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화) 아침 10시에 사무실에서 모임이 시작되었다.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고 찬송한 후에 여러가지 것 들을 점검했다. 짐이 너무 많았다. 각자 가방을 나누고 짐을 최소한으로 줄여갔다. 박스 반입이 금지라 하여 일일이 박스를 풀어 다시 짐을 쌌기 때문에 일이 더 많았다. 점심으로 라면을 먹었고, 이후에 자유롭게 시간을 가졌다. 나(김진위, 부산대 노어노문과 1년생)는 교수님댁으로 갔다. 곧 이상한 일이 터졌다. 이미 한달 전에 예매한 하바롭스크행 비행기 내 좌석이 2개가 모자란다는 것이다. 당장 내일이 출국일인데 수습할 방도가 없어 망연자실 한체, 그러나 기도하고 ‘여호와 이레’되신 하나님께 맡기기로 하고 잠들었다.
7/31 (수) 아침 4시 45 기상하여 씻고 교수님과 함께 택시를 타고 선교회로 달려 갔다. 짐은 봉고차로 다 보내고 교수님과 성훈형, 유간사님, 정희 누나는 정희누나 아버지 차를 타고 김해 공항으로 갔다. 모자란 좌석 둘은 서울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일단 비행기에 올라탔다. 미처 가져오지 못한 달러(비행기 표값)를 서간사님께서 이륙직전에 비행기 내로 가지고 들어와서 전해주셨다. 김포공항에 도착, 2청사 국제선 건물로 올라 왔다. 생각외로 사람이 많았다. 여권이며, 표며 너무 혼란스러워 모두가 짜증이 났다. 공항 이용권이 없어져 다시 돈을 내는 일까지 벌어져 계속해서 꼬이기만 했다. 이는 출발부터 사탄의 방해가 만만치 않음이었다.
다행히 좌석을 구해 모두 같이 가게 될 수 있었다. 비행기는 일부 지각생들로 인해 많이 지체되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야 러시아로 가는 것이 믿어졌고,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기내식을 하고 하바롭스크 시간 4시 40분에 도착했다. 남일우 선교사님께서 저녁식사로 ‘아세뜨리나’를 사주셨다. 생선튀김같은 건데 기름이 많아 느끼하긴 했지만 맛있었다. 선교사님 차로 여관까지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잠시 산책을 갔다. 끼오스크 (가판대)에서 광천수를 사들고 곧 들어왔다. 물이 없는 불편으로 공항에서 미리 씻고, 이 닦고 온 상태라서 곧 첫날 밤을 피곤한 상태에서 잠들었다. 몇몇 형제 자매는 선교사님께서 밤에 다시 방문하셔서 얘기를 나누고 늦게 취침하였다.
8/1 (목) 5시 반에 기상하여 김애영 전도사님의 인도로 예배를 드렸다. 여관차를 빌려 공항으로 갔다. 큰 짐은 따로 보내는데 가방하나가 통관절차에서 걸렸다. 모기 잡는 에프킬러가 문제가 되었는데, 이용권 교수님께서 그들에게 뿌려보면서 직접 설명하여 겨우 통과 되었다. 아마도 그들이 처음보는 거라 생소했던 모양이다. 이 사건은 나중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남아 있을 것이다.
기내는 휴가철 승객들로 북적거렸다. 비행기의 이륙과 동시에 우리는 유인자 간사님의 로프 일러스트레이션 (세개의 끈을 이용한 전도)으로 승객들을 주시하게 하여 전도지를 나누어 주며 기내에서의 첫 전도를 시작하였다. 대부분이 4영리 전도지를 꼼꼼하게 읽어 보는 것을 보고는 놀라기도 했다.
8시에 하바롭스크를 떠난 비행기는 10시 40분(캄차카 현지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였고, 이곳에서는 듣는 바에 의하면 아주 오래간만에 단비가 내려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이승희, 김유식 목사님께서 차를 몰고 마중나오셨고, 두 차는 뻬뜨로빠블롭스크에 있는 김유식 목사님댁으로 갔다. 닭고기와 연어로 푸짐하게 차려진 점심식탁을 대접받고 후식으로 차와 도너츠를 즐겼다. 한 성도가 딸기를 대접해서 그것까지 먹고는 부른 배를 움켜쥐고 숙소가 있는 옐리자바로 왔다. 한 아파트를 빌렸는데 지은지 10년된 새 집이었다. 짐을 풀고 정리한 후 8시 경 이승희 목사님 댁으로 향했다. 바다에서 갓 잡은 연어회를 먹었다. 식사후 교제를 잠시 나누고 지혜(이승희 선교사님 딸)와 내일을 기약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8/2 (금) 7시 기상, 예배, 산책 후 아침식사. 여행자 신고청에 가서 교수님께서 절차를 밟는 동안 자매들과 사진을 찍으며 현지 아이들이랑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두 목사님 차에 나누어 타고 바다로 갔다. ‘체르노지믈랴’라는 흑토로 된 모래사장으로 둘러쌓인 바다를 보았다. 이렇게 앞으로 우리에게 펼쳐질 일들을 구상하며 바다를 보는 동안, 두 사모님은 다시마를 캐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여기서 어부들이 낚은 연어류의 물고기 두마리를 선물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레닌 광장에서 기념 사진 촬영을 하는 등 거리를 배회했다.
