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 주』
박태식 신부 / 영화평론가, 성공회신부
윤동주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지 꽤 됐다. 어떤 영화가 준비 중에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극장에 걸리기까지 아직은 불확실한 과정이 내포되기에 신뢰가 안 가곤 한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일단 극장에 걸려봐야 알지! 윤동주의 일생을 다룬다는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윤동주가 살았던 복합적인 삶, 한쪽은 독립 운동가이며 다른 한 쪽은 감성 풍부한 시인이라는 두 차원의 조화가 쉽지 않으리라는 판단이 섰다. 그리고 극장에 앉았을 때 나의 선입견이 완전히 깨지는 경험을 했다.
<동주>(이준익 감독, 극영화/인물영화, 한국, 2015년, 110분)는 1935년에서 1945년까지 십여 년의 세월을 담아낸다. 윤동주(강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일생 전부가 담겨진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만주의 은진중학에서 시작해 경성에 있던 연희전문을 거쳐 동경의 릿교 대학에 이르기까지 그의 학업을 따라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종사촌 송몽규(박정민)와의 관계를 추적한다. 그 사이사이 윤동주 시인의 수려한 시 작품들을 영화 전개에 맞게 배치해야 함은 물론이다. 세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했던 셈이다. 그러면서도 대단원은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윤동주의 사망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그리 길지 않는 110분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사실 나열식으로 영화가 진행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동주는 세상을 잘못 만난 사람이다. 문학적 감성을 펼쳐 훌륭한 시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지만 시대가 그의 발목을 꽉 잡고 있다.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처치가 불가능한 그림자처럼 사나이다운 몽규의 행동거지가 늘 상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춘원 이광수가 일본군 입대를 종용하는 글이 벽보로 나붙은 장면이 나오고, 박정희가 훈련 받은 일본군 만주군관학교와 은진중학 동기생인 문익환의 이름이 나오고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을 했던 상황도 나온다. 문 목사의 아들 문성근이 정지용 시인 역으로 나온 것도 주목할 만하다. 윤동주의 시대를 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십분 묻어 나왔다. 관객은 행간을 잘 읽어보시길 바란다.
영화는 지루하지 않았다. 역을 맡은 배우들의 몰입이 최고 상태를 유지했고, 흑백 화면은 집중력을 높여 주제의식을 살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취조실에서 마주한 동주와 일본 형사(김인우)가 나누는 한마디 한마디는 동주의 생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보여주기에 적합했다. 마침내 조작된 진술서 앞에서 동주와 몽규가 내뱉는 절규! 아마 강하늘과 박정민과 이준익 감독은 이 대목에 영화의 승부를 걸었을 것이다. 장면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6억짜리 저예산 영화면 어떻고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면 어떤가. 암울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처참한 현실이 몸으로, 마음으로 다가오게 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정지용은 휘문 고보를 졸업했고 휘문 고보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6.25 전쟁 때 납북된 후 행방불명된 시인이다. 그는 영화에서 ‘진짜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는 윤동주의 ‘서시’에 나오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에서 연상한 대사일 것이다. <동주>라는 영화의 성격을 규정하기에 더없이 좋은 착상이다.
각본을 맡은 신연식은 연출도 잘 하지만 각본도 곧잘 쓰는 사람이다. 필자는 그의 탁월한 능력을 <러시안소설 2012>에서 확인한 바 있다. 이준익 감독이 실력파라는 점은 더 말할 나위도 없고 말이다. 좋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추천한다.
참고로 『춤』 잡지를 만든 조동화 선생도 윤동주와 같은 은진중학 출신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