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박물관쪽으로 향한다.
길을 찾다가 그 주위를 한바퀴 빙 돌았는데
-애걔, 경주시내가 겨우 이거야 할 정도로 좁은 공간임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경치가 좋다는 임해전지 <안압지>- 임해전지라고도 한다 -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한때 왕궁의 일부였고 왕건의 출현까지 지켜봐야했던 역사가 많은 안압지,
직선과 곡선이 이상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신라의 대표적인 인공 조림(정원),
바람덕분에 산책을 아예 포기했지만 특별히 인상적인 면은 없었다.
이것도 역시 약간 실망이다. 이제 박물관이다.
나는 여행에서 <박물관>을 참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이런 문화여행에서는 더더욱 중시생각한다.
그 지역의 역사와 유물과 정신, 모든 실재들이 총합적으로 존재하는 곳이 바로
박물관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얼굴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또한 나는 박물관에서 물건사기를 참 좋아한다.
지역 특산물과 역사적 상징물등
한마디로 그 지방의 최고의 특징을 박물관은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시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가본 박물관은 몇곳이 안된다.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 광주, 그리고 경주가 전부이다....
누군가에게 '어디 박물관 가보니 참 좋더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그만큼 매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광주도 그렇다. 외지고 뚝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꼭 진평왕릉처럼.
다행히 비엔날레가 있어 문화벨트로 묶이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유적과 유물의 총합미도, 역사의 총체성도 지니지 못했다고 생각되며,
문화의 중심지여야할 본연의 역할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물관에 대한 나의 요구가 너무 주관적일까?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유럽의 몇몇 도시에서 본 박물관은
그렇지 않았다는 인상이 나에게는 매우 강하다.
그리고 몇몇 도시에서 처럼 일본의 후쿠오카 박물관은 겨우 市立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들의 상업성을 인정하더라도 나는 그들의 박물관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근거있는 애착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늘 오천년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란 개념만 남아있는 나에게
그누구도 그 내용과 실재를 교육시켜주지 못했고,
박물관 한번 제대로 끌고간 어른이나 선생님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과거에 자신이 없는 사람, 모르는 사람은 결코 현재가 올바를 수 없다.
미래에 대한 목표가 똑바를 수 없다.
설사 있더라도 뿌리없는 나무처럼 그 모양을 지속할 수없다.
역사가 없는 나라,
뿌리가 없는 민족에 힘이 있을 수 없다.
전체를 묶을 수 있는 철학이 있을 수 없다.
삶을 윤택하게 해줄 문화가 있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경주국립박물관은 일단 國立이란 말이 내게는 부끄러운 명칭이라 생각한다.
시설부터가 그렇다.
요즘같은 시청각 시대에, 더군다나 영상세대에 경주박물관은
내 눈으로보고 내눈으로 읽어보고,
유리창 너머로 느끼는 것외에 별로 할것이 없다.
매점에 가봐도 몇권의 책과 열쇠고리, 몇가지의 기념품이 전부다.
- 거 이상하게도 열쇠고리는 어딜가도 참 많다.-
살만한 기념품은 대개 비싸다.
책도 비싼 종이에 사진만 많은 일반인 중심의 책이 전부다.
돌아다니다가 적당히 쉴만한 의자도 없고, 이야기 나눌만한 공간도 없다.
한걸음 더나아가서 소위 관광지들의 특화도 필요하다.
설악산 신흥사에서도, 영주의 부석사에서도, 경주의 석굴암에서도,
광주의 증심사에서도, 소위 향토특산품이라고 기념품이라고 파는 것이 전국공통이다.
똑같다.
등긁는 대나무도 똑같고, 모자도 똑같고, 수입옥돌도 똑같고,
수건에 박힌 이름하고 뺏지하고 엽서사진만 틀린게 우리들의 기념품 행태다.
박물관의 기념품은 이것보다는 낫다.
가끔씩 특별한게 있다.
그런데 외국인 전용인지 사학자 전용인지, 아니면 상류층 전용인지 대개 비싸다.
비싼 것도 있지만 나같은 사람도 쉽게 살 수 있는
다양한 종류와 질의 물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뭏든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과감하게 뜯어 고쳐야할 부분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더군다나 요즘은 역사바로세우기가 국가적 화두아닌가!
박물관은 박물관 다워야 한다.
