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군 출신으로 10대에 성석근과 결혼하였지만 결혼 몇 달만에 조선인민유격대에 들어간 후 소식이 없는 남편을 찾아 지리산으로 들어간 정순덕(鄭順德). 그녀의 운명은 그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모질고도 모진 질곡(桎梏)의 연속이었다. 그넘의 이데올로기가 따슨 이밥과 쇠고깃국 한 그릇 가져다 주지도 못한 건 줄도 모르고...
1963년 그녀가 체포되고 그때 입은 총상으로 다리까지 절단되면서 도하 각 신문 제 1면에 '마지막 빨찌산 정순덕 체포'란 제목으로 호외(號外)까지 뿌려졌으니...게다가 이후 '비전향 장기수'란 훈장까지 버젓이 달았으니 뭐 유물론 무서운 게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었지만, 사람만큼 무섭고 믿을 수 없는 게 또 어디 있으리랴만 ...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로 시작되는 정지아님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 2023)는 무남독녀인 딸로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찾은 고향에서 겪은 이야기의 형식이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사상을 전향했다던 정순덕은 2000년 남북 공동선언으로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한으로 송환될 때, 느닷없이 자신은 고문과 강압으로 전향했다고 한 것이지 실상은 아직도 북조선의 체제를 이상향으로 보는 바 북으로의 송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가 그녀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북으로 갈 수 없었으며, 2004년 그녀는 인천에서 한 많은 삶을 마감하게 된다.
소설에서 그녀의 아버지 역시 죽는 순간까지 맑스(Karl Marx)의 유물론(唯物論)을 버리지 않고 꿋꿋이 살아왔으나, 자유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겪은 오랜 경험으로 자신의 신념이자 신조(creed)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서리 그는 침묵하고 체념하면서도 인간다운 삶의 행적을 좇으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생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실천으로 옮긴다.
남의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가슴 아파하면서 돕지만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배신이요 무관심뿐이지만 그는 언제나 말한다. '사램이 오죽험시 그럿것냐'라고...주머니가 비어 딸에게 3만원만 보내달라고 한 늙은 혁명가의 비루한 현실에 '하염없이'란 게 바로 그런 거로구나.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버렸다고 선언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살다간 길은 험난한 이데올로기의 노정(路程)이 아니라 가슴 따뜻한 인간의 길이었다는 걸 3일간에 걸친 장례를 치르는 가운데 깨달으면서 소설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