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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순신
2. 내 인생의 책
3. ~이(가) 왜 거기에서 나와
4. 이미 잘 알려진 스토리를 하나 골라 패러디하시오.
5. 초능력이 생긴 뒤 나의 하루
* 지금도 작성하고 있는 분들은 늦더라도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평가 대상 글에 포함하겠습니다.
올린 글은 미리 읽고 오늘 줌 강의에 참여해주세요.
# 1.
제시어 : 이미 잘 알려진 스토리를 하나 골라 패러디 하시오.
1. 아주 아주 먼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보다 더 먼 옛날. 해님과 북풍이 내기를 했어요. 저기 저 길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겨내는 사람이 자기가 다스리는 영토를 내어주기로. 북풍은 바람을 세차게 불어댔지만 나그네는 외투를 더 단단히 잠갔어요. 해님은 그런 북풍을 보며 슬쩍 웃었어요. 곧이어 해님이 볕을 내리 쬐자 나그네는 외투를 벗어 던졌어요. 북풍은 자기 영토를 해님에게 내어주고 쓸쓸히 집으로 돌아갔어요.
다음날 해님은 서풍과 내기를 했어요. 다다음날엔 동풍과 내기를 했어요. 다다다음날엔 남풍과 내기를 했어요. 모두 해님의 승리. 해님은 바람들의 영토를 모두 가져갔어요. 남풍은 큰 소리로 엉엉 울었어요. 하도 서럽게 울자 다른 바람들이 모여들었어요.
“남풍아 왜 울어?” 바람 친구들이 남풍에게 물었어요.
“해님한테 내기에서 졌어. 내 땅을 다 빼앗겼어.”
남풍이 내기 얘기를 꺼내자 바람들은 그제서야 자기들이 뒤통수 맞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뭐? 너도? 야! 나도!”
2. 맞아요. 처음부터 바람들한테 불리한 내기였어요. 순진한 바람들은 정정당당하게 열심히 노력해서 이기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내기에서 져도 쿨하게 승복하는 것 또한 미덕이라 여기니 그야말로 착한 바보들이랄까요? 어쨌든 바람들은 뒷통수를 맞은 뒤 내기의 불합리함을 깨닫고 복수의 칼날을 갈았어요. 여차하면 해님의 불꽃까지 꺼버리겠다는 각오를 다짐하고 D-Day를 준비해 갔어요.
D-Day가 되자 바람들은 해님의 집 앞으로 가서 구호를 외쳤어요.
“우리 땅 돌려내라! 돌려내라! 돌려내라!” “해님은 사과하라! 사과하라! 사과하라!” 바람들이 소리쳤어요.
“아이 시끄러워. 내기에서 졌으면서 말들이 많아. 본인들의 부족한 능력을 탓해야지! 노력할 생각들은 안 하고 쯧쯧.” 해님은 바람들을 보며 혀를 찼어요.
해님의 뻔뻔한 태도에 바람들은 화가 치밀었어요. 바람들은 해님의 불꽃을 꺼버리기로 결심했어요. 북풍과 남풍이 숨을 크게 불었어요. 해님은 그런 북풍과 남풍을 보며 박장대소했어요.
“너희 진짜 바보 맞구나? 바람이 불수록 불은 더 활활 탄다는 걸 모르냐?”
해님의 말대로 북풍과 남풍이 불어댈수록 불꽃은 점점 더 커져갔어요. 그런데도 바람들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서풍과 동풍도 합세해 열심히 숨을 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커지던 불꽃이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어요. 북풍, 남풍, 서풍, 동풍이 합쳐지자 거대한 바람이 휘몰아 쳤어요. 해님의 불꽃은 곧이어 촛불처럼 깜빡거리며 위태로워졌어요.
“얘들아 미안해. 제발... 이제 그만 바람을 멈춰줘. 너희 땅 다시 돌려줄게...” 해님이 울면서 빌었어요.
바람들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수고했다며 서로를 꼭 안아줬어요. 바람들은 원래 다스리던 영토를 돌려받고 해님을 지하 감옥에 가뒀어요.
3. 북풍, 남풍, 서풍, 동풍은 자기네 영토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해님에게 빼앗긴 뒤 가보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자연과 동물, 사람들을 만날 생각에 신바람이 났어요. 휘파람을 불며 자기네 영토에 도착한 바람들은 너무 놀라 쓰러질 뻔했어요. 나무와 꽃들은 뿌리째 뽑혀있고 바다와 호수는 모두 말라서 갈라졌어요. 동물과 사람들은 검게 타 죽어 형체를 구분하기 힘들만큼 훼손되어 있었어요. 그들의 사체와 시체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어요. 해님과 바람들의 싸움에 세상은 그만 풍비박산이 나버렸어요. 해님만 무찌르면 다시 평화로운 세상이 올 줄 알았던 바람들은 검게 변한 황무지를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만 흘렸답니다.
# 2.
제시어 : 이순신
“우리나라에서 ‘존버’를 가장 잘했던 인물은 이순신 장군이야!” 취해서 소리치는 친구. 누가 듣는 것은 아닌지 주변을 빠르게 확인했다. 미치지 않고서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존버’와 이순신 장군을 엮는단 말인가? 비트코인 ‘존버’하다가 망해서 미친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해봐. 무과에 떨어졌어. 근데 ‘존버’해서 다시 붙었지. 또 왕이 겁나 고문하는데 ‘존버’해서! 다시 복직했지.” 친구의 위험한 술주정은 집에 가기 전까지 계속됐다. ‘성웅 이순신’이 아니라 ‘존버왕 이순신’이라니, 조만간 잡혀가기를 바랐다.