불상에 대한 몇가지 메모
박물관에서 나에게 주요한 관심은 에밀레종과 고선사탑이다.
들어가는 양옆으로 경주시내에서 주어온 많은 돌조각들이 널려져있다.
석등받침, 주춧돌, 금강역사조각,
그리고 무수한 불상들이 박물관 뜰을 가득채우고 있다.
일단 건축이 정성을 들였다고 씌여진 책을 본바는 있으나
이것이 신라풍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신석기 유물에서부터 시작하여 불상들, 금 장식구들,
그리고 사리함들과 기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불교에 대해서 너무 무지함을 느낀 나에게 일단
불상들의 종류에 대해 알게 해준 것은 고마웠다.
보통 일반절의 <극락전>에는 현세를 의미하며
구품인을 하고 있는 불상은 <아미타불(무량수불이라고도 한다)>이다.
대웅전에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석가여래상>이 있는데 이는
과거를 상징하고 예배시 대상임과 더불어 시무외인 혹은 여원인을 맺기도 한다.
그리고 많이 볼수는 없지만 미래를 상징하는 <미륵불>은 <미륵전>에 모셔져 있고,
우리가 많이 들어본 <관음전>에는 <관음보살>이 있어 자비심을 상징한다.
그리고 설법하지 않지만 위대하고 훌륭한 지혜를 상징하는
특이한 지권인을 맺고서 <비로전>에 모셔져 있는 <비로자나불>,
그외 별개의 법당은 없지만 현실에 이익을 주는 능력을 가진 <약사여래상>과
석가의 인생무상을 사유하는 모습의 <반가사유상>등이 있다.
즉 우리가 가는 절마다 법당의 이름도 틀리고
그 안에 모셔져 있는 불상의 이름과 손의 모양도 각기 다르다는 점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토기와 막새
몇가지의 특이한 <토기>들이 많이 보인다.
고려에는 청자가 있고 조선에는 분청사기와 백자가 있듯이,
신라의 대표적 유물중 하나는 분명 토기이다.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기마상도 능에서 굴토된 토기이며,
오리모양등 이형의 토기들과 조금은 짓궂은 모양의 몇몇 토기들
- 뱀에 쫓기는 개구리와
여기에서 놀고 있는 사람모양의 작은 조각들이 붙어있는 항아리 - 이 있다.
한가지, 술잔에 귀걸이처럼 주렁주렁 달린 방울소리는
'나 술다마셨으니 한잔 더 따라라'고 흔들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을 매점에서 들었다.
그리고 양쪽으로 주둥이가 나온 술잔은
'독이 없으니 같이 나눠 마시자'는 의미의 부라보잔이었다는 설명도 아울러 들었다.
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많은 박물관,
하다못해 필리핀 같은 3세계국가의 한 개인 박물관에도
정해진 시간에 안내인이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설명을 해주곤하던데,
여전히 아쉽다.
황룡사터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한곳에 따로 모여 있고
안압지에서 발굴된 유적들도 있다.
너무 배고픈 관계로 일단 나와서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하면서 계속 느낀것중 하나는 음식이 맵고 짜다는 점이며 맛이 별로 없었다.
다시 표를 끊어서 관람을 계속했는데 나중에 보니
뒤쪽 뜰에 차도 팔고 음식도 파는 곳이 있었는것 같다.
기억에 남는 것은 황룡사터에서 발굴된 <막새>인데
소위 지붕위의 용마루 끝을 마감하는 건축부재로써 높이가 1미터 80이 넘었다.
내 보기에는 꼭 고대 이집트의 어느 양식과 똑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는데
참 이지적이고, 인상적인 선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낯설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만,
그렇게 크면서도 안정감있고 군더더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은 비례감이 있다.
또한 화려하지도 않지만 억지스러운데도 찾아볼 수 없을정도의
적당한 곡선으로 마감되어있는데 힘찬기운 같은게 서려있는 유물이었다.
저렇게 큰 막새가 막고 있었다는 황룡사 9층탑은 얼마나 웅장하고 듬직할까?
신라의 미소에 대한 생각 세가지
또하나는 세개의 미소에 대한 기억이다.
생의사미륵삼존상으로 불리는 애기부처상의 좌우의
<협시보살 애기부처의 미소>가 그중 하나다.
