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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5:19-20(953) 하나님의 선물 2024.12.15
탈무드에 보면 “하나님의 선물”이란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을 사람에게 선물하기로 작정합니다. 이 보물은 ‘사랑’이라는 보물인데, 이 귀중한 물건을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 잘못 사용할까 봐 걱정을 합니다.
그래서 이 보물을 어디에다 숨겨 놓을까 하나님은 고민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꼭대기에 숨겨 놓을까? 땅 속 깊숙이 파묻어 놓을까? 깊은 바다 밑바닥에 숨겨 놓을까?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숲속 한가운데 숨겨 놓을까?” 그 어떤 장소를 선택해도 똑똑하고 머리가 좋은 사람들인지라 쉽게 찾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은 그 보물을 사람 속에 넣어 두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을 잘 돌아 볼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사람의 눈을 밖을 향해서만 보게 하고 안은 들여다보지 못하게 합니다. 꽁꽁 감추어 버리면 선물이 아니기에, 하나님은 이 보물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한 가지 알려 줍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줄 때에 내 속에 감추어져 있는 소중한 보물인 사랑을 느끼게 한 것입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선물>은 무조건 비싸야 한다고 말하지만, 선물은 비싸지 않고 평범할 때에 받는 자가 부담 없이 받을 수 있어서 무난합니다. 왜냐 하면 선물이 너무 비싸거나 부담스러우면 선물의 가치는 도리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선물과 뇌물의 차이’를 아시나요? 똑같이 백화점 상품권이 오고 가지만 선물과 뇌물의 차이점은 명확하게 구분됩니다.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선물은 대가를 바라지 않지만 뇌물은 대가를 바란다”는 차이점입니다. 또한 “선물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지만 뇌물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출 18장에는 모세를 도와 국정을 이끌어 나갈 지도자를 세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때에 세워진 지도자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선택할 때의 자격을 두고 이렇게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출 18:21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라고 합니다. 불의한 이익을 미워한다는 말은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 선물을 주셨습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값없이 구원받게 해 주시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생을 얻도록 선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일부의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에게 뇌물을 바치는 것처럼 생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뇌물을 바친다니,, 이것이 무슨 말인가요?
그것은 ‘내가 하나님에게 무언가를 드릴 때에 대가를 바라면서 하나님에게 드려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이것을 하나님에게 바치면 하나님이 나에게 저것으로 더 크게 복을 주시겠지’라는 생각은 하나님에게 뇌물을 바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가 고마워서 하나님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하고 바치는 것은 선물입니다.
하지만 내가 바치는 것을 통해서 내 이익이 돌아오고 어떤 대가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뇌물에 해당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복권을 삽니다. 자신은 꼭 이번에 1억 원이 당첨되고 싶어서 하나님께 기도 합다. “하나님, 십일조로 천만 원을 선불로 드릴테니 꼭 1억 원에 당첨되게 해 주소서.”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듣지 않습니다. 이런 기도나 감사는 참 감사가 아닙니다. 이런 봉헌은 하나님께 드림이 아닙니다. 이런 드림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기 때문입니다.
잠 19:6에는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고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선물은 관계를 끈끈하게 맺어주고 더 가깝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관계요인이 됩니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기꺼운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선물(카리스마타)”라는 말은 “분에 넘치는 호의”라는 뜻을 지닌 <카리스>라는 헬라어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카리스’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로 선물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운 분이시기에 선물 주시기를 좋아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분에 넘치는 선물을 안겨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내가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늘 호의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감사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귀하게 받아 사용하는 저와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구원의 선물, 은혜의 선물을 충족히 받아 누리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2024년을 마무리하는 12월에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 이 한해를 풍성한 은혜의 선물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을 더 찬양해야 합니다.
1. 수고함으로 즐거워함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19절,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19절에 보면, 물질에 관한 두 가지 하나님의 선물이 나타납니다.
1)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주신 재물과 부요를 누릴 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많은 재물을 모을 수 있는 것만이 하나님이 주신 복이고 선물이 아닙니다. 많은 재물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모은 재물을 자신이 누리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복의 선물입니다.
지난 주일 선교보고 시간에 필리핀의 부르고스 교회가 세워지게 된 이야기를 잠시 말씀을 드렸습니다. 남부산교회 이병헌장로님이 딸 시집갈 자금으로 준비한 것을 바쳐서 세워진 교회가 부르고스 교회입니다. 결혼 준비금을 다 바쳤다고 해서 딸이 결혼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딸의 결혼이 잘 되도록 이글어 주셨고, 그렇게 바쳐진 귀한 헌금으로 인해 교회당이 없는 불모 지역에 아름다운 교회가 세워지고, 지금은 외부의 도움이 없이 자립하는 단계까지 성장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받은 바 물질을 선하게 사용할 줄 알았던 아름다운 모습이 맺은 귀한 결실입니다.
가끔 엄청난 재산을 가진 사람이 그 재물을 다 사용하지도 못하고, 누려 보지도 못한 체, 세상을 떠낫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런 모습은 축복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재물의 복을 귀하게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귀하게 사용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2)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제 몫을 받아”라는 말은 “제 몫을 인정한다”는 뜻이고, 고로 이 말은 다른 사람의 몫을 탐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자신이 가진 재물에 만족하면서 다른 사람의 재물을 탐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적절한 재물을 주시고 누리며 즐거워하게 하셨습니다. 과다한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한 달 수고하여 받은 월급의 재물을 가지고 즐겁게 인생을 사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내 손으로 수고한 것을 먹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헛되지 않게 사는 지혜입니다.