이순신 장군을 존경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수 많은 역사책, 유교 서적은 내게 ‘충’이나 ‘효’ 같은 유교적 개념을 머리에 심어줬다. 오죽했으면 영국에서 유학할 때 여자 애들이 인사로 안으려고 하면 ‘남녀칠세부동석’이라면서 만지지 말라고 했겠는가. 아무튼, 그런 내게 이순신 장군은 완벽한 인물이었다. ‘충’과 ‘효’를 다한 인물. 왕에게 버려졌지만, ‘충’을 지키기 위해 백의종군을 하고 12척의 배로 100척이 넘는 일본군과 싸운 인물. 내게 있어서 이순신 장군은 베트맨 보다더 멋있는 영웅이었다. 커서 나라를 지키는 혹은 나라의 위상을 알리는 인물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이순신 장군 덕분이었고, 허튼 짓을 하고 싶어도 이순신 장군님이라면 이러지 않으셨을거라며 스스로를 달랬던 날도 많았다.
그런 이순신 장군을 ‘존버왕’이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흥분을 가라 앉히자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버텼다. 바람에 휘어지지도, 꺾이지도 않은 소나무 같이. 왕이 그를 의심해서 사형을 선고해도, 투옥 중에 어머님이 돌아가셔도, 아들이 죽어도. 그는 늘 버텼다. 아니 버텨야했다. 그에게 있어 전쟁은 왜와의 싸움이 아니라 시련과의 싸움이었다. 그를 거의 죽음으로 이끈 시련과의 전쟁에서 이순신 장군은 외로이 버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가 성웅이 된 까닭은 영웅으로 태어나서, 싸움을 잘해서가 아니다. 끝까지 버틴 사람이기 때문이다.
궁금하다. 끝도 없이 눈 앞에 펼쳐지는 시련을 맞이 하면서 그가 느꼈을 공허가. 단 한 순간도 자신의 편이 되어준 적 없는 삶을 그가 어떻게 생각했을지. 시련을 겪은 날에는 자신의 방이나 어느 외진 곳에서 조용히 홀로 한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닦지는 않았을지 궁금하다.
높은 자살률. 2030의 삶 포기. 이순신 장군이 떠나고 420년 정도가 지난 그가 지켜낸 나라의 상황이다.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이들의 죽음을 폄하할 생각은 없고 그들의 죽음이 그들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들이 살기를 바란다. 끝까지 버티기를 바란다. 끝까지 버텨서 살아서 행복한 순간을 늘려가기를 바란다. 끝까지 인생에 저항하기를 바란다. 이순신이란 사람처럼 버티기를 바란다. 그게 우리가 현 시대에 이순신이란 인물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치다.
# 3.
제시어 : ~이(가) 왜 거기에서 나와
한기가 스며드는 1월 말이면,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경상북도 영주로 향했다. 당시에는 지하주차장이 없어, 새벽 공기를 맞은 자동차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엄마는 동생과 나에게 내복, 기모 옷, 패딩까지 껴 입혔고, 우리는 빵빵해진 몸으로 둥글둥글 눈사람처럼 자동차 뒷좌석에 앉혀졌다. 10분, 20분 달리다 보면, 아빠가 세게 튼 히터 때문인지, 조잘거리며 떠드는 우리 열기 때문인지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때부터 동생과 나는 설레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우리만의 파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삐질 삐질 나는 땀에 소용이 없어진 패딩들은 팔끼리 묶였다. 그 것들은 아빠의 운전석, 엄마의 조수석 등받이에 한 번 더 묶였다. 패딩은 긴 벽이 되어 부모님은 동생과 나를 볼 수 없었다.
우리는 패딩이 만들어준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엄마아빠가 못하게 한 행동들을 했다. 자동차 좌석에 거꾸로 매달리고 손잡이로 공중그네를 탔다. 자유롭게 몸을 던지며 놀다 졸음이 몰려오면 좌석 밑 발 놓는 공간으로 내려갔다. 오른쪽은 폭신한 패딩 벽이, 왼쪽은 부드러운 좌석이 몸을 알맞게 감싸주었다. 그러면 아무도 우리를 볼 수 없다는 비밀스러운 편안함에 스르륵 잠이 들었다. 문득 문 열리는 소리와 차가운 바람에 눈을 번쩍 뜨면 엄마 아빠 얼굴이 보였다. 좌석 밑에서 잠든 우리를 보며 너희가 왜 거기서 나오냐며 장난스럽게 웃으셨다. 그러고는 졸음에 눈이 반쯤 감긴 우리를 등에 업어서 할아버지 댁으로 걸어가시곤 했다.
이 기억 때문일까?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벽을 찾았다. 왕복 3시간의 통학 임무를 완수하러 지하철을 탈 때면 나에게 자유를 선물해주던 벽이 간절했다. 무거운 가방이 어깨를 짓누르고, 사람들에 밀리고 치이는 틈에서는 겨우 숨을 쉴 공간만이 주어졌다. 커버린 키 때문에 패딩으론 안 되겠지만, 이동식 가벽이라도 내 주위에 치고 싶었다. 그 안에 털썩 앉아 아무도 보지 않는 편안한 휴식을 갖고 싶었다. 지치고 힘든 마음에 눈을 감았다. 그러자 세상이 조용해졌다. 눈을 찌르듯 밝은 형광등과 시각을 자극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검정색으로 사라졌다. 오로지 나만 세상에 존재하는 듯했다. 감각을 차단한 채 나만의 은밀하고 자유로운 휴식을 즐겼다.
그 날 이후로 난 언제든 벽을 치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몸에 내장된 이동식 가벽을 치면 되기 때문이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잠시 눈을 감는다. 잘 때만 빼고 하루 종일 열고 있던 눈꺼풀을 내려서 벽을 세운다. 깜깜하고 나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춤도 추고, 잠도 자고, 위로도 한다. 검정색의 자유로움에 마음이 편안 해진다. 사람, 사랑, 일에 치여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을 때, 티나지 않는 눈꺼풀 가벽을 세워보는 건 어떨까. 가격이 무료라는 것은 덤이다. 또 무겁게 억지로 챙겨 다닐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래서 눈꺼풀을 소중함을 잊고 눈감는 것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잊지 말고 나에게 벽의 자유를 느낄 시간을 주자.
