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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탈해왕(脫解王)의 출신(出身) 1
4대 탈해왕(脫解王; 在位, 87~95)은 박혁거세(朴赫居世) 39년, ad.44년에 신라(新羅)에 나타났다.
조작(造作)된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탈해왕(脫解王)이 bc 19년에 나타나 ad 57년에 즉위하였고, 즉위 나이가 62세라 하였는데 도무지 산수(算數)가 맞지 않는다.
(bc 19 + ad 57 = 76? ≠ 62)
단, 신라초기 왕에게 매우 드문 기록인 즉위 나이 62세를 채택하면, 대략 ad 26년에 태어나서 44년에 신라에 들어오고 ad 87년경에 즉위한 것이 된다.
탈해왕(脫解王; 在位 ad.80~110)은 범어(梵語)로서 타레시(Taresh = God of the moon) 즉 달의 신이라는 뜻인데, 달의 아이로도 해석된다.
Ad. 1세기초 인도스키타이안(Indo-scythian) 사카국(Saka國)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동방행(東方行)은 곧바로 함달파왕(含達婆王)의 동방행(東方行)으로 이어졌다.
탈해(脫解)의 부왕(父王)은 용성국(龍城國) 함달파왕(含達婆王)이고 모후(母后)는 적녀국(積女國) 여왕(女王)이라고 했다.
함달파(含達婆)는 고대 간다라왕국(Gandhara Kingdom:bc.1500~bc.535)의 한 부족인 간다하바스(Gandharvas = music, song)에서 이름이 유래한 간달파왕(乾達婆王)의 변음(變音)이다.
힌두 신화에 의하면 간다하바스(Gandharvas) 부족은 아프가니스탄(afganistan)의 칸다하르(Kandahar)에서 유래했다.
서기전100년, 사카스탄...알렉산드리아 중의 하나가 칸다하르에 세워졌다.
불교에서는 건달파왕(Gandharva, 乾闥婆王)으로 삽입되었는데, 노래와 향기의 신(香神)이다.
아래 계유명 청동신장(癸酉銘靑銅神將/프랑스 기메박물관)의 형태는 간달파(Gandharva) 신장(神將) 모습인데, 신라 문무왕때 만든 동악대신(東岳大神) 탈해왕(脫解王)의 소상(塑像)을 다시 청동(靑銅)으로 만든 신상(神像)으로 고려된다. 명문(銘文)이 남아 있으나, 제작(製作) 유래와는 관련 없고 후대 소장자(所藏者)의 첨삭(添削)일 수 있다.
일본 흥복사(興福寺) 간달파상(乾闥婆像; 734年作)의 원형(原形)일 것이다.
신라와 일본의 간달파상은 중국을 거치지 않고 인도에서 수입된 문화이고, 가발과 비슷한 사자 모자(獅子帽)를 착용한 무신(武神)이며, 동악대신(東岳大神) 탈해왕(脫解王)에 어울린다.
▲탈해왕(脫解王)의 계유명 청동신장(癸酉銘靑銅神將)
▲734년 제작 일본 흥복사(興福寺) 간달파상(乾闥婆像; 734年作)
한편,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탈해왕(脫解王)은 말하기를, 본래 용성국(龍城國)인이라고 했고, 혹은 완화국(琓夏國, 花厦國)이라고도 했고, 용성(龍城)은 왜국(倭國) 동북 일천리(東北一千里)에 있다고 했다.
我本龍城國人(亦云正明國, 或云琓夏國, 琓夏或作花厦國, 龍城在倭東北一千里/ 三國遺事 脫解王
여기서, 왜국(倭國) 동북 일천리(東北一千里)는 일기도(壱岐嶋)를 가리킨다.
일본의 이키시마(壱岐嶋)에 있는 츠쿠요미신사(月讀神社)에는 츠쿠야미(月夜見尊)와 츠쿠유미(月弓尊), 츠쿠요미(月讀尊) 삼신(三神)을 모신다. 바로 함달파왕(含達婆王)과 그 후예(後裔)들이다.
