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는 왜 실컷 싸우다가 하늘로 날아가지?
1999년 세계를 휩쓸었던 한마디는 “매트릭스란 무엇인가?”(What Is Matrix)였다. <매트릭스>는 한줄의 광고카피가 곧 영화 자체라는 사실을 증명하면서 끝없는 질문과 마침표를 찍지 못한 대답들을 쏟아내도록 만들었다. 철학자들이 책을 한권씩 쓸 수 있을 정도였으니, 한낱 주간지가 Q&A라는 기획을 만드는 건 가당치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매트릭스2 리로디드>는 전편이 탄탄하게 짜맞춘 구조를 조금씩 파먹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리로디드>는 “왜?”라는 지적인 질문에서 “왜!”라는 허무한 탄식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리력을 초월한 듯 신비한 고리들을 남기면서 공중을 꿰뚫던 총알은 네오의 절대적인 손바닥 앞에서 창문에 붙여둔 포도씨처럼 멈춰섰고, 시스템과 단절한 에이전트 스미스는 그새 인간의 유머감각까지 익혔는지 황당한 표정으로 네오가 떠난 자리에 남아 있다. <매트릭스3 레볼루션>이 이 거대한 신화를 마무리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까진 삼삼오오 모여서 궁금증을 풀어봐도 좋을 것이다. 여기 있는 건 <…리로디드>를 향해 던지는 몇 가지 질문, 워쇼스키 형제에게 물어봐야 마땅하나, 그들이 인터뷰를 하지 않는 탓에 누구도 묻지 못할 질문들이다. 일단 묻기는 한다. 그러나 무책임하게도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고 외면하고 싶다.
Q <매트릭스>에서 오라클은 네오가 ‘그’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매트릭스2 리로디드>에선 네오를 ‘그’로 대할 거였으면서. 그리고 오라클은 컴퓨터 프로그램답지 못하게 왜 그토록 모호한 대사로 일관하는 걸까.
→ 오라클은 네오가 ‘그’일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다음 생에서라면 또 모르지”(Your next life. Who knows?)라고. 그 예언대로 네오는 <매트릭스> 끝부분에서 호흡을 멈췄고, 트리니티의 키스를 받아 부활한 뒤 진정한 메시아로 거듭난다. 오라클이 그처럼 애매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건 이름과 함께 받아들인 숙명 탓이다. 오라클은 (고대 그리스의) 신탁, (예루살렘의) 지성소, 예언자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고대 그리스에서 신탁은 흔히 아폴론을 섬기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과 동일시됐고, 그 신탁은 모호하기로 이름높았다. 오이디푸스만 해도 신탁을 잘못 해석해서 신세를 망친 바 있다. 이상한 일은 오라클이 네오에게만 모호했다는 것. 모피어스에겐 “네가 ‘그’를 찾아낼 거야”, 트리니티에겐 “네가 사랑하는 남자가 ‘그’야”라고 똑 부러지게 말해준 듯하다. 오라클이 여자인 까닭은 아폴론이 암뱀 피톤을 쏘아죽인 뒤 속죄의 의미로 오직 여성만 사제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Q 네오는 100여명의 에이전트 스미스와 싸우다가 결국 하늘로 날아오른다. 왜 그는 처음부터 날아가버리지 않았던 걸까.
→ 국적과 노소를 불문한 전세계의 평론가들이 이걸 궁금해했다. <롤링스톤>의 피터 트래버스는 네오가 “재미로, 시험삼아, 관객을 위해” 그랬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워쇼스키 형제가 들었으면 기분 나빠했을지도 모르겠다. 트래버스도 이건 “쉬운 대답”이라고 전제했으니 어려운 대답을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네오는 스미스가 업그레이드됐다는 사실을 깜박하고선 100명도 문제없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아니면 자기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깜박? 혹은 메시아로서의 자존심이 훌쩍 도망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네오가 날아다니기만 한다면 무술수련하느라 죽도록 고생하는 다른 배우들이 반기를 들지도 모른다는 고민의 소치일 수도….
Q 그렇다면 스미스는 왜 날지 못하는가? 그는 이제 매트릭스 시스템의 일부도 아닌데.
→ 마음을 자유롭게 하지 못해서 그렇다. 프로그램의 한계다. 혹은 그에겐 모피어스 같은 사부가 없었다. 아니면 100명의 분신들을 추스르느라 바빠서.
Q 페르세포네는 매트릭스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키메이커’를 네오의 키스 한번에 넘겨준다. 네오가 좋아서가 아니다. 그녀는 게임 <엔터 더 매트릭스>에서도 고스트와의 키스 한번에 만족했다. 페르세포네가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는.
