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장 쓰기
오 시 영
삶과 죽음의 경계는 희미하다. 삶은 잡힘이고 죽음은 잡히지 않음일 뿐이다. 잡고자 하는데 잡힘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어둔 밤 허공 속에서 손을 휘저어본 자는 그 잡히지 않음의 절망을 안다. 그건 뼛속으로 스며드는 한기이며 열린 새장의 갇힘이다. 절망의 한기를 삼키며 허기를 통유(通有)하는 것은 시인의 몫이다.
시인은 본질에 대해 질투한다. 그러나 커다란 것에 대한 집착은 없다. 사소한 것에 매달려 끝없는 방황의 바다를 헤맨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쫓고 선인장 가시가 햇살을 찌르는 것을 보며 제 몸으로 피를 흘린다. 바보 같다. 언제나 허공에서 매이지 않는 줄 위를 걷는다. 비틀거리는 몸짓은 이미 제 한 마음 가누기 힘든 영혼의 고백이다. 시인에게서 축복의 말은 소멸한 지 오래되었다. 시의 내면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영혼을 울리기에는 쪼개지고 해부되어 버린 언어가 그 힘을 잃고 있다. 고요와 평화를 실낙원의 낙엽으로 쓸어버린다. 시인의 손에 들린 칼날이 예리하다. 여인의 심장을 도려낼 음모를 포기한 채 제 귀를 자를 준비를 서두른다. 울리지 않는 휘슬이 건조하다.
천장지구(天長地久), 천지가 장구함은 불자생(不自生)이기 때문이라고 노자는 말한다. 천지는 스스로 살려고 애쓰지 않기에 영원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 무위의 삶이기에 장구하다. 사랑 또한 그러하다. 며칠 전 지인의 죽음을 보았다. 한평생 풍요와 풍류 속에서 그는 살았다. 아주 간혹 술좌석에서 삶의 허무와 인생의 고통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넉넉한 자의 심심한 푸념일 뿐이었다. 하지만 노년의 그에게 찾아온 불치의 병은 그로 하여금 몇 달 동안 육신의 극심한 통증을 겪게 하였고, 마음의 끈을 놓게 하였다.
그가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제일 먼저 행한 것은 유언장 작성이었다. 그의 유언장에는 자신이 일생 동안 믿고 살았던, 평생 모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어떻게 나누어줄 것인가에 대한 자세한 내역이 적혀 있었다. 사랑한 정도껏 자식들에게 돌아가는 재산의 분량이 제각각이다. 사랑한 분량만큼 자식들의 불화를 유산으로 남겨 놓았을 뿐 어디에도 그 자식들이 어떻게 살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아버지로서 자식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주는 마음의 한마디가 적혀 있지 않다. 죽음 앞에서 삭막할 수밖에 없겠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자의, 한평생 살아온 삶의 성찰의 배제가 나를 우울하게 한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유언장이 아닌 부고장을 낙서처럼 쓰곤 한다.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남에게 금전 문제로 빚진 것도 없으니 유언장을 써야 할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않는다. 외아들이니 친모자지간에 재산 문제로 다툴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부고장을 써서 보여주는 나의 청승에 아내는 죽음 뒤는 아들의 몫이니 관여하지 말라고 힐책한다.
그렇지만 종종 부고장의 내용을 바꾸기도 하고 문맥을 가다듬기도 하면서 나는 묘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한잔의 차를 마신 뒤의 여운을 느낀다.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죽음은 세상을 고요케 한다. 최선의 수양은 죽음을 수련하는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죽기 석 달 전쯤 사망예고통지서를 발송해 주면 참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 정도의 시간이면 주변의 삶을 정리하면서 빚진 것도 갚고 은혜 베푼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편지 한 장 정도 쓸 수 있지 않겠나 싶다.
남은 삶의 기간을 알면 사람들이 훨씬 더 착해져서 세상이 좋아질지 모른다는 나의 의견에 아내는 악해질 사람이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깨우친다. 이제 석 달밖에 못 사는데 평생 못 해본 것 다 해봐야 할 것 아니냐는 억울한(?) 마음에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겠다는 막가파가 훨씬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평소에 사람같이 악한 미물이 어디 있겠느냐는 나의 지론에 그건 도둑놈만 상대해 온 변호사라는 직업 때문에 생겨난 잘못된 고정 관념이라며 이 세상에는 선한 사람이 훨씬 더 많다고 주장해 온 아내였으니 위 지적에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막가파가 더 생길지언정 나는 신의 사망예고통지서 발송에 동의한다.
나의 부고장에는 빈 칸이 있다. 나의 사망 일시를 적어야 할 칸이다. 내가 아무리 멋진 부고장을 쓴들 그 칸만은 내가 채울 수 없다. 아내 말대로 아들의 몫이다. 나의 부고장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저의 죽음을 당신께서 슬퍼해 주신다면 저의 영혼길이 조금 덜 외로우리라 생각합니다. 혹여 조문하실 의향이시라면 찾아오실 때 가장 곱고 아름다운 밝은 색의 옷을 입고 오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국화 대신 예쁜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오신다면 더 더욱 기쁘겠습니다. 제 영혼이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하고 떠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부탁입니다만 저와의 귀한 인연에 대해 제 아들에게 한마디라도 들려주신다면 제 아들이 저를 추억하며 당신을 더욱 소중히 모시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가져봅니다. 장례식장에는 제가 평소 즐겨 듣던 Handel의 Saraband와 Pachelbel의 Canon을 틀어달라고 제 아이에게 부탁해 놓았습니다. 제가 남겨놓은 적은 예금으로 장례비용은 마련되었으니 그저 빈 손, 빈 마음으로 오셔서 제 아들이 대접하는 소찬을 함께해 주신다면 감읍하겠습니다. 당신에게 드리는 저의 마지막 정성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조용히 가겠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뚜렷하다. 잡힐 수 있는 동안 많이 잡히겠다. 그리고 잡겠다. 사랑하겠다. 거기 그냥 서 있어도 내가 다가간다, 빛이니까…….
계간 리토피아 제12호에 발표한 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