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는 항구다
목포에 간다. 혼자서도 가고, 아내와 둘이서 가기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가기도 한다. 왜 가느냐고 묻는다면 그냥이다. 목포는 항구니까. 옛 사랑은 없어도 옛사랑만큼이나 그리운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까.
목포,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저며 오는 애달픈 국토의 남단 항구도시. 파도처럼 억센 사내들이 만선의 꿈에 부풀어 출항하던 바람찬 항구에는 여전히 수많은 어선들이 해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출항을 준비하며 어구를 손질하는 어부들, 치렁치렁 매 달린 그물과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들이 갯사람들의 고달픈 삶의 얘기를 들려준다.
비릿한 바닷바람과 가슴 짠한 애잔함이 구석구석에 배어있는 남도의 짭조름한 맛을 즐기려 목포에 간다. 가장 쉽게, 가장 편히 한나절 낭만과 사랑을 찾아 훌쩍 떠났다 돌아올 수 있는 곳, 무궁화호 열차는 언제 타도 가슴을 뛰게 한다.
묵은지에 새우젓 살짝 묻힌 삶은 돼지고기 한 점 올리고, 그 위에 홍어 한 점 또 올려서 또르르 말아 한입에 넣고 서너 번 씹다 막걸리 한 모금을 털어 넣듯 마시면 그 맛이 또 얼마나 죽여주는지. 온몸의 세포를 화들짝 놀라게 한 암모니아 냄새, 그만 숨이 확 막히고 만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조금씩 입을 오물거려 본다. 눈물 찔끔 언제 그랬냐는 듯 냄새의 충격은 순간이며 코가 뻥 뚫리고 속이 후련해진다. 입 안의 홍탁과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의 조화가 만들어 낸 오묘한 맛을, 아! 형용할 수 없는 맛의 신비함을 어찌 말로 하랴. 그 홍어에서 독한 오줌 냄새가 나야 한다니, 톡 쏘는 맛에 입천장이 까지도록 해야 한다니.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저릿한 아픔을 제대로 즐기려면 역시 목포 수산시장 뒷골목을 찾아야 한다. 삭히고 또 삭혀서, 입 안 가득 피우는 곰삭은 살덩이 꽃, 뼈까지 오도독 씹으며, 암모니아 진한 속울음 우는 홍어삼합(三合). 영혼이나 기질은 냄새로 오는 게 아니라 맛으로 길러지는 것이라 한다. 이것이 남도의 맛이라고 한다. 남도의 기질이라고 한다.
철부지 녀석들이 흔히 전라도를 비하해 홍어 뭐라 까불어대지만 네들이 어찌 홍어의 그 맛을 이해하리. 아마 한 입 넣어보면 그 전라도 맛에 기가 죽을 것이다. 짠하고 짠한 녀석들, 가소롭기는.
오래 전, 집안에 잔치나 제사가 돌아오면 아버지는 읍내 장에 가셔 솥뚜껑 같은 큰 홍어를 사오셨다. 어머니는 마른 수건으로 닦아 몇 조각으로 나눠 항아리에 담아 2, 3일 묵힌 다음 꺼내 회를 뜨고, 홍어 무침도 만드시고 남은 뼈와 껍질 내장 등을 넣어 홍어탕을 만드셨다. 집 안에 가득한 홍어 냄새만으로도 이미 잔치가 한창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그 겨울 보리의 어린 싹을 넣어 끓인 홍어애국의 맛은 그 뒤로도 여러 홍어탕 집을 찾게 했다. 홍어애국의 아련한 맛을 남겨두고 가신 예님들, 그때의 맛과 살가운 정이 그리워 다시 목포를 찾게 되는가 보다.
