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2기 13코스 모포항, 장길리
복합낚시공원,구룡포읍,구룡포항을 다녀와서!
모포항(毛布港)
모포항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모포리에 있는 어항
1973년 10월 16일 지방어항
좌표북위 35° 56′ 00″
동경 129° 31′ 39″ / 북위 35.9334526°
동경 129.5275317° / 35.9334526; 129.5275317 (모포항)
- 이 곳은 어느 지역보다도 봄에 보리가 일찍되는 포구라 하였고,
- 보리가 제일 먼저 되는 구석이라 하여 버리꾸지(包衣浦)라고도
- 하였으며, 바위가 동해로 돌출하여 구석을 만들고 있다 하여
- 바우꾸지(巴衣浦)라고도 하였다.
어항 구역[편집]
본 항의 어항구역은 다음과 같다.
- 수역: 모포항 배후지 주차장 옹벽 곡부에서 남서 방향으로 330m
- 연장하여 그 선에 직각방향으로 연장한 선내의 공유수면
어항 시설[편집]
- 2기의 방파제(동방파제 265m, 남방파제 215m), 물양장
- (170m), 호안 179m이 있다. 급유는 수협 탱크로리 및
일반유류가 있으며, 급수는 자체 조달, 선박수리는 양포항
- 수리시설을 이용하고, 폐유저장탱크는 방파제 기부에 있으며,
- 구룡포수협에서 수거한다.
주요 어종
모포항의 주요어종은 아귀, 도다리, 대게 등이며 미역
특산물
- 모포항은 미역 및 우렁쉥이가 많이 생산되며 특히
- 해안지역에서 무공해로 재배되는
장길리(Janggil-ri , 長吉里)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에 있는 리(里)이다
동쪽에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지역으로, 수산업이 주로 행해지는
곳이다. 장구목과 생길리를 병합하면서 두 마을의 이름을 따 장길리
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장구목, 생글리, 새뜸마을 등이 있다. 장구
목마을은 장길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지형이 장구의 목처럼 생겼
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생글리마을은 장구목 북쪽에 있는 마을
이며, 새뜸마을은 생글리 옆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현재는 복합낚시공원을 조성하여 사철을 가리지 않고
낚시하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장길리복합낚시공원
204km 해안 따라 달리는 포항 드라이브
포항의 해안 가장 아래쪽인 양포항에서 시작해 장길리, 구룡포, 호미곶
을 지나는 아래쪽 해안은 아기자기한 항구와 해변을 무시로 구경하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달리는 맛이 좋다. 31번 국도와 929
번 지방도를 따라가며 옛 도로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자동차
가 지나는 길 바로 옆으로 작은 항구와 해변이 번갈아 나타난다. 바닷가
작은 마을들을 지나며 평화롭고 안온한 정취를 맛볼 수 있다. 차를 몰고
가다가 원하는 곳에 세우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아기자기한 항구와 해변들을 지나며 독특한 해상공원도 만난다. 구룡포항
에 못 미쳐 자리한 장길리에는 복합낚시공원이 있다. 낚시꾼들을 위한 해상
공원으로, 부유식 낚시터와 해상펜션 등이 자리하고 있다. 물고기가 많다
는 작은 돌섬인 보릿돌까지 연결된 170m 길이의 교량과 해상전망대도
있다. 다리 끝까지 걸어가면 마치 바다 위 정자에 선 듯 운치 있다. 돗자리
를 펴고 앉아 소풍 온 듯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눈에 띈다. 바다와
사람과 시설물이 억지스럽지 않게 조화를 이룬다.
출처:(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한국관광공사
포항 구룡포읍(九龍浦邑)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경북 포항의 어촌마을 ‘구룡포’에는 일제강점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1923년 일제가 구룡포항을 축항하고 동해 어업을
점령한 침탈 현장이다. 국권을 빼앗긴 암울한 기억 앞에 우리는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생각할 수 있는
유능함’으로 역사를 마주한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한 바다, 호랑이 등끝 ‘구룡포’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유한다면 구룡포는 호랑이의 꼬리, 즉 등 끝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꼬리의 위쪽 끝 부분은 호미곶이지만, 동해와
만나는 한반도의 동쪽 끝은 구룡포 석병리(경도 129.35.10, 위도
36.02.51)다. 지방도 925번을 타고 구룡포 해안선을 훑으면
구룡포의 탄생을 짐작할 수 있는 자연의 기록을 만난다. 구룡포해수
욕장 인근에 마치 용이 불을 막 내뿜은 듯 주상절리와 판상절리가
자리 잡고 있다. 용암이 급격하게 냉각 수축되면서 5, 6각형 모양
의 현무암 조각들이 층을 이룬 것이다. 바다에서 용 10마리가 승천
하다가 1마리가 떨어졌다는 구룡포의 전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신생대 화산활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투명한 동해바다로 스며들고 있다.
