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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거리 20㎞ 등정시간 7시간 40분 / 하산시간 6시간 30분
용강리-쌍게사-불일폭포삼거리-생불재삼거리-송정굴-삼신봉-갈림길-세석산장
주능선 종주에 버금금가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비경능선
100여 리의 지리산 주능선이 동서로 길게 누워 있고 여기에서 다시 T자형을 이루며 세석 연신봉에서 남쪽으로 갈래를 뻗어내린 험준한 능선이 바로 남부 능선이다. 지리산 주능선 종주가 2차원직 선(線)이라 한다면 남부능선 등반은 가히 대지리의 3차원적 입체감마저도 느끼게 하는 지리산의 또다른 자랑이요 긍지라 말할 수 있다.
세석에서 삼신봉까지는 경남 산청군과 하동군을 경계를 이루고 삼신봉에서는 다시 아쉬운 듯 청학동을 품에 안고서 좌우로 능선이 갈라져 내려간다. 등반기점을 어느 곳에서 어디까지 잡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14~20㎞가 보통이고, 100여 리가 넘는 장거리산행 코스도 잡아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세석에서 삼신봉을 거쳐 청학동까지의 짧은 코스가 부담없이 등반할 수 있는 곳이고,삼신봉에서 생불재, 쌍계사로 빠지는 20㎞ 남짓한 코스 또한 남부릉의 진가를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코스로 손꼽을 수 있다.
석문까지는 어렵지 않은 기암 능선길
갖가지 기암과 전망이 일품이고, 그리고 스릴과 아기자기한 산행의 묘미가 뒤따르기는 한데 역시 식수가 부족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아닌 관계로 일기가 불순한 날에 초행자는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7~8년 전 겨울에 석문 위쪽 능선에서 눈에 파묻혀 동사한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여기에서는 세석에서 쌍계사까지 20㎞ 코스를 소개하며 세석산장에서 하산하는 과정을 더듬어보기로 한다.
세석산장에서 세석입구 이정표와 음양수샘을 지나 대성동계곡 코스와의 갈림길(1,400m) 이정표까지는 40여 분 남짓 소요되는 평탄한 내리막길이다(이 부분에 관한 자세한 것은 대성동계곡편을 참조바람). 갈림길 이정표에서 남쪽 능선길로 직진하면 진달래, 철쭉, 참나무가 우거진 길을 동쪽?서쪽 사면으로 왔다갔다 하며 가게 된다. 산죽도 눈에 많이 띄고 전망도 시원한 길인데 얼마 안 가서 석문(石門)에 이르게 된다. 높이 10여m, 폭 3~4m 정도의 운치와 위엄까지 갖춘 관통문이다. 대성골에서 불어 올라온 바람이 한기마저 느껴지는 석문을 지나 잠시 오르면 거림골이 훤히 열리면서 전망 좋은 바위 반석이 나온다. 기암과 고사목이 어울린 경치도 멋지지만 뒤돌아보면 석문 너머로 백운대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바위군들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잠시 오른쪽으로 휘어지던 길을 몇 번 오르내리면 산죽이 빽빽하게 우거진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기억(ㄱ)자형 비박지를 지난다. 바닥이 평편하여 야영한 흔적도 남아 있다. 산죽을 헤치며 계속 나가다보면 소나무, 잣나무도 몇 그루 보이는 잡목지대를 거쳐 드디어 평지 능선길이 나온다. 진달래와 싸리나무가 무성하고 오른쪽으로 뚫린 완만한 흙길인데 이제껏 고되게 오르내렸기 때문에 차라리 오솔길을 걷는 상쾌한 기분마저 든다. 길 양쪽에는 수많은 구덩이가 패어 있는 것이[옛 참호 흔적(?)] 생생하다.
지리산을 보았노라!
