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란 세균보다 크기가 작은 전염성 병원체를 이르는 말로, 어원은 '독'을 뜻하는 라틴어 '비루스(virus)'에서 유래했다. 스스로 물질대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DNA나 RNA를 숙주 세포 안에 침투시킨 뒤 침투당한 세포의 소기관들을 이용해 자신의 유전물질을 복제하거나 자기 자신과 같은 바이러스들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증식한다.
이 과정에서 숙주 세포가 손상 또는 파괴되기도 하고 숙주에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흔하게는 감기, 소아마비, 구제역과 같은 질환에서부터 과거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천연두나 에이즈, 근래 조류인플루엔자(AI)와 에볼라 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인식돼 왔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특성을 역이용해 바이러스를 암치료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른바 '항암바이러스(oncolytic virus)'라는 개념인데, 바이러스가 인체나 동물에는 전혀 해를 주지 않으면서 내재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복제감염력에 의해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사멸시킬 수 있다는 원리가 근간을 이룬다.
바이러스를 암치료에 이용하는 사례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부터 수차례 보고된 바 있는데, 1998년 캐나다 캘거리대학 연구진에 의해 분자생물학적 기작이 밝혀진 이래 다양한 종류의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항암 효과가 활발히 연구되고 있으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10여 종이 넘는 항암신약들이 개발 단계에 있다.
국내에서도 양산부산대병원 황태호 교수팀이 개발한 항암바이러스가 임상2상을 마쳤고, 단국의대 김만복 교수는 항암 효과가 있는 '다람쥐폭스바이러스'와 '믹소마바이러스'로 이미 한국과 중국에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항암바이러스의 개념과 역사, 치료 효과 및 임상에서의 전망에 대해 자세히 살펴봤다.
■ 바이러스 '감염력', 암 치료에 접목
- 국내에서도 연구 박차
- 양산부산대병원 황태호 교수팀, 백시니아바이러스 2상임상 완료
항암바이러스란 복제 가능한, 즉 감염력이 있는 바이러스로서 야생형 혹은 약독화된 바이러스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감염력을 유지한 채 어떤 유전자를 삽입해 암치료에 사용하는 바이러스를 의미한다.
간암 발생의 원인이 되는 B형간염바이러스(HBV) 또는 C형간염바이러스(HCV)나 자궁경부암의 주원인으로 지목되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등 발암바이러스(oncogenic virus)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개념이다. 국내 항암바이러스 전문가인 단국의대 김만복 교수(의과학교실)는 "항암바이러스와 발암바이러스는 그 종류(family, strain)가 완전히 다르며, 따라서 항암바이러스가 발암바이러스가 되거나 발암바이러스가 항암바이러스가 되는 사례는 없다"고 설명했다.
유전자치료제 벡터에 사용되는 바이러스들은 불활화(inactivated)돼 복제력이 없다는 점에서 기존 유전자치료제와도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초 부산의대 황태호 교수(양산부산대병원 임상시험센터장)팀이 말기 간암 환자에 대한 획기적인 치료 사례를 Nature Medicine에 공식 게재하면서부터 항암바이러스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기 시작했다(Nat Med. 2013;19:329-36).
황 교수팀은 말기 간암 환자 30명에게 JX-594(Pexa-Vec, 펙사백)를 투여한 결과, 저용량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평균 6.7개월, 고용량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평균 14.1개월 더 생존해 용량에 비례하는 종양반응 및 생존율 개선 효과를 나타냈다고 발표했다.
JX-594는 황 교수팀과 제네릭스사가 공동 개발한 암치료제로 천연두 백신으로 사용했던 백시니아바이러스(vaccinia virus)의 유전자를 조작해 만든 변종 우두바이러스다.
같은 해 5월에는 JX-594가 다양한 고형암 환자와 토끼모델에서 항체를 매개로 한 보체의존성세포독성반응(CDC)을 유도했다는 1상 및 2상임상 결과(Sci Transl Med. 2013;5:185ra63)가 발표되기도 했는데, 이러한 일련의 성과들이 공중파 방송의 교양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일반 대중에게도 알려지게 됐다.