츠쿠야미(月夜見尊)는 범어(梵語)에서 달(月)을 의미하는 쯔키(tuGgIpati =moon in Sanskrit)와 밤의 시찰(夜視察)를 의미하는 야마(yama = night-watch in Sanskrit)가 합친 말이다.
달(月= tuGgI= moon) + 야시찰(夜視= 夜見= yama = night-watch)이 정확히 간달파(乾達婆)의 행태(行態)와 일치한다.
츠쿠야미(月夜見尊)는 밤에 향기를 뿌리면서 여자를 유혹하고 다니는 간달파(乾達婆)의 행태(行態)를 한어(漢語)로 기록하고 범어(梵語)로 읽은 것이다.
따라서 츠쿠야미(月夜見尊)는 함달파왕(含達婆王)이라고 한 탈해왕(脫解王)의 부왕(父王)이다.
츠쿠유미(月弓尊), 츠쿠요미(月讀尊)는 함달파왕(含達婆王)의 일본 후손이고
그중 츠쿠요미(月讀尊;116~162)는 규슈(九州)로 진출하여 우키야시(浮羽塚花塚)에 묻혀있는데, 임인년에(壬寅年10月9日47)서거 한 것으로 이케다진조(池田仁三)이 해석해냈고, 생몰연대는 116년에서 162년에 해당한다.
일기도(壱岐嶋)에는 금관(金冠)을 포함한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 다수 발견되는 고대국가였다.
여기서, 완하국(玩夏國)이 하나국(hana = 一國)으로 발전하여,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에서 일기도(壹岐島)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던 일대국(一大國)으로 발전한 것을 알 수 있다.
하나국(一大國)은 다시 반파국(伴跛國)으로 이름이 바뀌는데, 서로 같은 발음이었다.
일기도(壱岐嶋)의 한성만(半城灣)과 한성본촌(半城本村)에서 그 흔적이 나타난다. 일기도의 반성(半城)은 한세이(半城)로 읽는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일기도(壹岐島)를 다파나국(多婆那國)이라고도 했다.
다판(Tapan= summer, the sun in Sanskrit)은 여름(夏)을 뜻하고, 대하국(大夏國), 완하국(玩夏國)의 하(夏=summer)에 해당한다.
이는 음차(音借)한 서나벌(徐那伐 = gold city in Sanskrit)을 의역(意譯)하여 금성(金城)으로도 기록한 것과 마찬가지로, 음차(音借)한 다파나국(多婆那國 = Summer in Sanskrit)을 의역(意譯)하여서 대하국(大夏國), 완하국(玩夏國)이라 기록한 것이다.
다만 스키타이의 후신인 사카(Saka)국을 다파나국(多婆那國)으로 다르게 발음하고 있다.
이는 사카스탄(Sakastan)을 인도파르티안(Indo-Parthians; ad 19~226)이 지배하면서, 지역 이름도 사카스탄(Saka)에서 같은 뜻의 다파나(tapan = 大夏)로 바뀐 것이 된다.
즉 함달파(含達婆)왕이 사카스탄의 칸다하르(kandavar)를 떠난 것은 파르티안이 침략한 ad 19년 직후다.
ad 19년 이후에 함달파(含達婆)왕이 일본에 와서 일기도(壹岐島)의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적녀국(積女國)의 여왕과 결혼하고, 26년경에 탈해(脫解)를 낳아서, 탈해(脫解)를 신라(新羅)에 보낸 것은 ad 44년이다.
▲인도 파르티안의 침입 ad. 19
일기도(壹岐島)가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의 일대국(一大國)으로 바뀌는데, 이는 다파나국에서 다를 빼고 파나국(婆那國)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하나국(一大國)의 의미이면서, 동시에 파나국, 즉 불교(佛敎)의 반야(般若)도 된다.
