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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소원대로 되리라(마 15:21-28)
할렐루야! 한번 따라해 볼까요? “네 소원대로 되리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 은혜의 보좌 앞에 나온 여러분 모두에게 오늘 이 시간에 말씀을 통하여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지금 많은 학생들이 마음의 소원을 품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을 그런 때입니다. 수능일이 12일 목요일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많은 수능생들이 좋은 점수를 얻어, 마음의 소원하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면, 그 이후의 모든 인생이 순조롭게 펼쳐질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기도부탁을 받고 기도하고 있는 고 3 수험생들이 몇 명 있습니다. 아직까지 합격의 소식은 없지만, 좋은 소식이 날아오리라 믿고 있습니다. 엊그제 저도 시험을 본 것 같은데, 벌써 25년의 세월이 벌써 흘러가 버렸습니다.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시 22:4)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면, 마음의 소원을 품고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소원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기도하면 여러분의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십니다. 의심하지 않고 믿고구하면 그대로 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가복음 11:24절 말씀을 보면,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아픈 사람은 병이 낫기를 원합니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은 좋은 직장을 원합니다. 사업을 하는 이들은 사업이 날마다 번창하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지경이 넓어지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부흥하기를 원합니다.
매년 절기를 맞이할 때마다, 실로에 올 때마다 여호와의 전에 엎드려 울며 간절하게 기도하던 마음이 슬픈 여인이 있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1)
마음이 슬픈 여자 한나였습니다. 그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무엘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사무엘”이란 이름의 뜻은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입니다. 사무엘은 기도함으로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훗날 사무엘은 무엇이라 말합니까?
“나는 결단코 기도에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기도함으로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가십시오. 그리고 기도에 쉬는 죄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열왕 가운데, 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얼굴을 벽을 향하고 누워 기도하던 왕이 있었습니다.
“이제 너는 죽으리라”는 말을 듣게 된 히스기야왕이 심히 통곡하며, 벽을 향하여,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왕하 20:3)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께 응답해 주셨습니다.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왕하 20:5-6)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듣고, 그의 눈물을 보시고,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게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눈물을 보시고, 우리의 형편을 소상하게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질병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아픔을 앓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알고 계십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치료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 10:46)
여리고성의 길가에서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 지르던 소경 거지 바디메오가 있었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예수님이 소경에게 말했습니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태어나 한번도 세상을 보지 못했던 소경 바디매오가 세상을 보기 원했습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 시간에 그는 눈을 떴습니다. 보이지 않던 세상이 환하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먼 자가 눈을 뜨고, 앉은 자가 일어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나흘이나 지난 후, 죽은 나사로를 찾아오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예수님께서 죽음 앞에 슬퍼하고 있던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믿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울며 부르짖던 마르다와 마리아는 죽은 나사로가 살아서 무덤에서 나오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아들을 얻기도 하고, 생명을 연장 받기도 하고, 눈을 떠 보기도 하고, 죽은 자가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하나님께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을 아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소원을 가슴에만 담아 두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내어놓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내어 놓으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는 사람! 기도에 응답 받는 사람! 소원을 성취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첫째, 절박한 심령으로 부르짖는 자가 소원을 성취합니다.
본문의 병행 구절인 마가복음 7:26절은 이 여인을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 했습니다.
수로보니게는 지중해 연안의 기름진 평원에 사는 블레셋 족속입니다. 이 여인은 헬라인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혈통이나 언어를 의미하기 보다는 바알신과 아스다롯 등, 우상을 섬기던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본문은 이 여인을 가나안 여인이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여인이란 말은 팔레스틴 지방에 사는 모든 족속을 통칭하는 말로, 선민 유대 민족에 대칭되는 하나님 밖의 인생이란 뜻입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는 종족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았던 인생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은 유대인인 예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데 2중 3중의 난관과 장애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여인의 딸이 귀신에 들린 것입니다. 흉악한 귀신이 들렸습니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은 자기의 모든 것입니다. 어쩌면 지식은 자기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존재입니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은 세상의 모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식의 불행 앞에서 어머니는 절박한 것입니다. 모성은 목이 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그러나 주님은 대답이 없으십니다.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냉정하게시리 침묵하셨습니다. 그 침묵을 깨고, 더욱더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왜 여인은 이토록 부르짖어야 합니까? 딸의 생명이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아니고는 구원의 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살 소망이 예수님께 있기에 가나안 여인은 자존심을 버리고 힘껏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했습니다. 간절하게 부르짖었을 때, 들어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이제는 주님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 더욱더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욱더 냉정한 말씀을 하십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기가 시험의 절정입니다. 여기가 축복의 마지막 관문입니다. 여기에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계속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인내할 때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냉정한 대답을 하신 주님의 진실한 마음은 무엇입니까? 고쳐주지 않고 싶은 것이 진실한 주님의 마음이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더 크게 부르짖어라!” “더 간절히 부르짖어라” “애타게 부르짖어라”
“포기하지 않고 더 크게 부르짖으면, 더 간절히 기도하면, 내가 네게 주리라”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녀는 결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자존심을 버렸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자신의 딸이 낫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주님께 매어 달렸습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주님께 더욱더 간절하게 요청했습니다.