북한사람이지만 러시아로 국적을 바꾼, 이 목사님 교회의 한 성도 댁을 방문했다. 만두를 먹었는데 좀 느끼했지만, 후식까지 먹고 잘 대접받은 후에 돌아왔다. 피곤했지만 새벽 3시까지 내일 있게될 성경학교 준비를 했다. 이름표, 자막, 포스터, 레크리에이션 등 너무 할 것이 많았다. 내일 아침에 다시 준비하기로 하고 잤다.
8/3 (토) 기상시간이 조금 늦어졌다. 전날 늦게 잠든 탓이다. 간단하게 체조하고 와서 식사하고 주일학교 준비를 했다. 붙이고, 만들고, 쓰고, 그리고, 11시 50분 쯤에 리허설에 들어갔다. 일일이 교정하고 다시하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잘 했다. 2시가 넘어 두 팀으로 나누어 각 교회에 가서 장식을 하고 동네 주변을 돌며 미리 준비한 어린이용 전도지와 자그마한 초청장을 나누어 주며 전도했다. 6시가 넘어서야 우리팀의 전도가 마쳐졌다. 다시 두 팀이 현지인 가정에 방문했다. 고려인인데, 그 딸이 부산외대 1학년에 공부하고 있는 니나 양이란다. 그때의 끄랍(게) 맛이란 잊을 수 없다. 후식을 들며 캄차카를 소개하는 비디오 감상을 잠시하고 돌아왔다.
8/4 (일) 7시 기상. 아침식사는 점심까지 든든하게 먹었다. 서둘러 차에 올라 9시 20분쯤 이목사님 교회에 도착했다. 다시 장식을 하고, 정리하고, 찬양연습을 했다. 어린이들이 모여 들자 찬양부터 가르치고 배웠다. 그 다음에 두 팀으로 나누어 성경관련 단어 퍼즐을 했다. 또한 성경암송을 테스트하고 달란트를 나누었고 광고를 한후에 어린이 프로그램이 종료되었다. 곧 어른들과 함께 예배가 시작되었다. 예배 중 우리팀이 소개되고 교수님께서 메세지를 잠깐 전하신후 함께 인사를 나눈후 우리팀은 김목사님 교회로 갔다. 어른을 대상으로하는 오전 예배는 이미 마쳤고, 목사님은 다른 모임으로 가셨고, 주일학교 학생들이 한 집사님의 인도로 찬양을 드리고 있었다. 우리팀이 소개되고 마이크를 이어 받았다. 은영 자매 인도로 찬양을 했고 교수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셨다. 2부 순서로 찬양, 율동 순서를 가졌다. 총기 왕성한 어린이들의 눈을 보며 전도자의 마음은 흐뭇했다. 마치고 나서 이목사님 댁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생선찌게가 맛있었다. 이 목사님 차가 고장이 나 유라(이목사님 교회 성도)의 차로 숙소로 돌아왔다. 도착하여서는 곧 잠을 자며 쉬다가, 다시 내일 부터 시작되는 여름성경학교 준비를 위해 피곤함도 잊고 준비에 임했다. 율동 겸 찬양은 번역상 율동과 순서가 맞지 않아 고심을 했지만 그럭저럭 준비가 되어 갔다. 마치는 기도를 하는데 문을 두드리길래 나가 보니, 아니 왠걸, 아이들이 딸기를 듬뿍 싸 가지고는 “빠다록”(선물)이라며 전해주는 것이다. 외국인을 보는 것이 생소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가까운 이웃된 임무로 우리를 반기는 것이다. 이렇듯 선물로 우리를 반겨주니 한결 더 기뻤다. 딸기를 나누며 나머지 정리를 했고, 곧 교수님께서 오셨으며 1시가 넘어 잠들었다.
