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집

[斗山 강신구]

외딴집

국제신도시가 만들어지면서 명지 바닷가엔 낙동강 사이 하류 저지대에 흙차들이 드나들며 두길 정도 높이는 평토작업이 한창이다. 서 낙동강 가의 하신 마을은 흔적 없이 뜯겼다. 당느티나무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나루엔 고기 잡는 배들이 둥둥 떠서 주인을 기다린다. 마을회관 문패가 나뒹굴어서 꽤나 큰 마을인가 싶다. 아마 중신 상신 마을도 있었나보다.

유명한 명지 파밭과 논이며 각종 채소밭들이 모두 신도시 계획에 들어가 드넓은 허허벌판으로 바뀌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통거리며 낙동강 재첩을 긁던 배들이 득실대던 여러 마을도 눈에 선한데 변화가 막 들이닥쳐 상전벽해가 이뤄지고 있다. 염전이던 곳에 일만여 세대 명지오션시티 주택단지가 들어서고 이어 저 위쪽 공항까지 에코델타시티 신도시가 들어선다.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떠나고 다니던 도로는 하나 둘 폐쇄 되었다. 갑자기 황량한 개발지가 되었다. 그 길을 가끔 지나는데 잡초로 우거진 휑한 풀밭은 여우나 늑대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어여뻤던 별장 한 채가 강가에 아직 남았는데 누군가 강 낚시도 하고 꽃나무를 가꾸면서 예쁘게 살다 간 집이다. 마당엔 잡초가 엉기었고 쓰던 가재도구가 어지럽게 나뒹굴었다.

저건 쓸 만한데 물통을 가져와 밭에 놓고 빗물을 받았다. 포구에 많은 배들은 버린 건가 주인이 건사하는 걸 못 본다. 다니거나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늘 조용하다. 보니 배 뒤에 비싼 모터가 다 달려있다. 길에 올려놓은 거며 줄지어 떠 있는 게 만날 그냥 흔들흔들 거리고만 있다. 북적대던 강나루가 잠자듯 적막하다.

저걸 몰고 늘 창밖으로 보이는 눈앞의 진우도와 기다란 신자도, 장자도, 대마등을 가 볼 꺼나. 모든 게 버려진 쓰레기더미인 이곳에 가며오며 주울 게 많다. 마지막 거둬들인 대파도 반은 버리고 있다. 아내와 주섬주섬 먹을 만한 파들을 골라 한 아름 안고 온다. 가구들과 냉장고 수상기 등 전자제품들이 막 버려져 있다. 찾아보면 쓸 만 것들이 꽤 보인다.

곧 뜯길 줄 알았던 강가 집은 그대로이고 그 옆에 낚시하는 사람도 보였다. 꼭 귀신이 나올 만한 집이다. 낮에도 이리 으슥한데 밤길을 가다보면 흰옷 입은 게 너풀너풀 보일 것 같다. 왜 안 뜯길까. 아내가 물통 갖고 온 게 늘 마음에 걸린다며 주인을 찾아 값을 치르자고 했다.

성산삼거리 씨앗과 모종 파는 종묘상에 가면서 혹시 누가 있나 살피지만 통 없다.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그럭저럭 지나다가 성지곡수원지 나들이 간다는 아내를 일행이 기다리는 교회에 태워주고 집에 오는데 발길이 그리로 향했다. 마당에 편지함이 삐죽이 나온 걸 봤다. 그 안에 써 넣었다. 주인님 미안합니다. 물통을 가져갔습니다.

연산동에서 당구 대회에 나가려고 연습을 하는데 전화가 왔다. 쪽지를 보고 전화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조금 화난 듯 퉁명스럽게 경찰에 신고했다며 남의 것을 왜 가져갔느냐며 나무랐다.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당구가 그만 안 된다. 내가 지금 도둑이 됐는데 주택침입 절도죄로 경찰에 불려갈 일이 큰일이다.