# 4.
제시어 : 내 인생의 책
#착한 정책
사용자 위원들이 퇴장하여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가운데 오늘 내년도 최저임금이 최종 결정됐습니다. 최저임금은 800원 가까이 급격히 상승하며 16%의 기록적인 상승률을 보였습니다. 이는 대통령이 공약한 임기내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보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최저임금은 취약 근로자의 생계 보장을 위해 도입된 제도임에도 그 동안 그 실효성이 적었다. 이제 저소득층과 단기 아르바이트생 등의 최소한의 생계비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자축했습니다.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습니다. 한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A씨는 “그간의 대기업 주도 성장의 역효과를 보완하고 내수 경제를 활성화해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며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대책 없는
“유정아 여기 와서 이것 좀 도와라!”, “네! 지금 가요!”. 요즘 나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을 돕는다. 원래는 2명의 아르바이트생을 썼었는데 최저임금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오르면서 부모님은 아르바이트생들을 내보냈다. 한 아르바이트생은 안 그래도 최저임금이 올라 다른 곳에서도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없다며 제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비싼 대학교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사정이 좋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어. 정말 미안하다.” 그간 일도 잘 해줬고 사정이 딱해 도와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남는 게 많지 않아 겨우 운영하고 있었는데 인건비를 부담하고 나면 버틸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낸 이후에는 부모님 두 분이 근무하며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가게 운영은 부모님의 꿈이었다. 그 꿈을 위해 평생을 열심히 일하시며 돈을 모으셨고, 퇴직한 후 마련한 소중한 가게였다. 며칠 간 무리한 엄마가 결국 몸져누우셨다. 계속 가게를 그렇게 운영할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 가족은 가게를 닫고 다른 일을 알아보기로 했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시며 정부에서 제공하는 단기 일자리를 알아보고 계셨다.
#대책 없는 착한 정책
“학생 여러분, 궁금한 게 많으실 텐데요. 강연은 이것으로 마치고 작가님과 질의응답 시간 가지겠습니다. 편하게 질문해주세요”. “작가님, 작가님은 단 하나의 책이라도 사람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대표적인 책 하나만 소개해주실 수 있습니까?” 작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책은 사람들의 인생을 들었다 놨다 하죠. 모두가 각자 ‘내 인생의 책’이라고 여기는 책이 하나씩은 있을 겁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 책이 우리를 성공의 길로 인도한다고 믿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의외로 책은 사람들을 나락으로 빠뜨리기도 합니다. 삶에 큰 타격을 줘 다른 의미의 ‘내 인생의 책’이 되는 책들이 있죠. 예를 들어 ‘대책 없는 착한 정책’ 같은”.
# 5.
제시어: 초능력이 생긴 뒤 나의 하루
여느 때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탄 지하철. 내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코트 아래에서 허연 연기 같은 것이 스르륵 피어오른다. 헉, 불이 났나? 싶었는데 코를 찌르며 풍겨오는 냄새에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아저씨, 방귀 뀌었구나. 손을 들어 코를 틀어막을 수도 없이 사람이 들어찬 이 공간. 숨을 참으며 애꿎은 폐를 혹사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 방금 방귀를 본 건가? 의문이 든 순간 아저씨의 코트 아래에서 두 번째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온다. 짙은 안개처럼 옷의 표면을 기며 진득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아하니 보통이 아닐 듯 싶다. 이런, 황급히 상체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 참사를 막았다. 어제 뭘 했기에 방귀를 볼 수 있게 된 걸까 곰곰이 고민하던 차에 종로 3가역에 정차했다.
팀장의 눈치가 수상하다. 꿍한 표정에 꼭 다문 입술, 씰룩이는 눈썹이 아무래도 오늘 아침에 무슨 일이 있던 것 같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있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혹여 나를 부를까 곤두세우고 있는 귀 안의 고막에서 심장이 쿵쿵 뜨겁게 뛰었다. 순간 팀장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고요한 사무실에 퍼졌다.
“이 대리, 이리 와봐.”
벌 받는 학생 마냥 서 있는 내 앞으로 팀장의 목소리와 비말이 테러처럼 쏟아진다. 그는 자신의 최대 무기인 인신 공격이라는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그는 제 자신의 말을 스스로도 절제하지 못하고 악악 퍼부어댔다. 방귀 냄새로부터 나를 방어하기 위해 숨을 참 듯, 표현하고 싶은 말과 감정을 참았다. 그럼에도 팀장의 말들은 한계를 모르는 방귀처럼 자꾸 내 영역을 침범해왔다. 아, 이래서 내가 방귀를 볼 수 있게 된 건가?
“무슨 생각하냐고 지금? 어?”
무례한 그의 언어들이 내 영역을 지나치며 생채기를 잔뜩 남겼다. 참는 것이 만성이 된 나였지만 가끔은 손을 들어 귀를 막아버리고 싶기도, 그를 후려치고 싶기도 했다. 그의 말소리가 냄새처럼 온 사무실에 울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듣지 못하는 듯 했다. 누가 방귀라도 뀌면 먼저 나서 코를 틀어쥐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현수 씨는 짐짓 근엄한 얼굴로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다. 뭉게뭉게, 아무래도 이 방귀 같은 무례함을 나 혼자만 보고 들을 수 있는 것 같았다.
퇴근길을 바삐 걷는 사람들 뒤를 실 같은 뿌연 연기가 따른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꼬마 유령의 모습 같기도 하고, 담배 연기 같기도 한 그것의 실체는 방귀다. 자동차들도 매연을 내뿜지 못하는데, 사람들이 뒤 꼬리에 연기를 달고 다니는 모습이라니. 어떤 이는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증기 기관이라도 된 양 연신 방귀를 내뿜는다. 심각하고 진지한 회사원의 얼굴을 한 채 뒤로는 뿡뿡대고 있는 그 사람과, 그 사람의 방귀를 뒤집어쓰고 있는 나. 이 상황에 푸하하, 웃음이 터져나왔다. 방귀를 뀌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 6.
