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초고] 중국 의사결정 능력 저하와 지구촌 리스크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1978년 덩샤오핑이 설계한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는 단순한 권력 분산 장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학습 시스템이었다.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이 서로 다른 배경과 시각으로 토론하면서 집단적 판단력을 훈련했다. 잘못된 결정이 나와도 다른 위원들이 수정했다. 정보는 여러 채널로 올라왔고 왜곡이 걸러됐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1인 독재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재앙을 낳은 것을 직접 목격했다. 그 비극에서 배운 제도적 지혜가 집단지도체제였다.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으로 순조롭게 이어져 발휘되던 집단적 의사결정능력이 이제는 고장난듯 하다. 시진핑이 그 설계를 해체한 것이다. 반부패 운동이라는 명목으로 상하이방 공청단 태자당의 경쟁 세력을 모두 제거했다. 서로 다른 시각이 사라진 자리에 시진핑의 시각만 남았다. 2018년 국가주석 임기 제한을 헌법에서 삭제했고 2022년 3연임을 확정하면서 후계자도 지명하지 않았다.
불가사의한 사건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중국 안팎의 관찰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2025년 10월 4중전회 직전 현직 부주석을 포함한 고위 장성 37명이 이틀 새 제명되고 수사를 받았다. 역대 최대 규모의 군부 숙청이었다. 그런데 숙청된 인사들 상당수가 불과 얼마 전까지 시진핑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던 인물들이었다. 측근을 숙청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022년 당대회에서 전임 최고 지도자 후진타오가 회의 도중 강제로 퇴장당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공식 설명은 건강 문제였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2023년에는 리커창 전 총리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전직 최고위급 인사의 사망을 둘러싼 의혹과 침묵이 이어졌다.
2025년 중반에는 시진핑의 실각 가능성을 보도하는 언론들이 나타났다. 군부 내 반시진핑파인 장유샤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중심으로 권력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시진핑이 이미 실질적 권력을 상실한 상태라는 분석이 중화권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왔다. 진위를 확인하기 어렵다. 그것이 오히려 더 불안하다.
이 모든 사건들의 공통점이 있다.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왜 숙청됐는지, 누가 결정했는지, 권력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중국 공산당은 침묵한다. 그 침묵이 오히려 집단적 의사결정이 얼마나 불투명해졌는가를 보여준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위태롭다
1인 체제에서 거슬리는 의견이나 소식을 올리면 불이익을 받기 쉽다. 그러므로 아첨이나 좋은 소식만 올라간다. 코로나 초기 우한의 이상 징후를 은폐한 것, 제로 코로나 정책을 3년간 경직되게 유지한 것, 부동산 버블의 위험 신호를 무시한 것이 모두 같은 구조의 산물이다. 권력자는 현실을 보지 못한다. 현실을 보지 못하는 권력자의 결정은 반드시 현실과 충돌한다. 그 충돌의 비용을 14억 인민이 치르고 있다.
경제 침체, 청년 실업률 20% 돌파, 부동산 위기, 소비 위축. 이것들은 단순한 경제 사이클의 문제가 아니다. 집단적 의사결정이 무너진 자리에서 잘못된 결정들이 수정되지 않고 누적된 결과다.
더 심각한 것은 후계 문제다. 시진핑은 후계자를 지명하는 순간 자신의 권력이 약해진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으면 자신이 사라지는 순간 권력 공백이 발생한다. 이 딜레마 속에서 중국은 권력 공백 시 혼란을 수습할 당내 구심점이 없는 상태로 표류하고 있다.
최근의 군부 숙청이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숙청이 반복될수록 유능한 인재가 제거되고 충성스럽지만 무능한 인물들만 남는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숙청이 역설적으로 권력의 토대를 갉아먹는 것이다. 관중이 환공에게 경고했던 것처럼. 역아와 수조를 곁에 두면 결국 당신을 해칠 것이라고.
역사는 이 상황의 귀결을 알고 있다. 마오쩌둥 사후 사인방 대 덩샤오핑의 권력 투쟁이 그것이었다. 그때는 덩샤오핑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지금 중국에는 그에 필적할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시진핑이 모든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14억의 문제가 지구촌의 문제가 되는 이유
그리고 더 큰 리스크가 앞에 있다. 후계 구도 없는 권력 공백이 현실화될 때 중국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내부 위기에 처한 권력은 종종 외부로 시선을 돌린다. 대만 문제가 그 출구로 사용될 수 있다. 14억 인구를 가진 핵보유국의 내부 의사결정 위기가 외부의 군사적 모험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지구촌 전체의 재앙이다.
지금 중국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사건들은 단순한 내부 권력 투쟁이 아니다. 집단적 의사결정 시스템이 무너진 자리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혼란이다. 누군가 숙청되고 누군가 실종되고 누군가 침묵 속에 사라지는 이 사건들은 그 나라의 집단지성이 얼마나 위기에 처해 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300년 전과 지금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 미국 건국의 설계자들은 비슷한 문제를 고민했다. 제임스 매디슨은 말했다. 인간의 야망은 또 다른 야망으로 견제해야 한다. 만약 인간이 천사라면 정부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천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야망을 야망으로 견제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덩샤오핑은 이 원리를 알았다. 시진핑은 이 원리를 무시했다. 그 무시의 대가가 지금 중국 안팎에서 축적되고 있다.
문제는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 시진핑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구촌 전체가 함께 치르게 된다.
지금 지구촌은 미국이 실족하면서 잘못 의사결정하는 바람에 혹독한 고초를 겪고 있다. 태생적으로 야만이었던 미국이 민주제의 내부견제능력이 떨어지면서 그 폭력성이 폭증하고 있는 것이다.
강대국 내부의 의사결정의 리스크, 이는 모두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중국이 대만과의 관계를 어떻게 진전시킬지도 오리무중이다. 특히 우리에겐 커다란 리스크가 아닐 수 없다.
한 나라의 집단적 의사결정 능력이 지구촌 전체의 안전과 연결되는 시대. 이것이 새로운 세계 권력 구조의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어느 단일 국가의 의사결정 실패가 전 인류에게 영향을 미칠 때 그 결정을 견제할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