“주님! 저는 개입니다. 주님의 개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제가 주님의 가지신 것 다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은 주님의 자녀들에게 주시고, 저는 부스러기 은혜라도 족하옵니다. 저에게도 주시옵소서”
그때 주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여자야!”라고 부르셨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절박한 기도! 간절한 기도! 목마른 기도! 허기진 기도!
이런 절박한 기도가 소원대로 이루어지는 기도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하면 응답이 이루어집니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도하면 승리합니다.
다윗 왕은 시편 3:4절에서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나이 많아 노년이 되었을 때, 그의 아들 압살롬이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아버지에게 대항하자, 아들을 피하여 한밤중에 도망을 치면서 쓴 비탄의 시입니다.
위기에 처하자 다윗은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기도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왕권을 다시 되찾게 하실 뿐만 아니라, 나라도 번창케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기도입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 속히 나를 도와주소서” 우리는 간절히 부르짖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함으로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이 모두 다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꿈과 비전과 소망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큰 믿음이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28절에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큰 믿음이 그녀의 소원을 성취시켰습니다. 어떤 믿음이 큰 믿음입니까?
마태복음 8장에는 믿음 좋은 한 백부장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사랑하는 하인이 중풍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 나와 그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서 고쳐주시겠다고 하자,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마 8:8)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겸손한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마 8:10)고 칭찬하시며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시로 하인이 나았습니다.
여러분! 큰 믿음을 소유하기를 바랍니다. 큰 믿음을 가지면 크게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크게 가집시다. 꿈과 비전을 크게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바라보지 마시고, 먼 미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큰 소망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큰 소망을 가슴에 품고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초대 교회사를 살펴보면,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 폴리갑입니다. 그는 서머나의 감독으로서 86세에 순교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화형에 처해지는 순간에 로마의 군사들은 신망이 높고 존경받는 인물이었던 그를 죽이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안 믿는다고 한마디만 거짓말을 하시오”라고 회유했습니다. 그때 서머나의 위대한 감독 폴리갑은 다음과 같이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예수님은 86년 동안 나에게 한 번도 거짓을 말씀하신 적이 없는데, 예수님은 한 번도 나를 배신하신 적인 없는데 내가 어찌 구차한 생을 살겠다고 거짓을 말하겠소. 어서 나를 죽이시오.”
그리고 폴리갑은 원수를 위해 기도한 후 장작더미에 올라 장렬하게 순교했습니다.
이것이 충성스러운 사람, 신실한 사람, 믿음이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이런 순교자들의 피 위에 세워졌다고 말합니다. 충성을 다하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에나 나쁜 일이 있을 때에나 우리는 늘 큰 믿음을 가지고 대응하여야 합니다.
크게 생각해야 합니다. 큰 믿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 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큰 믿음을 가지심으로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큰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다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불굴의 믿음이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의 은혜를 입는 데는 많은 난관과 장애가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과 제자들의 제지가 있었습니다.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예수님의 냉담이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시는 거절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방해도, 어떠한 제재도, 어떠한 난관도 그의 소원을 포기시킬 수 없었습니다. 막을 수 없었습니다. 중지 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녀는 갈급하고, 그만큼 그녀는 절박하고, 그만큼 그녀의 믿음은 확고했습니다.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백전불굴의 믿음! 이 믿음이야 말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응답을 받을 수 있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떠한 환경을 만났다 할지라도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염려가 떠나갑니다. 걱정거리가 사라집니다. 불안이 떠나갑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나라도, 민족도, 혈통도, 종교도, 환경도, 초월하는 믿음을 통하여 그의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가나안 여인의 간절한 소원, 딸의 병이 치유되었습니다. 흉악한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회복되었습니다.
다윗 왕도 시편 40:1절에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믿음을 가질 때,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승리합니다. 치유의 역사,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의 소원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그 마음의 소원을 향하여 힘차게 전진해 가십시오.
가까운 훗날 그 꿈과 비전과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을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절박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간절함으로 기도하면 응답됩니다. 큰 믿음을 가질 때 어떤 형편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요동하지 않는 큰 믿음을 가질 때 문제가 해결됩니다.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믿음으로 모든 마음의 소원이 다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주 앞에 아룁니다.
속히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옵시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발걸음이 힘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