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를 끝내고 부대행사로 충북 생극에 있는 큰바위조각공원에 소서노석상을 세우고 제막식을 하였다. 이 행사에 투어행사로 세계여성학대회에 참석하였던 일부 외국 여성들이 참석하였다.
우리 땅에 소서노상을 세운 것은 유사 이래 처음이다. 가서 본 소서노 석상은 화강암으로 깎았는데, 의관을 정제하고 용상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역사교육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소서노는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세우는데 주도적으로 관여한 여인으로 우리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호족의 딸로서 떠돌이 고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세우게 하였고, 고주몽이 그에게 인간적인 배신의 기미를 보이자, 온조와 비루 두 아들을 데리고 고구려를 떠나 소래에 상륙하여 한성으로 들어와, 온조를 도와 백제를 세우게 하였다. 이렇게 인류 역사상 두 나라를 세우는 데에 깊숙이 간여한 여성은 오직 소서노 한 사람 뿐이었다.
소서노의 이름에서 그의 내력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그의 이름을 분석함으로써 그가 명실상부하게 여왕이었음을 추론해 낼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학문을 문자고고학이하고 한다.
소서노召西弩의 소召는 입에 칼을 물고 있는 형상의 문자이다. 입에 칼을 무는 사람은 무당이다. 굿에서 타살거리를 할 때와 작두거리를 할 때, 칼이나 작두를 입에 물어 칼날이 혀를 상하게 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신명이 무당 자기를 보호하고, 또한 굿에 참여한 참여자들의 액들도 물리쳐 준다는 주술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소서노라는 이름에서, 그가 여자무당집안 출신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여자 무당을 배출한 집안으로 불 수 있는 집안은, 한국시대에 한인의 비가 된 항영의 집안, 단군왕검시대에 단군왕검의 비가 된 하백녀의 집안이다.
항영은 풍이족 출신의 한인과 혼인한 오이족 출신이다. 그러므로 풍이風夷로 볼 수 있다. 하백녀는 하백을 배출한 풍이馮夷 출신이다. 풍이馮夷가 풍이風夷에서 나왔으므로 하백녀는 풍이風夷 출신이 된다. 소서노가 한반도의 서쪽에서 한반도로 온 무당이므로 이 또한 풍이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서西는 소서노가 서쪽에서 왔다는 뜻이다. 소서노가 발해를 떠나 황해를 건너 한반도에 상륙한 곳이 미추홀彌鄒忽로 불렸던 소래이다. 미추홀의 의미는 “추모왕이 너를 보낸 고을”이라는 뜻이다. 추모왕이 고주몽이므로, 너(彌)를 소서노로 보면, 미추홀은 “고주몽이 소서노를 보낸 땅”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소래蘇來로 지명이 바뀌었다.
소래蘇來의 지명유래를 보면, 당唐의 소정방蘇定方이 백제를 치기 위하여 이 곳으로 상륙했기 때문에, 그가 온 곳이라고 하여 소래가 되었다는 뜻인데, 이는 신라에서 과거의 역사를 없애고 소정방에게 갖다 붙여 견강부회한 것이다.
조선의 전신인 단국의 제2세 홍제 때 비서갑菲西岬(부소갑扶蘇岬)이 황하를 다스리는 하백을 맡고 있었는데, 부서갑의 족성族姓이 소성蘇姓이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때의 역사와 신라역사의 시간의 간극을 비교하면, 거의 3000년의 차이가 난다. 신라보다 이미 3000여 년 전에 이 곳이 소성蘇姓 집안의 판도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소서노가 그의 아들 비류·온조와 함께 이곳 소래(미추홀)에 상륙하여 정벌을 시작함으로써, 한강 이남의 시흥·영등포·부천·인천과 경기도 북부의 양주 일대가 그의 세력권으로 돌아갔다. 고구려 때 미추홀을 포함해서 서소노가 평정한 지명을 매소홀현買召忽縣이라고 하였는데, “소서노가 고구려로부터 돈을 주고 산 땅”이라는 뜻이다.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나서, 이곳의 지명을 소성邵城으로 바꾸었다. “소씨나라 땅”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곳이 소정방이 온 곳이라는 뜻의 소래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소서노는 추모왕에 의하여 어하라於瑕羅로 봉해졌다. 고구려 고성高姓의 시조 전욱고양諯頊高陽이 제위帝位에 오르기 전에 봉해졌던 땅이 라羅였다. 라는 나라를 의미한다. 하瑕는 태양을 상징하는 적옥赤玉이다. 새벽에 떠오르는 태양의 의미를 가진 고주몽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어於는 ···에서 왔다, 즉 고주몽에게서 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어하라’는 소서노가 “고구려에서 왔음을 밝히는 이름”으로 볼 수 있다. 고구려 추모왕이 소서노가 벌이는 새나라 개척의 능력을 높이 사서 내려 준 왕호王號가 어하라이다.
