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짓을 한거야.'
후회를 하고 있었지만 어쩔수 없는 상황의 나를 합리화하면서 바람직한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잘 유지 하면서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세라와 외박후 내가 어떤 변명을 해도 인정을 하지 않으신 부모님은 분명 나에게 숨겨논 여자가 있다고 단언하면서 집에 데려 오라는 말로만 일관하고 있었다.
나는 뚜렷한 뜻을 세우지 못해 꿈이 없었다. 마치 나침판이 없이 항해하는 배와 같았다.그렇다고 함부로 살지도 않았지만 기항할 항구를 찾아 예정도 없이 풍랑을 피해갈 대책도 없이 허둥지둥 살았다.그때그때 뜻도 세웠고 목표도 세우긴 했지만 남들이 살아 가는 일상적인 삶을 살았지 싶었다. 그녀를 계속해서 만나면서도 어떤 계획이나 미래를 설계하진 못했다. 내가 참 우유부단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추진력이나 누군가를 이끈다거나 단체를 리드하는 리더쉽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흔한 반장 선거도 한번 시도 한적이 없었다. 어떻게 아버지 같은 사람에게서 나같은 자식이 태어났는지 .... 나는 엄마쪽 성향이 큰것 같았다. 그녀는 나와는 달랐다. 뭔가 계획 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면서 지극히 독립적 이였다. 서양의 교육 방식이 다 옳은 것만은 아니지만 자식을 독립적으로 키우는 방식은 인정 해야 할것 같았다.
우리는 다른 연인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퇴근을 하고 시간 맞춰서 만나고 식사하고 차마시고 주말에는 가까운곳으로 놀러 다니면서 맛집을 찾아 다녔다.그녀의 늦은 퇴근 시간은 내가 늦게 퇴근을 하게 된 계기가 됐고 상사들은 나의 이런 성실함을 요즘 신입사원 같지 않다며 인정 해주는 눈치였고 같이 입사한 동료들에게는 미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할만큼의 모난 성격이 아니라 그런대로 회사 생활을 잘 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내가 서양여자와 만나고 있을거라는 상상을 부모님 조차도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 회사 직원에게 세라와 데이트 하다 들킨적이 있는데 영어 강사와 개인 교습을 하는 정도로 쉽게 넘어 갈수 있었다.그만큼 우리사회에서는 글로벌시대에 영어를 못하면 큰일인양 어학 연수다 조기교육이다 사회 문화화 돼서 정착되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어려서 부터 피아노를 쳐야하는 이유와 같았다.
'부모님이 세라를 한번 보고 싶어 하는데요.' 조용하게 커피를 마시는 그녀에게 넌지시 의중을 떠봤다.
'네?' 못알아들었는지 다시 확인을 해보고 싶었는지 그녀의 다소곳한 푸르른 눈이 놀란듯 다소 떨리는 듯 넌즈시 고개를 들어 나의 입을 보고 있었다. 결혼을 하겠다거나 뭘 어쩌겠다는 생각도 없이 꺼낸 말이 였다.
'당신은 무엇이 먼저인지를 모르는것 같아요?' 영어로 또박또박하게 그녀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나의 눈으로 들어와 질타하는듯 원망하는것 같았다. 영어를 잘 할려면 외국인과 연애를 하면 제일 빨리 는다고.... 나의 영어 실력이 나도 모르게 많이 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것 같았지만 여자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이 왠지 쑥스럽고 자연스럽지 못할것 만 같았다. 그러고보니 난 그녀에게 프로포즈도 한적이 없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지 확신이 없기도 했다. 우리가 결혼이라는 생활을 할수 있을까? 같은 나라의 여자남자가 살아도 어긋나기 쉬운데 하물며 서양여자와 가능할수 있을까 싶었다. 수시로 생각을 안한것은 아니지만 답답한 생각이 들어서 외면해 버렸다. 결론이 나지 않으면 항시 외면해 버리고 얼렁퉁당 넘어 가는 우유부단한 나의 성격 탓도 있었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서양의 남녀들이 그러듯이 자신들의 사랑이 먼저 확고해야지만 그다음 단계로 부모님을 찾아 뵐수 있다는 것이다. 아 그녀의 사고방식으로는 그럴수 있겠다 싶었다. 무의식적으로 그녀와 함께 했던 날의 책임감이 나에게는 의무감으로 자리 잡혀 있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보수적인 교육을 받고 민족의식이 강한 사회에서 교육 되어진 나로서는 사랑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지금까지 좋아서 만났고 부모님에게 인사 시키겠다는 생각이라면 그게 사랑 아닌가? 또 함께 있고 싶고 헤여지기 싫으면 그게 사랑 아닌가? 죽고 못살아야 사랑이고 그래야 결혼 하는건가? 앞으로의 이런 혼란스러움이 많이 두려울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