→ 여러 가지 설이 있을 수 있다. 먼저, 맛보기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는 페르세포네가 남편의 사주를 받아 “네오를 치명적인 위험에 빠뜨린다”고 홍보했는데, 정작 치명적인 위험에 빠진 건 “이놈의 여편네, 가만두나 봐라”고 분통을 터뜨리는 남편 메로빈지언이다. 홍보를 믿어본다면, 네오에겐 뭔가 더한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키스는 결정적인 그물을 치기 위한 입질용 미끼가 아니었을까? 혹은 시간도 없는데, 장소도 마땅치 않고, 보는 눈도 있고 해서, 대충 끝낸 거다, 성감대가 혀에만 쏠려 있는 거다, 트리니티가 무서웠던 거다라는 소수 의견도 있다. 그녀에게 이름을 준 그리스 신화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페르세포네는 저승을 지배하는 하데스에게 강제로 끌려가 결혼을 했다. 시작은 별로였지만, 이후 그녀는 꽤 정숙했던 것 같다. 신화 속의 그녀는 항상 하데스 곁에 얌전하게 앉아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므로 <매트릭스2 리로디드>의 페르세포네도 키스까지만 허용하는, 억눌린 한이 많지만 나름대로 착한 아내가 아니었을까?
Q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와 그의 함선 느부갓네살호 대원들은 파수꾼 역할을 하는 기계 ‘센티넬’을 무력화하는 전자파 EMP가 자신들의 유일한 무기라고 말했다. 그런데 애니매트릭스 시리즈의 <오시리스 최후의 비행>에 나오는 오시리스호는 EMP도 있고 커다란 기관총과 비슷한 무기 몇대도 장착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인가.
→ 모피어스는 인간의 도시 시온을 지키는 함대사령관 락과 앙숙지간이다. 모피어스의 옛 연인 니오베가 두 남자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락은 오라클과 메시아와 예언 운운하는 모피어스가 시온을 말아먹을 정신나간 함장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상관인 락은 모피어스에게 EMP만 되는 낡은 함선을 주고 “전부다 이래”라고 설명했을지도 모른다. 오시리스호와 느부갓네살호는 이름부터 격이 다른 것이 사실이다. 오시리스는 죽음에서 부활해 저승을 다스리고 죽은 자를 심판하는 이집트의 주신(主神) 중 하나고, 느부갓네살은 선지자 다니엘을 핍박하다가 그를 정점으로 왕국은 쇠락하고 멸망하리라는 예언을 듣는 폭군이다. <다니엘서>는 “그는 세상에 쫓겨나 소처럼 풀을 뜯어먹으며 몸은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에 젖었고…”라고 느부갓네살의 미래를 경고한다. 저승의 신 오시리스는 이름이 주는 불멸의 느낌과 달리 일찍 최후를 맞았지만, 느부갓네살호의 몰락과 함께 시온이 파멸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Q 네오와 그 동료들은 어마어마한 무기를 들고 경찰과 경비원들을 싹쓸이한다. 죽은 이들은 에이전트와 달리 매트릭스 밖 코쿤에서 잠자고 있는 진짜 사람들이다. 매트릭스 안에서 죽음을 맞는 순간, 그들의 육체도 함께 호흡을 멈췄을 것이다. 프로그램이 살상용 무기를 줄 수 있다면, 마취가스 같은 온화한 무기도 줄 수 있었을 텐데, 네오는 왜 굳이 살인을 고집했을까? 그가 정말 메시아라면 뭔가 다른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 네오와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는 이단자다! 중세 사람들이 <매트릭스>를 봤더라면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기독교도 중에는 <매트릭스>가 그노시즘에 기반을 둔다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노시즘은 진실에 관한, 좀더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던 중세 기독교의 이단이었다. 그들은 악을 물리치거나 신을 따른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설파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물질로 이루어진 이 세상은 신이 아닌, 2급신(lower god)의 창조물이었고, 진짜가 아니었다. 이런 교리를 조금 더 밀고 나가면 이 세상에서 사람을 죽이더라도 그것은 진짜 피흘리는 일이 아니라고 믿는 Cathars(카타르스 발음은 나중에 확인!)의 교리가 나오는데, 이는 <매트릭스> 안의 인간들을 대하는 네오의 태도와 매우 비슷하다. 만약 네오가 매트릭스를 파괴하고 인간을 구원한다면, 그는 내 남편 살려내라는 과부들한테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들은 처음부터 시온만 지키려고 했을 수도 있다. 수백만명이 한꺼번에 코쿤을 뛰쳐나오는 결말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대책도 없이 매트릭스의 본질로 다가간단 말인가. 팔레스타인인들을 예루살렘에서 몰아낸 시오니즘은 처음부터 배타적인 개념이었다. 시온 주민들도 그러지 않을 거라고 마음놓을 순 없다.
Q <매트릭스>에서 배반자 사이퍼는 에이전트 스미스와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이게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고 말한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실재란 뇌가 받아들이는 신호”에 불과한 거 아니냐고 묻는다. 그렇다면 인류가 매트릭스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선 안 될 이유가 뭔가.
