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요한 15,16)
교회는 오늘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명인 성 야고보 사도를 기억합니다. 갈릴래아 벳사이다 출신의 야고보 사도는 제배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요한의 형으로서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그 분의 제자가 되어 순교로서 복음을 전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야고보 사도를 기억하는 오늘, 오늘 복음 말씀은 사도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어머니와 함께 등장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그런데 이 복음 말씀 가운데 우리의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은 우리 흔히 알 듯 두 제자와 그의 아버지 제배대오라는 인물 외에 이들의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복음서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들의 어머니가 등장하는 유일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의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그 등장부터 인상적입니다. 그녀는 무턱대고 정말 말 그대로 무턱대로 예수님 앞에 자신의 두 아들을 데리고 와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청을 올립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요한 20,21ㄴ)
무작정 두 아들을 앞세우고 예수님을 찾아와 청을 올리는 그 청의 내용이 참으로 기가 찰 정도로 당차며 극성맞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녀의 무례함은 그녀가 청을 올리는 태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녀는 다른 많은 사람들, 병자들과 악령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청을 올리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그녀의 청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병자들에 예수님께 다가와 그 분 앞에 엎드려 자신의 간절한 청을 예수님께 아뢰며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청한 반면, 그녀는 내가 원하는 것은 예수님이 들어 줄 것이라고 확정하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지금 당장 나에게 말해 달라는 식으로, 마치 협박하듯이 내 청을 안들어주면 안된다는 식으로 예수님을 몰아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극성맞은 어머니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녀의 이런 모습을 자신의 아들들을 극진히 생각하는, 아들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모습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라도 선을 넘어선듯한 과한 모습으로 보이면서 동시에 야고보 사도를 기억하는 축일에 과연 이와 같은 부끄러운 어머니의 모습을 전하는 복음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의문을 갖게 합니다. 사도라면 적어도 자랑스럽고 믿음의 모범을 보인 모습, 그의 가족의 모범적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 상식적일텐데 왜 교회는 야고보 사도를 기억하는 오늘 그의 어머니의 이 같은 부족하고 모자란 모습을 전하고 있는 것일까?
이 의문은 복음에서 드러나는 사도 야고보의 모습을 살펴보면 더욱 심각해집니다.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이 어머니의 모습 뒤로 두 아들, 곧 예수님의 제자라는 야고보와 요한의 모습이 그려지며 그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이 청을 올리는 어머니의 뒤에 서 있었을까 상상을 해 봅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를 들은 다른 제자들이 이 두 형제를 불쾌하게 생각했다고 오늘 복음은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극성맞은 어머니가 갑작스레 자식들을 데리고 와 제자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예수님께 말도 안 되는 청을 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 청으로 인해 언제나 함께 하는 형제와도 같은 동료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과연 이 두 아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리고 어떤 표정으로 자신의 극성맞은 어머니의 뒤에 서 있었을까요? 어머니의 그런 행동이 도에 어긋난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면 그런 어머니를 말렸어야 하는 것이 지당하건만 그들은 가만히 있을 뿐입니다. 아니 가만히 있을 뿐만 아니라 극성스런 어머니의 뜻대로 예수님이 묻는 대답에 쭈뼛쭈뼛 대답합니다. 아마도 어머니가 등뒤에서 찌르는 그대로, 어머니가 원하는 대답을 예수님께 로봇처럼 대답 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 한심스러운 마마보이의 모습입니다. 어머니의 극성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그 극성에 놀아나는 두 제자, 또 그 어머니와 두 아들들이 그와 같은 청을 올렸다고 해서 그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다른 제자들의 모습 역시 한심스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이 전하는 제배데오의 두 아들들과 어머니, 그리고 다른 제자들의 모습은 사도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한심하고 부족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낼 뿐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님은 왜 이렇듯 한심한 청춘들인 제자들을 당신의 제자로 뽑으셨을까? 예수님은 그들의 무엇을 보고 그들을 당신의 제자로 삼았을까요? 그리고 사도를 기념하며 축일을 보내는 오늘 교회가 이와 같은 복음을 선택하여 우리로 하여금 읽도록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오늘 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그 해답을 제공해 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편지글 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2코린 4,7)
질그릇은 말 그대로 쉽게 깨어질 수 있는 그래서 아무렇게나 막 쓰는 그릇을 가리킵니다. 그런 그릇에 소중한 무언가를 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소중한 것은 질그릇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이 우리를 선택한 것이 바로 이 깨지기 쉬운 보잘 것 없는 질그릇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바로 그 질그릇과 같은 우리 안에 당신의 은총의 보물을 담아 주신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우리의 능력이나 힘이 아닌, 오직 하느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게 하도록 하기 위함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내가 무엇을 하려고 내 뜻에 따라 일을 진행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의 능력이 나의 위대함이 드러나기를 바라고 희망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잘 되게 되기를, 내가 뜻한 바대로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올립니다. 그런 기도는 오늘 복음에 등장한 제배대오의 아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의 기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미 원하는 것을 정해 놓고 예수님께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달라고, 마치 맡겨 놓은 것을 찾는 이의 마음처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한다면 하느님을 마치 서비스센터 직원, 심부름센터 직원처럼 대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원하는 이것을 당신이 이루어달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판기 커피를 뽑아마시듯 하느님을 자판기로 대하는 태도, 제배대오의 아들들의 어머니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우리들의 얕은 믿음의 모습이며 얄팍한 속내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도들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에서 드러나듯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은 형편없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극성맞은 어머니 앞에서 아무것도 못한 채 질질 끌려 다니는 마마보이의 모습의 제자들, 또 더 높은 자리를 원하는 두 제자의 모습에 마음이 상해 언짢아하는 다른 열 제자의 모습, 그 놈이 그 놈인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제자들의 인간적이고도 부족한 모습은 오늘 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질그릇 속에 당신의 놀라운 은총을 담아 둔 하느님의 보물의 참 가치를 더 잘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아울러 오늘 복음 환호송의 말씀처럼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 그 분이심을, 우리의 능력이나 의지가 아닌 하느님 바로 그 분이 우리 안에서 당신의 놀라운 열매를 맺어 주시는 분이심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우리의 능력이 뛰어나서, 우리가 남보다 잘나서가 결코 아닙니다. 우린 그저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우리를 뽑아 이 세상에 세우신 바로 그 이유로,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아니 턱없이 부당하지만 우리라고 하는 질그릇 속에 담아 놓으신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그 선물의 전적인 힘으로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사도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뽑힌 이유 역시 바로 그것이며, 우리가 오늘 야고보 사도를 기억하며 마음 속에 새겨야 할 진리 역시 바로 그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요한 15,16)
여러분 역시, 야고보 사도를 기억하는 오늘 우리에게 들려진 이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나약하고 죄 많은 질그릇 같은 우리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놀라운 기적을 여러분의 삶 안에서 체험하시길, 그래서 그 기적으로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요한 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