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차(茶)와 함께 하는 생활
3. 차로 만든 먹거리 / 쓰임새
다음과 같은 싯귀가 있습니다.
매화는 일생의 추위에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이른 봄, 바로 그 매화송이가 머물 때를 기다려 차 마시는 데 그윽한 운치를 더해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른바 '풍류차(風流茶)'라고 하는데요, 꽃잎이 벌어지기 전의 매화송이를 따다가 차와 함께 다관에 넣은 후 찻물을 우리면 차를 마실 때에 매화향기가 은은히 풍겨나 봄기운을 전합니다. 좀 다르게는, 찻잔에 매화송이 두서너개를 넣고 찻물을 부은 후 가만 들여다보면 둥실 뜬 매화송이가 살포시 화심(花心)을 연다고도 합니다.
꽃얘기가 나왔으니 한두어마디 더하지요. 청나라 심복(沈復)의 자서전인 <부생육기(浮生六記)>에, 연꽃 향이 배인 차 이야기가 나옵니다. 심복의 아내 운이 아침마다 내오는 차의 향은 특이했다 합니다. 같은 차로 심복 자신이 여러 번 우려보았지만 도저히 그 향을 따를 수는 없었지요. 하여 어느 날 아내의 차 다루는 방법을 훔쳐보았는데... 연못에 피는 수련은 저녁에 화심을 오므렸따가 아침이면 활짝 피어납니다. 운은 저녁 나절 바로 그 꽃송이가 오므릴 때, 비단 주머니 속에 차를 담아 꽃심에 넣어두었던 것이고, 차를 품은 수련은 밤새 별빛과 달빛과 이슬을 맞으며 차의 향을 촉촉하고 은은한 수련향으로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래 아침 일찍 꽃봉오리가 입을 열 때, 넣어두었던 비단 주머니를 꺼내 그 차를 달였던 것입니다. 심복은 가난 때문에 좋은 차를 마시지 못하는 중에도 아내의 그 슬기로움으로 세상 어느 차 못지 않은 차를 마실 수 있었고, 아내가 죽은 후에도 두고두고 그녀를 그리워했습니다. 훗날 임어당이 꼽은 중국의 여성 몇몇 중에도 그녀 운이 언급됩니다.
차를 즐겨하신다면, 때로 이처럼 은은한 꽃향기의 아취를 느껴보옴직도 합니다. 녹차에 감꽃, 진달래, 복사꽃 등의 생화 또는 말린 들국화를 넣어 우리거나 띄우면..., 더하여 물 역시 이른 아침 토란잎에 매어달린 이슬을 모은 것이라면... 이들은 연꽃 속에 밤새 두어둔 차 다음으로, 천하제일의 풍류차라 하여도 손색이 없을 '차 마시는 한 때'를 누리게끔 하지 않을까 힙니다.
먹거리 만드는 법을 소개하기 전에 몇가지 생활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쓰임새를 먼저 말씀드리죠.
가. 다 마신 차잎을 버리지 말고, 따로 모아서 말려두세요. 그것을 모아 냉장고, 찬장, 화장실 등에 놓아두면 그 안의 악취를 말끔히 없애준답니다. 베개 속으로 사용하면 사고력 증진에 도움이 됩니다. 또 그렇듯 말린 차잎을 그대로 아니면 끓여낸 물로 화분에 뿌려두면 질소비료를 대신한 효과를 내지요. 그것도 아니면 헌 스타킹에 모아서 물에 담궈두었다가 세수, 머리감기, 목욕 등을 할 때 쓰세요. 그러면 피부가 보드러워지고 윤기가 흐르게 됩니다. 마시다 남은 찻물로는 목재가구, 돗자리, 거울 등을 닦아 칙칙한 냄새를 없애면서 광택을 나게 합니다. 좋은 차잎의 경우엔 차를 마시고 난 후 그 차잎으로 나물을 무쳐드셔도 좋습니다. 나물을 무칠 때는 생엽(生葉)을 쓰기도 하는데요, 뜨거운 물에 소금을 넣고 생엽을 데쳐서 물기를 꼭 짜둔 다음 다진 마늘, 참기름과 함께 버무리면 됩니다. 파는 넣지 않는 것이 차잎의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지요.