황 교수는 지난 6월 제40차 대한암학회 학술대회에서 플레너리렉쳐(plenary lecture)의 연자를 맡아 JX-594 개발 및 임상과정을 소개하며 많은 암 전문가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현재 JX-594는 처음 개발 당시 협력업체로서 임상시험을 담당했던 신라젠이 지난해 말 제네릭스를 인수하고 향후 본격적인 상품화 의지를 표명함에 따라, 올해 안에 말기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3상임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 1900년대 초 바이러스 항암작용 최초 보고
- 정상세포는 영향 없고 돌연변이 발생한 암세포에만 작용
바이러스가 암치료제로서 개발이 본격화 된 것은 불과 10여 년에 불과하지만 항암바이러스는 실제 100년이 넘는 꽤나 긴 역사를 자랑한다.
1904년 Dock G. 박사팀이 자궁경부암 환자에서 광견병바이러스가 항암작용이 있다고 보고한 것이 그 시초이고(Am J Med Sci. 1904;127:563), 이후 조류바이러스, 감기바이러스, 박테리아 등 여러 바이러스들의 항암 효과가 보고됐다.
그러던 중 1956년 Robert R. Smith 박사팀이 미국암학회에서 복제 가능한 아데노바이러스의 여러 혈청형을 말기 자궁경부암 환자에게 혼합 투여했을 때 전체 환자 30명 중 5명이 완치됐다는 결과, 즉 약 20%에 달하는 치료율을 보고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Cancer 1956;9:1211-8).
1971년에는 악성 림프종의 일종인 버킷림프종(Burkitt's lymphoma) 환자가 홍역을 일으키는 바이러스(measles virus)에 감염된 후 암이 자연치유됐다는 사례가 세계적 학술지인 Lancet에 보고되기도 했다(Lancet 1971;2:105-6).
그러나 암세포를 죽이는 정확한 기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어 이러한 결과를 에피소드적인 측면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견해가 많았는데, 1998년 캐나다 캘거리대학 Patrick W. K. Lee 교수팀이 우리 몸에 있는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즉 발암유전자의 과활성화에 의해 리오바이러스가 특이적으로 감염을 일으킨다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항암바이러스 연구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EMBO J. 1998;17:3351-62).
Lee 교수팀은 바이러스의 복제 감염력이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사멸시킬 수 있고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은 정상세포에는 영향이 없다는 분자생물학적 기작을 최초로 밝혀냈다. 항암바이러스를 국소, 복강, 정맥 등으로 투여하면 돌연변이가 없는 정상 조직세포에는 영향이 없지만, 돌연변이가 50% 이상인 암세포에는 선택적으로 감염을 일으켜 종양이 파괴되고 암조직 신생혈관생성을 저해시킴으로써 종양을 억제하는 작용까지 일어난다는 것<그림>.
이러한 보고는 바이러스의 감염력을 암치료에 본격적으로 접목시키게 되는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왔다. 당시 캘거리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단국의대 김만복 교수는 특정한 바이러스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바이러스들이 발암유전자 중 종양억제유전자의 돌연변이, 즉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작용해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사멸한다는 사실을 보다 명확하게 알게 됐다.
2010년 김 교수 등이 발표한 항암리오바이러스와 항암토끼폭스바이러스의 분자적 항암기작에 대한 연구 결과(Oncogene 2010;29:3990-3996)가 그것으로, 이 연구는 항암바이러스의 복제감염력이 항암신약 개발에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함으로써 항암바이러스학(oncolytic virology)이라는 새로운 기초연구 분야의 태동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 항암바이러스 연구 어디까지 왔나
- 일부 암은 말기에서도 완치 가능성
- 자연 유래 바이러스 종류 무궁무진… 10종 넘는 신약 개발 중
바이러스에 암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최근 전 세계적으로 항암바이러스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겁다. 자연으로부터 유래되는 바이러스의 특성상 리오바이러스 외에도 헤르페스바이러스, 동물폭스바이러스, 홍역바이러스, 구내염바이러스 등 그 자원은 무궁무진하다.
국내외에서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항암바이러스 신약만도 10여 종을 넘고 임상 2상까지 진행된 바이러스 종만도 상당하다. 전임상 단계까지 고려한다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선발주자로서 가장 먼저 테이프를 끊은 것은 1998년 캘거리대학 Patrick Lee 교수팀에 의해 항암 효과가 최초로 밝혀진 리오바이러스지만, 이후 유사한 메커니즘을 갖는 다른 바이러스들이 속속 후발주자로 뛰어들면서 선두 자리를 내줬다.
