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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앵기(流鶯記)
계 용 묵
1
앞문보다는 뒷문 쪽이 한결 마음에 든다.
―끝이 없이 마안하니 내다만 보이는 바다, 그렇게 창망한 바다 위에 떠도는 어선, 돛대 끝에 풍긴 바람이 속력을 주었다 당기었다……. 결코 마음에 드는 풍경이 아니다. 어딘지 거기에는 세속적인 정취가 더할 수 없이 담뿍 담기운 듯한 것이 싫다. 무엇이 숨었는지 뒤에는 꿰뚫어볼 수도 없이 빽빽이 둘러선 송림, 오직 그것밖에 바라보이지 않는 뒷문 쪽의 풍경이 턱없이 좋다.
성눌은 마침내 뒷문 곁에 책상을 놓았다.
놓고 나서 마지막 정리인 책상 위까지 정리를 하여 놓은 다음, 뒷산을 대해 마주앉으니 병풍을 두른 듯이 앞을 탁 막아 주는데 마음이 푹 가라앉는다. 가라앉으니 앞은 막혔건만 앞이 트인 바다보다 눈앞은 더 환하니 내다보이는 것 같다. 역시 끝없는 바다와도 같은 현상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세속적 인 생선을 실은 배가 아니고, 그렇지 않은 그 무엇이 필시 실려 있는 듯한 그러한 배가 오락가락 한다.
환상일시 틀림없으나, 이러한 것을 사색 게 하는 그러한 자리가 성눌에게는 좋았다.
시원하다. 산으로 내려오는 바람도 시원하거니와 마음도 시원하다. 비록 산경의 초라한 모옥이라 하여도 서울의 여사보.다는 기분일지 모르나 마음이 붙는다. 앞문 쪽을 현실이라면 뒷문 쪽은 확실히 초현실적 이다. 마음에 부딪치는 세속적인 모든 것을 떠나, 이런 마음의 바닷속에서 영원히 살은들 어떠리. 신상도 희망도 생활의 목적도 모두 다 잃고 가장 이상적이어야 할 청춘의 정열까지 마저 식은 생활의 패배자라고 비웃어도 좋다.
성눌은 마음을 풀어 놓고 새 생활이 비롯하는 첫 끼를 이 산 속에서 먹었다.
2
새 생활이라고는 하지만 성눌은 무슨 이렇다 원대한 포부를 품고 선조의 산막을 찾은 것도 아니요, 수양이나 정 양 같은 것을 염두에 둔 것도 물론 아니다.
다만 벗이 미쁘지 않으니 마음 둘 곳이 없다. 마음 둘 곳이 없으니 고독하다. 고독이 떠나지 않을진댄 차라리 미쁘지 않은 벗을 보지 않음으로 고독함이 한결 덜려질 것도 같은 데서 어디 한 번 하여 보자는 데 지나지 않는다.
누가 성눌만한 생활의 과거를 안 가졌으랴만 성눌은 그것을 결코 평범시하고 싶지 않았다.
―유족하지 못한 가산을 털어 바치고 공부를 하였다. 사회의 가장 참된 일원으로 일을 하기에 목숨을 바치자던 정 열의 이상은 사회 생활의 첫 관문에서 부서졌다. 난치의 병이 그의 몸을 아주 단단히 붙든 것이다. 더할 줄만 아는 각혈은 절망에 가까운 공포를 주었다. 사회의 참된 일원이 되기 전에 죽는다 ! 아까운 일이다. 살아야 되겠다 ! 아무리 해서도 살아야 하겠다 ! 약으로 병을 다스려야 한다 ! 그러나 십여 년 동안의 닦은 공부는 전 가산을 새빨갛게 긁어 먹고 오직 남은 것이라고는 빈 손 안에 앞길의 운명을 판단하고 있을 손금밖에 쥐인 것이 없다.
거기, 도와 주려는 사람도 없고, 집으로 내려와 누웠으면 병에는 좀더 나을 것 같으나, 역시 손금밖에 쥐인 것 이 없는 아버지에게 가난의 설움을 더 끼치기 싫다. 도리어 집에서는 알까 두렵게 곧장 병든 몸을 알키려는 법도 없이 운
명에 목숨을 맡겨 그저 한산한 여사에 누웠다.