나.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면 삽겹살이나 소주를 곧잘 드시죠? 소주에는 채낸 오이를 담궜다가 차게 해서 마시는 것도 좋고, 한 30분 쯤 녹차 티백을 담궈두었다가 마셔도 좋습니다. 맛이 부드럽고 주독을 해소하며 뒷머리가 패는 일도 없어져요. 혹 과음으로 인해 인사불성 내지는 속이 거북하고 울렁거릴 때면 녹차를 대접으로 진하게 우려서 드세요. 마시고 나면 속이 편안해지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도 숙취라든가 두통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삼겹살 구울 때나 고기를 절일 때 녹차 잎을 점점이 뿌려 같이 익혀 먹으면 고기의 나쁜 냄새가 없어지고 맛도 더 좋아질뿐더러 식중독 염려를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가지, 차잎이 충분히 우려져서 지방을 분해할 수 있도록 천천히 구워야한다는 것만 유념하면 된답니다. 생선을 씻을 때도 찻물로 씻으면 생선살이 단단해지면서 비린내가 가셔 깔끔한 맛이 나지요.
다. 녹차를 이용하여 피부를 가꾸는 방법들도 몇몇 있습니다. 우선 비타민C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는 녹차를 자주 마시면 차츰 피부에 탄력이 생겨나는 것은 더 부언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세안시 비누나 폼클렌저로 더러움과 지방을 제거한 후에 다시 한번 녹차로 얼굴을 씻어주면 피부가 활성화되고 기미·주근깨 등이 예방· 치료되며, 직접 피부에 발라도 녹차에 함유되어 있는 카테킨이라는 성분이 피부를 조여주면서 또 피부 미백 효과에도 한 몫을 하지요. 녹차로 만든 화장수는 바디 오일 대신에 사용하여도 좋고 특히, 전신의 거칠고 각 질이 진 피부에 집중적으로 발라주면 보습효과를 충분 히 발휘하여 건조함과 칙칙함을 해소시켜준답니다. 팩을 만들어쓰기도 하는데, 밀가루에 달걀 노른자나 꿀 2 큰술 정도를 섞어 저은 다음 거기에 다시 녹차를 넣고 잘 섞으면 녹차팩이 만들어집니다. 그것을 얼굴 전체에 펴바르고 위에 거즈를 댄 후, 20-30분 정도 지나고서 미지근한 물로 씻어내는 것이죠. 팩을 한 후에는 피부가 민감해져 있기 때문에 바로 화장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합니다. 화장수나 오일을 바르는 정도로 피부손질 을 마무리합니다. 이들이 탄력있고 부드러우며 보송보송한 피부의 녹차미인이 되는 비결들입니다.
자, 그럼 여러가지 차를 이용한 요리법입니다. 편의상 식사, 참, 기타의 세 종류로 나누었습니다.
하나, 식사 종류
차밥 - 차 끓여낸 물에 소금을 약간 곁들여 조금 질게 밥을 합니다. 볶은 콩을 빻아서 넣으면 맛이 더욱 좋다고 하지요. 식욕을 돋구고, 소화가 잘 되게 하며, 체력을 올려줍니다. 약간 신맛이 나지만 음주 후나 가벼운 식사로 적합하답니다. 다른 방법도 있어요. 그러니까 바쁠 때엔 찻물에 밥을 말아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장에도 부담이 없고 잠을 쫓아주어 일하는 데 지장이 없지요.
차죽 - 죽을 쑤기 시작할 때 녹차 서너술 분량을 넣으면 차향이 그윽해지고 쌀알의 빛깔도 곱게 납니다. 여유가 있다면, 얇게 저민 전복이나 장어를 넣는 것도 좋지요. 노약자나 환자 그리고 지구력을 기르는 데에 좋은 스테미너 음식이 됩니다.