목포는 항구다. 구수한 사투리에 짠바람이 불어대는 항구다. 홍어삼합에 맛의 느긋함을 즐기고, 쉬엄쉬엄 유달산에 오른다. 고작 해발 228m, 그래도 생각처럼 가볍지 않다. 노적봉 지나 일등바위에 오른다. 유달산의 기암절벽도 아름답지만 등 뒤로 펼쳐진 다도해의 장관을 본다, 푸른 바다와 올망졸망한 섬들,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가리지 않으려고 맨살로 서 있는 바위산도 한없이 고맙다. 산 아래로 펼쳐진 다닥다닥 붙어있는 옛 시가지의 모습이 애잔하다. 지금도 남아있는 일본건물들로 가슴이 먹먹해 진다. 목포항을 개항한 이후 1900년 이곳에 일본영사관과 동양척식회사를 짓고, 수탈한 쌀과 소금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고, 전쟁 물자를 만주 대륙으로 가져가기 위해 길을 낸다. 영산로 옛 일본영사관 앞에 국도 1, 2호선의 시발점을 알리는 커다란 돌비석과 도로원표가 세워져 있다. 국도 1호선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939Km, 국도 2호선 목포에서 부산까지 378Km. 그러나 목포대교와 압해대교 준공으로 2013년 국도 1호선은 고하도 달동에서 신의주까지 1068Km, 국도 2호선은 압해도 장산면에서 부산까지 473.8Km로 그 길이가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유달산 아래 영산로 주변에는 일제강점기 때의 적산가옥들이 또 호남선의 종착지인 목포역이 있고 또 하나 목포의 맛인 민어의 거리가 100년 전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팔딱팔딱 뛰는 생선보다 더 팔팔한 아주머니가 금방 목포먹갈치로 한상 걸게 차려주는 해안가 식당들을 지나, 100년의 전통을 자랑한 목포수산시장 구경을 간다. 130여 점포 중 100여 개 점포에서 홍어를 판다. 가히 홍어 천국이다. “한 점 잡사 봐” 홍어 한 점을 쓱 썰어 입에 넣어준다. 모양이나 표정, 거침없는 칼질, 걸쭉한 입담까지 모두 닮았다. 대롱대롱 걸려있는 작은 간판들도 말을 건넨다. 광주상회, 흑산도, 영암, 비금도 어디어디 많은 사람들이 떠나온 고향 이름을 가게 머리에 붙였다. 홍어 팔고 갈치 팔고, 조기 팔고, 마른 생선 파는 동안 이들은 목포사람이 되었다. 모두 살가운 우리 이웃들의 다정한 모습들이다.
1990년대, 목포 유달 해수욕장을 즐겨 찾았던 적이 있었다. 제법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앞 바다에는 제주도 흑산도 등 목포항을 출발한 여객선이 좁은 바다를 수놓으며, 뒤로는 유달산이 수묵화 한 폭처럼 곱게 모습을 드러냈다. 언덕에는 바다를 그대로 담아놓은 ‘헤밍웨이 카페'가 있고, 한 걸음 더 오르면 '저기 섬이 있네' 해물탕집이 앞 고하도를 마주하고 재미난 풍경을 자랑했다. 비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이면 그 모습이 보고 싶어 가슴을 조이며 제발 멈추지 말고 계속 내려주길 바라며 달려가곤 했다. 카페의 통유리창 너머로 바다로 지는 눈송이는 성스럽기까지 했다. 해질녘 그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그 큰 유리창 너머로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가고, 떠났던 여객선이나 어선들이 날개를 펴고 항구의 품으로 파고드는 모습을 즐겼었다. 나는 천천히 어두워져가는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제는 옛 모습은 다 사라지고, 멀리 바다를 가로질러 목포대교가 빨래줄처럼 걸려있고. 몇 위락시설이 언덕에 들어설수록 모래톱은 손바닥보다 더 좁아져간다. 그래도 이따금 짭짤한 갯내가 그리워 찾아가지만 쓸쓸하기는 겨울바다처럼 황량하다.
6시 35분 광주행 무궁화호 열차시간이 아직 한참 남아있다. 날로 시들해지는 오줌줄기와는 달리 콸콸 막걸리 잔이 넘쳐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닷가를 거닐며 나지막이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음‘ 한 소절 따라 부른다. 괜히 코가 찡해진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에 머문다. 그리움과 옛 낭만이 형체만 남은 모래사장에 바닷물처럼 스며든다. (끝)
첫댓글 '윤이나네 집' 수필집 출간을 축하드리며 수필 한 편 올립니다. 지난 전남문학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
수필집에 실린 얘기들은, 윤이나네 집에 들어서 '엄니'하고 뱡문을 열면 '오메, 아가 어서 오니라' 덥석 손을 잡으며 노모가 도란도란 들려준 살가운 얘기들 같은 글들로 가득합니다. 와인잔을 앞에 놓고 간잔지럼한 눈 웃음 보다는 홍탁으로 후련한 가슴 텁텁한 웃음 나누는 그런 오랜 친구들의 얘기거나, 입가에 묻어있는 막걸리 자국 같은 흉 허물없는 우리 주변의 얘기들이라고 한다면, 그저 제 좁은 소견이라고 웃어 주십시오. 다시 축하 드립니다.
가을바람에 날아온 낙엽인 듯,이지요.
살포시 내려놓고 가신 낭만이 깃든,
수필가님의 귀한 작품 감사히 받습니다.
마음에 드는 글 한 편을 읽으며, 또 읽고 나서의 행복감은 더 없이 값진
부족하기만 한 글을 아주 정감있게 보아주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