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이 풋풋하다. 풋풋한 초록색이다. 간판도 따로 없이 초록색
외벽에 꽃 한 송이 그려 넣었다. 봄의 정경이다. 초록이 번지고 번지는 초록 사이사이로
꽃을 피워 올리는 봄날의 정경이다. 갤러리 봄.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풋풋해진다. 마음에
꽃 한 송이 핀다. 갤러리도 봄이고 갤러리를 연 사람도 봄이다. 권봄. 이름도 풋풋하고
첫인상도 풋풋하다. 초록색 바탕에 꽃 한 송이 피워 올린 사람이다. 서면에서 태어나
서면에서 자란 사람. 무슨 꽃 이름 같은 문화를 고향에 피우겠다고 나선 마음이 풋풋하다.
봄이다.
"내 어릴 때 놀던 서면 곳곳이 잊히지 않더라고요. 꿈에도 나타나고요." 갤러리 봄이 문을
연 것은 올해 초. 결혼해 타지에 살면서도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리란 수구지심을 지니고
살았던 게 갤러리 모태다. 어릴 때 놀던 골목길이 갤러리 뒤편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게
그래서 반갑고 고맙다.
갤러리가 풋풋한 만큼 전시내용도 풋풋하다. 개관 이래 지금껏 열리고 있는 전시회가 `신진
작가 지원전'. 최근 대학을 졸업한 젊은 작가 여섯 명이 릴레이식으로 여는 개인전으로 신진
답게 상상력과 시각이 풋풋하다. 가령 올해 경성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이현지는 유년의 순수
랄지 향수를 크레용 연작에 담고 있는데 그 착상이 보는 사람을 초록으로 물들인다.
갤러리 봄이 표방하는 원칙은 두 가지. 하나는 중견보다는 젊은 작가 중심이고 다른 하나는
그룹전보다는 개인전 위주다. 그러니까 젊은 작가의 개인전을 주로 열겠다는 게 갤러리 봄의
전시원칙이다. 젊은 작가는 대체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작품 팔기가 쉽지 않을 텐데 경영이
어렵지는 않을까.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는 젊은 작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갤러리를 연 사람
역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나혜석 미술대전 특선 등 십여 차례 수상경력이 있는 화가.
그래서 미술계에 처음 발을 들이는 젊은 작가들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안다. 갤러리를 빌리는
대관료도 받지 않고 홍보물 제작비도 받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 돈은 되지 않지만
본인 개인전에 비용을 안 들이는 걸로 만족한다. 내 갤러리에서 내 작품을 전시한다 해도
들어갈 돈은 들어가기 마련인데 그 배짱이 두둑하다. 그 마음이 두둑하다.
그림을 하는 친구나 지인들이 문 여는 걸 다 말렸다는 갤러리 봄. 갤러리를 열기에는 장소가
영 아닌 탓이다. 갤러리가 있는 곳은 서면역 다음인 부암동역 당감동 방면. 번화가에서 한 발짝
떨어진 곳이고 통행이 뜸한 곳이다. 게다가 한 열 명 들어서면 꽉 찰 만큼 비좁다. 그러나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장점이 되기도 한다(권봄 화가는 이 말을 두 번 했다!).
바로 앞에 버스정류소가 있어 지금은 버스승객이나 환승객, 신라대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학생 가운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사람들에게 인이 박히고 있는 것이다.
장점은 또 있다. 근방에 영어학교인 글로벌빌리지가 있어 외국인도 관심을 나타내고 멀지
않은 곳 하얄리아에 공원이 조성되면 부산진구 문화브랜드가 될지도 모를 일. 그림을 사고
파는 것 못지않게 지역주민이 같이 보고 같이 즐기는 것도 갤러리 몫이고 역할이다. 지역의
문화수준은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높아진다.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는 쇼윈도 그림을 이틀
마다 바꿔주는 것도 같이 보고 같이 즐기면서 문화수준을 높여보자는 권봄 화가의 지역사랑
이고 고향사랑이다.
풋풋한 것은 대체로 여리다. 새싹이 그렇고 새내기가 그렇다. 그러나 풋풋한 것이 내뿜는
기운, 그 기운이 번지면서 봄은 다가오고 깊어간다. 새싹 같고 새내기 같은 갤러리가 내뿜는
기운이 번지면서 서면거리에 봄이 다가오고 있다. 봄이 깊어가고 있다.
첫댓글 작은 갤러리들이 동네 마다 하나씩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도나도 부담없이 작품 전시도 하고 구경도 할 수 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