8/5 (월) 7시 40분 기상, 예배, 식사. 곧 여름성경학교를 위한 리허설에 들어갔다. 이목사님 교회로 가서 프로그램에 따라 찬양하고 메세지를 전하고 놀이에 들어갔다. 놀이에서는 풍선불어 터뜨리기, 신발 원안에 던져 넣기, 사탕먹기 릴레이 등을 했다. 점수를 내고 편을 갈라서 이긴팀은 공책을 받고 진 팀은 볼펜을 받았다. 간식을 나누어 주고 반별로 모였다. 나이대로 반을 나누었는데 교수님, 김애영 전도사님, 춘화 자매는 상급생들인 12세 이상을 맡았고, 성훈형, 윤정, 은영 자매는 숫적으로 제일 많은 9세에서 11세의 어린이를, 유간사님, 정희 자매, 진위 형제는 8세 이하를 맡았다. 돌려보내고 우리는 버스로 김목사님 교회로 가기로 했다. 빵을 씹으며 버스에 올라탔다. 20분정도 버스를 타고 갔다. 역시 같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수월할 줄 알았는데 시행착오가 많았다. 이름표가 모자랐으며 많은 인원이 오는 바람에 장소를 이동해야 했고, 선물이 모자라 애를 먹기도 했다. 힘겹지만, 순간 순간 주시는 아이디어로 성경학교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억수같이 퍼붓는 비를 보며, 저녁 상을 받았다. 동네 애들을 앉혀 놓고 로프도 보여주고, 먹을 것도 주곤하여 돌려보냈다. 오늘 하루 진행된 일들을 재고해 보며 반성하고 계획을 짜고 나니 또 2시가 넘었다.
8/6 (화) 어제 너무 늦게 자는 바람에 8시가 되어 일어났다. 식사와 리허설후 12시가 되어 이목사님 교회에 도착하였고, 애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찬양( 찬송을 부르세요, 딥다운 인 마이 하트, 싹트네(растёт), 예수님찬양을 하고 간사님께서 준비하신 4영리에 관한 동화를 성훈형이 그린 시청각 자료까지 동원하여 얘기하셨다. 2부순서로 그림그리기를 했다. 자기 모습을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신분에 관한 내용을 도화지에 써 넣었다. 오래되고 낡아 더러운 크레파스 한자루에도 애정을 가졌던 애들을 보면서 그들의 소박함과 순수함을 다시 느낄수 있었다. 나집사님 인도로 색종이 공작을 했다. 매미와 새를 만들었다. 모든 순서를 마치고 선생님들은 잠시 다과를 나눈 후에 김목사님 교회로 갔다. 방을 더 큰 곳으로 옮겼고 같은 프로그램 대로 처음부터 진행해 나갔다. 피곤한 모습이 있었지만 끝까지 마쳤고, 저녁식사는 루바 집사님 (김목사님 교회 성도) 댁에 초대받아 거기서 했다. 딸기쥬스, 딸기 케익으로 후식까지 멋지게 하고 돌아왔다. 정리한 후에 헌금을 드리기 위해 20불씩 모아 100불씩 각 목사님께 드리기로 했다.
8/7 (수) 8시 기상. 비가 추적추적 날리고 있었다. 오늘은 까다로운 프로그램은 없어서 리허설 또한 간단히 마쳤고, 이 목사님 교회로 가서 찬양을 했고, 간사님과 전도사님께서 호흡을 맞춰 메세지를 전했다.“ 나는 얼마짜리인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후, 곧 바로 십자가 게임으로 들어갔다. 자기 죄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인데, 그때서야 숙연해지는 애들을 볼수 있었고, 오히려 우리가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은혜가운데 마쳤고 사모님께서 사 오신 빵과 차를 간단히 나눈 후에 김목사님께서 오셨고, 우리는 곧 이동했다. 그 쪽은 애들이 많기 때문에 통제가 어려웠으나 여러 집사님들의 도움으로 잘 마칠수 있었다. 어제 그림그렸던 것에 대해 시상하고, 선물을 나누어 주며 기념촬영을 끝으로 돌려 보냈다. 우리도 숙소로 곧장 돌아와 쉬며 저녁 준비를 했다. 식사는 닭고기로 맛있게 했다. 교수님께서는 목사님과 함께 목사님 댁에서 주무시기 위해 가셨고, 청년들도 곧 잠들었다.