가끔 친구들이 찾아온다. 과자도 가지고 오고, 철 따라선 과실도 들고 온다.
먹기를 권하고 병을 근심한다.
그러나 근심하는 것만으로는 그들도 탈이 낫지 않을 줄을 모를 리 없다. 갈 때마다 하는 말이 공기 좋은 산간으로 전지 요양을 가란다. 그것이 약물 치료보다 낫다고 간곡히 간곡히 권한다.
과자나 과실을 권하는 것은 인사요, 전지 요양을 권하는 것은 생명이란 거룩
한 거기에 정성을 표시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전지요양에조차 여유가 없는 줄을 모르는 벗들이 아닌 그들이 이런 말을 할 때는 이것도 역시 과자나 과일이나의 권과 같은 인사말에 지나지 않는다.전지 요양을 백 번 권한댔자 탈이 나을 수는 없는 것이다.
“왜 전지 요양을 가래두 안 가?”
자꾸만 이렇게 권할 때는 딱도 하다.
벗과 벗이 서로 대하는 의무는 이런 말로 다해지는 것일까.
모르는 사람은 모르니 서로 지나치고, 아는 사람은 아니 서로 모자 벗고 인사하고, 벗은 벗이니 악수하고, 가령 점심때이면 점심이나 노느고, 그리고 술잔이라도 들게 되면, 한 1 원 정도에서 5원 10원도 비용은 나게 된다. 이것이 친한 벗 사이에서 가장 벗다운 성의를 표하는 인사다. 벗 아닌 사람보다 더한 것이 그것이다. 다만 그것이 벗의 필요성인 듯싶다. 점심 한 그릇 술 한 잔 그것으로 벗으로서의 사명이 다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원치 않을 때는 벗의 필요성은 없는 셈이 된다.
성눌은 그런 것을 원치 않고도 벗의 필요.성이 있을 그 무슨 두터운 성의와 정열이 있어야 할 것을 믿고 싶고, 그 정열이 서로의 마음을 얽어 놓으리라야 사람의 벗 됨에 부끄러울 것이 없을 것 같다.
병 앓아 누우니 성눌은 전에 못 느끼던 벗이 이렇게도 미쁘지 못하다. 외로운 여사에는 벗밖에 의지할 데가 없고, 또 따뜻한 정이 벗에게로만 향한다. 그러나 벗은 벗대로의 인사가 있을 뿐, 성눌의 생각과 같은 그런 두터운 성의는 그들의 염두엔 없는가 싶다. 건강을 잃은 성눌의 베갯머리는 언제나 외롭고 쓸
쓸한데 세월은 그대루 가고 병세는 차도를 모른다.
이러한 때 어떻게 알았는지 아버지가 성눌을 찾아 올라왔다. 집을 팔고 밥을 빌어 먹어도 병은 고쳐야 아니하느냐고 병 을 속이고 누웠음을 꾸짖고 시골로
데려 내려갔다. 성눌은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성의에 눈물이 났다.
아버지,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하는 그러한 성의로 사람들은 서로 대할 수는 없는 것인가, 아버지는 죽음 속에서 자기를 꺼내 가지고 가는 듯싶었다. 처음에 돼지를 팔아 약을 사 오고 또 소를 팔고, 그래도 차도가 없어서 집을 저당하여 금융 조합에서 빛을 내다 뜸을 뜬다 침을 놓는다 할 수 있는 자력과 할 수 있는 정성을 다 들여 치료하는 동안이 3 년, 무엇에 효과를 얻었는지 그렇게도 난질이란 관사를 달고 다니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성눌은 생활의 무대에 다시 나섰다. 서울로 올라온다. 벗들은 반갑게 악수하고 투병 축하회를 연다. 그것도 성대하게 요릿집에다 기생을 셋씩이나 불러 놓고 성눌을 위하여 축배를 드린다. 누구나가 성눌을 위하여 지성으로 술을 권하고 기분을 상치 않으려 될 수 있는 데까지 즐겁게 놀기를 위주한다. 기생도 제
일 이쁜 것은 제각기 사양하고 성눌에게 맡긴다. 마치 성눌을 위한 세상 같다.