지혜(智慧)를 의미하는 반야(般若)가 팔리어(pali語)에서는 paññā(판냐)인데, 초기 석가모니(Sakamuni)가 바로 팔리어로 설법하였다. 즉 일기도는 지혜국(般若國)의 뜻이 있었다. 그런데, 판냐(paññā)가 범어(梵語)에서는 넘어지다, 기어가다 (panna ; fall, creeping in Sanskrit)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일기도(壹岐島)가 5세기초 고구려와 가야에게 점령되어서는 넘어졌다는 뜻의 반파국(伴跛國)으로 기록되었다.
반야(般若)라는 요즘식 의역(意譯)은 401년 중국에서 구라마즙(鳩摩羅什)이 번역한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説仁王般若波羅蜜經)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이는 범어(梵語)에서 번역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팔리어에서 반야(般若)를 번역한 파나국(婆那國)이었던 것이고, 대승불교(大乘佛敎)에 의해서 탈해(脫解)를 통해 사카(SAKASTAN)에서 일기도(壹岐島)에 직접 전파된 것이다. 중국에서 번역된 인왕반야경이 일본 본토에 전승된 것은 623년이다. 연대기(年代記)에 기록되어 있다.
1-4-2 탈해왕(脫解王)의 출신 2 - 쿠샨왕국과 미륵상
탈해왕(脫解王)은 사카스탄(sakastan) 영역의 함달파(含達婆), 즉 칸다하르(kandahar)가 원향(原鄕)이지만, 혈통(血統)은 월지인(月支人)이다.
탈해왕(脫解王)은 범어(梵語)로서 타레시(Taresh = God of the moon) 즉 달의 신이라는 뜻인데, 달의 아이로도 해석된다.
탈해왕(脫解王)의 다른 이름을 토해(吐解)라고도 했는데, 본래가 토화라(Tocharian, 吐火羅) 출신이다.
토화라(吐火羅)는 월지씨(月支氏)와 동일한데, 토화라(吐火羅)는 월지인의 토속어(土俗語)로 보인다. 토화라(吐火羅)는 지금 우리말 ‘달(月)’의 고어(古語)를 음차(音借)한 것으로 고려된다.
탈해왕(脫解王)은 국호(國號)도 달나라(月國)라고 하였다.
3세기 신라의 국호(新羅 國號)는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서 사로국(斯盧國)이라고 했는데, 범어(梵語)에서 사라(saras =moon in Sanskrit)는 달(月)이다.
박혁거세로 비롯된 바위(岩)의 나라 실라(sila), 닭의 나라 계림(桂林)이 탈해왕(脫解王)으로 인하여 달의 나라 사라국(斯盧國)이 되었다.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서 진왕(辰王)의 치소(治所)는 월지국(月支國)이라고도 했다.
탈해왕(脫解王)의 뒤를 이은 신라 5대 파사왕(婆娑王)은 탈해왕(脫解王)의 집터에 신라궁성(新羅宮城)인 월성(月城)을 지었다.
월성(月城)이 탈해(脫解)가 세운 사로국(斯盧國), 월지국(月支國)의 증거다.
3대 유리왕(儒理 尼師今)부터 왕호(王號)는 이사금(尼師今)이다.
남해왕(南解王) 이래로 유리왕(儒理王) 즉위 때도 군국정사(軍國政事)는 대보(大輔) 탈해(脫解)의 손에 있었다.
범어(梵語)에서 니사간(Nishakant= Lord Of Night, Moon)은 ‘달의 왕’이라는 뜻이다.
즉, 신라 왕호 이사금은 ‘달의 왕’이었다.