둘, 참 종류
차 튀김 - 차의 싹으로 튀김을 만들면 맛과 향이 좋습니다.
참치 전 - 참치 통조림의 기름을 빼고 고기를 잘게 부순 다음 깨소금으로 간 해둔 차잎과 계란 노른자를 섞어 한입에 먹기 좋을 만큼의 크기로 부침개를 합니다.
차 해장국 -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찬밥을 볶습니다. 밥이 노릇해지면 물을 붓고 콩나물을 넣어 함께 끓이다가 쌀이 퍼질 때쯤 국간장으로 간 해놓은 차잎을 넣고 다시 한번 끓입니다. 풋고추와 대파를 듬성듬성 썰어넣으면 시원ㆍ얼큰해지지요.
차 김밥 - 차 잎을 10분 정도 물에 우려 그 물로 밥을 합니다. 건져낸 차잎은 소금과 참기름으로 양념해서 두었다가 김밥을 말 때 함께 넣습니다. 그 밖에 들어가는 것은 보통 김밥 말 때와 같아요. 이렇게 하면 여름날에도 쉬이 상하지 않고 김밥을 먹은 후 입에서 나는 김냄새도 없애준다고 합니다.
달걀 차 졸임 - 물에 소금을 넣은 후 끓으면 달걀 노른자가 가운데에 오도록 굴려가며 익혀서 찬물에 건져내어 식힙니다. 이리저리 두들겨서 달걀 껍질에 고루 금이 가도록 한 후 달걀이 잠길 정도의 물에 소금과 함께 홍차나 녹차를 넣고 10분 쯤 졸이면 차 종류에 따라 색이 든 예쁜 달걀이 됩니다. 달리, 껍질을 다 까내고 우린 찻물에 간장으로 간하여 졸이면 또한 훌륭한 장조림 반찬이 되지요. 이렇게 만든 달걀 조림은 야외에 나갔을 때 즉석 소주 안주로 아주 좋답니다. 찻물에 삶은 달걀은 체할 염려가 없고, 달걀 특유의 냄새도 없어지면서, 차잎 성분이 방부제 역할을 하여 하루 쯤 놓아두어도 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차는 특히나 기름 요리와 조화가 잘 됩니다. 튀김, 육류 등과 결합하면 기름의 느끼한 맛을 없애는 동시에 고소한 맛을 돕지요.
해가 지나 마시기가 어려운 차 같은 것은 프라이팬에 살짝 볶아서 가루를 내어놓으면 여러모로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하기 좋습니다. 예를 들어 수제비, 콩물국수 등은 밀가루를 반죽할 때 말차 또는 차잎 갈아놓은 것을 함께 섞기만 하면 되고, 볶음밥을 할 때도 그냥 녹차가루를 첨가만 하면 됩니다. 참고로 볶음밥을 할 때는 찬밥ㆍ식은밥으로 해야하는 거 아시죠? 더운밥으로 볶으면 기름과 밥이 융화가 안되어 끈적끈적해져요. 밥 자체에도 수분기가 많고 전분질이 정리가 안된 상태라 그렇게 되는 겁니다. 냉면은, 찻물을 우려 냉장고에서 차게 식혔다가 하면 되지요.
셋, 기타
차술 - 소주 1.8리터 + 차잎 100g + 설탕 400g 을 섞어서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놓아둡니다. 4 - 5일 후면 색깔이 우러나오고 또 점점 짙어지므로 일주일 안에 차 잎을 꺼냅니다. 차의 진국을 함유하여 밤의 생명력을 되살린다 합니다.
차 칵테일 - 녹차를 끓인 물에 위스키나 꼬냑을 넣고 설탕도 조금 넣은 후 흔들어서 마시면 맛과 향이 뛰어난 차 칵테일이 된답니다.
