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분신이 있다는 건, 이 팍팍한 세상을 사는 데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한데 그 금쪽같은 분신이 드디어 ‘고3’ 을 맞았으니 엄마의 마음도 심란하기 그지없다.
지난 겨울방학 병원 신세를 지며 몸과 마음이 아팠던 딸의 심경은 오죽할까?
고3이라는 상징적 압박감을 잠시 덜어줄 나들이가 필요했다.
단둘이 배낭에 셀카봉 하나 넣고 춘천으로 향한 이유다.
취재·사진 심정민 리포터 request0863@naver.com
편집부가 독자에게 ...
떠나요~
제게 여행은 이런 의미입니다. “어디로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 특히 투닥거리며 어색해진 사춘기 자녀와의 관계 극복에 여행만 한 것이 없는 듯합니다. 어디로 떠난들 행복하지 않을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과의 여행이 그랬습니다. 집에서라면 감히 입에 담지 못할 애정 담긴 ‘닭살 멘트’를 마음껏 전해도 어색하지 않더군요. 혹시 사춘기 자녀와 갈등을 겪고 계신가요? 그럼, 떠나세요!
_심정민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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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 코스는요 오전 9시 용산역에서 ITX청춘열차 승차 ▶ 오전 10시 13분 남춘천역 하차 ▶ 오전 10시 30분 경춘선 전철로 환승해 김유정역 하차 ▶ 오전 10시 30분 ~11시 ‘옛 김유정역’ 둘러보기 ▶ 오전 11시~11시 50분 ‘김유정문학촌’ 방문 ▶ 정오~오후 1시 30분 ‘강촌레일바이크’ 를 타고 강촌역까지 이동 ▶ 오후 1시 40분 셔틀버스 타고 김유정역으로 이동 ▶ 오후 2시 10분 경춘선 전철 이용, 남춘천역 하차 ▶ 오후 2시30분 택시로 이동, 강원대학교 후문 ‘진미닭갈비본점’ 에서 점심 식사 ▶ 오후 4시 걸어서 명동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기 ▶ 오후 4시 50분 춘천역으로 이동 ▶ 오후 6시 15분 경춘선 타고 상봉역 도착으로 춘천 나들이 끝.
나들이 비용은요
교통비 용산역-남춘천역 ITX청춘열차 편도 2인 1만2천원, 남춘천역-김유정역 전철 경춘선 왕복 2인 5천원, 남춘천역-강원대학교 후문 택시비 3천800원, 춘천역-상봉역 전철 경춘선 편도 2인 5천700원.
간식과 식사 열차에서 먹은 편의점 도시락 2개 8천500원. 강촌레일바이크 2인 이용 2만5천원, 닭갈비 2인분 2만3천원, 커피 2잔 3천원.
열차 여행, 역시 도시락이야
남편과 아들이 단잠에 빠진 사이 딸과 함께 쌀쌀한 새벽 공기를 맞으며 집을 나섰다. 대체 얼마 만의 모녀 나들이란 말인가?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둘째를 출산하고 두 달이 지났을까. 남편이 득남 선물(?)로 건넨 방콕 행 비행기 표를 받아 든 게 11년 전이다. 딸과 단둘이 닷새 동안 돌아본 방콕은 행복한 기억들만 가득하다. 지금도 사춘기로 방황하는 딸과 갈등이 생길 때면 방콕 여행 사진을 보며 마음을 추스르곤 한다. 역시 여행이란. 현재의 행복을 넘어 평생의 위로가 된다. 춘천까지 단박에 가는 전철이 있지만 여행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ITX청춘열차에 올랐다. 비록 1시간 거리지만 지정석에 앉아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열차 여행에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 도시락도 함께 즐길 수 있으니, 이런 게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출사 여행 하기 좋은 곳, 김유정역
편의점 도시락 맛이 예사롭지 않다. 알찬 반찬 구성과 고슬고슬한 밥이 아침 식사로 제격이다. 딸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음악을 들으며 한 시간을 달렸을까. 기차 내 방송이 목적지인 남춘천역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목적지는 김유정역. 그러나 ITX청춘열차는 김유정역에 따로 정차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 모녀는 남춘천역에 내려 전철로 갈아타야 했다. 만약 김유정 역으로 바로 가고자 한다면 전철인 경춘선을 이용하면 된다.