떡에 남겨진 유리왕의 이빨 흔적, 잇금(齒理)의 전설은 흔적을 의미하는 범어 율리기타(ullikhita = furrow, torn in Sanskrit)에서 유래된 유리왕의 유리에 관한 어원이며, 3대 신라왕부터 18대 신라왕까지 이어진 왕호로서 이사금(尼師今)은 ‘달의 왕’이라는 뜻이었다.
탈해왕(脫解王)은 일본(日本)의 일기도(壹岐島)에서 태어났지만,
멀리 월지국(月支國)의 후신인 쿠샨국과 교류하였고 쿠샨국의 문물을 수입하였다.
해상(海上)으로 인도(印度)까지 왕복(往復)한 것이다. 탈해가 직접 다녀왔을 수도 있다.
당시 월지인(月支人)들은 스키타이족을 인도 인더스강 서남쪽으로 밀어내고 대신에, 쿠샨제국(Kushan Empire)을 세워서 간다라 예술을 활짝 꽃피우고 있었다.
높이가 무려 8m에 달하는 단석산(斷石山) 미륵상(彌勒像)을 보면, 쿠산왕조(Kushan empire)의 간다라(Gandhara) 미륵상(彌勒像)의 의습(衣褶)을 이어받았다. 이는 미륵상 두발(頭髮)의 모양으로 알 수 있는데, 두발 중앙이 갈라진 것이 특징이다.
갈라진 상투의 불두(佛頭) 양식은 쿠산왕조(Kushan empire)의 미륵상(彌勒像)에서만 오로지 나타난다.
▲단석산 미륵상(彌勒像) Maitreya : 구슬 머리 장식과 구슬 목걸이, 8m high
▲단석산 미륵상(彌勒像) Maitreya 2 : 구슬 머리 장식과 구슬 목걸이, 8m high
▲쿠샨왕조 간다라 미륵상 : 구슬머리 장식과 구슬 목걸이
▲쿠샨왕조 간다라 미륵상; 구슬머리 장식과 구슬 목걸이
이는 쿠샨(Kushan) 당시에 그런 모양을 갖춘 남성 가발(假髮)이 있었던 것이다.
▲샨왕조 남성 가발, 가체
그런데 이 가발이 신라시대(新羅時代)로부터 전해져서 다리머리, 다래, 월자(月子). 월내(月乃)라고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전해져왔다.
바로 신라시대에 탈해(脫解)를 달이, 달이네로 부르고, 이를 의역(意譯)하여 한자로 월자(月子), 월네(月乃)로 기록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탈해왕(脫解王)이 쿠산왕조(Kushan empire)에서 가져온 가져온 가발(假髮), 가체(加髢)도 역시 탈해(脫解), 월자(月子) 월내(月乃)라고 부른 것이다.
1-4-3 월지인의 쿠샨국
월씨족(月氏族)은 토하라(吐火羅, Tocharian)라고도 하는데, 세계의 고원인 타림분지(tarim basin)에서 살았다. 흉노(匈奴)를 압박하며 살았다.
그러나 bc.162년에 거꾸로 흉노(匈奴)에게 패망해서, 월지족은 서쪽으로 파미르산맥(葱嶺山脈)을 넘어 박트리아(bactria)로 이주하여 훗날 박트리아를 점령했다. ‘파-머리’를 음차(音借)하여 파미르(pamir), 의역(意譯)하여 총령(葱嶺)산맥이다.
박트리아(Bactria)는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의 페르시아 정벌 이후로 bc. 325년부터 그리스(Greece)의 지배를 받았다.
bc.160년에 박트리아(Bactria)는 스키타이(Scythia)의 사카족(saka, 塞族)에게 점령당했고,
뒤이어 bc.127년에 월씨(月氏)에게 점령당했다.
스키타이(Scythia)의 사카족(saka, 塞族)은 남하하여 인도스키타이왕국(Indo-Scythaian empire)을 세웠고 간다라 불교 예술을 발전시켰다.