8/8 (목) 예배후 아침식사는 어제 먹다 남은 닭고기로 했다. 짐을 싸고 방을 정리한 후 두 목사님 차에 나누어 타고 ‘빠라뚠까’ (야외 온천 수영장)에 갔다. 거기서 피로를 풀고 연어가 거슬러 올라간다는 강가로 갔다. 모닥불을 피워 돼지고기와 연어고기로 바베큐를 해 먹었는데, 여태껏 맛보지 못한 특이한 것이었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짐을 싸고 떠날 채비를 했다. 공항에는 따냐 가족이 마중을 나왔다. 30분 정도 기다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비행기가 도착하자 비자를 체크하고 표를 확인하고 짐 정리하고 나오니 철조망 뒤에서 모두들 서 계셨다.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지혜(이승희 선교사님 딸), 사모님, 셔틀버스안에서 곧장 눈물을 보이는 정희 자매까지 가슴찡한 장면들이었다. 막상 떠나려니 서운하고, 만남을 통하여 어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이토록 가슴아픔을 알 수 있었다. 8시 30분에 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4시간을 비행후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다. 공항 가까이 있는 정득수 목사님 교회로 갔다. 비행기 내에서 쌓인 피로로 인해 저녁은 생각이 없었으나 간단하게 나누었다. 자매들은 목사님댁을고 가고 형제들은 교회를 지키는 의미로 의자를 붙여 교회에서 잠을 청했다.
8/9(금) 8시가 되어 일어나 예배드리고 식사. 전도나갈 준비를 했다. 전도지에 주소와 시간등을 적고 오후에 연습할 찬양곡도 준비했다. 그리고, 나따샤, 지마 부부와 스베따 등 현지인들과 함께 교회 주위를 돌며 전도를 시작했다. 여러팀으로 나누어 한시간 반정도 전도지와 성경을 나누어 주었다. 4시 반쯤 되어 꽁치찌게를 곁들인 식사를 하고, 이곳 교사들과 아이들에게 찬양과 율동을 가르쳐주는 시간을 가졌다. 자매들은 목사님댁으로, 형제들은 약수터로 물 길러 갔다. 오염되지 않은 시원한 물을 마신후 지쳐서 이내 곯아 떨어졌다.
8/10 (토) 7시 기상. 아침을 빵과, 계란, 과일로 간단히 했다. 두 차에 나누어 타고 바자르(시장)에 들렀다. 환전과 간단한 선물을 사기 위함이다. 시장에서 진짜 꿀도 샀다. 블라디보스톡 시내로 가다가 한 차가 펑크가 나긴 했으나, 한국관으로 들어 가는데는 늦지 않았다. 거기서 윤미경 선교사님과 사모님께서 우리에게 점심을 대접하셨다. 비빔밥, 된장찌게, 생선 매운탕, 갈비탕 등으로 모처럼 맛있는 식사를 했다. 다음 국영백화점으로 가서 흩어져서 쇼핑을 하고 잠시 후에 다시 모여 해변으로 갔다. 잠깐 구경후 자매들은 저녁준비를 하고 현지인들이 한글을 배우는 시간에 같이 동참하기도 했다. 그동안 목사님 가정과 형제들은 목욕탕에 갔다. 자작나무로 몸을 두드리는 특이한 것도 해보고 여튼 좋았다. 저녁 역시 빵으로 했다. 내일 주일 맞을 준비를 하며 취침했다.
8/11(주일) 7시 기상, 기도 모임, 아침식사는 빵과 커피를 하고 예배를 위해 의자와 탁자 정돈을 하였다. 예배 30분전에 찬양으로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성도들간에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러시아어로 찬양을 드렸다. 뜻도 몰랐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은 같았던것 같다. 그리고 예배의 형식은 같았다. 중간에 우리팀이 ‘거룩 거룩 거룩하신 주’ ‘찬양 알렐루야’로 특송을 하고 교수님께서 소개 받으시고 간단히 메세지를 전하셨다. 이어 목사님께서 통역관 형제를 더불어 함께 말씀을 전하셨다. 예배를 파한 후 1시부터 어린이 예배를 드렸다. 30분간의 찬양 후 콘스탄찐이라는 선생님이 입체 설교를 하셨다. 예배 후 교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함께 둘러 앉아 찬양을 드리고, 기도하고, 이름도 외우고 했다. 세시간 정도 전도사님과 은영 자매가 올랴, 스베따에게 율동을 많이 가르쳐 주었다. 그들의 배우려는 자세는 남달이 적극적이었다. 저녁은 자매들이 예쁘게 만든 빵과 과일 등으로 함께 먹었다. 늦은 시간에 ‘옹기장이’ 찬양사역자이신 임재규 전도사님과 그의 가정을 방문했다. 언어훈련이 부족하지만 교회를 세우고 있는 분이다. 배가 불러 거의 먹지 못하고 돌아와 잤다.
8/12(월) 마지막 날이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다. 새벽 6시에 일어나 형제들이 한시간 정도 설겆이를 하고 곧 자매들이 와서 교수님 인도로 예배를 드렸다.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갔다. 짐을 나누어 싣고 ‘세관신고서’를 찾고 쓰느라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다. 목사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비행기에 올랐다. 깨끗하고 서비스 좋은 블라디에어로 김해 공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