又(三) [不得滯靜 於鬧處看話]
示諭(시유)호대 初機_得少靜坐(득소정좌)호니 工夫亦自佳(공
부역자가)라하며 又云不敢妄作靜見(우운불감망작정견)이라하
니 黃面老子(황면노자)의 所謂譬如有人(소위비여유인)이 自塞
其耳(자새기이)하고 高聲大叫(고성대규)하야 求人不聞(구인불
문)이라 眞是自作障難耳(진시자작장난이)로다 若生死心(약생
사심)을 未破(미파)하면 日用二六時中(일용이육시중)에 冥冥
蒙蒙地(명명몽몽지)_如魂不散底死人(여혼불산저사인)으로 一
般(일반)이라 更討甚閑工夫_理會靜理會鬧耶(갱토심한공부_리
회정리회료야)리요 涅槃會上(열반회상)에 廣額屠兒_放下屠刀
(광액도아_방하도도)하고 便成佛(변성불)하니 豈是做靜中工夫
來(기시주정중공부래)리요 渠豈不是初機(거기불시초기)리요만
은 左右_見此(좌우_견차)코 定以爲不然(정이위불연)이라하야
須差排(수차배)호대 渠作古佛(거작고불)이 示現(시현)이지 今
人(금인)은 無此力量(무차역량)이라하리니 若如是見(약여시견)
인댄 乃不信自殊勝(내불신자수승)하고 甘爲下劣人也(감위하열
인야)리라 我此門中(아차문중)은 不論初機晩學(불론초기만학)
하고 亦不問久參先達(역불문구참선달)이라 若要眞箇靜(약요진
개정)인댄 須是生死心(수시생사심)을 破(파)니 不着做工夫(불
착주공부)하야도 生死心(생사심)이 破則自靜也(파즉자정야)리
라 先聖(선성)의 所說寂靜方便(소설적정방편)이 正爲此也(정
위차야)어늘 自是末世邪師輩(자시말세사사배)_ 不會先聖方便
語耳(불회선성방편어이)니라. 左右_若信得山僧及(좌우_약신
득산승급)인댄 試向鬧處(시향료처)하야 看狗子無佛性話(간구
자무불성화)언정 未說悟不悟(미설오불오)니 正當方寸(정당방
촌)이 擾擾時(요요시)하야 謾提撕擧覺看(만즉시거각간)하라
還覺靜也無(환각정야무)아 還覺得力也無(환각득력야무)아 若
覺得力(약각득력)이어든 便不須放捨(편불수방사)하고 要靜坐
時(요정좌시)에 但燒一炷香(단소일주향)하고 靜坐(정좌)호대
坐時(좌시)에 不得令昏沈(부득력혼침)하며 亦不得掉擧(역부득
도거)니 昏沈掉擧(혼침도거)는 先聖(선성)의 所詞(소가)니라
靜坐時(정좌시)에 纔覺此兩種病(재각차양종병)이 現前(현전)
이어든 但只擧狗子無佛性話(단지거구자무불성화)하면 兩種病
(양종병)은 不着用力排?(불착용력배유)하야도 當下(당하)에 帖
帖地矣(첩첩지의)리니 日久月深(일구월심)하면 纔覺省力(자각
성력)이 便是得力處也(편시득력처야)라 亦不着做靜中工夫(역
불착주정중공부)하야도 只遮便是工夫也(지자편시공부야)니라
李參政(이참정)이 頃在泉南(경재천남)하야 初相見時(초상견
시)에 見山僧(견산승)의 力排黙照邪禪(역배묵조사선)이 瞎人
眼(할인안)하고 渠初不平(거초불평)하여 疑怒相半(의노상반)이
러니 驀聞山僧(맥문산승)의 頌庭前栢樹子話(송정전백수자화)
하고 忽然打破漆桶(홀연타파칠통)하여 於一笑中(어일소중)에
千了百當(천료백당)코사 方信山僧(방신산승)의 開口見膽(개구
견담)이라 無秋毫相欺(무추호상기)하며 亦不是爭人我(역불시
쟁인아)하고 便對山僧懺悔(변대산승참회)일러니라 此公(차공)
이 現在彼(현재피)하니 請試問之(청시문지)호대 還是也無(환
시야무)아하라 道謙上座(도겸상좌)_已往福唐(이왕복당)이러니
不識(불식)커라 已到彼否(이도피부)아 此子_參禪기辛苦更多
(참선신고갱다)호대 亦嘗十餘年(역상십여년)을 入枯禪(입고선)
이러니 近年(근년)에 始得箇安樂處(시득개안락처)하니 相見時
(상견시)어든 試問渠(시문거)호대 如何做工夫(여하주공부)오하
라 曾爲浪子(증위낭자)라 偏憐客(편린객)이니 想必至誠吐露也
(상필지성토노야)리라
부추밀에게 답하는 편지, 세 번째
[狀旨] 고요한 곳에 잠겨 있지 말고, 시끄러운 곳에서 오히려 화두를 살펴보아라.
[번역] 편지를 보니 “초심[初機]에 잠깐 고요하게 앉아보니 공부가 또한 스스로 만족스러웠다”고 하였고, 또 이르되 “감히 고요한 견해를 망령되이 짓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황면노자의 이른바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스스로 그의 귀를 막고 높은 소리로 크게 부르짖고는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기를 구함”과 같은지라, 참으로 스스로 장애와 어려움[障難]을 지을 따름이로다.