얼마 전에 종편방송에서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다가 탈북자 한분이 던진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 분이 던진 말은 “인간의 불행은 모자라는데서 오지 않고, 넘치는데서 온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모자라면 불행하다고 판단합니다. 재물과 돈이 모자라면 모자라서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하지 못할 재물을 가지게 되면, 그 재물을 자신을 파괴시켜 버립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자리와 직분을 가지게 되면, 자신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을 다 수렁으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차고 넘치는 재물과 부귀영화는 오히려 파멸의 씨앗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을 아시지요. 무슨 뜻이에요? “과하면, 즉 차고 넘치면 차라리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적절한 욕심과 욕망은 인간을 활기차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적당한 목표는 사람을 더 움직이게 만드는 효과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욕심이 지나친 과욕(過慾)은 패망의 지름길로 인생을 망쳐 버립니다.
년말이 되다 보니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자주하는 말 중에 ‘운동해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운동하면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었어도 적당한 운동을 해야 됩니다. 하지만 요즘은 운동에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운동중독>에 해당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운동중독은 오히려 건강을 해칩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과유블급이 없지만, 세상 일에는 아무리 좋은 것도 과유불급이 되면 모자람만 못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4세기경 크게 활동화였던 사막의 교부 포이멘(poemen, 340-450)은 “모든 지나침은 사탄에게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지나침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사탄의 뇌물입니다. 사탄의 유혹입니다. 사탄은 항상 사람들로 하여금 지나치게 만들어 스스로 파멸하게 합니다.
소설가 최인호씨가 쓴 ‘상도’(商道)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적당히 채워라. 어떤 그릇에 물을 채우려 할 때 지나치게 채우고자 하면 곧 넘치고 말 것이다. 모든 불행은 스스로 만족함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넘치지 않고 모자라지 않는 것이 삶의 지혜이며 진정한 풍성입니다. 이것이 인생에서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선하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가지고도 누릴 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진정한 부자는 돈을 쌓아서 움켜 쥐는 사람이 아니고, 그 돈을 선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부자입니다.
유머집에 나온 유머 하나입니다. 어느 부부가 여행을 하던 도중 남편의 생일을 맞게 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여보 미안해요. 내가 선물을 준비 못했네요. 깜빡했어요”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은 “괜찮아 여보, 나는 그런 선물을 원하지 않아.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 존중해 주는 것, 내게 순종하는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무슨 대답을 한 줄 아세요?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요, 여보 내가 그냥 선물 하나 사 줄깨”라고 하더랍니다.
진짜 원하는 선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선물을 주셨고, 가정의 선물을 주셨고 또한 본문의 말씀처럼 재물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내게 주신 것을 내 몫인 줄로 알고 감사하십시오. 그리고는 2024년 남아 있는 이 한 해의 시간을 하나님에게 온전히 드리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수고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믿으십시오. 힘들어도 나를 괴롭게하고 나를 짜증하게 하는 직장 동료와 상사가 있어도, 내가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고 직장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수고함으로 즐거워할 수 있는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2. 뒤돌아보며 후회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20절.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상반절에 참 의미심장하게 새겨 들어야 하는 말이 등장합니다.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한다”는 말입니다. 짧고도 쉽게 말하면 이런 뜻입니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까? 내 생명의 끈은 얼마나 길까?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게 선물을 받은 성도는 자기 몫에 만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말미암아 날마다 감사하며 즐기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더 오래 살까”하는 생명의 길이에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성도는 인생의 날들을 후회와 염려 속에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2024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이 부분을 다시금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시간은 내가 하나님에게 받은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보내었던 2024년의 모든 시간들이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의 시간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픔의 시간도 있었고, 어떤 경우에는 안타깝거나 또는 생각도 하기 싫은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그 모든 시간이 내가 살아 있기에 하나님에게로 부터 받은 선물의 시간인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병원에서 오늘 내일을 생각하면서 투병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저런 걱정으로 하루 하루를 힘들게 보내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살아 있고, 이렇게 살아 있음으로 인해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살아 있음을 감사하는 성도는 나에게 시간을 주신 하나님에게 무관심할 수 없고 감사와 찬양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정말 오늘 하루 잘 살았다”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루를 잘 산 사람은 가장 귀한 선물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보람 있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2024년 잘 보내고 2025년 믿음으로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어니 젤린스키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이란 책에 보면 유명한 말이 나옵니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신비이고, 그리고 오늘은 선물이다”(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mystery, today is a gift)라는 말입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이기에 역사입니다. 반면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기에 미스터리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날이기에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구가 둥글다고 처음 말했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의 유언 기도에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사도 베드로에게 주신 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주신 은혜도 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의 십자가 옆에 있었던 강도에게 주신 은혜를 구합니다.”
오늘 주일 예배를 드리는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길 소망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십자가상의 강도처럼 우리 모두 구원의 은혜를 이미 선물로 받은 천국백성들입니다. 그러기에 하루하루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아야 합니다.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소설 <순례자>에서 “다른 세계로 떠나야 할 순간이 왔을 때, 가장 큰 죄악과 함께 가서는 안 된다. 그것은 후회라는 죄악이다”라고 말합니다. 2025년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지난 2024년의 시간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후회만하고 머물러 버린다면, 쓸데없는 시간낭비가 됩니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 시간이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인 것을 깨닫고 2024년 남아 있는 하루하루를 귀하게 사용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