▶항암헤르페스바이러스
현재로서는 다국적 제약사인 암젠에서 개발한 항암헤르페스바이러스인 온코벡스(OncoVex, HSV-GMCSF)가 가장 먼저 3상임상을 완료해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항암헤르페스바이러스는 감염력이 있는 바이러스로서 약독화된 바이러스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치료유전자를 탑재해 암치료에 사용하는 바이러스다. 활성화되면 입 주위에 포진 등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로 1954년 수두를 앓고 있는 환자에서 처음 분리됐는데, 독성을 유발하는 유전자인 ICP34.5를 없애 신경절을 감염하지 않도록 약독화시켜 사용할 수 있다.
정상세포 및 암세포에 존재하는 발암유전자 라스(Ras)의 변이에 의해 암을 선택적으로 감염시켜 암세포를 사멸하는 것으로 2001년 보고된 바 있으며(Nat Cell Biol. 2001;3:745-50), 진행성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한 3상임상에서 약 16%의 장기적인 항암 효과(최소 6개월)를 나타내며 기존 치료제인 GM-CSF보다 우수한 효과를 입증했고 현재 신약승인신청(NDA) 절차를 밟고 있다.
흑색종 및 두경부암 치료 용도로 개발된 온코벡스는 앞서 수술이 불가능한 진행성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2상임상에서 전체 50명 중 13명이 완치되는 높은 치료 효과를 입증하며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J Clin Oncol. 2009;27:5763-71). 당시 보고에 따르면 완전반응(CR)을 보인 환자가 8명, 부분반응(PR)을 보인 환자가 5명으로 RECIST 기준에 의한 종양반응률은 26%에 달했고, 1년 후 평가한 전체 생존율은 58%, 2년 후에는 52%였다.
▶항암리오바이러스
차세대 주자로는 리오바이러스가 헤르페스바이러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리오바이러스는 호흡기장관에 존재하는 무해한 바이러스로서 1960년도에 항암작용을 입증한 동물실험 결과가 Nature에 처음 소개됐다(Nature 1960;187:72-73). 항암리오바이러스가 정상세포 및 암세포에 존재하는 발암유전자 라스(Ras)의 변이에 의해 암세포에 선택적으로 감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1998년 이후 보고됐는데, 이 과정에서 암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을 경우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고 따라서 암의 재발도 막을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Br J Cancer. 2006;95:1020-7).
온콜리틱스 바이오테크사가 리오바이러스로 개발한 항암제 레올리신(Reolysin)은 다양한 암종을 대상으로 화려한 파이프라인을 자랑하는데, 약 80%의 뇌종양 환자에서 암세포를 감염, 사멸시키는 것으로 확인됐고 임상을 통해 안전성도 확보했다(J Natl Cancer Inst. 2001;93:903-12). 현재 두경부암 환자에서 카보플라틴, 파클리탁셀과의 병용 효과를 평가하기 위한 3상임상이 진행 중이다.
말기 부인종양 치료에 대한 효과도 보고됐는데(Cancer Res. 2002;62:1696-701), 미국립암연구소(NCI)와 부인종양학연구회(GOG) 후원으로 난소, 나팔관 종양 및 원발성 복막암 환자에서 파클리탁셀과의 병용요법에 대한 2상임상이 한창이다.
2상 단계에서는 말기 대장암 환자와 유방암 환자, 췌장암, 폐암, 전립선암, 두경부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암종을 대상으로 활발하게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췌장암 환자에서 카보플라틴, 파클리탁셀과의 병용요법과 전립선암 환자에서 도세탁셀과의 병용요법, 대장암 환자에서 FOLFOX, 아바스틴과의 병용요법, 비소세포폐암 환자에서 도세탁셀 또는 페메트렉시드와의 병용요법 및 유방암 환자에서 파클리탁셀과의 병용요법 등에 대한 임상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 전임상단계긴 하지만 단국의대 김만복 교수 등이 간암에 걸린 소 동물모델과 복강 내로 전이된 위암 소 동물모델에서 리오바이러스 투여에 의한 항암 효과를 입증해 논문을 작성 중이며 향후 임상시험을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암홍역바이러스
항암홍역바이러스는 백신용으로 개발된 약독화된 바이러스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치료유전자를 탑재해 암치료에 사용하는 바이러스를 말한다.
지난 2004년 다발골수종 환자에 대한 치료적 가능성이 시사됐고(Blood 2004;103:1641-6), 이후 암치료제로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 메이요클리닉에서 NCI 지원 아래 진행성 또는 재발성 불응성 난소암과 악성 흉막중피종, 두경부의 재발성 또는 전이성 편평세포암종 및 다발골수종 환자들에 대한 다양한 임상이 진행 중이다.
▶국내 개발 중인 항암바이러스
국내에서 임상적용이 가능한 바이러스는 리오바이러스와 믹소마바이러스, 다람쥐폭스바이러스 3가지 정도다.