어린아이의 천진스러움과 장난기 어린 표정이 담겨있는데
입가에 머문 미소보다는 커다란 눈에서 깜빡이는듯한 '눈웃음'이 내게는 인상적이다.
- 불상들을 볼때마다 느끼는 것은
자신들의 코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 불상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애를 가지지 못한 여인들에게 주었는지,
사내아이를 점지해 주기위한 약탕에 잘라넣었는지 왜그렇게 코만 깨갔을까?
하긴 컴퓨터가 판치는 요즘에도 천호대교의 사자상 이빨까지 강탈하는 세상이니
그 조상들은 오직이나 간절한 마음이었을까?
하지만 나는 대개 불쾌한 마음이 앞선다.
저 코만 제대로 붙어 있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미소로 훨씬 수많은 중생들에게 복을 남겨줄 수 있었을텐데
하는 마음때문이다.
정말 타고난 복마져 깨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놀부의 이기적인 심성이 살아있는 안스러운 유산행태라는 생각이 든다 -.
또하나는 조그만 머리만 남은 <금동보살의 미소>가 그것이다.
너무 적어서 지나쳤다가 다시 생각하고 사진을 보면 볼수록 귀엽고 사랑스럽다.
한마디로 참 '선하게' 생겼다.
가마꾼소리 말발굽소리에 지긋하게 눈을 감은 새색시의 수줍음이 듬뿍담긴 얼굴이다.
여기에서 느껴진는 미소는
뭔가의 생각에 젖어,
싫지않은 호기심에 젖어 입은 꼭다물었지만
다가올 행복함에 대한 야릇한 긴장감이 얼굴전체에 생기로 나타나는
'안근육에 베어있는 미소'이다.
-이 코는 누가 일부러 가져가진 않았을 것이고 닳아졌나보다 생각한다 -.
미소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엉뚱하게도 나는
눈두덩이와 얼굴의 안근육을 중점적으로 해부했다는 생각이든다.
그러나 입가에 머문것이 미소의 전부는 아닐것이며
해부학자들의 증명대로 자연스러운 미소와 연기자들이 만들어내는 미소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자연스러운 미소와 웃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를 흉내내게 하지만,
만들어진 미소 앞에서는 단지 주장하는 바를 느껴야만 하는 부담이 있다.
관객(?)들을 동화시킬 수 있음과 없음,
생기를 느낄수 있음과 없음,
이것이 예술적 깊이와 창조적 행위의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그대로 입으로 표현된 미소인데 깨어진
<막새에 찍혀나온 웃음> - 소위 신라인의 미소가 그것이다.
두툼한 입언저리에 해맑은 미소가, 입안 가득한 장난을 머금고 있는 얼굴이다.
예쁘다? 사랑스럽다?는 표현보다는 '익살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릴것같다.
남의 집부인 앉혀놓고, 건전한 의미의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친구를 바라보는 집주인이,
무안하지도 않고 쾌씸하지도 않은 농담을 들으면서,
막걸리 한사발 머금고서 즐거운 코웃음 한번 쳐야할때의 표정같다.
- 남들은 이런 비유를 이해할까 ?
고선사탑과 에밀레종
이제 밖으로 나왔다. 물론 비싼 책한권과 엽서와 안내문 몇개를 들고서 말이다.
물건사기는 여전히 민속공예촌으로 미루고서 몇가지만 찍어서 봐두었다.
제법 넓은 뜰에 석가탑과 다보탑의 모조품이 서있고 고선사탑이 저멀리 보인다.
연륜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의 손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깊이도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모조품이다.
한가지 내가 주장한바를 확인했다면,
이정도의 넓이는 있어야 석가탑과 다보탑은 제 위용을 자랑하지 않을까?
하는 것을 확인했다는데 의미를 둔다.
수많은 돌무덤 끄트머리에 인자함과 포용력을 갖고 있다는 <고선사탑>을,
애처롭게 바라보려고 애썼다.
철주만 있다면 감은사탑과 비슷한 웅장한 크기이다.
안정감, 비례미, 듬직한 위용등 나무랄데가 없는 탑이다.
그런데 참 힘이 없어 보인다.
내가 만약 감은사탑을 보지 않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유홍준씨 말대로 고선사터로 옮겨져 있었다면 나는 또 어떤 생각을 했을까?
흠이라고는 별로 찾아볼 수 없는 이 탑을 보면서 나는
어떤 기와 흡입력을 느끼지 못했다.