제시어 : 이순신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던 이순신. 그는 자신의 죽음이 계속해서 알려지고 있는 2020년의 한국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이제 그의 죽음은 클리셰가 되어 ‘지겹다’는 생각이 때로 들기도 한다. 죽음은 그 순간에 멈춰 끝나지 않는다. 죽음의 순간에 그 주체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죽음을 언어화하고 기억하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과정은 그 때부터 시작이다. ‘지겹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알려지고 반복되고 이야기해야 하는 게 ‘죽음’의 숙명이다. 죽음은 알려져야 하고 알려질 수밖에 없다.
나의 아빠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때의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사셨다. 지금은 좀 덜 하지만 5년 전, 10년 전에는 매주 그 죽음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는 줄줄 외울 수도 있다. 아빠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험난한 장남의 인생이 시작되었던 거다. 아빠는 갑작스레 경험한 상실의 슬픔을 하소연 할 시간도, 한탄할 곳도 없이 생계를 위해 몸부림치며 살았다. 그 ‘상실의 말하기’는 본인의 가족이 생기고 말할 곳이 생기자 뒤늦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나로서는 듣기 지겨운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꺼내는 아빠의 입을 막지는 않는다. 아빠가 충분한 ‘상실의 말하기’를 하지 못하고 살아왔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응어리진 상실은 십년, 이십년 동안 말하고 말해도 모자르다. 아빠는 뒤늦은 말하기를 통해 고등학교 1학년, 창백한 주검이 된 할아버지를 보았던 때로 매주, 매달 돌아간다. 반복되는 기억과 말하기의 노동을 통해 그 상실과 트라우마를 조금씩 해소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남은 자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상실의 무게는 오직 반복적인 기억과 말하기를 통해서만 덜어낼 수 있을 테다.
누가 어느 죽음에 대해 그만 말 하라 할 수 있을까. 그런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애도에 끝은 없다. 어떤 죽음을 겪은 이가 받아들이기 힘든 지점이 많을수록, 말하고 알리는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죽음을 말하고 말하다보면 그 죽음에 의미가 덧붙기도 한다. 쓰디쓴 가루약을 캡슐에 담아 삼키는 것과 같이, 죽음의 슬픔을 삼키기 위해 적당한 의미로 감싸는 것도 필요하다. 떠나간 당신의 삶과 죽음이 남아있는 자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남겼다고. 당신은 그냥 허망하게 떠나버린 게 아니라고. 계속해서 기억하고 말하고 그 의미와 교훈을 되새기며 살아가는 이들이 여기 있다고. 그렇게 기억하고 말하기를 반복해야 할 뿐이다.
광화문 광장을 지나치며 이순신 동상을 흘깃 본다. 이순신의 죽음을 계속해서 말하며 건강히 소화한 덕분인지 한국인들은 웃는 얼굴로 브이하며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러다 그 옆에 ‘기억공간’을 마주하면 아직 삼켜내지 못한 슬픔의 응어리가 도로 올라온다. 광장에서, 삶에서, 이순신을 더이상 말하진 않지만 세월호를 말하게 되는 이유다. 계속 기억되어야 하고 계속 알려야 하는 죽음이 여전히 많다. ‘그만 말해야 하는 죽음’은 없다. 죽음은 무서울 정도로 가까운 곳에, 지겨울 정도로 삶과 엮여 있을 뿐이다.
# 7.
제시어 : 이순신
탁 트이는 이곳에 나는 홀로 서 있소. 이제는 누구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아 어쩐지 쓸쓸한 마음이 드는군. 나의 본신이 위대한 역사에 한 획을 그으신 성웅이라 함은 변함이 없으므로 그저 높은 긍지로 맡은 바를 다할 뿐이외다. 국가의 흥망성쇠를 한 번에 내려 볼 수 있는 이곳에서 수십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를 보는 눈빛들은 싸늘하게 식어만 갔소. 한때는 영웅의 회귀라 칭송받으며 빛나던 시절도 있었소. 허나 나의 진실을 마주한 자들은 마음 깊숙이 뿌리내린 형체 없는 아픔을 느끼고 내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구려.
나의 탄생은 뿌리부터 모순이었소. 나의 아버지는 군을 거느리는 막강한 권력자였소. 당신은 나의 본신을 흠모하였으나 악용하고 농락하였소. 이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태어난 나를 이 나라의 논란거리로 만들었으니. 내가 있는 이 자리는 본디 나의 것이 아니요. 나를 감싸고 있는 이 갑옷도 내가 들고 있는 이 검도 모두 조선의 것이 아니요, 나의 오른손에 쥐어있는 이 검 또한 적진을 향해 바로 뽑아낼 수 없도록 들려져 논란이오다. 나의 본신이 거둔 위대한 승리를, 국란을 극복한 구국영웅의 성상을 ‘헌납’한다고 남긴 나의 아버지는 많은 이들의 가슴에 상체기를 내었구려. 헌납의 대상이 누구인지 나조차 알 수 없소. 당신의 가슴에 총알이 박힌 날로부터 홀연히 사라지곤 잔상만 남았구려. 명예로운 본신의 부끄러운 초상입디다.
나와 같이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형제들의 처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소. 일부는 자리를 잃고 엉뚱한 곳을 떠도는 신세요, 일부는 본디 용모가 아닌 낯선 자의 낯을 쓰고 있소. 나와 함께 이곳에 앉아 있는 저자 또한 낯을 잃은 자요. 헌데 일부 형제들은 낯뿐이 아니라 이름까지 잃어가고 있소. 현대의 백성들 중 그들을 알아보는 자는 손에 꼽는 수준이오. 애국선열을 기리기 위한 그들의 존재는 길상이라 칭송 받지 못할망정 ‘흉상’이라 질책 받는 신세가 되었다오.