그러나 성눌은 이런 자기의 세상에서 응당히 기분이 즐거울 것이나 즐겁지 않았다. 만일 자기가 구사의 일생에서 생을 건지지 못하였더라면 물론 이런 축
하회는 없었을 게고, 조전이나 조문이, 그리고 추도회를 여는 정성이 있었으리라. 병이 나으면 반가우니 축하회, 죽으면 슬프니 추도회, 왜 축히회와 추도회를 여는 그런 정성으로 병들어 누웠을 때 목숨을 건져 주기 위한 구조회는 못 열었던가? 살아 반가우니 축하회를 여는 정성이라면 죽음의 슬픔도 그만한 성의에 못지 않았으.리라고 보인다. 요행 살아났으니 말이지 죽고 말았더라면 그들의 이러한 성의는 보람 없는 슬픈 일이 되고 말았을 것이 아닌가.
사람을 위한다는 것은 다 제 자신을 위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과일 꾸러미도 축하회도 그것이 다 실질에 있어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한 그들 자신이 낯밖에 더 나지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 술 먹기를 그렇게도 권하는 십여인의 벗들은 그럼 자기를 위하는 정성보다 다 제 자신을 위하는 정성이 더 클 것인가 하니 세상이 금시 어두워지는 것 같다. 성눌은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웠다. 아버지는 왜 자기 때문에 당신의 재산을 희생하여 세간을 팔아 공부를 시키고 알뜰히 죽음에서 자기를 또 구해 내시고는 지금 밥에 구차를 받고 계시나?
“아버지 !”
입 밖에 나오지는 않았으나 확실히 불러는졌다.
“왜.”
아버지의 대답도 분명히 귀에 들렸다.
“저는 이번에 꼭 죽을 걸 아버지의 정성에 살아났습니다.”
“얘, 부끄럽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네 소원껏 다 해 준 일이 있니? 내가 돈을 좀더 모았드라면 너는 네 마음을 팔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걸…….”
“아버지 무슨 말씀입니까? 저 때문에 세간을 팔으시고 늙으신 몸이 농사를 짓느라 다리를 부르걷으시고…….”
“얘 별말 말아. 누구 때문에 사는 줄 아니 내가.”
눈가죽이 뜨거워 온다고 느끼는 순간,
“자, 어서 잔을 따세요.”
간드러지게 청하는 소리가 고막을 울린다. 바라보니 아버지는 간 데 없고, 기생의 동글하게 쥐인 손깍지 위에서 남실거리는 술잔이 턱 앞에 와 기다린다.
환상! 환상에 왔던 아버지 ! 누구 때문에 사느냐는 그 한 마디, 그 한 마디가 어떻게도 성눌의 마음을 찔렀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성눌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성눌은 그후 곧 어느 회사에 취직을 하였으나 ‘누구 때문에’ 하는 그 한 마디를 잊을 수가 없었다.
