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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오푸스 데이는 오늘날 가톨릭 교회에서 논란이 가장 많은 단체입니다~
그 이유는 회원들에게 "신의 가업"으로, 즉 거룩한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가 신의 감화를 받아 일상의 성성을 촉진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업을 발전시켜씩 때문입니다. 반면 비판자들에게는 비밀과 음모로 목적을 추구하는 강력하고 위함한 사이비 집단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가톨릭 신도들이 인정하듯, 사실 이 집단에 대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오프스 데이를 알려면, 우선 1928년 10월 2일에 이 단체를 창설한 스페인의 성직자,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데발라게르 신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오푸스 데이의 자료에 따르면 그날 에스크리바 신부를 마드리드에서 피정 중이였으며,"갑자기 근처에 있는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그는 확실하게 깨달았다신이 그에게 오푸스 데이를 보여주신 것이다" 회원들이 모두 창설자라고 부르는 에스크리바 신부는 오푸스 데이를 평신도들이 생활이나 직업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성성을 열망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수단으로 계획했습니다.
오늘날 오푸스 데이는 자기들이 평신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와 공통된 노선을 밟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오직의 영성은 에스크리바가 남긴 수많은 저술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1939년에 쓴 <길>은 전통적인 기독교 사고"기독교인의 기도는 결코 독백이 아니다"에서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에 나옴직한 말들"오늘 일을 절대 내일로 미루지 말라"까지 999개에 이르는 금언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그의 조직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스페인에서 다른 유럽 국가들로 퍼져나갔습니다. 1950년에는 재속회로서는 최초로 교황청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 후 20년간,회원들이 말하는 "사업"은 라틴 아메리카와 미국으로 넘어 왔습니다.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오푸스 데이에 "성직 자치단"이라는 지위를 허락했습니다.
이를 관할권이 어떤 특정 지역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오푸스 데이 회원 모두에게 미친다는 것을 의미하는 교회 용어 입니다. 즉 오푸스 데이는 수도회들과 유사하게 지리적 경계와는 무관하게 활동한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독특한 지위(성직 자치단의 지위를 승인받은 것은 오푸스 데이 뿐이다)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이들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고 있었는지,그리고 바티칸에서 이들이 차지하느 ㄴ위상이 어떠했는지를 입증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를 계기로 비판자들은 어째서 평신도 단체임을 자처하는 조직이 그런 지위를 필요로 하는지 따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오푸스 데이의 회원은 세계 80여 개국,7만 7천명(사제 1500명,주교 15명을 포함)에 달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댄 버스틴이 지은 <다빈치 코드의 비밀>이란 책을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2.시온 수도회..
역대 총장들의 명단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장 콕토의 이름이 올라와 있는 시온 수도회.
그들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와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비밀결사 중 하나이다.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시온 수도회는 일부에서 존재 자체가 의심되기도 한다. 그 탓에 그들의 활동에 대한 주장이 농담처럼 취급받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시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시온 수도회가 처음 영어권에 알려진 것은 마이클 베이전트,리처드 리, 헨리 링컨의 베스트 셀러,<성혈과 성배>가 1982년 출간되면서 부터다. 그러나 시온 수도회의 고향이라 할 프랑스에서는 이미 1960년대 초부터 그 존재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시온 수도회는 프리메이슨 혹은 기사단과 유사한 단체로, 정치적 야심과 막강한 배후 세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정체는 확실하게 밝히기 어려운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들의 조직 및 활동 어딘가에 본질적으로 망상적인 데가 있기 때문이다. 시온 수도회의 근간이 되는 힘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구성원들이 중대한 비밀을 지키고 있다는 주장에 기인하고 있다. 공개되는 날에는 교회와 국가의 기초가 흔들릴 것이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비밀이다.
시온 수도회는 1차 십자군 전쟁 중인 1099년에 발족되었다고 주장하는데,그때에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 비밀을 수호하고 있던 집단을 공식화 하는데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악명높은 중세의 수도 기사들의 조직, 즉 탬플기사단 창설의 배후 세력이었다. 시온 수도회와 탬플기사단은 동일한 한 단장이 이끄는 등. 실질적으로 하나의 조직이나 다름 없었으나 1188년에 분열이 일어나며 갈라졌다.
이후 시온수도회를 영도한 역대 총장들 중에는 아이작 뉴턴 경, 보티첼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산드로 필리페피, 영국의 비교 철학자 로버트 플러드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있었다.
그리고 물론 세상을 떠나기 전 9년간 시온수도회를 이끌었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있으며, 더 최근에 와서는 빅토르 위고,클로드 드뷔시,또 화가이자 극작가,영화 제작자 장 콕토도 있다.
또한 총장은 아니지만 잔 다르크,노스트라 다무스,심지어 교황 요한 23세 등 여러 유명한 인물들이 회원이었다고 한다.
시온 수도회의 목적은 과거,오늘날의 프랑스를 다스렸던 메로빙거 왕조의 후손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비판하는 이들은 시온수도회가 겨우 1950년대에 생겼으며,실질적 권력이 전혀 없는 소수의 허풍쟁이 집단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 .......이하 자세한 내용은 댄 버스틴이 저술한 <다 빈치 코드의 비밀 >에서 278페이지-이하 내용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