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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10.3. 개천절인 오늘은 군성74동기회
(경북대사범대 부설 중고교동창회 중17&
고14회 동기회) 회장인 채종욱 친구가
동구 백안동 공산초등학교 개교100주년
기념행사 후원회회장으로 동 행사를 주관
하기에 축하해주려 감.
- 친구6명 (김재성 조석진 안병호 이상경
윤상보 그리고 의산) 참석, 식전행사 후
11시에 본 행사가 시작되면서 100주년
경과보고와 채회장의 인사말 및 교육감
과 의원 둥 내빈축사등이 이어진다.
- 4시반 7천만원이나 들여 초대한 정동원과
가수들 공연이 있겠지만 그때까지 운동장
을 지킬 여유도 이유도 없다.
친구들과 행사장 제공점심을 사양하고
별도로 오찬을 하기로 한다..
- 아직 12시전 이른 시간이라 인근의 볼거리
와 산책을 겸해 오랜만에 동화사를 탐방.
▣ 주변엔 마음이 넉넉한 이타심 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 하는 물질적 여유까지 갖춘
친구들이 있어 언제나 든든하고 흐뭇하다.
- 파계로의 유명맛집 “전농부의 풀꽃밥상”
에서 시래기솥밥과 쭈꾸미볶음’ 등 15여
가지 반찬의 ’풀꽃 밥상‘(1인 ₩17,000)도
서로 낼려고 하다가 조교수가 선점(?)부담.
- 먼저 제의했다 밀린 李사장은 파계사 아래
“BLUE MOON"카페 차로 호의(6~7천원)
- 창너머 좌측으로 응해산과 김유신장군이
말타고 밟았다는 “말발굽바위”, 우측 도덕
산 배경 식사&茶談은 수명을 늘리는 시간.
▣ 내친 김에 순례 3寺.
배부른 데도 차 마시며 주인의 서비스 빵
까지 겯들인 후라 이젠 걸어야 한다.
차로 올라가도 되지만 1.2km의 파계사를
걸어서 왕복 탐방한다. 기와불사도 하고.
- 내친김에 귀가길 부인사도 둘러본다.
팔공산 벚꽃과 단풍 드라이브길의 3대사찰
이나 파계사와 부인사는 동화사의 말사다.
▣ 하늘이 열린(開天) 10월3일 뜻 깊은 날,
오랜만에 팔공산 3사순례로 친구들과 함께
보낸 즐겁고 보람된 하루였다.
팔공총림 동화사는 1,50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불교의 대표 총림.
조계종종정 진제대종사가 주석하며 선원,
율원, 강원 둥애서 100여 명의 대중스님들이
상주 정진하는 종합적 수행도량으로 법화경
7만자를 석판각 황금경판 조성 대작불사중.
세계최대 석불인 약사여래대불을 비롯한
수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고
동아시아 10대 관광명소로 지정.
산하 파계사 등 146개 말사와 6개 암자.
총림이란 일반사찰과 달리 총무원으로부터
상당한 자율권을 보장받아 사찰을 운영.
사찰이나 선원의 최고 어른스님을 '조실'이라
하지만 총림에서의 최고 스님은 방장(方丈)
스님이라 칭함. ‘일방 큰 선지식(一方之師)’.
파계사
동화사의 말사. 신라 헌덕왕의 아들 심지왕사가 창건한 절.
1605년(선조38)에 계관법사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원통전을
중건하고, 1695년(숙종 21)에 현응대사가 중수.
1976년 6월 원통전의 목조관음보살좌상을 개금할 때 불상
안에서 영조의 어의가 나와 영조대왕과 인연이 깊은 절로.
기영각은 숙종·영조·정조의 어필을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어필각이라고 했으나 지금은 어필이 전해지지 않는다.
현응은 숙종의 부탁에 따라 세자의 잉태를 기원하며 농산(聾山)과
함께 백일기도를 하였는데, 백일기도가 끝나는 날 숙빈 최씨에게
현몽하고 세자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이 세자가 후에 영조로 즉위한다. 이때 숙종은 현응의 공을 높이 사서
파계사를 중심으로 둘레 40리에 걸쳐 나라에 내는 세금을 파계사에서
거두어 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나 현응은 이를 거절하고 선대 임금의 위패를 모시게 하여 달라고
청원하여 경내에 기영각을 짓고 선조·숙종·덕종·영조 네 분의 위령을
모심으로써 지방 유생들의 행패를 막을 수 있었다.
그때 세워진 대소인개하마비(大小人皆下馬碑)가 현재의 사적비 부근에
있으며, 전생에 농산화상이었던 영조가 11세에 썼다는 ‘玄應殿(현응전)’
이라는 현판이 지금까지 성전암(聖殿庵) 법당에 걸려 있다.
또한, 1979년 6월 파계사 법당의 관음보살상을 개금할 때 불상 안에서
영조의 어의(御衣)가 나와 학계의 관심을 끌었고, 설화의 신빙성을 더해 준다.
원통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2호)
머리 위에는 원통형의 높은 보관을 쓰고 있는데 여러 가지 꽃무늬와 연주무늬[連珠紋]
형태의 구슬이 장식되어 있어 매우 화려하다.
관 밑으로는 앞머리가 많이 내려와 있고 보발은 양쪽 귀 옆으로 내려와 몇 가닥으로
흩어져 어깨를 덮고 있다. 얼굴은 원만한 편이며 이목구비는 잘 정돈되어 있어
부처와 같이 근엄한 느낌을 준다. 상체는
하체보다 크고 긴 편으로 장대한 면을 보여준다.
천의는 법의의 착의방식과 마찬가지로
통견으로 걸쳤는데 가슴을 많이 드러내면서 양 무릎과 오른쪽 발끝을 덮고 있고
그 아래로 물결무늬의 옷주름이 형성되어 있다.
이 보살상에 보이는 천의형식이나 극도로 장식화된 보관 및 영락장식 등은
장륙사 건칠보살좌상(1395)을 비롯하여 대승사금동보살좌상(1516 개금)·
은해사운부암금동보살좌상(15세기경) 등의 조선시대 보살상과 양식이
매우 유사하므로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인사.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
符印寺 또는 夫人寺라고도 일컬어진다. 부인사지(符仁寺址)는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예로부터 선덕묘(善德廟)라는
사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사찰로 추정.
불교가 흥왕하였던 신라와 고려 때에는 약 2,000명의 승려가 수도하였다고 하며,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에 이르기까지 이곳에 도감(都監)을 설치하여 완성했던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의 판각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초조대장경은 몽고의 침입 때 대부분 불타 없어지고,
현재 일본 경도(京都)의 남례사(南禮寺)에 1,715판이 전해지고 있다.
전성기에는 39개의 부속 암자를 관장하였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기적으로 승려들만의 승시장(僧市場)이 섰다는 구전이 전하여지지만,
몽고의 침입 이후 중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되었다는 사실 외에는
중창 및 중수의 역사가 전래되지 않고 있다.
1991년 선덕묘를 선덕여왕숭모전으로 좀 더 크게 옮겨 지었고,
선덕여왕 진영을 새로 조성하고 매년 지역 차인들이 獻茶禮를 올리고 있다.
오늘도 무한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