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와 심화,
혼란과 좌절의 1930년대, 일제 말 암흑기의 시문학사
양상들
1. 문단 내외의 상황
4) 지식 계층의 확산
1930년대 들어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로는 신학문과 신교육을 전수받은 지식 계층의 대두와 그 확산 현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통 사회에서 교육이란 어차피 소수의 선택받은 양반 계층의 전유물의 성격이 짙었다. 그러나 이 시기를 전후하여 학교 교육 제도의 보급에 따라 일반인들에게도 교육에 대한 문호가 제도적인 면에서만큼은 일정 부분 보장되었던 것이다. 학제 정비와 고등교육기관의 설립으로 신교육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폭넓게 확산되었으며, 일본 등지로의 유학이 용이해짐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신학문을 접한 고급지식 계층의 출현이 가능케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를 더욱 부추긴 것은 저널리즘의 양적 팽창과 그 보급이었다. 이미 4종의 중앙 일간지가 간행되고 있었으며, 1920년대 중반 이후 193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는 많은 잡지들이 앞다투어 발간되었다. 당연히 지식이나 정보의 생산과 보급, 교류의 속도가 빨라졌고, 이러한 외적인 상황 변화가 지식 계층의 확산에 역으로 기여한 바 또한 적지 않았다.
이상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볼 때, 물론 지식 자체가 아직 오늘날과 같이 대중화 · 일반화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형편이었지만, 이 당시 지식계층 스스로가 이미 우리 사회 내부에서 하나의 독립된 계층으로서의 자의식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확인된다. 한편, 이와 같은 지식계층의 대두는 이후 우리 시단의 동향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것은 결국 문학의식의 성숙과 긴밀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지적 능력의 향상과 더불어 문예학적인 감각과 취향 또한 그에 상응하여 고급화되는 추세를 보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종래의 무분별한 감읍벽感泣癖이나 막연하고 상투화된 어휘의 남발, 단순화된 어법이나 구조만으로는 이들 고급화된 지식계층 독자들의 감각과 기호에 제대로 부응하기 어렵게 되었거니와, 작가적 입장에서 작품의 질적 수준확보를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요구되었다. 이처럼 보다 차원 높고 주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세련된 문학작품에의 요구가 시단 내외에 걸쳐 폭넓게 확산되었으며, 동시에 이러한 요구는 창작과 비평 양면에서 당대 우리 시단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문직 시인, 작가와 비평가 그룹의 등장은 지식 계층의 확산과 분화에 따른 필연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1920년대 후반 이전까지는 이러한 전문 문학인들의 활동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 스스로가 전문가 그룹으로서의 뚜렷한 집단적 자의식을 지니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들 집단은 주로 일간지 학예면과 문예지. 동인지들을 배경으로 활동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각 유파 간의 상호비판과 치열한 논쟁을 통해 전문 집단으로서의 의식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 현대 시문학사』 이승하 외 지음
2024. 11. 13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