허나 이 땅에 모든 우리 존재들이 홀대를 받는 것은 아닌 듯하오. 몇 해 전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작은 소녀들은 조금 다르오. 그녀들에게는 지나가는 백성들의 발길을 묶고 눈길을 사로잡는 무언의 전언이 담겼다는구려. 그녀들을 향한 눈에는 묘하게 슬픈 감정이 얽히설키 고였다 하오. 소녀들은 그 흔한 이름 하나 없소만, 헌데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뜯긴 머리카락부터 닿지 못한 발뒤꿈치, 앉은 장소까지 의미 없는 군데가 한 군데도 없는 자들이외다. 인권과 명예회복의 명을 받은 그녀들은 역사 속 ‘인물’이 아닌 역사적 ‘맥락’의 표상이랍디다.
이름 없는 소녀들의 존재로 다시 한 번 이 땅에 존재하는 나의 의미가 흔들리게 되었소. 나뿐만 아니라 이름이 잊힌 우리 존재들은 단순 상징을 넘어 여행객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했다는 말도 나온다더군. 존재의 의미가 특정 도구가 되는 순간 우리들은 의미를 잃은 흉상과 다를 바 없을 것이오. 그러므로 혹여 내가 이곳을 떠난다 한들 그대들은 부디 슬퍼하지 마시오. 그저 잊지 마시오. 나의 본질은 곧 역사이고, 역사의 본질은 곧 그대들의 삶을 이끌어줄 터이니.
# 8.
제시어 : 이미 잘 알려진 스토리를 하나 골라 패러디하시오.
며칠 전 옆 부대 병사가 자살을 했답니다. 스스로 살기 싫어 목숨을 끊다니, 참 끔찍한 일이지요. 우리 부대는 참 좋은 부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같이 군 생활하는 친구들과 페이스북 메시지를 하면, “야 거기 꿈의 사단 아니야”라고 하거나, “파라다이스 부대 아니야?”하며 여간 부러움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이 벌써 두 번째입니다. 제가 여기 일병 막내로 생활하고 있는데, 온지 3개월도 안되었는데, 2명이나 자살하다니요. 이게 소문 난다면 좋은 부대 이미지도 다 망칠 것 같습니다. 이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단장님이 모든 부대에 방문하기로 했답니다. 각 부대마다 간부들, 용사들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네요.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물론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이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긴 힘드니까요. 곧 우리 부대에 오신답니다. 이름도 정해졌습니다. 병영문화혁신 대토론회로 말이죠.
사단장님은 오셔서 “용사들도 다 가감없이 말해보라. 힘든 일이나 주변 사람이 힘들어하는 걸 본 적 없니?” 하셨습니다. 하지만 누가 대답할까요. 사단장님이 오시기 전, 우리는 모두 따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쓸데없는 소리해서 부대 망신 시키지 마라. 괜히 우리 부대를 까는 말 했다가는 더 힘들어 질 거다. 괜한 말해서 부대의 악습이 나타나면 안되니까요. 하지만 저는 말하고 싶어 간질간질하고 손을 들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움찔하니까 옆에 소대장님이, 제 손을 잡으며 “누구 망신 줄려고 그러니? 가만히 있어!” 합니다. 하지만 저는 병영문화혁신을 하려면, 그리고 자살을 하지 않으려면, 필요한 건 강아지라는 걸 누가 뭐래도 알고 있습니다.
부대 간부들은 앞장서서 사단장님께 말합니다. “부대 주변에 보이는 노끈을 치우겠습니다.”, ”노끈 역할을 할 수 있는 전투화 끈을 잘 동여매도록 해야 합니다.”, “옥상에 못 들어가게 문을 잠그겠습니다.”하며 말이죠. 그러다 우리 부대 주임원사가 일어서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발언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단장님. 노끈이 안보이는 것도, 전투화를 잘 매는 것도, 옥상을 안 들어가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용사들이 창문으로 갑자기 뛰어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싶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자, 중대장들이 아차 싶으며 창문은 잘 닫고 왔는 지 확인하라며 분대장들에게 속삭입니다. 사단장님도 끄덕끄덕 하시며 “그래요, 주임원사님, 좋은 생각이 있으십니까?” 하십니다. “창문마다 철책을 달아 놓는 겁니다. 그럼 고의라도, 실수라도 떨어지는 걸 예방할 수 있으니까요.” 듣고서 사단장님께서 “좋은 생각이다. 추진해봐라” 하니, 주임원사님도 신이나 침을 튀기며 이야기합니다. “제가 잘 아는 철물점이 있습니다. 제일 싸게, 그리고 튼튼하게 만들겠습니다!” 합니다.