계획했던 시간은 자꾸 넘어가고 빨리 <에밀레종>을 봐야한다.
바람도 바람이지만 걸을 시간이 없다. 숨을 헉헉거리며 종각으로 갔다.
급한 마음에 일단 사진기부터 들이댔지만 그림자가 마음에 들지않는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역시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
나는 아직까지 많은 종들을 보지 못했고 많은 종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단지 에밀레종에 대한 이야기는 어렸을때부터
텔레비젼에서까지 참 많이 들어본 것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교의 기준도 없을뿐더러 나의 잣대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무엇을 아름답다고 해야하며, 왜 위대해야하는지 그 깊이를 알지 못한다.
이제서야 여러종에서 보기는 했지만,
왜 비천상이 새겨져 있어야 하고 그 조각이 왜 화려한지 내언어로 설명하지 못한다.
내 선생님들은 에밀레종의 비천상이 화려하다고 외우게는 시켰지만,
무엇과 비교해서 화려하고 왜 아름답다고 해야하는지 그 훈련을 시키지는 않았다.
아니 그 선생님도 외우게 해야한다는 명제외에 달리 감동이 없었을 것같다.
불쌍한 일이다.
불국사에서 5만원주고 살뻔한 비천상 탁본을
박물관에서 1만오천원에 사고
꼭 들어봐야 한다는 에밀레종소리 테이프를 사들고 나왔다. ......
진짜 종소리를 먼저 들어보고 싶어서다.
- 그래도 시간있으며 차에 있는 녹음기로라도 들어볼 생각이다. -
나오는 길에 박물관 아저씨가 잠깐 면담하잔다.
탁본을 사들고 나오는 것 같은데
<김유신 장군묘의 12지신상 탁본>을 살 용의가 없냐는 것이다.
...박물관을 허겁지겁 나올때 12지신상의 변천사가 비교된 판넬을 보았다.
달려나오다 보았지만 언듯 기억에,
김유신묘에 있는 신상들이 가장 위용있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책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
신라역사과학관에서
이제 신라민속공예촌으로 간다. 4시가 훨씬 넘어서야 <신라역사과학관>에 다다랐다.
크게 2개의 주제로 3개층으로 나뉘어 꾸며져 있다.
1층은 <첨성대>, 지하는 <석굴사원>이 분석되어, 그 모형들이 재현되어 있고,
그외 경주의 옛지도를 복원하는 <왕경도복원작업>이 추진중이고
불상등 기념품들이 있는 2층이 과학관의 전부다.
첨성대의 작업을 재현해 놓은 것을 통해서
수많은 말보다 훨씬 많은 설명을 나는 유추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석굴사원에서는
광창의 문제, 팔뚝돌의 문제, 방위의 문제, 무지개문의 문제,
수학적 비례의 문제들이 각각의 모형으로 분석되어있다.
이미 책을 한번 보고 온 나로서는 조금더
깊이있고 정확한 문제제기와 그 해법이 필요했지만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고마운 전시관이다.
좀 어둡고 좁은 것을 인내한다면 말이다.
2층에서는 여러가지의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 나를 한눈에 사로잡는 <문수보살의 탁본>을 보았다.
한없이 바라봐도 정말로 매력적인 얼굴이다.
절대 질리지 않을 얼굴이었다. 그
인자함과 너그러움에 늘 감동받을 만한 그런 얼굴이었다.
탁본을 사고 싶은데 이거 가격이 만만치 않다. .....
.................
내일의 일정을 생각하면서 삼릉과 포석정이 있는 위치로 가보았다.
다시 탁본으로 인연도 있으니 해서
김유신묘와 무열왕릉까지 가는 길도 확인해 보았다.
경주시내를 돌아다녔는데 참 좁기도 좁았다.
그리고 시내가 완전히 독립되어 있고
시내에서의 문화재 안내 표지는 별로 친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받았다.
솥뚜껑 삼겹살을 먹었는데 여전히 맛은 없었다. 그렇다고 배고프게 먹지는 않았다.
시내 잠자리가 불국사근처 숙박촌보다 싼는데, 2만이었다고 생각된다.
경주장이었는데 잠자리로만 경주를 완전히 섭렵한 셈이다.
경남(장)의 경주(장)에 와서 불국사 별장에서 자고 자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