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유래~
금성면
충청북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제천시는 해발 300미터의 고원분지로 대부분이 산지인 것은
북쪽으로 솔미산에서 골미산 무등산, 왕박산 가창산 등을 거쳐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으로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맥의 지류인 금수산맥이
작성산 학강산 동산 이 금수산(1,015m)을 주축으로 단양군과 경계를 이루어 청풍호를 끼고 물위에 앉아있으니 아름다운 기암괴석과 감입곡류(嵌入曲流)로 호안경치(湖岸景致)를 보여주고 있는 형상이다
산수가 아름다우면 인정도 아름다워 고을과 마을의 이름이 모두 산수를 닮아 이 또한 아름답다
특히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금수산을 등에 기대고 있는 금성면은 충주댐 수몰로 인하여 성내리 와 월굴리가 1985년에 물속에 수몰되어 주민들이 모두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형성하고 내륙속의 바다 청풍호를 얻었으니 성을 쌓아 물을 가둔것은 실로 비단에 수를 놓은 형상이 되었으니 가히 비단성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고장이다
제천, 제원사의 연혁에 따르면 제천시와 불과 12.2km의 거리를 두고 있는 표고160m의 금성면은 오래전 제천군의 제3현에 속하는 남면의 10개리와 청풍부의 동면 5개리 및 북면 8개리로 편성되었는데, 1904년(고종41)에 지방제도 개혁시 남면을 성산면(城山面)으로 개칭하고 청풍부의 동면5개리와 북면 8개리를 합하여 금수산의 이름을 따서 금수면(錦繡面)으로 개칭하게된 것이 처음의 명칭이었다
그후 1913년에 이르러 시군 폐합이 시행되면서 청풍군이 제천군에 편입되었고 이때 청풍의 읍면과 근서면도 폐합되어 비봉면으로 개칭되었다
지금의 금성면(錦城面)이 된 것은 1917년 금수면과 성산면을 합쳐26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면서부터 금성면으로 불리워지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르며 그후 여러번의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1929년10.14자 도령 제13호에 의거 금성면의 도화리,능강리,상천리,성리등 5개리를 수산면에 떼어주고 1947.1.31.자 도령 36호에 의거 북진리,교리,학현리 등 3개리를 청풍면에 주어 금성면의 행정구역은 18개리가 되었다
1980년.4.1제천군이 시로 승격이된 이후 1983.2.15.자 강제리,명지리,산곡리등 3개리가 다시 제천시로 편입되어 여러번에 걸쳐 11개리가 없어져 지금 남아있는 마을은 구룡리, 진리, 적덕리, 사곡리, 활산리, 월굴리, 성내리, 중전리, 포전리, 위림리, 양화리, 동막리, 대장리, 대랑리 등 15개리가 남았다
그후 군사시설로 2개 마을이 없어진 대량리가 1989년 제천시에 편입되고 동막리는 마을전체가 군사시설로 편입되어 주민들은 모두 마을을 떠났다
그뿐만이 아니라 제천시의 8개면 중에 가장많은 변화를 겪은 금성면은 1개면에 4개의 초등학교가 있을 만큼 많은 주민들이 상주한 것은 그만큼 산수좋와 살기좋은 고장이었기 때문이며
금성초등학교(1930.3.31.개설), 동막초등학교(1925.3.10.개설), 안암초등학교(1963.7.9.개설), 양화초등학교(1971.3.13.개설)등 이 있었으나 지금은 금성초등학교만 남아있고 모두 폐교되었으니 그 많던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없는지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