그후 150년이 지나서, 월씨(月氏) 쿠줄라왕(Kujula Kadphises, 丘就却; 在位 ad30年-80年, 80餘歲)은 박트리아(bactria)에서 더 남쪽으로 확장하여, 서북인도(西北印度)와 중북부(中北部印度)를 차지하고, 쿠샨제국(Kushana empire, 貴霜帝國)을 세웠다.
▲월지인 쿠샨 왕국
쿠줄라왕(Kujula Kadphises)은 대략 ad.45~ad.60 사이에 인더스강(indus river) 유역을 장악하고 인도 서북부(印度西北部)와, 중북부(中北部)를 영유하기 시작한다. 이때, 갠지즈강 유역의 아유타(阿踰陀, ayodia)가 쿠샨제국(kushana)의 위협을 받고, 아유타(阿踰陀)에서 탈출한 것이 가야(伽耶)를 세운 김수로왕(金首露王)과 허황후(許皇后)이다.
쓰촨성 보주(泗川省 普州)를 경유한 허황후(許皇后) 기록으로 인해 ad42년경 가야 건국은 확실시된다.
이때 허황후(許皇后)는 아유타(ayodia)로부터 육로(陸路)와 양자강(揚子江) 수로(水路), 그리고 해로(海路)를 이용해 가야로 왔다.
쿠줄라왕(Kujula Kadphises)과 리아카 쿠술라카(Liaka kusulaka), 파티카 구술라카(Patika Kusulaka)는 비슷한 이름을 사용하여 혈연(血緣) 관계로 추정하기도 한다. 파티카 구술라카(Patika Kusulaka)는 거슬한(居瑟邯)이라고도 했던 박혁거세(朴赫居世)다.
쿠산왕조(kushan empire) 쿠줄라왕(Kujula Kadphises, ad.30-ad.80)이 파티카 구술라카(Patika Kusulaka)의 뒤를 이어서 탁실라에 간다라 불상(幹陀羅 佛像)을 만들기 시작하였고, 카니스카왕(Kanishka I ad. 127–ad.150) 때에 간다라 예술이 꽃핀다.
쿠줄라왕(Kujula Kadphises)은 간다라 예술 이전에 힌두교 예술도 발전시켰다.
쿠줄라왕(Kujula Kadphises)은 박트리아(Bactria)에서 육상(陸上) 비단길(silk roard)로 그리스, 로마와 무역을 했는데,
인도 서북부 인더스강(indus river) 하구(河口) 항구(港口)를 차지한 후에, 쿠샨제국(kushana empire)은 아프리카, 그리스, 로마, 동남아시아아 해상 무역(海上貿易)을 시작하였다.
▲쿠줄라왕의 동전.
함달파왕(含達婆王)은 칸다하르(Qandahar)에서 살던 월지인(月支人)이다.
함달파왕(含闥婆王)은 바다로 나와서, 일본 일기도(壹岐島)에 진출했다.
일본의 이키시마(壱岐嶋)에 있는 츠쿠요미신사(月讀神社)에는 츠쿠야미(月夜見尊)와 츠쿠유미(
(月弓尊), 츠쿠요미(月讀尊) 등 삼신(三神)을 모신다. 함달파왕(含達婆王)과 후예(後裔)들이다.
이중에서, 월독명(月讀命)이 유명한데 구주(九州)로 진출하여 우키아(浮羽)에 묻혔다.
츠쿠요미(月讀尊) 고분(古墳)은 스카하나스카(塚花塚古墳つかはなづか)라고 부르는데, 이케다씨(池田仁三)씨가 밝혀냈으며, 벽화(壁畫)가 있는 장식고분(裝飾古墳)이며 우키아(浮羽)에 있다.
함달파왕(含達婆王)의 용성국(龍城國)은 후쿠오카(福岡)에도 진출하였다.
고대에 일본 규슈(九州)섬을 츠쿠시(筑紫 つくし)라고 불렀는데, 츠쿠시(筑紫つくし)는 월지(月支)에 대한 일본식 발음 표기다.