하지만 저는 노끈도, 옥상도, 창문을 막는 건 그 수단이지 정말 자살하려는 이유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강아지였습니다. 강아지가 있으면 부대에 병영문화혁신이 되고, 용사들 자살도 막을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왜냐면 제 경험으로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제가 처음 이병으로 이 부대에 전입 온지 얼마 지나지 않고 곧 일병을 달 때였습니다. 제 사수한테 털리고, 행보관한테 욕먹고, 소대장한테 혼이 났습니다. 이유도 별게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선임들보다 먼저 휴가를 쓸 수 있냐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중대장님한테까지 불려가, “막내야, 휴가는 선임들보다 먼저 쓰는 게 아니란다. 군대도 하나의 사회야! 그런 룰을 지키는 게 사회생활이지. 그리고 넌 아직 온지 얼마 안 되었잖니? 다음달에 꼭 쓰게 해줄테니, 이번엔 양보하자. 나가봐라” 아무도 제 이야기도 듣지도 않구요. 저는 그렇게 여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꼭 나간다고, 기다려 달라고 약속했는데, 억울하고, 화도 나고 참 힘든 날이었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공구함에서 칼을 꺼내 왔습니다. 제 호주머니 안에는 칼이 있고, 개인정비시간에 어디서 조용히 죽을까 부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PX와 교회 사이에 좁은 틈을 발견해 거기 쪼그리고 앉아있었습니다. 날이 점점 어둑어둑 해지고, 청소시간도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곧 나를 찾겠구나, 얼른 결심 해야지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뒤에서 낑낑 소리가 들렸습니다. 보니 검은 색, 갈색, 베이지색 털뭉치들이 자기 어미 젖을 빨고 있었습니다. 아, 요 전부터 PX에 와서 슈넬치킨이나 소시지를 얻어먹던 그 어미가 새끼를 낳은 모양이었습니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녀석들이, 그 좁고 추운 공간에서 어미의 체온으로 그리고 어미는 자신의 체온으로 서로를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어미에게 목을 옥죄는 목줄이 있었습니다. 아마 누군가 버렸거나 도망쳤겠지요. 그렇게 숲을 방황하고, 사미천에서 떠내려와, 농가를 들렸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쫓겨나고, 길거리를 떠돌다 쓰레기를 뒤지고, 자기 새끼를 지키기 위해 이곳 우리 부대까지 들어온 녀석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여기 PX옆에 안착해, 가끔은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고, 자신을 욕하는 다른 간부들이나 용사들을 견디며, 여기서 새끼까지 낳은 겁니다. 다른 개들은 밖에서 사료를 먹을 때, 용사들이 가끔 주는 기름기와 염분 가득한 간식을 얻어먹으며, 몸에 안 좋을 것은 알지만 버티고 있는 거였습니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 어미는 지쳤는 지, 제가 옆에 있어도 그저 멍하니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기특해서 슬쩍 새끼와 어미를 쓰다듬었습니다. 새끼 털뭉치는 제가 또 다른 어미인가 하고 손가락을 빨았습니다. 아직 이빨 하나 나지 않은 채로.
그때 저는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주머니에 있는 칼로 어미의 목에 있는 목줄을 잘라내고, 너는 자유를 찾았구나 생각했습니다. 목줄을 보여주자 어미가 제 손을 핥습니다. 아마 고맙다는 표시이겠지요. 저는 그 때부터 알았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로를 돕고 지키려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부대에 노끈을 없애고, 전투화 끈을 이상하게 동여매고, 창살을 다는 게 아니라는 걸요. 이제 그 마음이 생기기 위해선 악습을 없애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용사들에게 자유와 책임이 주어져야 한다는 걸요. 그렇게 저는 그 자리에서 손을 들었습니다. 이번엔 소대장도 말리지 않았습니다.
# 9.
제시어 : 이미 잘 알려진 스토리를 하나 골라 패러디하시오.
국회의원 홍 씨와 국회 청소원 이 씨 사이에서 홍길동이 태어났다. 길동은 어릴 때부터 영리함이 남달랐지만 이 씨가 혼자 키워 제대로 된 학원도 다니기 힘든 처지였다. 학교에 들어간 길동은 뛰어난 성적과 성품으로 칭찬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머니에게 동정과 멸시가 섞인 시선이 날아드는 것은 어린 길동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길동은 생각했다. ‘나만 없었으면 엄마는 훨씬 행복할 텐데.’ 자신을 먹여 살린다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집에 돌아와 허리를 두드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죄책감이 밀려왔다. 입이 하나라도 줄면 엄마는 야간근무까지 하면서 고생할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어차피 의무교육을 마쳐도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길동은 어머니께 돈을 벌기 위해 지방의 공장에 들어가 살 거라는 편지를 남기고 집을 나왔다.
18살의 길동은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걸었다. 그가 살던 달동네는 족히 30분은 걸어야 지하철역이 나왔다. 동네 거리에는 힘없고 굶주린 사람들이 가득했다. 살던 곳이 재개발 구역으로 선정돼 비가 오면 천장이 흠뻑 젖는 판잣집으로 쫓겨난 할머니는 종일 폐지를 줍고, 막노동하다 다쳐 몸을 못 움직이는 부모님을 대신해 두 동생을 키우며 사는 아이는 이틀에 한 번꼴로 밥을 먹었다. 저 멀리 보이는 높고 반짝이는 빌딩에 사는 사람들은 아버지 같은 높은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며 떵떵거리고 사는 게 억울하게 느껴졌다.
길동은 뒷골목에서 친구들을 모았다. 다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활빈파’ 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못된 대기업 재벌들과 의원들, 그 높은 사람들이 힘없는 국민에게서 빼앗은 돈을 훔쳐 사람들에게 돌려주자.” 활빈파의 첫 희생자는 길동의 아버지였다. 길동은 그가 온갖 뇌물을 받아 집 베란다에 보관한다는 걸 알았다. 돈을 훔치자마자 길동은 연탄과 먹거리를 사 달동네로 향했다.
“아니. 이게 다 어디서 났어.”
“저 나쁜 윗대가리들, 자기들 잘 먹고 잘살기 바빠서 우리는 본체만체하는 그 사람들 돈이에요!”
“뭐? 그 높은 사람들 덕분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먹고 사는 걸 몰라? 나라를 일으키려고 얼마나 고생하신 분들인데 그런 분들 재물을 빼았는다니 그건 못 할 짓이지. 암, 그렇고말고.”
# 10.
제시어: 초능력이 생긴 뒤 나의 하루
나의 초능력이 가져다준 행복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불면증에 시달렸던 밤이었다.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하는 나에게 5시까지 뜬눈으로 지새운 밤들은 지옥이었다. ASMR 영상을 틀어도, 수면제를 먹어도 도적처럼 온 불면증은 나를 항상 깨어있게 했다. 이 불면증을 없앨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기꺼이 팔리라.
다음날 나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아침햇살에 자연스레 눈이 떠지며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킬 때, 아주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햇빛 감지. 멜라토닌 억제. 세로토닌 분비.” 낯선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나머지 새끼발가락을 침대에 찧고 말았다. 밑에서부터 척추로 타고 오는 통증을 느끼며 바닥에 구르고 있을 때 다시 들려온 목소리. “통증 감지. 엔도르핀 분비.” 엔도르핀이고 뭐고 얼른 이 통증이 멈췄으면! “통증 완화 실패. 엔도르핀 추가 투입.”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새끼발가락의 욱신거림이 가라앉았다. 머쓱해진 나는 몸을 일으키고 화장실로 향했다. 불면증 때문에 이제 헛것이 들리나 보다.
