주노니
선사도 이렇게 받으시오
나는 진실로 얻고 잃음 없거니
선사인들 어찌 공이 있다 없다 하겠는가
해동(海東)은 산악이 빼어났는데
부상(扶桑)에는 한 점이 붉었구나
가여워라, 눈 속에 선 사람이여
하마터면 가풍을 잃을 뻔했구나
강남(江南)사람 무극(無極)화상에게 주는 글
서쪽에서 온 한 곡조를 아는 사람 없나니
백아(伯牙)는 있건마는 종자기(種子期)*백아와 종자기: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사람. 백아는 거문고를 잘 탔고, 종자기는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그 마음을 알았다 함.없네
홀로 고요히 앉아 밤은 깊어 가는데
지는 달이 발을 뚫고 장삼에 비쳐드네
주륵규(朱勒主)장로에게 주는 글
청춘에 백발이 오니
세월이 홍안(紅顔)을 업신여겼네
묻노니 뜬 세상 일이여
얼마 동안이나 편할 수 있으랴
김승제 희조(金承制 希祖)에게 답함.2수
1.
여래의 청정한 몸도
원래는 윤회하던 사람이었고
또 저 공자(孔子)도
진(陳)나라에서 당황했나니*공자가 언젠가 진(陳)나라, 채(蔡)나라 사이에서 부랑자들에게 큰 곤욕을 당하였다. 그것을 두고 불교에서는 전생의 업이라고 하였다.
무엇을 배워야 하랴
진심을 찾느니만 못하나니
부디 다른 데서 찾으면서
내 집의 보배를 묻어두지 말라
2.
여섯 문(六根)으로 항상 드나드는 것
그것이 원래 주인공인데
억울하게 길 가는 나그네 되어
때때로 여덟 가지 바람(八風) 만나네
이 일을 참구하기 위해서라면
설산에 와서 노닐 것을
어디로 가는가를 물으니
이 물건이 바로 원통이라 하네
염정당 흥방(廉政堂 興邦)에게 답함
봄이 아닌 이 곳에 이 꽃이 피었나니
부질없이 오가는 뜬구름에 맡겨 두라
선 자리에서 여여(如如)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헌원(軒轅)*중국 고대 전설에 나타난 제왕(帝王)의 이름이 구태어 요대(瑤臺)*신선이 사는 누대에 오를 것이 있겠는가
이제학 방직(李提學 邦直)에게 답함
번뇌와 소지(所知)가 모두 장애이거니
지해(知解)를 모두 버리고 다른 것 따르지 말라
두 가지 어리석음을 아주 끊어 털끝만큼도 없으면
무여열반을 증득하여 부처 집에 들어가리
축건국(竺乾國)으로 돌아가는 달마실(達摩悉)을 보냄
서천(西天)의 참 불자(佛子)러니
흰 구름과 함께 그 몸은 한가하여라
굳이 말하자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데
푸른 눈을 떠 살펴야 하리
강남(江南)으로 떠나는 일본의 웅(雄)선인을 보냄
일본에는 솔바람 시원하고
신라에는 달빛이 많은데
만일 남방의 삼복(三伏)철을 만나거든
사람들에게 무릉사(武陵詞)를 불러주시오
행각 떠나는 각남 참학(覺南參學)*참학은 직접 배우느 제자를 말함을 보냄
각(覺)은 부처요 남(南)쪽은 밝다는 뜻이라
가을은 오래지 않고 인생은 유한하니
부디 한가히 놀면서 세월을 허송하지 말고
어서 빨리 참선하여 조사의 행을 이어라
강남으로 가는 향(珦)선인을 보냄
해동에는 천고의 달이요
강남에는 만 리의 하늘이나
맑은 빛은 피차(彼此)가 없거니
제방의 선(禪)이 다르다고 잘못 알지 말아라
강남으로 가는 사선화(思禪和)를 보냄
이 신라의 말을 가지고
한가한 데에다 마음을 낭비하지 말고
남방의 불구름 속에다
찬 솔바람 소리를 말해 주어라
산으로 돌아가는 영(寧).굉(宏) 두 선사를 보냄
그대들은 싣달타가 푸른 산으로 가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
잠깐인 인생을 버리라고 너희들을 일깨우셨다
그대들에게 권하노니 깊은 마음으로 묘한 화두 참구하라
만나기 어려운 좋은 때를 어찌 허송하겠는가
한량없는 세월에 이 날이 또 없나니
대장부의 마음은 그저 이러해야 한다
행각 떠나는 혜(慧)선인을 보냄
강해(江海)에 다니되 한 걸음도 떼지 말고
산천(山川)을 누벼도 헛되이 다니지 말라
납승의 본분사는
