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희보
● "유일한 지배자이신 하나님"
예수의 열두 사도 중 두 명의 시몬이 있다. 한 명은 요나의 아들 시몬 베드로이고, 다른 한 명은 열심당원 시몬이다. 열심당원 시몬은 신약성서에서 단지 사도 명단에만 올라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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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당원 시몬(1661년) 유채화, 98.3×79㎝, 렘브란트 그림 | ||
"열심당의 창시자는 갈릴리의 유다이다. 그 신조는 바리새인과 같다. 그러나 자유에 대하여 더할 나위 없는 애착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은 유일한 지배자이며 주님이다'라는 신앙을 주장하였다."
열심당원 중 극단주의자를 시카리(암살자)라 불렀다. 그들은 무리를 지은 강도로서 반달 모양의 단검을 사용하였다. 그들의 단검은 로마의 '시카'라는 낫과 비슷하게 생겼다. 이 무기로 수많은 사람을 암살하였다.
"열심당원은 죽음을 우습게 여겼고, 친척이나 친구를 죽이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목숨이 끊어져도 하나님 말고는 누구도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 굳은 결의는 널리 알려져 있는 바와 같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열심당의 정신적 선구자는 마카베오이다. 그의 뜨거운 종교적 열의가 검을 들게 하였고, 주전 2세기에 이교도를 유대 땅에서 몰아내었다. 이 마카베오의 이상은 로마가 팔레스틴을 정복하여 유대인을 지배하게 되면서 부활하였다.
열심당은 주후 6년에 있은 로마의 호적 조사 때 반란을 일으켰다. 갈릴리의 유다가 그 첫 지도자였다(행 5:37). 유다가 죽은 후에도 그들의 독립 운동은 계속되었다.
열심당원은 당면한 원수 로마 군대를 팔레스틴에서 몰아내고, 로마의 지배로부터 유다를 해방시키며, 로마의 국기를 예루살렘의 게양대에서 내려 찢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았다. 그 목적은 때가 이르면 메시아의 힘으로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확신하였다.
● 열심당과 예수의 제자들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후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를 가리켜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하였다. 그 선지자는 두말할 것 없이 메시아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요 6:15).
열심당원이었던 시몬은 일찍부터 자기들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메시아는 바로 예수라고 생각하였다. 아마 그는 예수를 조국의 독립 운동에 이용하기 위하여 예수의 제자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성서학자 오스카 쿨만의 저서 '예수 시대의 혁명가들'에 따르면, 예수 주위에는 열심당원과 같은 사상을 품고 있는 제자들이 모여 있었다. 열심당원 시몬 외에도 다음 제자들이 그 계열에 속한다고 하였다.
가룟(이스카리옷)이란 말이 라틴어 시카리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우선 가룟 유다,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주 예수께서 보아너게(우레의 아들)라는 별명을 지어준 요한과 야고보 형제.
복음서에 베드로가 검을 가지고 있다가 겟세마네에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자른 일이라든가, 세베대의 아들들이 주 예수의 좌우편 자리를 원했던 일이라든가, 제자들이 그 나라에서 누가 가장 높은가 하는 문제로 말다툼을 한 일 따위는 모두 열심당원과 어떤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신학자 아이슬러는 심지어 예수 자신이 열심당에 속하는 혁명가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비약한 추측이다. 주 예수는 빌라도에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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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운데)와 제자들(아래, 윗단) (독일, 데어 란 대성당 보물상자, 10 세기) | ||
열심당원 시몬은 처음에 종교에서 동떨어져 정치적이 된 메시아 사상의 소유자로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시몬은 처음에 열심당원으로서 다음과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만군의 주 여호와에 대해 열심인 광신도. 둘째, 율법에 대해 열심인 엄격한 율법주의자. 셋째, 애국심에 불타서 조국 독립에 대해 열심인 국수주의자. 넷째, 이방인 배척에 열심인 극단적인 배타주의자. 다섯째, 과격한 수단을 쓰는 일에 열심인 폭력주의자. 여섯째. 게릴라 전술에 열심인 테러리스트.
열두 사도 중 한 명으로 부름 받은 열심당 시몬은 주 예수와 밤낮 함께 행동하며 비로소 예수를 이해하게 되었다. 고결한 인격의 소유자인 예수는 사랑의 왕국에 합당한 국민을 만들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의 피로써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시려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시몬은 자기 인격도 사상도 날로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주 예수의 말씀이 자나 깨나 머릿속에 맴돌며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다. 시몬은 주 예수를 통해 지금까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충격을 느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38~42).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애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3~44).
시몬은 자기의 인격도 사상도 완전히 변하여 다른 사람이 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시몬은 '열심당원'이라는 이름 그대로 모든 것에 대해 열심이었다. 단지 열심의 대상이 육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바뀌었을 따름이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이었다. 둘째, 복음에 대하여 열심이었다. 셋째, 지상의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수립을 위해 열심이었다. 넷째, 하나님의 적대자인 사탄과의 전투에 열심이었다. 다섯째, 죄에서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열심이었다. 그리고 여섯째로 영적인 투쟁을 위해서는 자기 목숨도 아끼지 않고 내놓았다.
열심당원 시몬은 하나님 나라의 투사가 되었다. 예수의 제자가 된 그는 폭력주의를 부정하고, 주 예수의 희생적인 사랑을 따랐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단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 영광스러운 순교자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떠나가신 후 주의 사도들은 한결같이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떠나 해외 전도를 하였다. 시몬은 애굽과 페르시아와 메소포타미아 등 넓은 지역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예순 살의 나이를 갓 넘긴 무렵 머나먼 이방에서 슬픈 소식을 들었다.
일찍이 자기가 속해 있던 열심당원들이 벤 엘리아살 야일의 인솔 아래 겨우 천여 명의 소수 병력으로 막강한 로마 군대에 맞서 싸운다는 소식이었다. 그들은 사해를 눈 아래 굽어보는 마사다 요새에서 농성한다고 했다.
그들을 토벌하는 로마군 사령관은 플라비우스 실바로서, 그가 거느리는 토벌군은 제10군단 1만5천 명이었다. 마사다의 열심당원들은 3년 동안 버티다가 주후 73년 4월에 거의 전원이 장렬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열심당원이었던 젊은 날의 시몬은 사람을 죽이는 일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그릇된 혁명가였고 테러리스트였다. 따라서 시몬이 주 예수의 부름을 받아 제자가 되지 않았었다면, 아마 마사다에서 로마군과 싸우는 혁명가 중 한 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새롭게 거듭난 시몬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심을 새로 다짐하였다. 일찍이 열심당원이었던 시몬은 그 후에도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복음을 들고 중동 지역을 바쁘게 순회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열심당원 시몬은 페르시아 지역을 전도하며 이교도들의 박해를 받았다. 때로는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고, 몽둥이로 매를 맞아 거의 죽을 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몬은 굴복하지 않고 수아닐이라는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수아닐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이교도에게 붙잡혀 톱으로 허리를 잘려 순교하였다.
가톨릭은 10월 28일, 동방교회는 5월 10일이 열심당원 시몬의 기념일이다.
<서울장신 명예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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