→ 프린스턴대학 철학교수 제임스 프라이어가 설문조사를 했다. “친구가 몰래 네 험담을 했다. 나는 네 기억을 지워주고 통장에 10달러도 넣어주겠다. 기억과 망각,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90% 넘는 학생이 10달러도 안 받고 친구의 배신에 마음 아파하는 편을 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프라이어는 바로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매트릭스를 벗어나야 하는 이유가 아니겠느냐고 확신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가치 이상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만일 영화배우나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매트릭스 안에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혁명을 하고 싶다면, 기계들이 그를 제거하거나 아예 재부팅을 시도할 것이다. 그냥 자유가 아니라 정치적인 자유,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권리. 철학교수 제임스 프라이어가 제시한 이유다. 반발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 설문조사는 고작 10달러밖에 안 걸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거다, 동굴 속에서 사는 게 뭐가 좋다고 시온으로 가느냐, 어차피 이 세상에서 살아봐도 혁명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파란 알약이 더 유혹적인 건, 오히려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Q 키메이커는 매트릭스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인간들 중 하나가 아니다. 그는 매트릭스 내부 모든 문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일종의 해킹 프로그램에 해당하는데, 총에 맞아 죽는다. 말이 되는 걸까.
→ 여기에 관해선 아무런 정보가 없다. 추측해보자. 키메이커는 정말 열쇠(key)를 만든다(make). 디지털 신호로 돼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아날로그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그가 만드는 열쇠는 너무도 아날로그적인 나머지 깎고 나면 먼지를 털어내야 할 정도다. 그렇다면 아날로그 방식으로 죽음을 맞는 것이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최후가 아닐까? 혹은 네오처럼 에이전트들도 “재미로, 시험삼아, 관객을 위해” 총을 쏴봤더니… 죽더라… 일 수도 있겠다.
Q 키메이커를 지키는 천하무적 쌍둥이는 몸이 먼지처럼 흩어지면 어떤 물체도 뚫고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피어스와 트리니티, 키메이커를 뒤쫓다가 자동차가 폭발한 뒤 자취를 감춘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 그들이 죽어버렸다고 속단하면 서운하다. 세계 최대 인터넷 영화사이트 IMDb에 들어가 쌍둥이 배우 애드리언과 닐 레이먼의 출연작을 검색해보면, 형제가 <매트릭스3 레볼루션>에도 나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무리 그들이 무적이라도 충격을 흡수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분자에 가까운 상태로 멀리멀리 흩어진 것 같으니, 부서진 조각을 주워모으다보면 어느새 3편에 이르렀을 것이다.
>>> <매트릭스2 리로디드>는 1편보다 못하다. 그 이유는 키아누 리브스에게 대사를 너무 많이 줬기 때문이다. 그가 출연해서 성공한 영화들, <매트릭스> <코드명 J> 등을 떠올려보라. 키아누 리브스는 “나는 ‘그’가 아니야” 정도가 딱 맞는다.
>>> 사이퍼는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배반을 논한다. 스테이크가 그렇게 먹고 싶었으면 전 인류를 팔아먹을 게 아니라 매트릭스에 들어갈 때마다 아웃백 스테이크에 들르면 될 일이 아닌가.
>>>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반란군은 신경과 바로 연결되는 전선을 몸에 꽂고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없는 로딩 프로그램을 다운받는다. 왠지 마약과 주사기, 마약이 주는 황홀경의 관계 같지 않은가?
>>> <매트릭스> 속편 두편을 만들면서 3억달러가 들어갔다더라. 2002년 미국에선 1천명이 굶어죽었다. 그 사람들에게 30만달러씩 줄 수도 있었을 텐데….
>>> 네오가 메시아라는 증거 가운데 하나는 그가 매트릭스 안에서 녹색 코드로 사물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오퍼레이터가 그래야 하는 까닭은 매트릭스가 허상인 탓에 외부에선 매트릭스 내부를 이미지로 만들어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퍼레이터는 기호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네오는 그렇게 해서 뭘 하겠다고? 결국 스미스도 제거하지 못했는데!
>>> 매트릭스와 인간을 품은 코쿤들은 탯줄로 이어진 엄마와 태아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걸 악(惡)이라고 부른다. 이건 모성을 혐오하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 네오는 트리니티를 살리겠다고 슈퍼맨처럼 날아다닌다. 슈퍼맨도 애인을 살리려고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날았었다. 그러고보면 <매트릭스>에서 트리니티가 공중전화박스로 들어갔던 건, 공중전화박스에서 옷을 갈아입던 슈퍼맨을 향한 오마주가 아닐까?
첫댓글 이 기사는 여러가지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기사라고 쓴건지...
>>> <매트릭스> 속편 두편을 만들면서 3억달러가 들어갔다더라. 2002년 미국에선 1천명이 굶어죽었다. 그 사람들에게 30만달러씩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매트릭스보러갈돈으로 불우이웃돕기 했으면쫗겠는데..
비판한 기사..웃긴 부분도 좀 있군..흐흐.. 간단히 씹어주자구요..^^
네브가넷셀에 기관총있다고 케이님이 그러셨는데..쩝..기자는 조립을 안 했나보군!
어째, 딴지보다 더 딴지다운 기사군 -_-;;
영화에서는 어쨌든 유일한 무기라고 나왔고, 조립 장난감은 얼마 전에야 나왔잖아요.
아주 친절한 대답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