말차 음료 - 사이다와 같은 탄산 음료에 말차를 타 마시면 피로가 깨끗이 회복됩니다. 우유, 냉커피 등에 말차를 섞어서 마시면 근육의 운동기능 향상과 여름을 이겨 내는 데 좋다고 하지요. 추위를 이겨내는 데에는 잎차를 끓인 뒤 크림이나 버터를 넣어드세요.
차즙 - 어린 차 생엽을 깨끗이 씻어 절구에 찧은 후 맑은 물로 체에 받혀 짜 냅니다. 생엽까지 고스란히 섭취가 가능하게끔 믹서에 갈면 손쉽겠지요. 새파란 비취빛의 생즙은 그다지 차 맛이 나는 건 아니지만, 쓰거나 풀비린내가 없어 마시기에 부드럽습니다.
차탕 - 고급 잎차의 찌꺼기를 잘 씻어 응달에서 눅눅한 정도로 잠시 말립니다. 거기에 생선 국물, 간장, 조미 료를 넣고 살짝 데친 후 고추로 약간 매운 맛을 내어 차에 그들 맛이 배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술안주로 사용합니다.
이 밖에 깍두기나 오이소박이 등 김치를 담글 때 차잎을 양념장에 섞어 넣으면 김치가 쉬어지지 않고, 오래두고 먹어도 물러지지 않는답니다.
손쉽게 할 수 있고 대표적인 것만 들었지만 이들을 기준으로 응용할 수 있는 차 음식이란 무궁무진하겠지요. 요는 '쌀 + 차 우린 물', ' 밀가루 + 차 가루', '그 외 + 차 잎' 에서 보여지듯이 찻물, 찻가루, 차잎 이 셋에 달려있답니다!
이로써 제가 하려는 얘기는 다 끝난 것 같습니다.
녹차 얘기를 하다보니 녹차와는 별 무관한 얘기이면서도 들어두어 좋을 글이 두어가지 눈에 띄어 잠시 여기에 적습니다. 먼저 이규보 님이 새로 지은 재실에서 차를 끓여마시며 기록한 글...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귀로 새소리나 맑게 흐르는 물소리를 듣지 않고 눈이 화려하고 사치한 데 게을러져서 청산의 푸른 빛을 보지 않으면 번뇌롭고 막히는 마음이 싹트는 것이다.
그리고 정약용 님이 쓴 다음의 시와 글...
머리들어 인간세상 바라다봐도 밝은 마음 가진 사람 보기 드물고 남의 것 본뜨기에만 정신없으니 정성껏 자기 스스로 닦을 틈이 없어라 어리석은 무리들은 바보 하나 떠받들고 야단스레 다같이 숭배케 하니 단군이 나라를 다스리던 질박한 옛 풍습만 못하구나...
배움이란 무엇인가? 배움이란 것은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끼달음이란 것은 그 그릇된 점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릇된 점을 깨닫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바른 말(雅言)에서 이를 깨달아야 한다... 이미 저지른 잘못을 깨닫고 부끄러워 하고 뉘우쳐서 고치는 것, 이를 배움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 <아언각비(雅言覺非)> 서문 중에서
마지막으로 녹차에 관련한 글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 한편을 들려드리렵니다.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 님이 지으셨던 겁니다. (한자로 읽을 때 나름의 미묘한 어감의 차이가 있는 건데요, '다반향초', '수류화개' 이 두 구절은, '각각 도의 체와 용을 담았다'는 해석을 비롯하여 '차를 반쯤 마시고 향을 막 피웠다' 또는 '다반의 반은 한창의 의미다. 곧, 차가 알맞게 끓은 상태' 라는 등등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한지라 나름의 의역이 잘 된건지 어쩐지는 자신 없네요.)
靜 坐 處 茶 半 香 初 妙 用 時 水 流 花 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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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정말 茶는 마시고 나면 버릴 게 없습니다. 엊그제는 茶室에서 마시고 난 차잎을 베개를 만들 만들려고 모았습니다^^ 심우파님 고맙습니다^^
감사 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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