스승과 도를 찾아 생(生)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생을 저버리지 않음이여
빨리 밝은 스승을 만나 파비(把鼻)를 결택하여라
어두운 무명을 쳐부수고
천하 사람의 혀를 끊은 뒤에라야
비로소 마음이 편할 수 있으리니
우리 문하에 돌아온 날
바라밀을 들어내보여도 좋으리
남쪽으로 다니면서 읊음(南游偶吟)
법을 위하여 천하를 다니면서
겨울 지나고 또 가을 지내나니
청등사(靑燈寺)에는 저녁 비 내리는데
백로주(白鷺洲)에는 바람이 시원하다
나그네 3년에 외로운 이 몸은
만리 바다의 한 조각 배와 같네
누가 이 해동의 중을 알아
강남에 와서 함께 놀아주리
석옥(石屋)화상을 하직함
제자 보우(普愚)는 오랫동안 도풍을 우러러 천만 리를 멀다 않고 하무산(霞霧山)꼭대기를 찾아와 마침내 스승(函丈)*함장(函丈):스승과 자기의 자리 사이를 1장(丈)간격으로 떠에 놓는 것.스승이란 뜻으로 쓰임을 모시게 되매 마치 빈궁한 아들이 그 아버지를 만난 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반달 동안 모시고 있으면서 심요(心要)를 결택하고 법의 젖을 한껏 먹었습니다. 그 은혜는 비록 몸이 가루가 된다 해도 실로 갚기 어려웠는데, 이제 하직하게 되었으니 어찌 감회가 없겠습니까. 삼가 덕을 칭송하며 발원하옵고 게송을 지어 올려 조그만 정성을 표합니다.
제가 큰 스승 석가의 대원경지를 관찰하고
또 제자인 저의 평등성지를 관찰하매
원래 한 바탕으로 시방세계에 두루하여
환히 밝고 트여 그림자 없습니다.\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어 능소(能所)가 끊어졌고
신통하고 밝아 항상 고요한 가운데 비춤이 있습니다
삼라만상이 그 속에 나타나니
물 속의 달 같은 우리 스승의 얼굴도 드러나고
허공꽃 같은 이 제자의 몸도 있으며
더럽고 깨끗함과 괴롭고 즐거움이 다 거기 나타납니다
지금 우리 스승인 큰스님의 크고 둥근 거울 속 제자인 저는
제 거울 속에 계신 본사(本師) 옛 부처님께 귀의하고 예배하면서
정성스런 원을 내어 가피를 바라노니
세세생생에 언제나 이러하여지이다
스승께서 화장(華藏)세계 주인이 되면
나는 맏아들 되어 그 이익한 일을 돕고
도솔천에 계시면서 법을 연설하실 때에는
나는 그 하늘 주인이 되어 항상 호위해 모시며
보리수 밑에 계실 때에는
나는 국왕이 되어 법보시를 행하오리다
오늘 저의 이러한 본원으로
갖가지 장엄을 원만히 갖추어
시방세계의 다함이 없는 부처님과
대승보살 등 일체에 공양하오리다
또한 법계의 모든 불자(佛子)와 더불어
여래의 항상 고요한 이치를 증득하고
번뇌를 남김없이 없애며
일체의 묘한 행을 모두 성취하오리다
미래의 모든 부처님 회상에서
서로 손과 주인이 되어 반드시 만나리니
스승님이 주인이 되면 나는 짝이 되고
스승님이 짝이 되념 나는 주인이 되어
미래 세상 다하도록 불사를 짓고
중생을 다 건지고 돌아간 뒤에는
위없는 큰 열반에서 같이 노닐되
마치 오늘 하무산에 노는 듯하여지이다
내 몸은 변하는 물건이라 피차로 나뉘더라도
이 마음은 끝끝내 그 곁을 떠나지 않으오리다
왕사(王師)를 그만두면서
무엇하러 출가했던가
세상 인연 아주 끊으려 했네
내 이제 왕사를 그만두나니
묻노라, 어디로 가려는가
나는 본래 산중 사람
산에 들어가 살아야 하지만
푸른 산에 가는 것을 사랑하지도 않고
홍진에 달리기를 싫어하지도 않으며
다만 내 심성에 맞추어
덕을 닦아 왕의 은혜 갚으려 했네
세상의 영화롭고 욕된 일
자세히 보면 마치 물거품 같거니
내 만일 거기 오래 머물면
명성에 많은 잘못이 있으리니
옳고 그름을 모두 잊어버리고
수풀 골짜기에 날개를 간직함만 못하리
나의 우둔함을 누가 가엾이 여기리
수풀 샘에는 그윽한 맛 있으니
훌륭하신 임금님, 만일 나를 아껴주시려거든
청산에서 늙도록 놓아 주시라
산중에 무엇이 있는가
온통 푸르른데 연기와 안개뿐이네
나는 거기서 도를 닦아
이 나라에 법비를 내리고
알뜰한 마음으로 성수(聖壽)를 빌면서
아침 저녁으로 향불 사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