구룡포읍과 호미곶면의 경계에 위치한 다무포 앞바다는 고래 서식지
로 유명하다. “고래는 울산한테 뺄껴부꼬, 대게는 영덕한테 뺄껴
부꼬, 오징어는 울릉도한테 빼앗깄다 아이가. 구룡포는 과메기,
대게, 고래, 오징어 할 것 없이 어장이 어마어마해.” 구룡포에서
만난 한 어민이 구룡포 앞바다의 풍부한 어장을 자랑하듯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바로 이 비옥한 구룡포 앞바다의 물숨이 일제강점기
기구한 역사가 시작된 원인이 되고야 만다.
어업기지를 위한 구룡포 축항, 침탈 현장이 되다
“일제가 구룡포 앞바다에 축항을 한 거야. 그게 1920년대고. 일본인
이 대량 어획을 하는 큰 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여기 어업은 일본
인이 다 장악했지. 그 뒤로 한국인은 무조건 일본인 밑에서 일하라는
거야.” 서상호(92)옹은 이곳에서 나고 자라 거의 한 세기를 구룡포
에서 지낸 산증인이다. 아흔이 넘은 나이지만 서상호옹은 당시의
변화상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구룡포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조용한 어촌마을이었다. 어부 이외
에는 가족의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바다에 나가는 정도였다. 일제
강점기가 되자 구룡포는 최적의 어업기지로 떠올랐다. ‘도가와
야사브로’라는 일본인 수산업자가 조선총독부를 설득해 구룡포에
축항을 제안한 것이다. 큰 배가 정박할 곳이 생기자 수산업에 종사
하던 일본인들이 대거 구룡포로 몰려왔다. 방파제를 쌓아 생긴 새로
운 땅에는 일식가옥이 빼곡히 들어섰다. 현재 구룡포우체국 옆쪽
골목에서 볼 수 있는 ‘일본인 가옥거리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의 중심부에는 구룡포공원이 있다. 공원에
서면 구룡포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원래 일본인이 세운
신사와 ‘도가와 야사브로 송덕비’가 있던 곳이다. 해방 이후 구룡포
청년들로 구성된 대한청년단 30여 명은 신사를 부수고 송덕비에는
시멘트를 부었다. 당시 대한청년단원이었던 서상호옹은 “일제강점
기에 친구는 군대로 징집되고 마을 처녀들은 정신대 끌려갔어. 해방
되고 일본사람이 다 떠나간 그해 가을에, 우리는 ‘왜색일소’를 외치
면서 신사를 해체하고 송덕비에 새겨진 도가와 비문에 시멘트를
부은 거야”라고 설명했다. 현재 구룡포공원에는 대한민국 순국선열
을 기리는 ‘충혼탑’이 세워졌다. 그러나 최근 마을에는 ‘도가와 야사
브로 송덕비’를 다시 복원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일본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민족에게는 ‘침탈의
역사’가 일본인에게는 ‘번영의 역사’로 비칠지 모른다. 구룡포 일본
인가옥거리가 ‘침탈의 역사에 대한 뉘우침과 교훈’으로 남길
바란다는 주민들의 당부가 나오는 이유다.
일제강점기의 구룡포
일제강점기의 기구한 역사는 사실 구룡포의 작은 단면일 뿐이다.
구룡포읍민도서관 서인만(51)관장은 “구룡포를 제대로 보려면
일주일이 부족해요. 선사시대 유적부터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의 역사가 이 물길에 숨어 있죠”라고 말한다. 구룡포
해수욕장 인근의 주상절리, 대보면과 구룡포읍 경계에 위치한 고인
돌, ‘목선(나무배)’을 만들던 조선소,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와
머구리(해남), 하루 세 번 어판장이 열리는 구룡포항의 모습은
너울대는 동쪽 바다의 매력을 한없이 부풀린다.