소서노의 노弩(소서노석상제막식을 보도한 보도문들은 한결같이 노奴로 쓰고 있는데, 이는 맞지 않는다)는 소서노가 무장한 쇠뇌이다. 쇠뇌는 단거리에서 근접전에 쓰는 소형 활이므로 소서노가 근접전에 능한 무사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소서노가 한강남북의 땅을 평정하여 한성백제를 세울 수 있게 한 무장이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소서노는 미추홀을 확보하고, 한강을 건너 삼각산 밑에서 그의 아들 온조로 하여금 국도 한성漢城을 선포함으로써 한성백제의 시대를 열었다. 이리하여 소서노가 고주몽과 온조를 도와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세우게 한 공이 있다고 한 것이다.
소서노가 통과한 지명에 부천의 노고산, 서울 마포의 노고산이 있는데, 이들 두 노고산은 소서노가 그곳의 원주민들을 평정한 이후에 마고에게 제사지냄으로서 생겨난 지명으로 본다.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동이족의 시조 마고로부터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마고제사를 지냈다고 보는 것이다. 사냥하여 산체로 잡은 짐승을 죽이는 타살굿을 했을 것이다.
소래에서 부천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비리고개라고 하는데, 소서노의 아들 비류가 그곳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생긴 것으로 본다.
이렇게 보면, 마고에서 시작된 물애기씨의 기능이 항영으로 이어졌고, 항영에서 하백녀에게 이어졌고, 하백녀에게서 소서노에게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인천사랑 덕분에 고구려와 백제 건국의 주도적인 역활을 해왓던 소서노에 대한 역사자료를 볼수있게 글 올려주신 처장님께 감사드리고요^ *^인천의 역사자료가 이렇게나 많은지 미처 몰랐습니다 자주 들어가서 공부해야할것갔아요~~~그래서 충북 음성 큰조각공원에있는 소서노석상에 대한 기대가 됩니다
첫댓글 인천자료 공부~사무처장님,강의 잘들었고 ~인천의 역사 정말 잘 보았읍니다 ~좀~어려운 강의였지만 새로운 기분으로 천천히 이해 하며 보고 또,보고 계속 봐야 될것같읍니다 ~중요한 자료 감사 합니다~ ^^*
넹넹 나야나님 공부하셨군요 ^^ 너무 기쁩니다 보람이 있는 것 같네요 ^^
인천 중요한 역사 자료 많은 도움이됩니다. 한번 보고 두번보고 자꾸자꾸 읽어 보고십네....
인천사랑 덕분에 고구려와 백제 건국의 주도적인 역활을 해왓던 소서노에 대한 역사자료를 볼수있게 글 올려주신 처장님께 감사드리고요^ *^인천의 역사자료가 이렇게나 많은지 미처 몰랐습니다 자주 들어가서 공부해야할것갔아요~~~그래서 충북 음성 큰조각공원에있는 소서노석상에 대한 기대가 됩니다
소召는 입에 칼을 물고 있는 형상의 문자 서西는 서쪽에서 왔다는 소래 노弩는 쇠뇌 즉 소형 활이다는 이야기네요~ 여걸 중의 여걸이 소서노이군요~ 소서노 보다 물애기씨 할까나??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