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의 기원
화투는 한국의 민속놀이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한국 고유의 오락이 아니라 19세기경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다.[5] 그러나 전파자나 화투에 관한 명칭이나 발생, 전달 과정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대체로 포르투갈에서 비롯된 ‘카르타(carta)놀이 딱지’가 16세기경에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에 무역차 출입하였을 때 전하여졌는데, 일본인들이 이를 본떠 하나후다(일본어: 花札 はなふだ)를 만들어 사용하였고, 이것이 19세기경이나 일제강점기때에 한반도로 전해졌다고 알려져 있다.[6] 이 하나후다가 1950년경에 한국에서 디자인이 변형되어 대중에게 보급되었다.
하나후다
화투의 원형인 일본의 전통 카드 게임인 하나후다(일본어: 花札)는 하나카루타(일본어: 花かるた)라고도 부른다. 일본에 하나후다가 시작된 시기는 16세기 후반으로 보고 있다. 당시 일본은 포르투갈과 대대적으로 무역을 시작한 시절에 포르투갈 선교사를 통해 트럼프가 전해지게 되어 이것이 가루타의 일종인 ‘텐쇼-가루타(天正カルタ)’로 불리게 된다. 가루타는 카드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카르타(carta)에서 유래하였으며 훗날 여기에 한자를 도입하여 ‘가류다(歌留多)’, ‘가류다(加留多)’, ‘곳파이(골패,骨牌)’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791년 에도막부는 간세이 개혁의 일환으로 도박성이 큰 가루타(カルタ) 금지령을 내린후 단속하였다.[7]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 그림을 바꾼 새로운 가루타가 만들졌는데, 이것이 하나후다(はなふだ)의 원형이 되었다. 물론 훗날 하나후다도 수차례 금지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세계적인 게임기 제조사가 된 닌텐도(にんてんどう)도 1889년에 하나후다(はなふだ)를 만드는 회사로 출발하였다. 마침 야쿠자가 개설한 전국의 도박판에서 속임수 방지차원에서 새판이 시작할 때마다 화투를 교체했기 때문에 수요는 폭발적이었고, 닌텐도는 크게 성장하였다.[10] 그러나 일본의 하나후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정월에만 특별히 하는 놀이가 되면서 즐기는 인구가 줄어들고 말았다.
국내 유입
19세기 후반에 쓰시마섬 상인들에 의해 하나후다(はなふだ)가 조선에 전해져 퍼진 것으로 여겨진다.[11] 임진왜란 때 일본인이 가져왔다는 설도 있지만 일본 상인들이 항구를 통해 19세기 말 조선에 퍼뜨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 일본인이 조선 땅에 거류지를 만들고 이곳에서 일본인들이 화투 노름을 하면서 더욱 확산됐다고 보고 있다. 유입 초기에는 일본 하나후다와 유사하게 종이에 인쇄된 것을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
화투는 일제강점기 때 이미 서민층에게 널리 퍼져서[7] 여러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운수띠기 등으로 진화하면서 점풍의 성격을 갖기도 했고, 화투타령(화투풀이) 등의 민요가 전승되기도 하였다. 화투타령(화투가)은 화투의 그림을 월별에 따라 해학적으로 풀이한 민요인데, 달마다의 특색을 대표되는 꽃을 소재로 하고 있다.[12] 민초들의 정서를 담아낸 <화투타령>은 일제강점기때 많이 불린 것으로 보인다. 가사를 살펴보면,[13] 화투의 1(솔)부터 12(비)까지를 각 달과 연결해 식민지 백성의 ‘허무한 삶’을 읊으며 무력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14] 그런데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항일, 반일의 민족적 감정으로 화투를 하지 않았다.
광복 이후
광복후 화투패의 그림이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던중 1950년대에 현재와 같이 디자인이 변경되었다.[7][15] 이 과정에서 기존의 종이 재질이라 쉽게 훼손되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플라스틱으로 재질을 교체하고 두께도 얇아졌다. 또한 대량생산시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그림을 단순화하고 4가지 색상만 사용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다시 보급되기 시작한 화투는 오늘날 가장 대중적으로 이용되는 노름 도구가 되었다. 이로인해 노름의 판도가 바뀌어 옛날식 투전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화투를 이용한 놀이들이 도박의 전형으로 토착화되었다.[16] 또한 하나후다(はなふだ) 보다 한국식 화투가 실용성이 뛰어났기에 일본에 역수출 되기도 하였다.
고스톱의 보급
화투놀이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민화투(또는 늘화투), '육백(600)', '짓고땡', '섯다', '고스톱', '월남뽕' 등 다양하며, 2∼4명이 노는 것이 보통이나 '섯다' 등은 10명도 놀 수가 있다. 그 밖에 아낙네나 노인들이 재미로 하는 '재수보기'와 '운수띠기'가 있다. 여러놀이 방법 가운데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단연 고스톱이다. 고스톱은 1950년대에 일본에서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스톱이 언제 한국에 들어온 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60년대 말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70년대 중반 이후에 널리 알려지면서[4] 화투놀이의 대표주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7]
정치 풍자
1980년대에는 사회적 상황을 반영한 정치풍자 고스톱이 새로운 규칙으로 등장하였다. 이른바 싹쓸이 규칙과 거기에 따른 변형규칙, 즉 전두환 고스톱을 기점으로 정계 거물급 인물들의 정치행태가 고스톱의 규칙으로 반영되기도 하였다. 화투의 전승양상은 곧 우리 역사와 사회문화적 변화의 다양한 국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힘겨웠던 시간을 달래주었던 대중적 놀이로서 성격을 보여준다. 또한 전두환 고스톱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놀이규칙의 변개를 통해 민중적 처지에 입각해서 집권자를 풍자하고 그들의 권력획득 과정과 정치형태를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양식으로 삼기도 하였다.
<자료출처 화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