조선 말기까지 말을 기르던 목장의 흔적을 찾는 것도 구룡포
여행의 백미다. 말을 가두기 위한 돌울타리가 구룡포에서 눌태
구릉지, 응암산, 공개산 서북쪽을 걸쳐 동해면 흥환리까지 약
8km의 장기반도를 가로지르고 있다. 여지도, 경주도회자통
지도 등 고지도에도 나오는 돌울타리는 길이 12km, 높이가
3m에 달했으며 아직까지 약 5.6km의 구간이 남아 있다.
목장 내에는 말을 물 먹이는 못이 50군데, 말이 눈과 비를 피하는
마구 19채, 목장 내 근무 인원은 141명이었다고 한다. 조선 말
기까지 운영되던 대규모 목장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을 계기로
완전히 폐쇄되었다. 구룡포 염창골에서 시작해 응암산, 매암산,
체력단련장을 거쳐 다시 구룡포해수욕장까지의 말봉재 등산로를
오르다보면 ‘말목장성’이라 불리는 돌울타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의 해안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말봉재 정자에
올라서면 우리 땅 동쪽의 눈부신 어항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가는길
김포공항에서 포항공항까지 하루 8번 비행기가 운행된다. 서울에서
새마을호 기차는 하루에 2번 운행되며 5시간 20분이 소요된다.
고속버스를 이용할 경우 서울에서 약 4시간 30분이 걸린다. 포항
시내에서 구룡포까지는 시내버스 200, 200-1번을 타면 된다.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는 구룡포항에서 구룡포우체국 옆쪽 골목으로 들어
서면 찾을 수 있다. 구룡포공원에 서면 구룡포항은 물론
일본인가옥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관련정보
구룡포 인근에는 볼거리가 넘쳐난다. 국립등대박물관과 해맞이광장
으로 유명한 호미곶면과 구룡포읍이 바로 붙어 있다. 지방도 925번
을 타고 구룡포에서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구룡포해수욕장,
관풍대, 한반도 동쪽 땅끝 마을 ‘구룡포읍 석병리’, 고래 서식지
‘다무포 해안생태마을’, 호미곶 관광지를 모두 만난다. 말봉재를
오르고 싶다면 구룡포읍 구룡포2리 염창골에서 시작되는
산행코스를 따라가면 된다.
구룡포항(九龍浦港)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리에 있는 연안항이다.
1910년대까지만 해도 한적한 어항이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23
년 방파제를 쌓고 부두를 만들면서 본격적인 항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경북 지방 최대의 동해안 어업전
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2008년 현재 북방파제 약 600m, 남방
파제 약 400m, 물양장 약 600m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2008년
7월 노후된 물양장 시설(약 546m)을 개축하고, 남방파제 월파방
지시설 219m, 항만배후부지 약 1만 4,000㎡를 확보하는 공사를
4년에 걸쳐 완성하였으며, 2011년까지 접안능력 13선석, 하역능력
33만 4,000t에 이르는 시설을 갖출 전망이다.
구룡포항은 전국 최대의 대게 산지로 알려져 있는데 2007년 현재
구룡포항을 통해 생산·위판된 대게는 1,552t에 이르러 전국 대게
위판물량의 53%를 차지하고 있다. 동해남부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의
집결지로서 수많은 어선들이 출항하고 회항하는 구룡포항은 한때 고래
잡이로 유명했었으나 지금은 오징어잡이배와 대게잡이배가 포경선을
대신하고 있으며 과메기의 본고장답게 청어·정어리·꽁치 등을 잡는
어선도 많다. 구룡포항은 호미곶에서 감포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다.
1.파도치는 등대아래 이 밤도 둘이만나
바람에 검은머리 휘날리면서
하모니카 내가불고 그대는 노래 불러
항구에서 맺은 사랑 등대 불 그림자에
아아아아 정은 깊어 가더라.
2.깜박이는 등대아래 오늘도 찾아
드는타국선 고동소리 들리여온다
손을 잡고 안개 속을 그대와 걸어갈 때
등대에서 맺은 사랑 영원히 잊지 못해
아아아아 밤은 깊어 가더라.
2020-10-11 작성자 명사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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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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