잠시 후 헬기장이 나오고 길은 왼편으로 꺾이면서 내려가 한벗샘 이정표가 있는 능선안부(수곡재, 박단재로 불림)에 도착한다. 세석과 삼신봉의 중간지 점에 해당되는 이 일대는 '세석의 축소판'다운 남향의 완만한 초원?관목 지대가 펼쳐지는데 거림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자빠진 골'(혹은 '엎어진 뜰')이라 부른다. 한벗샘(달리 수곡샘, 박단샘이로도 부른다)은 이정표에서 거림골 쪽으로 200m쯤 내려간 곳에 위치하며 주위에는 옛 집터 흔적도 보이고 야영할 수 있는 평지도 있다(여기서 거림골로 내려가는 옛 길이 있다). 한벗샘은 남부능선에서 유일한 샘이기 때문에 여기서 생불재 아래까지 약 12㎞분의 충분한 식수를 준비해야 한다.
한벗샘 이정표에서 삼신봉까지는 허리께 차는 산죽숲이 아주 장관을 이룬 능선길이 이어진다. 여러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다소 힘에 벅차기도 한데 뒤돌아보면 일출봉 능선(중산릉) 너머로 천왕봉이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고 있다.
동쪽사면의 참나무숲 터널을 지나서 다시 단천골이 내려다보이는 서편으로 넘어오면 외삼신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고 앞에는 암봉이 하나 버텨선다. 삼신봉(三神峰, 1.284m)이다. 매년 곡우절 청학동 사람들이 삼신제를 올리는 돌 제단이 갖춰져 있는 비교적 넓직한 정상에 올라와보면 전망이 장쾌하여 더 할 나위 없이 좋다. 서쪽 멀리 왕시루봉에서 동쪽 써리봉까지 장대한 캐러반 행렬을 연상시키듯 대(大)지리의 맥이 살아 굼틀댄다. 180도로 의연한 기개를 뽐내듯 펼쳐진 지리연봉,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지리의 산자락뿐인데 어찌 지리산을 보았노라고 소리치고 싶지 않으리오. 지리연릉의 전망대, 삼신봉에서 남쪽을 발보면 백운산, 형제봉이 가늠되고 주변 야산이 잔물결 일렁이듯 펼쳐지며 그 너머로 남해의 바닷가의 섬들도 아스라이 보인다.
송정골과 아찔한 암봉들이 앞다투어 나타나
삼신봉 아래 산불감시초소 가건물에서는 갈림길이 나온다. 곧바로 내려가는 길은 청학동으로 빠지는 길이고, 여기서는 오른쪽 능선을 따라 계속 등반하게 되는데 평탄한 오르막길 좌우로 가느다란 참나무와 단풍나무가 무성하다. 점차 기암 괴봉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다가 높이 10여m의 미륵바위가 보이고 얼마 후 거대한 바위 옆으로 오르면 길이 남쪽방향으로 꺾이다가 송정굴을 만난다. 등반로 오른편으로 10여m 옆에 위치하는데 페인트로 송정굴이라 씌여 있다. 길이 20m, 폭 10여m, 높이 1.5~2m의 비교적 넓직한 관통굴인데 북쪽으로 경사져 있다.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 선생의 피난처였다고 전하며 비박, 야영지로 손색없는 굴이다.
송정굴에서 다시 나와 경사진 길을 조금 내려가면 아찔한 암봉들이 솟구쳐 있는 곳을 지난다. 처음 만나는 것이 높이 100m쯤 됨직한 신선대(神仙臺)이다. 여기가 내삼신봉(內三神峰)으로 불리는 곳이며 주변에 거대한 바위군들이 우뚝우뚝 서있어 마치 설악산의 어느 한 면을 보는 것 같다. 신선대 옆 경사 급한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오면 얼마 안 가서 쇠통바위를 보게 된다.
높이 30~40m의 바위 위에 자물쇠가 얹혀 있는 모습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청학동 도인들은 학동마을에 있는 어가정(御軻亭) 위의 자물쇠 바위로 열어야(즉, 양 바위가 서로 만나야) 세계평화가 온다고 전설화되는 바위다. 지금까지 말한 이들 바위들과 또 조금 후에 나오는 독바위 등은 주변에 숱한 바위들이 산재하고 있고 별도의 안내판이 없으므로 그 모양새를 유심히 살펴 구별할 필요가 있다.
쓰러진 거목도 나뒹구는 경사 급한 서쪽사면을 내려오면 다시 잡목과 산죽 우거진 오르막길로 접어들어 넓다란 공터가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위쪽 작은 봉우리에 올라와보면 전망이 시원하여 신흥, 의신마을 등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이곳 공터에서 산죽과 관목숲 지대의 경사진 흙비탈길을 쏜살같이 내려오면 생불재삼거리 이정표가 나오고 길은 오른쪽 지능선으로 휘어진다.