출근길에 날 맞이한 건 언제나 봐도 반갑지 않은 지옥철이었다. 하필이면 마스크를 쓰지 않은 몰상식한 인간이 내 앞에 있다니. 스트레스가 치솟았다. 하지만 수면도 부족한데 스트레스까지 받기엔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했다. 또 목소리가 들렸다. “스트레스 감지. 코르티솔 억제. 세로토닌 분비.” 마음이 진정되고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목소리가 들리는 상황의 가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커피를 먼저 찾았다. 아뿔싸, 하필 커피머신이 고장이 났다. 커피 없이 이 피로를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가. 그리고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피로 누적 감지. 아데노신 억제.” 마치 카페인이 몸에 들어온 것처럼 정신이 맑아지고 눈이 번쩍 뜨였다. 그때 깨달았다. 나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게 틀림없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이건 분명히 초능력이었다.
의지대로 호르몬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내 초능력이었다. 초능력을 일주일 동안 실험해봤다. 다시는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았다. 깊이 자고 싶을 땐 멜라토닌을 만들어내면 오로라 공주의 깊은 잠보다 달콤한 잠에 빠지게 되었다. 쓰디쓴 커피를 다시 찾을 필요가 없었다. 피로감을 느낄 때 아데노신을 줄이면 그만이었다. 업무 능률도 올라갔다. 노르아드레날린 분비량을 늘려 뇌를 최대한으로 활성화하면 ‘에이스’ 소리를 듣는 건 시간문제였다. 삶이 더욱 윤택해졌다. 나는 초능력으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내 초능력은 이내 권태를 불러왔다. 삶의 가장 미세한 부분까지 통제할 수 있게 되니 삶의 재미가 사라졌다. 불면증이 있던 그때가 힘들었지만, 더 재밌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간이란 얼마나 간사한가. 권태는 곧 우울감을 불러왔다. 우울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들리는 목소리, “우울감 감지. 도파민 분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행복인가?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 이것만큼은 건너선 안 될 강이었다.
나는 과거의 실수에서 배운 것이 없었다. 이내 도파민에 의존하게 되었다. 내 뇌는 도파민에 적응해갔다. 도파민 분비량을 계속 늘리고 오직 더 큰 쾌락을 좇았다. 그 길의 끝에는 모든 쾌락과 즐거움에 무감각해진 빈 껍데기뿐인 내가 있었다. 불면증을 없앴지만, 영혼은 사라졌다. 다시 한번 행복을 느끼고 싶다. “도파민 분비. 한계치 도달. 오류.”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나의 불행은 내 초능력의 끝이었다.
# 11.
제시어 : ~이(가) 왜 거기서 나와
주말 오후, 예쁜 디저트가 즐비한 카페, 세 친구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1.
“난 18살부터 연애를 쉬었던 적이 없잖아, 이번엔 헤어지고 좀 쉬어보려구.” 소정은 지희의 다짐을 듣자마자 속에 무거운 돌이 얹히는 기분이 들었다. 연애기간 최장 3개월, 그녀는 사랑이 어렵다. 연애가 왜 거기서 나와? 라고 말하기에 연애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다. 소정은 넌 늘 헤어짐을 준비하는 사람 같다고,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는거라는 말을 익히 들어왔지만 누군가와 깊은 속마음을 나눌 필요성도 이유도 느끼지 못했다. 사실은 누구보다 버려지는게 두려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남들에게는 그토록 동경하는 연애가 나에게는 풀다 만 문제집 같은거라니, 소정은 이번 대화 주제에서 잠시 빠지고 달콤한 딸기 케이크의 촉촉한 시트에 집중하는 편을 선택했다.
2.
“다음주에 엄마 아빠랑 제주도로 여행가기로 했어. 그니까 우린 다담주에 또 보자.” 지희는 생전 부모님 이야기를 하지 않던 효민이와의 대화속에서 엄마, 아빠 이야기가 나올줄은 몰랐다. 친구들이 부모님과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 지희는 늘 소외감을 느꼈다. 바빴던 아빠와 결국 불화로 이어진 부모님 관계의 피해자는 자연스럽게 지희가 되어버렸다. 성인이 된 지금, 부모님도 결국 오래되어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연인일 뿐이라며 이해해보려 하지만 마음 속 깊이 비어있는 한 부분은 이내 채워지지 않았다. “제주도 어디로 가? 나도 전에 부모님 모시고 갔다온 적 있어서 여행코스 추천해줄게!” 지희는 달콤씁쓸한 녹차라떼를 한모금 마시고 오늘도 거짓 추억을 꾸며낸다.
3.
“아맞다, 나 거기 인턴 붙었어. 근데 정규직이 아니잖아 걱정이다 걱정.” 효민은 소정의 말을 듣고 머리로는 축하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은 왠지 모를 질투와 자괴감에 휩싸였다. 그녀는 인생에서 흔히 성공이라는 것을 맛본 적이 없었다. 대학도, 성적도, 스펙도 뭐 하나 뛰어난 구석이 없었다. 어린 나이의 성공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선사해준다는 어른들의 말이 그녀의 가슴을 옥죄어왔다. 그녀가 그토록 숨기고 싶던 약점이 친구의 좋은 소식과 납득 가능한 고민에 툭 튀어나와 버릴줄은 몰랐다. 효민은 스스로가 괜시리 꼬인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씁쓸한 커피를 크게 한모금 삼켰다.
그녀들에게 찾아온 각자의 불청객을 커피와 디저트에 숨긴채 다음 약속을 기약하며 카페를 나섰다.
