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友情의 늪
 
 
 
카페 게시글
제주서울 산천풍물 스크랩 제주에 미쳤던 사진작가
순둥이YH Kim 추천 0 조회 143 10.03.28 22:04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김영갑,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그는 공고를 졸업한 후 형이 사준 카메라와 '사랑에빠졌다'.

20여년 전 제주섬의 자연과 평화로움에 반해 아예 눌러 앉았다. 사진에

쳐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그는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사진에 담겠다”는 일념으로

한라산과 마라도, 바닷가와 중산간,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오래된 나무와 억새... 제주의 사계절과 섬의 모든 아름다움을 앵글에 담았다.

 

가난했지만 예술인으로서 그는 행복했다. 사진으로 돈과 명성을 얻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러다 루게릭병을 얻은 것이 지난 2001년. 병마는 그를 지치고 힘겹게

했지만 희망과 의지마저 앗아가지는 못했다. 2005년, 사진작가 김영갑은 

제주의 아름다움에 안겨 겨우 48세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제주 하늘에 떠있는 흰구름 위에, 푸른 들판을 지나는 바람결에,

오름길에 피어나는  야생화 조그만 꽃잎에...

그의 영혼은 아름답게 머물러 있을 것이다.

   

<사진작가 김영갑>

루게릭병도 말리지 못한 제주의 '사진작가'

 

 

제주의 빛, 바람, 구름을 사진에 담은 사진작가 김영갑

 

그는 36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풍이 부는 날에도 한쪽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오름과 들판으로 나갔다. 똑같은 장소에서 앉아 보고, 서서 보고, 누워서 보며 그야말로 하늘천장이 뚫릴 정도로 집요하게 사진을 찍었다.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는 갈대와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 한그루. 그 위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구름.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 이 사진들은 20년간 제주만을 촬영해온 고(故) 김영갑 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제주도의 아름다움에 매혹돼 1985년 서울을 떠나 혈혈단신 제주도에 내려와 묵묵히 사진을 찍었다.

 

▲ 두모악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는 김영갑 작가의 사진

 

그는 자서전에서 "궂은 날에도 들판으로 바다로 나가 태양을 보았다.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다"라고 말했다.

 

그는 유독 애착을 갖던 용눈이오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지금은 그곳이 제주 오름 트레킹의 대표 코스로 개발됐다.

 

비자림 서쪽에 있는 둔지봉에 대해 김 작가는 "내 영혼을 사로잡아 섬에 홀리게 만든 마력이 숨어있다"며 경사진 구릉밭에서 보는 구름이 아름다워 이 일대를 ‘구름언덕’이라고 불렀다.

 

"아름다움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사진은 눈으로 찍는 게 아니라 가슴과 머리로 찍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한다. 날씨가 나쁘다고, 해가 안 떠 운이 없다고 타박하는 것은 제주의 속멋을 볼 수 없다는 의미다."

 

▲ 김영갑 작가가 촬영한 이어도의 사진

 

■ 제주에 미친 작가, 제주에 영원히 잠들다

 

필름에 유효기간이 있듯 그의 삶에도 멀리만 느껴졌던 삶의 유효기간이 눈앞에 다가왔다. 허리가 아프고 뒷목이 당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병명도 모른 채 3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병명이 밝혀졌다. 근위축성 측상경화증. 우리에게 루게릭 병으로 알려졌다. 이 병은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하는 질환으로 10만 명 중 한두 명에게 발병한다.

 

김 작가는 휴지 한 장 들기도 힘든 몸을 이끌고 2002년 여름 서귀포시 성산읍 폐교를 임대 받아 갤러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열정 앞에선 루게릭 병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오히려 하루하루를 미련이나 후회가 없도록 작업에 몰입했다.

 

갤러리가 완성되자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 길가에 이정표 하나 세우지 않아도 물어물어 찾아오는 사람들로 갤러리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하지만 그의 건강은 날로 악화됐다. 자고 나면 한 움큼씩 머리카락이 빠졌고, 얼굴을 꼬집어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손가락과 발가락의 근육이 사라져 뼈와 가죽만 앙상하게 남았다.

 

2005년 5월 29일 김영갑 사진작가는 이른 아침 황망히 세상을 등졌다. 당시 48세. 유언도 없었다. 20만 롤이 넘는다는 필름을 어찌 해야 하는지, 갤러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는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다. 그의 뼈는 두모악 갤러리의 마당에 뿌려졌다.

 

▲ 두모악 갤러리의 박훈일 관장이 김영갑 작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생전의 김영갑은 강퍅했고 고집불통이었다. 자신의 예술을 위해 가난한 순교자의 길을 자청했다. 다른 꽃들처럼 서서히 시들지 않고 때가 되면 송이채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흔들림 없이 오직 한결 같은 삶을 살았다.

 

2005년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 갤러리는 그의 유일한 제자 박훈일(44)씨가 관장을 맡고 있다. 박 관장은 "밥 먹을 돈은 없어도 필름 살 돈은 항상 넉넉했던 그는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고 스승의 생전 모습을 기억했다.

 

제주 서귀포 성산읍 삼달리에 위치한 작가의 갤러리 ‘두모악’ 입구에 들어서면 그의 다정다감함이 느껴지는 흙으로 빚은 토우와 산수국 틈에 숨어 기다리는 돌인형들이 반긴다. 도저히 폐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탄생한 그의 하얀 갤러리에는 그가 살아생전 카메라에 담았던 제주 모습이 담겨져 있다.

 

두모악 갤러리를 방문한 김욱(27·서울강남구)씨는 "사람 발길이 드문 중산간 지역의 오름을 배경으로 제주의 자연을 잘 담은 것 같다"며 "진정성을 갖춘 전형적인 예술가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위치한 두모악 갤러리

 

박 관장은 "두모악 갤러리는 우리 모두의 공간이다. 한 인간의 지독했던 예술 혼을 되짚고 체험하며 문화라는 공간에서 스스로 삶의 활력을 얻는 일종의 명상센터다"라고 말했다.

 

물질적으로는 배고픈 삶이었을 지라도 정신적으로는 풍족했던 삶을 살았던 그는 영원히 제주에 잠들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조선닷컴 미디어취재팀 media@chosun.com 2010.03.10

 

 

 

 

 

 

 

 

 

 

 

 

 

 

 

 

 

 

 

 

 

 

 
다음검색
댓글
  • 10.03.29 16:08

    첫댓글 우리는 제주를 너무나도 모르고 살았네 이처럼 아름다운 곶을우리가아닌 김영갑,작가님께서 이루어 주셨네!김영갑 작가님 극락왕생 하옵소서 극락왕생 하옵소서 극락왕생~~하옵소서!!

  • 작성자 10.04.07 11:19

    나무아미타불~~!!!

  • 10.04.06 22:41

    참으로 가난했지만 지독한 작가정신 하나로 나를 부끄럽게 만든 사 람 이 었고 그 사람 의 열렬한 팬으 로 부터 받은
    유고집을 졸업앨범과 동급 으로 보 관 중....

  • 작성자 10.04.07 09:31

    경했구나! 장개도 안가고 사진에 미쳤으니, 부모님은 속이 탔을거고! 아름다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좋아했을거고!

  • 10.04.07 10:16

    세억님 유고집 혼자보지말고 같이보자 너무 아름다운 사진도 훌륭한 작품이 되는구나 나도 사진에 취미좀 가져보자!!!!!

  • 작성자 10.04.07 11:21

    세억아 사진첩 돌려 봅시다! ^&^
    승훈아! 사진은 핸드폰으로도 잘 된다! 걍 막 찍으면서 터득허믄 될꺼여!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