다른 말로 성불재(成佛峙)라고도 하는 생불재(生佛峙)에서 청학동은 3㎞, 쌍계사는 6㎞이다.
불일폭포 포말음에 피곤과 갈증을 떨어내고
조금 가다 다시 오른쪽으로 경사 급한 돌밭길을 내려서면 불일폭포 상류의 계곡물과 만나는 곳인데 곳곳에 옛 집터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계류 왼편으로 건너서 흙비탈을 내려와 다시 계류를 건너면 새로 조림된 듯한 잣나무 단지 사이로 완만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서나무, 노각나무, 층층나무, 고로쇠나무 등이 눈에 띄는 숲길을 청량감 있는 계류소리와 함께 편하게 걸으면 다시 옛 움막터, 숯굴 가마터 흔적이 간간이 눈에 띄고 작은 합수골을 지난다. 계류와 멀리 떨어진 산비탈을 가로지르며 얼마 후 오른쪽에서 흘러내려오는 작은 지류와 만나 산대숲 사이로 잡초가 무성한 옛 논밭터가 나온다.
불일폭포의 웅장한 포말음이 어렴풋하게 들려오고 눈길을 좌측으로 돌리면 옛 불일암터가 숲속으로 넓직하게 보이며 불일폭포로 가는 길과 만난다. 약 200여 미터 쯤 좌측 가파른 벼랑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높이 60m 지리산 최대의 불일폭포가 나온다. 2단폭포로서 비말로 흩어지며 쏟아져내린 물은 중간의 학연(鶴淵)에 잠시 머물다가 다시 우렁찬 포말음을 토해내며 쏟아지는데 하늘마저 간신히 얼굴을 내밀 만치 사방을 빙 둘러친 원통형 수직 석벽 때문에 구슬처럼 알알이 튕기며 떨어지는 물줄기는 천지를 진동시킬 듯 요란하다. 깎아지른 절벽 곁에 고고하게서 있는 노송 어느 가지엔가 청학이 날아올 것만 같은 환상에 젖기도 한다.
불일폭포는 한편으로 볼 때 폭포 하단에 깊은 소가 발달하지 못한 아쉬움도 남는다. 지난 1964년 당시 하동군수 한(韓)모씨가 엉뚱한 미의식을 발휘하여 치마폭처럼 여러 갈래로 층층이 흘러 내리던 물줄기를 단순화시킨다고 폭포 상단을 정으로 쪼았는데 하물며 그 공적을 기린다고 기념비까지 세웠던 우스꽝스러운 일도 있었다.
불일폭포에서 되돌아 나오면 불일폭포 휴게소가 있는 넓다란 공터가 나온다. 산죽지붕의 집 한 채가 있어 작설차와 불로주 등도 팔고 있는데 좌측에는 돌들을 겹겹이 쌓아올린 소망탑이 눈길을 끈다. 앞뜰에는 갖가지 과실수가 심어져 있고 작은 연못도 갖춘 아늑한 평지다. 근처에서 야영은 가능하지만 민박은 할 수 없다. 이곳이 그 옛날 청학동이라 한동안 회자되던 곳인데 사방이 산자락에 감싸여 있고 비교적 넓은 공터인 점에서 수긍이 가기도 한다('지리산 청학동'편 참고 바람).
오솔길 따라 대사찰 쌍계사로 하산
불일폭포 휴게소에서 쌍계사까지는 2㎞, 지도상에는 나오지 않지만 작은 개울물이 쉼없이 졸졸졸 흐르는 그 옆을 따라 넓은 오솔길을 가게 된다. 도중에 최치원이 학을 불러 타고 노닐었다는 전설을 지닌 환학대(喚鶴臺)가 있지만 다분히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국사암 이정표에서 200m쯤 오른쪽으로 가면 진감선사가 심었다고 전하는 큰 사천왕수(四天王樹)가 국사암에 자리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성의 하체를 닮았다고 수군대근 특이한 나무이다.