김유정역은 대한민국 최초로 사람 이름을 따 기차역명을 지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내리면 <봄봄> <동백꽃> 등으로 유명한 강원도 춘천 출신 김유정 작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생가와 시설물들을 만날 수 있다.
김유정역 옆에 자리한 옛 김유정역엔 무궁화호가 지나던 곳에 북카페와 찻집으로 이용되는 두 량의 열차가 있다. 이제는 열차가 지나지 않는 플랫폼엔 의미심장한 문구를 품은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는다. 노년의 신사가 반려견을 데리고 가는 조형물엔 “오늘도 기다립니다.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또 다른 쪽의 멈춤 표시를 단 조형물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는 문장이 방문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딸과 리포터가 셀카봉을 꺼냈다. 최대한 다정한 포즈로 찰칵, 찰칵, 찰칵!
춘천 나들이의 백미, 강촌레일바이크
원래 계획대로라면 옛 김유정역과 김유정 생가를 둘러본 뒤 춘천막국수를 먹는 것. 하지만 이번 춘천 나들이의 주목적은 강촌레일바이크를 타는 것이었다. 막국수를 먹고 타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포기하고 레일바이크를 타러 갔다. 강촌레일바이크는 춘천 나들이의 백미로 꼽힌다. 3월에서 10월 사이 성수기에는 사전 예약 없이는 이용이 어려울 정도다. 레일바이크는 김유정역에서 강촌역까지 오전 9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정각에 출발하며 하루 10회 운영된다. 코스는 김유정역부터 강촌까지다. 총8km다. 4.8km는 레일바이크로, 3.2km는 미니열차를 이용한다. 돌아올 때는 강촌 역에서 셔틀버스를 타면 된다. 레일바이크는 2인용과 4인용을 선택할 수 있는데, 리포터와 딸은 2인용 바이크에 올랐다.
레일바이크를 타면 짜릿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내리막길을 달릴 때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은 스릴을 느꼈다. 오르막길에선 극기 훈련 못지않은 고통(?)을 감내했다. 딸과 오롯이 강과 절벽을 풍경 삼아 수다를 떨며 페달을 밟는 기분은 ‘낭만’ 이란 단어로 귀결하기에 100% 부족하다. 코스 중간 레이저빔을 비추거나 샹송, 트로트 음악이 나오는 터널을 만나는 건 레일바이크 타기의 또 다른 묘미다. 터널을 지날 때 올해 소망을 크게 외치기로 했다.
“올해 원하는 대학에 가게 해주세요.” “수빈아,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 해.” 리포터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부디 딸이 어둠의 시간에서 달려 나와 밝을 빛을 만나길.
경험하지 못한 맛과 만나다, 춘천닭갈비
레일바이크에서 내려 다시 김유정역으로 갔다. 지인이 소개한 입소문 난 닭갈비를 먹기 위해 다시 전철을 타고 남춘천역으로 향했다. 도시락으로 든든히 배를 채웠건만 딸은 레일바이크를 타며 체력 소모가 컸는지 배가 고프다고 성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강원대학교 후문에 자리한 진미닭갈비본점(033 -243 -2888 ).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2시인데도 빈자리가 없다. 어렵사리 자리 잡고 앉아 닭갈비 2인분에 우동 사리를 주문하니 살얼음이 뜬 동치미 두 사발이 나온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모녀는 동치미 국물을 단숨에 마셨다. 가슴속까지 시원한 국물이 입맛을 돋우니 애피타이저가 필요 없다. 이곳은 주문을 하고도 한참 뒤에 음식이 나온다. 알고 보니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양배추와 닭을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고. 재료가 신선해야 음식이 맛있다는 주인장의 철학이라는데….
그래서일까, 이곳의 닭갈비는 리포터의 47년 인생에서 가
장 으뜸으로 꼽을 만큼 그 맛이 기가 막혔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