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 끝에 성공
조 현 묵
군을 제대하고 교직에 몸을 담았다. 첫 부임지는 고향 양구였다. 6학년 담임을 하면서 방과 후 배구 지도에 지역특색인 겨울 스케
이트까지 도맡아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지도한 덕에 다음 해엔 뜻하지 않게 배구가 육성종목인 용하 초교로 스카우트 발령이
났다.
6학년 때 담임이 교무 선생님이라 모교의 품속에서 두려움 없이 나는 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신바람이 났다. 고향에서 예수님
은 그 뜻을 펴지 못했지만 나의 경우는 달랐다. 모교의 선배로서 모든 것을 보여줄 절호의 찬스였다. 선수 선발을 위해 신체조건이
좋은 1반 담임을 자청했다. 상대는 역사와 전통이 다져진 큰 학교로 난공불락이었다. 동료들도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포기하란
다. 장신이고 공격력이 강해 상대가 될 수가 없다고들 한다. 모골이 송연했다.
그러나 문제해결의 첫 번째 시험대라 강인한 정신으로 최선을 다했다. 하면 된다는 집념으로 결혼 초였으나 아이들과 함께 숙식
을 하며 새벽훈련에 주력하였다. 군대서 익힌 남과 다르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뛰었다. 운동장을 열 바퀴 뛰고 준비
운동을 한 후 가벼운 토스로 단련을 반복했다. 3월이지만 북쪽에 위치해 강추위에 손톱 밑에서 피가 흘렀다. 아픈 줄도 모르고 열
심히 연습하는데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이었던가!
학부모들이 애 잡는다고 하나 둘 운동부에서 빼달라는 아우성이다. 소꼴을 베어 와야 함은 물론 어린 것이 밤엔 훈련을 이기지 못
해 식은땀을 흘린다며 교문에서 난리법석이었다. 큰일이다. 기본이 잡혀갈 무렵인데 코트에서 아이들을 마구 데려 간다. 아이들이
울고불고 싫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심지어는 말리는 교장 멱살까지 잡고 책임질 수 있느냐고 고함이 오간다. 위기를 맞은 그 날
저녁이었다. 일찍 운동을 끝나고 동네에서 이장을 보는 친구를 수소문해서 만났다. 고충을 털어놓고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격이니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애원을 했다. 이장도 처음엔 동네 여론에 편승해 배구부를 해체하라고 막무가내다가 결국 반상회까지 열어
어렵게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훈련은 순조롭게 이어갔지만 또 다른 시련이 발목을 잡을 줄이야! 배구를 가장 잘하는 현수가 어느 날 뜬금없이 양구초교로 전학
을 간다는 게 아닌가! 코치가 비밀리에 엄청난 장학금 운운하며 꼬인 것이다. 다시 배구부가 술렁이면서 너도나도 하며 두 번째의
시련에 접했다. 저녁마다 가정방문을 하고 큰절을 해가며 겨우 잠재울 수 있었다.
수비연습에 들어갔다. 상대가 장신에 비해 우리는 단신이었다. 그래서 언더 토스로 운동장을 한 시간 내에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돌아오기에 주력하였다. 코치인 교사도 하기 힘든 운동이었다. 중간에 공을 떨어뜨리면 다시 반복하였다. 제시간에 못하면 기합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정신 집중이 안 되면 도저히 이루기 힘든 난코스이다. 새벽은 언더토스로 운동장을 습관처럼 돌고, 공중 높이
도 자유자재로 재주를 부렸다. 저녁이면 배구지도법을 통독하였다. 좀 더 강한 리시브 연습을 위해 책상 두개를 겹쳐 놓고 밑에서
공격하기 좋게 던져주면 지도교사가 공격하는 방식으로 리시브 연습에 몰입했다. 강한 리시브를 위해 내가 고안한 방법이 주효했
다. 기능이 몰라보게 불어났다.
시합 날이 가까워지면서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음료수와 빵을 사들고 와 격려를 하며, 땀에 배어 물귀신 같은
아들을 보며 흐뭇해 웃고 난리였다. 신혼 때라 선수들 빨래해 주랴 밥해 주랴 아내 역시 말없이 일조를 했다. 옛말에 어리석은 자
는 구실을 찾고 현명한 자는 방법을 찾는다고 나는 단 한 번도 패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밤이면 이불을 덮어 주고 한 식구
가 되어 밥상에 앉아 다독이며 사제의 정을 운동으로 승화 시켜 나갔다.
무더운 7월 시합 날 아침이었다.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선수 출전 환영식을 가졌다. 선수마다 꽃다발을 가슴에 받고 교가를 외치
며 승리를 다짐했다. 전교생과 선생님들 보는데서 군인 트럭에 올라 양구초교로 향했다. 벌써 운동장엔 인파로 술렁이었다. 토너
먼트를 뽑았다. 두 학교를 이기면 결승에서 숙적 양구초교를 만난다. 시합 전에 <우리는 이기리라>노래를 부르고 파이팅을 외쳤
다. 첫 번째, 두 번째 시합 모두 예상대로 승리했다. 이제 남은 것은 결승전이다. 상대팀은 해마다 도 대회 출전경력이 있는 학교
라 우리 학교는 안중에도 없었다. 강한 학교를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드디어 결승전 시간이 왔다. 입장하기 전 선수들에게 내가 작곡 작사한 '우리는 이기리라'는 노래를 다시 합창을 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시작 호루라기 소리가 났다. 예상대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먼저 몇 개의 실수가 있었지만 다음부터는 공격하면 받아 넘기
고 공격하면 받아 넘기니 나중에는 자기 실수로 아웃시켜 실점이 늘어났다. 점수 차가 나지 않더니 끝에 가서 승리의 여신은 우리
편에 손을 들어주었다.
두 번째 게임은 의외로 쉽게 이겼다. 순간 작은 고추가 맵다고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모교가 최초로 승리를 맞아 뿌
듯했다. 숨어서 눈물을 흘리는 아내 손을 잡아주었다.
승리한 기쁨을 안고 군인 트럭에 올랐다. 승리에 함성과 노래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본교로 달렸다. 그
간의 강한 훈련이 가져온 탐스러운 결실이었다. 본교에 도착했을 때는 전교생이 교문으로 도열해서 박수를 치며 환영해 주었
다. 교사 학부모 모두 나와 격려해주며 부둥켜안고 울었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밤늦도록 노래와 춤으로 작은 마을은 떠나갈
기세였다.
배구의 기본도 모르고 오직 강인한 군대정신으로 최선을 다한 젊은 시절이 자랑스럽다. 난공불락인 상대에게 방법을 찾아 돌진한
것이 적중한 작은 역사였다. 그 것이 도화선이 되어 그 때 녀석들은 지금도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어떤 일
이든 구실보다는 방법을 찾아 적극적으로 삶의 숲을 헤쳐 나간다. 명절 때면 전화를 주고 부부가 찾아와 존대하며 제자들과 추억
의 배구를 퍼마시는 시간이야말로 내겐 너무도 아름다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