만약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지 못하면 평상시 하루종일 가운데 사리에 밝지 못해 어둡고 흐릿함[冥冥蒙蒙]이 마치 혼이 흩어지지 아니한 죽은 사람과 같으므로 하나[一般]이다. 다시 무슨 부질없는 공부인 ‘고요함을 깨달아 안다 시끄러움을 깨달아 안다’하는 따위를 찾겠는가?
열반회상에 ‘광액도아(廣額屠兒)가 소잡는 칼을 놓아버리고 문득 성불했다’고 하니, 그가 어찌 고요한 속에서 공부를 지어왔으리요? 또 그가 어찌 초심[初機]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대가 이를 보고 결정코 ‘그렇지 않다’고 하여 마음으로 계획하여 짜 맞추되 “그는 옛 부처님께서 시현(示現)하신 것이지, 요즘 사람들은 이러한 역량(力量)이 없다”라고 하리니, 만약 이와 같이 본다면 곧 자기의 수승함을 믿지 않고 달게 하열(下劣)한 사람을 지음이라.
나의 이 문중(門中)은 초기만학(初機晩學)을 논하지 않고, 또한 구참과 선배[久叅先達]도 묻지 않나니, 만약 참으로 고요함을 요할진댄 모름지기 나고 죽는 마음[生死心]을 깨뜨릴지니, 공부를 짓지 아니하여도 나고 죽는 마음이 부수어지면 곧 저절로 고요하게 되리라. 옛 성인[先聖]께서 말씀하신 바 ‘적정방편’이 바로 이를 위함이거늘, 이로부터 말세의 삿된 스승들이 옛 성인께서 방편으로 하신 말씀[方便語]을 이해하지 못할 따름이다.
그대가 만약 나[山僧]를 믿고 따를 수 있다면, 시험삼아 시끄러운 곳을 향하여 ‘개에게도 불성이 없다’라고 하는 화두를 살펴볼지언정 ‘깨닫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이야기하지 말지니, 바로 마음[方寸]이 시끄러울 때를 당하여 아무렇게나 붙잡아 겨루어서 알아차려 살펴보아라. 도리어 고요함을 알아차리는가? 마는가? 도리어 힘 얻음을 알아차리는가? 마는가? 만약 힘 얻음을 알아차린다면, 곧 모름지기 놓아버리지 말고 고요히 앉고자 할 때에 다만 한 가닥의 향을 사르고 고요하게 앉되, 앉을 때에 반드시 혼침(昏沈)하지 않게 하며 또한 도거(悼擧)하지도 말지니, 혼침 ․ 도거는 옛 성인들께서 꾸짖는 바이다. 고요히 앉을 때에 문득 이 두 가지 병이 뚜렷이 나타남을 알아차렸거든 다만 단지 ‘개에게도 불성이 없다’라고 하는 화두를 들면, 두 가지 병은 힘써 물리쳐 보내지[排遣]않더라도 그 자리에서 안정되리니, 날이 가고 달이 깊어지면 겨우 힘 들림을 알아차릴 때가 문득 힘을 얻는 곳이니라. 또한 (특별하게) 고요한 가운데 공부를 짓지 않아도 그대로 곧 공부이니라.
이참정이 잠깐 천남(泉南)에 있으면서 처음 서로 만났을 때, 내가 ‘묵조의 삿된 선(禪)이 사람들의 눈을 눈멀게 한다’고 하며 힘써 물리침을 보고 그가 처음에는 불평하여 의심과 분노가 서로 반반이더니, 곧장 내가「뜰 앞에 잣나무」라는 화두를 송(頌)하는 것을 듣고서 홀연히 무명[漆桶]을 쳐부수고는 한번 웃는 가운데에 천을 요달하고 백을 당(當)하고야 바야흐로 내가 입을 열어 나의 쓸개를 보인 것이 조금[秋毫]도 서로 속임이 없었으며 또한 인아(人我)를 다투지도 않았음을 믿고 문득 나에게 참회하였느니라. 이공(公;참정)이 현재 천남에 있으니, 청컨대 시험삼아 그에게 묻되 “도리어 (나의 이야기가) 옳은가? 옳지 않는가?”라고 하라. 도겸 상좌가 이미 복당(福唐)에 갔으니, 알지 못커라. 이미 그곳에 이르렀는지? 이 사람이 참선함에 매서운 고통[辛苦]을 겪음이 또한 많되 역시 일찍이 십여 년을 묵조선[枯禪]에 들었다가 근년(近年)에 비로소 이 안락한 곳을 얻었으니, 서로 볼 때에 시험삼아 그에게 묻되 “어떻게 공부를 지을까?” 라고 하라. 일찍이 방랑(放浪)한 사람이기 때문에 손님[客]을 몹시 불쌍히 여김이니, 생각건대 반드시 지극정성을 다하여 토로(吐露)할 것이니라.
첫댓글 불퇴지님, 수고하셨습니다..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불퇴지님_()()()_
불퇴지님! 감사드립니다... _()()()_
불퇴지님, 감사합니다. _()()()_
만약 참으로 고요함을 요할진댄 모름지기 나고 죽는 마음[生死心]을 깨뜨릴지니, 공부를 짓지 아니하여도 나고 죽는 마음이 부수어지면 곧 저절로 고요하게 되리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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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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