# 12.
제시어 : 이순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그는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꽃’이 된다. 김춘수의 시 ‘꽃’의 내용이다. 이 시의 내용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 있다. 오직 열 두 척의 배로 왜적을 물리친 역사적 인물, 바로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후 임금님에게 하나의 보고서를 올린다. <한산대첩 장계>가 그것이다. 필동, 김말손, 모노손, 난손∙∙∙. 이순신은 이렇게 전투에서 몸이 상한 어부, 토병, 심지어 노비의 이름까지도 세세하게 적어서 임금에게 보냈다고 한다.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이들이었고, 심지어 사람취급도 받지 못한 채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이순신은 평범한 노비들의 이름을 앞세워 주었다.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써내려간 것을 보면, 다치고 부서져도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누구라도 숙연해질 것이다.
인간의 유일무이한 정체성을 주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오로지 행위와 말, 그리고 행위와 말을 통한 타인과의 상호작용이다. 행위와 말에 참여하는 동안 개인은 자신의 행위와 말이 자기 자신의 어떤 모습을 드러낼지 알 수 없다. 회고적으로, 개인이 수행했던 행위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통해서만 개인의 정체성이 발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꾼의 기능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오직 이야기를 통한 기억만이, 행위자의 삶과 행위를 망각과 무의미에서 구제할 수 있다. 자칫 전장에서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들은 역사 속에서 차갑게 식어 잊혀질 뻔했다. 여기서 이순신은 백성을 버리고 떠난 고위 관료보다도 평범했던 이들의 이름을 앞세우며 이야기꾼의 역할을 자처했고, 이것이 우리가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이다.
이순신은 왜적을 물리친 용감한 장군이기도 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잔잔한 울림을 던져준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시민들은 이순신의 장계속에 등장한 이들처럼 이름을 남기진 못할 것이나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은 자극적인 고함, 혹은 유려한 미사여구, 또는 애국을 앞세운 말들로 스스로를 포장하며 이름을 떨치려는 쪽이 아닐까. 정치 공동체는 곧 기억의 공동체라는데,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어떤 서사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
# 13.
제시어 : 초능력이 생긴 뒤 나의 하루
로또라고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초능력이 생긴다면. 일단 나를 위해 아낌없이 쓴 다음에 지구를 구하는 일에 조금 보태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근데 문제는 너무나 하잘 것 없는 초능력이 생겨버렸다는 데 있다. 지구를 구하고 나를 구하기는 커녕 지나가던 개미새끼 하나 구할 수 없는 능력이다. 나에게 라면 물을 정확히 맞추는 능력이 생겨버렸다. 아무리 대충 넣어도 딱 멈춰야 되는 순간에 강렬한 느낌이 온다. 진진짜라는 오백미리. 신라면은 오백오십미리. 여기에 세트로 오분이 되면 저절로 불을 끄게 가야한다든지 하는 능력이 딸려오지 않았다. 여전히 끓이는 시간은 핸드폰 타이머를 이용한다. 그러니까 라면 특화라기에도 애매하다. 아니 초능력이라고 봐야할지도 애매하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외계인이 지구에 침략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오백미리의 물을 맞추는 대결을 해서 인간이 이긴다면 물러나겠노라고 말하는 것이다. 말을 할지 수신호를 할지 석판에 쓰인 걸 보여줄지 뇌와 뇌를 동기화해서 메시지를 전달할지 그 방식은 모르겠다만. 여튼 굉장히 황당하게도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이다. 그럼 내가 지구 대표가 되어서 멋지게 외계인과의 대결에 나선다. 수백번, 수천번, 수만번 물을 떠도 나는 늘 정확히 오차없이 500ml를 맞춘다. 약간의 변칙을 둔답시고 550ml나 450ml로 바꿔도 마찬가지. 인간쪽의, 내 쪽의 완벽한 승리다. 초대없이 지구에 쳐들어온 주제에 승부에 만큼은 진심인 외계인은 쿨하게 승복하고 본인의 행성으로 돌아간다. 지구는 침략당하지 않은 채 남겨진다. 나는 지구를 구한 사람이 된다.
그런데 지구를 구하면 뭐? 지구를 구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잠깐은 언론의 관심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모닝어쩌고쇼, 이브닝어쩌고쇼, 이런 곳에 불려나가서 물을 정확하게 맞추는 내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몇 번이고 정확하게 물을 맞추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환호할 것이다. 물론 그들은 돈을 받고 환호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게스트도 피디도 사람들도 내 능력이 정말로 그것밖에 안된다는 것 때문에 당황할 것이다. 아니, 당신, 지구를 구했잖아요. 근데 정말 그것뿐? 당신이 가진 능력은 그것뿐? 그 눈빛 앞에서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응. 그것뿐. 라면을 끓여먹기에 딱 적절한 능력, 그것도 동시에 여러명에게 끓이긴 좀 곤란하고, 딱 나 혼자 끓여먹기 적절한 능력. 딱 그것뿐. 식당을 차릴 수도 없어. 유튜브나 방송인으로 전업하기엔 영 모자란 마스크와 입담.
결국 난 다시 방구석에서 취직 준비를 하면서 라면을 끓여먹게 될 것이다. 오히려 괜히 세계를 구했다는 이력이 생겨버려서, 면접 때마다 집요하게 그 질문을 해대는 통해 답하느라 영 곤란할 것이다. 음, 그냥 제게 그 능력이 생겨버렸고, 마침 그 능력으로 지구를 구할 수 있었고, 그래서 구했고… 들을수록 영 기운이 빠지는 대답에 면접관들은 금세 흥미를 잃고 심드렁해질 것이다. 터덜터덜 집에 돌아가서 날 위로해주는 건 내가 정확하게 물을 맞춘 맛있는 라면.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생긴 이 초능력으로 지구를 구한 뒤의 미래가 더 별로다. 그러니까 그냥 이미 지구를 열다섯번쯤 구했다고 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능력을 소소하게 라면 끓이기에 활용하는 나, 이런 멋진 나라고 생각하고 살기로 했다. 후루룩, 잡생각과 함께 면을 삼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