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는 1920년대 르망 24시간 5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스포츠카의 명문이다. 1차대전 당시 항공기 엔진 설계사로 활동했던 창업자 W.O. 벤틀리는 뛰어난 성능의 차를 만들어 화려한 레이스 전적을 세웠지만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이 그렇듯 경영에는 소질이 없어 1931년 도산하고 말았다. 이후 롤즈로이스의 자회사가 된 벤틀리는 ‘조용한 스포츠카’라는 슬로건을 달고 70년간 롤즈로이스의 고성능 버전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만년 조연이었던 벤틀리에게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바로 고급차 시장 진출을 노리던 폴크스바겐이 손길을 뻗친 것. 비록 순수 혈통을 버리고 독일 메이커의 자회사가 되어야 했지만 벤틀리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가 온 셈이다. 폴크스바겐은 70년간 굳어진 벤틀리의 이미지를 깨기 위해 우선 르망 24시간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아우디 엔진을 얹은 GTP 클래스의 벤틀리 스피드8은 지난해와 올해 4, 5위의 꾸준한 성적을 기록하며 스포츠카 메이커로서의 새로운 기반을 마련했다.
이번에 발표된 컨티넨탈GT는 시장에서 벤틀리의 변화를 이끌게 된다. 주연배우의 이름을 ‘컨티넨탈’로 정한 것은 당연한 결과. 1952년 처음 등장한 컨티넨탈R은 디자인과 성능 등 모든 면에서 롤즈로이스의 고성능형이 아닌, 순수 벤틀리다운 감각으로 인정받은 명작이었다. 그 이름이 최근까지 이어져 왔지만 초대 컨티넨탈이야말로 벤틀리 역사를 대표할 만한 모델이다.
크루 공장의 첫 작품인 컨티넨탈GT는 지금까지의 거대한 차체와 비교할 수 없는 날렵한 몸매를 자랑한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벤틀리를 상징하는 번쩍이는 격자형 그릴과 날개 모양의 엠블럼. 좌우에 2개씩 달린 타원형 헤드램프는 언뜻 생소해 보이지만 컨티넨탈R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그 영향은 불룩한 리어 펜더 디자인과 패스트백 스타일의 트렁크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인테리어는 예상대로 품위 있고 고급스러움을 한껏 풍긴다. 무늬목과 고급 가죽으로 뒤덮인 대시보드는 크롬 장식과 어울려 클래식카를 연상시키고 대시보드 왼쪽 끝에 달린 키박스는 예전 르망 경주차의 흔적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최신 내비게이션 오디오와 팁트로닉 스타일의 시프트 게이트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최고급 GT라는 수준에 맞추기 위해 엔진은 페이튼에 얹고 있는 W12를 선택했다. 뱅크각 15°의 V6 2개를 결합한 이 엔진은 컴팩트함이 자랑거리. 배기량이 6.0X나 되지만 ‘500마력 이상’이라는 목표를 위해 KKK에서 만든 터보 2개를 더했다. 큰 배기량과 맞물려 2천rpm부터 레드라인까지 엄청난 토크를 뿜어내고 벤틀리 최초로 4WD 시스템을 얹었다. 강력한 엔진과 구동력이 어우러져 쭉 뻗은 고속도로에서부터 눈 쌓인 노면에 이르기까지 높은 성능을 발휘한다.
수퍼카급 성능을 지녔음에도 ZF의 6단 AT를 선택한 점에서 ‘스포츠’보다는 ‘GT’에 맞추어진 이 차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ZF는 포르쉐 팁트로닉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이 시스템 역시 팁트로닉과 거의 비슷하다.
컨티넨탈GT의 고강성 섀시에는 앞 더블 위시본, 뒤 멀티링크 서스펜션과 감쇄력을 조절할 수 있는 에어 댐퍼를 조합시켰다. 댐퍼는 코일 스프링 대신 공기의 압축력을 이용하기 때문에 컴팩트하고 높이조절도 된다. 여기에 보쉬의 ESP를 더했다.
컨티넨탈GT의 예상 값은 2억원 정도. 벤틀리의 가치와 품위에 수퍼카 수준의 성능을 가진데다 포르쉐 911 터보, 페라리 550 마라넬로, 애스턴마틴 뱅퀴시 등 막강하고 화려한 경쟁상대를 생각하면 결코 비싸지 않다. 롤즈로이스와 경쟁하게 될 새로운 프레스티지카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지만 첫 작품인 컨티넨탈GT의 성공여부가 벤틀리 홀로서기의 성공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차고에 벤틀리가 없으면 뜬 게 아냐!“ 힙합 프로듀서 저메인 듀프리의 말이다. 말 그대로 벤틀리는 미국 연예계에서는 성공의 척도가 되었다. 제이지가 98년에 처음 뮤직비디오에서 벤틀리를 몬 뒤로 랩퍼들은 전부 벤틀리에 대해 노래한다. 폭스바겐이 벤틀리를 인수한 후 2003년에 처음으로 내놓은 새 차종 벤틀리 컨티넨탈 GT는, 이전의 롤스로이스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에서 탈피해 보다 둥글고 유선형의 새 디자인으로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 연예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벤 애플렉, 패리스 힐튼, 릴 킴(원래 가수 비와 듀엣을 하려고 했는데 사기죄로 큰집 갔다 와서 못 했다는...) 등이 샀고, 영화 <러시아워>시리즈의 주연 크리스 터커는 이 차를 몰다가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되어 곤욕을 치렀다.
메시타입 그릴, 날개 달린 'B' 엠블럼, 트윈 서클 헤드램프 등 벤틀리의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가슴에 품은 12기통 6.0ℓ 트위터보는 560마력의 충만한 힘을 뿜어낸다. 최고시속은 312~318km,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4.8~5.2초에 불과하다. 물론 이보다 우수하거나 버금가는 라이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러나는 스포츠성과 이러한 고성능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는 차로서 벤틀리는 라이벌보다 한 발 앞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