쌍계사는 원래 신라 성덕왕 22년(서기 723년)에 대비, 삼법 등 세 스님이 당나라에서 남선종(南禪宗) 6대 조사(祖師) 혜능(慧能)의 머리뼈(頂相)을 가져다 모신 후 옥천사(玉泉寺)라는 이름으로 세운 절이다. 그후 문성왕 2년(서기 896년) '옥천사'를 쌍계사(雙谿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쌍계란 절 앞에 두 개의 시내가 합쳐 흐른다는 지형적 특색에서 생긴 이름인데 지금도 쌍계사 들머리 입구에는 양쪽에 각각 '雙谿' '石門'이라는 각자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이 글씨는 왕명(정강왕이 쌍계사라 이름을 지었다고 함)을 기념하기 위해 최치원이 쓴 친필이라고 전한다.
삼법화상(三法和尙)이 당으로부터 육조 혜능의 정상(頂相)을 봉안해 왔을 때 삼신산의 눈 쌓인 계곡 위, 꽃 피는 곳에 모시라는 꿈의 계시(康州智山下 雪裡葛花處)를 받았다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 쌍계사 금당(金堂)자리라고 한다. 이곳은 아무리 눈이 와도 쌓이지 않고 곧 녹아버리는 신통한 곳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겨울에도 꽃이 핀다는 의미로 오늘의 '화개'(花開)라는 지명이 유래되기도 했다.
고운과 추사의 필체가 전해 내려와
쌍계사도 지리산의 여느 사찰처럼 전란을 맞아 폐허로 변해 지금의 금강문, 천왕문, 대웅전, 명부전, 적묵당 등 건물 대부분은 임진란 후 벽암(碧巖)대사에 의해 중수된 것들이다.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전 앞뜰에는 최치원이 짓고 친필로 쓴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 47호)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는데 비를 세긴 사람은 환영(奐榮) 스님이라고. 이 비는 우리나라 현존의 몇 개 안되는 금석문(金石文) 가운데 으뜸을 차지하고 있는데 총 2,417자가 음각되어 있으며 높이 약 2m의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임진란 때 왜병에 의해 파괴되어 금이 가 있고 또 6?25 동란 때 한 외국 군인이 총을 쏘아 상처를 입힌 흔적도 남아 있지만 그런 대로 온전하다. 1620년에 세워진 대웅전(보물 500호)을 비롯하여 각 부속건물이 아늑한 숲속에 자리잡고 있는데 대웅전의 '世界-花祖宗六葉'이란 현판 글씨와 육조 정상탑이 있는 법당의 '六祖頂相塔'이란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글씨다.
한편 쌍계사(옥천사 시절)는 진감선사 헤조에 의해 범패음곡의 원류를 이루고 신라에 범패음곡을 널리 보급시킨 중심지로도 유명하다. 혜조는 당나라에 가서 그곳의 신감(神鑑)에게 범패의 음곡과 창법을 배워와 12년 동안 옥천사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범패를 가르쳤다고 한다. 경내의 팔영루(八泳樓)는 혜조가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여덟 음률로써 범패를 작곡한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쌍계사에서 나오면 상가와 음식점, 민박집이 줄지어 서 있는 운수리 석문(石門)마을에 이르고 용강교 위로 화개천(花開川)을 건너오면 쌍계사 집단시설지구가 나와 직행버스, 완행버스가 연결된다.
교통과 숙박
쌍계사 집단시설지구에는 부산, 마산, 광주 등지로 연결되는 직행버스가 많고 구례행 완행버스가 역시 수시로 연결된다. 화개에서 갈아타면 더욱 편리하다. 민박집도 운수리와 용강리 쪽에 많고 불일폭포 휴게소에서는 민박은 되지 않고 야영만 가능하다. 청학동으로 해서 오르려면 하동에서 08:00, 10:20, 15:00에 청학동으로 들어가는 완행버스가 있고 요금은 ****원,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청학동 4㎞ 못 미쳐 묵계리까지 들어가는 버스도 08:00~19:00까지 6회 정도 있으므로 이것을 타고 조금 걸어 올라가도 무방하다. 청학동에 민박집이 여러 군데 있다. 남부능선 중간에서 야영할 만한 곳은 박단샘(수곡샘, 한벗샘) 부근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