아직 추쿠시(筑紫 つくし, 竹斯)에 대한 어원(語源)은 밝혀져 있지 않았다.
후쿠오카(福岡)의 나가천(那珂川)은 나가(naag= a big serpent in Sanskrit), 즉 큰 뱀에서 유래한 말인데, 용(龍, dragon)으로 의역(意譯)하여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용성국(龍城國)으로도 기록된 것이다.
탈해왕 석씨 유전자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타림분지의 4000년전 청동기시대 소하묘지에서 발굴된 월지인의 남성 유전자는 R1a1a-M17이다.
塔里木盆地最古老的小河墓地木乃伊的DNA检测显示欧亚人种的混血始自铜器时代。距今3980年的小河墓地木乃伊的父系全部是西欧亚单倍群R1a1a-M17
우리나라 남성에서 R-type은 0.7% 정도 나오는데, 경상북도에서는 1.2%까지 나온다고 한다. 석씨(昔氏)는 인구가 적어서 2000년에 1만명이 안되었다.
우리나라 남성 R-type은 스키타이 박혁거세 후손일 가능성이 더 높다. 충주 박씨, 경주 이씨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티벳인의 모계사회와 족외혼 전통으로 보아서 월지인의 남성 유전자는 여러 가지로 다양했을 것으로 고려된다.
1-4-4 틸리야 테페(Tillya Tepe) 황금문화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 북쪽 틸리야테페(Tillya Tepe)에는 황금 문화 유적이 있다.
▲틸리야 테페 황금 유물(ad. 1세기)
▲틸리야 테페 황금 유물(ad. 1세기)
▲신라 금관(新羅 金冠)
틸리야테페(Tillya Tepe: 아프카니스탄 북쪽에 있던 지명) 황금 유물이 발굴된 고분 유적에서 월지왕(月支王)인 사파디제스(20 BCE - 20 CE)의 동전이 발견되어서, 당시 월지국(月支國)의 영토였음을 알 수 있고, 이곳은 본래 사카스탄(Sakastan)이었으므로 스키타이(scythia) 황금문화를 계승한 것이 된다.
그런데, 동아시아(east asia)에서 유례가 없는 독창적인 신라 금관(新羅金冠)이 바로 틸리야테페(Tillya Tepe) 금관(金冠)에서 유래한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월지인(月支人) 탈해왕(脫解王)과 그의 후예들이 월지인들의 쿠샨제국(Kushan empire) 에 왕래(往來)하면서 수입(輸入)하고 발전(發展)시킨 것이다.
일기도(壹岐島)가 반파국(伴跛國)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불교(佛敎)의 영향이다.
반파국(伴跛國)의 어원(語源)은 지혜(智慧)를 의미하는 반야(般若)이다.
팔리어(pali語)에서는 paññā(판냐)인데, 초기 석가모니(Sakamuni)가 바로 팔리어로 설법하였다. 그래서 판냐(paññā)로부터 파나국이 생겨났는데, 이것이 범어(梵語)에서는 넘어지다, 기어가다(panna : fall, creeping in Sanskrit)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적국(敵國)에게는 반파국(伴跛國), 반파국(叛波國) 등으로 모욕적으로 의역(意譯)되어 기록된 것이다.
반야(般若)라는 요즘식 의역(意譯)은 401년 중국에서 구라마즙(鳩摩羅什)이 번역한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説仁王般若波羅蜜經)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이는 범어(梵語)에서 번역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팔리어에서 번역한 반하(伴跛)였던 것이고 대승불교(大乘佛敎)에 의해서 탈해(脫解)를 통해 직접 전파된 것이다.
중국의 인왕경이 일본 본토에 전승된 것은 623년이다. 연대기(年代記)에서 그렇다.
[출처] 달의 나라, 달의 신 탈해왕|작성자 pati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