그리고 그곳 빈집으로 오라는데 거기 갔다가 맞아죽는 것이 아닐까. 어두운 밤 가면서도 꺼림칙한 게 걱정이다. 물통 값이 몇 푼이라고 괜히 가져와서 이지경이 됐나. 쓸데없는 짓을 하고 그만 곤경에 빠졌다. 아파트 단지를 지날 때는 길거리에 가로등이 밝고 사람들이 다니는데 벌판으로 들어서니 불도 꺼져 어둑어둑하며 꼬불꼬불한 좁은 길이다.

꼭 이리 가야하나. 낮으로 가끔 지났는데 밤은 처음이다. 소리없이 흐르는 서낙동강변의 물통집 가까이 왔다. 낮에 새동네에 놀러 나왔다기에 저녁 식사나 같이 하자며 가까운 호호 음식점이 어떠냐 했더니 저녁은 무슨, 물통 가져간 곳에서 만나잔다. 조금 누그러졌지만 그 빈 집에서 이 밤에 왜 만나자 할까.

어이쿠 웬걸 불빛이 보였다. 앞뒤 마당에 불이 켜져 길에까지 훤하게 비쳤다.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산속의 도깨비 불빛인가. 늘 텅텅 비어있던 집이 왜 이럴까. 거미줄도 보이고 마당 한 쪽엔 누군가 버린 유리조각들이 널려있고 뒷마당엔 뭣이 많이 버려져 있어 어지럽다. 풀이 섬돌까지 기어올랐는데 살기는 어찌 살았나.

으스스한 마음이 들었다. 전기 수도 등 모든 게 끊겼을 텐데 웬 전기불인가. 이 밤중에 홀린 것 같다. 개도 두 마리가 큼직한 게 목줄 없이 성큼성큼 걸어다니고, 마당엔 차도 두 대가 대 있었다. 집안엔 밝게 켜진 창안으로 딸그락 소리도 들린다. 외등이 켜진 마당에 주인이 서서 나를 기다린다.

오는 중간에 전화가 걸려왔다. 끝 네 자리가 모두 영번이어서 이런 번호도 있나싶다. 모든 게 이상하게 돌아간다. 빨리 안 오고 뭐 하느냐 협박하는 목소리다. 가면 나를 어찌 해 보겠다는 심산인가 재촉하는 게 무섭게 느껴진다. 죽을 각오로 마당으로 들어섰다. 잘못한 게 있으니 어찌 하겠나 달게 받아야제. 누가 가져가도록 버린 듯이 방치한 폐허를 나무랄 수 없다 주인 마음대로니까.

물통을 가져간 사람입니다 미안합니다. 새것으로 사 올까요. 값으로 드릴까요. 굽실하며 인사말과 함께 건넸다. 걸걸한 50대 남자는 아내에게 막 끌인 커피를 가져오게 해서 권했다. 시 텃밭과 행복마을 건너편 도로 가의 자투리땅을 일궈 채소를 즐겨 가꾼다는 말과 물이 없어 여기 물통을 갖다놓고 집에서 떠 나른다고 어색한 얘기를 이었다.

그는 같이 걱정하며 옆의 배수장 물을 이용하라고 일러주고 또 그곳은 도로공사에서 못 하게 할 수 있으니 그러면 자기 노는 땅이 있으니 사용하라고도 말했다. 길가집이어서 과실도 따 가고 개집도 가져가며 여러 가지가 자꾸 없어져 예민해졌다고 말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해결이 덜 돼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며 느긋한 마음이었다.

실컷 야단맞고 위협 당할 것을 각오했는데 따뜻이 대해주는 부부의 인정에 더 미안해 졌다. 많다며 안 받겠다는 돈을 억지로 손에 쥐어주고 나왔다. 속이 다 후련하다.

[화이트(백성기)]

하여간에 잘 하셨어요 메모도 전화도 남겨주었으니 특별히 도둑이라 할 수 없지요 빌려간 정도?
양심적이지요 방치한 사람이 잘 못 이지.

[푸른바람]

ㅋㅋ 글이 참 재밌네요. 소재감이 정말 좋아요. 훌륭한 수필 감인걸요.
이 글을 이뉴스코리아에 실으면 어떻겠어요? 허성욱 목사님께서 신문에 실을 수필을 찾고 계시던데
이 글을 추천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