국내에서 최초 개발된 항암바이러스는 다람쥐폭스바이러스로, 단국의대 김만복 교수가 그 장본인이다. 그는 일찌감치 항암동물폭스바이러스에 관심을 가지고 암치료제로서 가능성을 내다봤다. 항암동물폭스바이러스의 일종인 토끼폭스바이러스나 다람쥐폭스바이러스는 각각 토끼와 다람쥐에만 질병을 일으켜 다른 종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복제 가능한 바이러스로 야생형 혹은 약독화시켜 암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
김 교수는 2011년도에 동물폭스바이러스를 스크리닝한 후 항암기능을 보유한 토끼목 다람쥐폭스바이러스를 발견했고, 동물실험을 완료해 다람쥐폭스바이러스를 유효성분으로 포함하는 암 예방 및 치료용 약학적 조성물로 지난해 국내 특허를 받았다. 이와 관련 지난 6월 대한암학회 학술대회의 인터네셔널 세션(international session)에서 구연강연으로 채택돼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외에도 리오바이러스와 믹소마바이러스를 혼합해 용도특허까지 보유하고 있는 상태로 최근 중국에서 특허를 냈고, 한국과 일본에서도 심사가 진행 중으로 내년 정도면 등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금 더 빠르게 임상이 진행되고 있는 쪽은 양산부산대병원 황태호 교수팀이 개발한 펙사백(JX-594)으로 현재 2상임상까지 완료했고, 간암 말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3상임상을 목전에 두고 있다. 간암 외에도 신장암, 폐암 등 다양한 암종에서 종양수축 및 암세포 괴사를 유도하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황 교수팀은 대장암 및 신장암 환자를 위한 2상임상도 진행 중이다.
■ 인터뷰- 단국의대 김만복 교수
"항암바이러스는 암 치료제 개발의 보고"
- '살아있는 치료제'라는 게 가장 큰 매력이자 차별점
- 종별 병용전략·기존 치료법 접목 땐 잠재력 무궁무진
▲ 단국의대 김만복 교수(의과학교실) |
"바이러스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바이오산업을 리드할 수 있는 신약 개발의 보고입니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항암바이러스가 암치료에 활용되기 위해선 바이러스에 대한 인식개선과 함께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선행돼야 합니다. "
국내에서 유일하게 항암바이러스 관련 특허권을 2개나 보유하고 있는 단국의대 김만복 교수(의과학교실)는 마음이 급하다.
하루라도 빨리 항암바이러스를 제품화해 전 세계에서 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김 교수는 캐나다 캘거리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항암바이러스를 처음 접하게 됐다. 1998년 바이러스가 암을 치료하는 분자생물학적 기작을 최초로 밝힌 캘거리대학 Patrick Lee 교수의 영향을 받아 2010년에는 항암리오바이러스와 항암토끼폭스바이러스의 분자적 항암기작을 밝혀내기도 했다.
김 교수가 꼽는 항암바이러스의 가장 큰 매력은 기존 치료제와는 다르게 바이러스가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바이러스는 그 자체로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번식할 수 있고, 감염력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항체신약은 항체를 10개 투여한다고 하면 10개를 가지고 체내에서 치료를 하지만 항암바이러스는 증식을 통해 10개가 100개, 1000개가 돼 작용하기 때문에 인근에 있는 암세포에까지 감염을 일으켜 파괴시킨다. 마치 살아있는 공장과 같은 개념으로 메커니즘이 완전히 다르다.
전이가 일어나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 있는 말기암 환자에게 이보다 좋은 치료제가 또 있을까. 비율이 높지는 않지만 가끔 임상을 진행하는 중에 완치자가 나오는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김 교수는 "말기암 환자에서는 완치라는 개념이 없고 생존기간 연장만으로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최근 항암헤르페스바이러스 임상 결과를 보면 말기암 환자 10명 중 2~3명이 완치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왜 완치시키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바이러스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감염력에 비결이 있다고 보고 완치율을 높이기 위한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로서는 아직 제품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옵션이 없는 말기 암환자 위주로 사용되지만 시판 후 초기 암환자에게 1차 치료제로 사용하게 되면 치료 효과가 훨씬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궁극적으로는 기존 표적치료제나 수술, 방사선요법처럼 암환자의 표준치료요법으로 추가돼야 한다는 게 김 교수가 지향하는 바다.
한 가지 바이러스를 선정해 환자에게 몇 번 투여해서 치료반응을 보고, 만약 효과가 없다면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를 투여해 보거나 2가지 이상의 바이러스를 병용하는 전략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중기 이상에 해당하는 환자에게는 바이러스를 투여해서 종양 크기를 줄인 후에 수술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실제 항암바이러스 임상을 진행하다 보면 수술을 못할 정도로 큰 종양이 있는 환자가 바이러스 투여 후 수술이 가능해졌다는 사례들이 보고되기도 한다. 헤르페스바이러스 연구 데이터를 살펴보면 바이러스 투여만으로 치료된 환자와 바이러스 치료 후 수술을 통해 치료된 환자 등으로 구별해서 보고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식으로 기존 치료법에의 접목 또는 바이러스종별 병용전략을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항암바이러스가 지닌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바이러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개선돼야"
▲ 김 교수는 "바이러스야말로 항암신약 개발의 보고"라고 말한다. |
그러나 김 교수는 "임상에서 항암바이러스가 하루빨리 상용화되기 위해선 바이러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아직까지 바이러스가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원인이라는 고정관념이 워낙 팽배한 터라 인체에 해롭다는 인식이 강하고 독성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실제 항암신약개발사업단이나 범부처전주기신약개발사업단, 글로벌프론티어사업단에서 진행하는 과제를 수차례 지원했지만 최종 단계에서 안전성 문제로 탈락되거나 투자가 주저되는 경험을 허다하게 겪었다.
신약에 관한 한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들이 리뷰하지만 아직까지 허가관청에서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약으로 개발해 허가를 내준 사례가 없었고, 워낙 생소한 분야다 보니 국가적으로 추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국내 실정이 이런 만큼 항암바이러스가 면역치료제 혹은 항암백신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바이러스가 암세포를 감염시키면 우리 몸에서 백혈구가 암세포와 싸우는 작용을 촉진시키기 때문에 체내 면역력이 강화된다는 측면에서 넓게는 면역요법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기존 면역치료제와는 확연히 다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에서 유래된 만큼 인체에 안전하고, 국내 홍보가 잘 안되서 그렇지 축적된 외국 임상 데이터가 워낙 많기 때문에 안전성을 입증할 만한 자료는 충분하다. 가장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항암헤르페스바이러스는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 83개 병원에서 3상임상을 마쳤고 포함된 환자수는 400여 명에 이른다. 리오바이러스도 임상건수만 30건이 넘는다.
"국가 차원 적극 지원 필요"
김 교수는 "항암바이러스가 현재 우리나라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삼성 반도체보다도 더 큰 영향력이 있다고 본다"면서 "바이러스야말로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과감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고, 식약처 등과 논의해 신속승인이 가능한 방안도 고민해봐야 한다.
백시니아바이러스가 정부 지원을 받고 있긴 하지만 백시니아는 수많은 바이러스 종류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미국 국립보건원이나 캐나다 정부 등 다른 나라에서는 모두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
이러한 한계점들을 극복함과 동시에 김 교수가 제시하는 청사진의 첫 번째 단계는 먼저 항암바이러스학회를 꾸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국한된 소규모 학회가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포함해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대규모 학회를 만들고 싶다. 북미 등 외국에서는 항암바이러스 관련 연구가 활발한 반면 아시아 지역에는 아직까지 미약하고, 간암, 위암 등 아시아인에서 호발하는 암종에 특화된 연구가 우선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마침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치료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 직접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는 터라 정부 지원만 뒷받침된다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얘기도 아니다. 현재 항암바이러스 관련 임상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양산부산대병원이나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대형 병원들과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판을 키운다면 아시아권의 판도를 우리나라가 주도할 수 있다.
일단 치료제가 개발돼 1상임상을 통해 안전성만 확보되면 2상임상부터는 전국병원 혹은 중국에 있는 병원까지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할 생각이고, 그러기 위해선 벤처기업의 투자를 받거나 직접 설립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단국의대에서는 다가오는 2학기부터 대학원 과정에 국내 최초로 항암바이러스학과를 개설했고, 내년 완공을 목표로 건립되고 있는 암센터에 항암바이러스센터를 오픈하는 방안도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신학기에 합류하는 학생은 아직까지 1명에 불과하지만 다음 학기부터는 좀 더 많은 학생들의 지원을 받아 전문인력을 육성하고 이들과 함께 항암바이러스를 연구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자연에 수없이 존재하는 바이러스를 개발하고 바이오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의대 학생들도 기초의학과 바이러스 연구 분야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