누구 때문에? 자기는 누구 때문에 사는 것인가? 아버지는 자기 때문에 모든 사랑과 정성을 다하심으로 삶을 일삼으신다. 그러면 자기는 누구를 위하여 사랑괴 정성을 바침으로 삶을 다해야 될까? 자기에게도 아버지가 자기를 위하듯 그러한 사랑과 정성은 아버지 못지않게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다고 알고 또 그것을 믿고 싶다. 그리고 무엇에든지 지성으로 사랑을 베풀고 싶고 또 마음을
다하고 싶음이 못견디게 가슴 속에서 용솟음치고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랑과 정성을 베풀 길이 없이 그저 그날 그날의 밖을 위하여 비위에도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 문화 사업이란 미명 아래서 사람을 속이고 돈을 빼
앗고 하는 회사의 정책에 자기도 따라가야 한다. 지난날 ‘사회의 일원으로’라던 정열의 이상이 병마의 간섭에 식어 감이 안타까워 아무케서도 살아야겠다던 그 욕망을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웠다. 그러나 그렇게 아니하고는 생활의 방편이 도모되지 않는다. 먹어야 사는 것이 사람이다. 역 시 범속한 한낱 사회의 일원임에 틀림없고 또 그러한 존재의 사람의 벗임에 언제나 충실하게 된다. 그러니 그 어떤 공허감에 생활의 정력은 자꾸만 식어 간다. 도무지 마음 가는 데가 없고 손이 붙는 데가 없다.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식어 가는 정열 속에 도리어 자기의 존재가 있음을 어찌하는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울과 고독은 여전히 깃을 들고 속속들이 파고든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그 무슨 진리를 담은 껍데기 같게도 그 속에는 찾아질 진리가 있는 듯싶었다. 그리고 그 우울과 고독은 알을 낳을 때의 그 모체의 괴로움인 듯이도 생
각이 된다. 그리하여 그것을 즉히 이겨 벗기기만 하면 그 속에서는 노른자위와
흰자위를 제대로 가진 진리의 알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그러나 그 우울과 고독은 못견디게 사람을 괴롭힌다. 성눌은 불 속에나 뛰어든 것같이 몸 가질 바를 몰랐다. 이리도 뛰어 보고 저리도 뛰어 보고 싶다. 그래서 몸을 뒤재 본다는 것이 이렇게 농촌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 것이요, 비교적 한적한 곳을 찾는다는 것이 이 산막이었다.
3
산막은 언제나 조용하다. 건넌방에는 산지기 늙은이가 자식 오뉘를 데리고 있다고는 해도 있는지 마는지다. 늙은이는 신 소리 한 번 크게 마당을 거닐을
기력이 이미 진했고, 아들은 식구를 벌어 먹이기에 종일을 산 속에서 부대를 파다가는 밤이면 곤한 잠에 곯아떨어지고, 과년한 처녀의 거동은 늙은이의 거동보다도 조심싱이 있다. 아침 저녁 밥상을 들여다놓을 적에:도 치맛자락 한 번 허투루 날리지 않는다.
이렇게 고요한 속에서도 성눌은 여전히 고독하다. 언제나 떠나지 못하는 그 공상, 그 사색은 주위가 더할 수 없이 고요하니 여느 때보다도 더한층 차지게 달라붙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렇다 찾은 것은 없다. 그러니 무언지도 모르게 그리운 것은 더한층 알뜰해진다. 손을 내어밀면 잡힐 듯이 그 무엇은 눈앞에 있는 것 같으나 내어밀고 보면 역시 아득한 공허다. 우울하다. 찾다 못 찾으면 그것은 언제나 선철에게서밖에 찾을 곳이 없을 것 같아 생각이 진하면 놓았던 책을 또 집어든다. 하이데거·야스퍼스·파스칼·니체 ―그러나 또 속아넘는다. 언제나같이 거기에서도 또 이렇다 개운한 위안을 얻지 못한다. 시원한 바람이 그립 다. 산으로 올라간다. 이것 이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다.
오늘은 또 키에르케고르를 안은 채 산으로 올라간다.
가을의 산 속은 귀뚜라미 소리에 누른다. 밤새도록 귀뚜라미가 울고 나면 이튿날의 산 속은 알아보게 누른빛에 짙는다. 오늘도 어제보다는 확실히 색채에 가난하다. 산기슭에 매어달린 풀밭에는 혼자 우쭉 솟아서 기세를 뽐내는 듯하던 방초도 이제는 나도 늙었쉐 하는 듯이 새하얀 머리를 힘없이 풀어 놓고 호들기처럼 말라드는 잎사귀는 소생할 힘조차 없는 듯이 늘어졌다. 아니, 산간의 거족에 홀림 없는 아름드리 나무들도 벌써 잎사귀에 누런 물이 들었다.
인간 사회는 세파에 누르듯이 산 속은 서릿바람에 누른다. 지금 서리를 실은 한 줄기 바람이 떡갈나무 숲으로 스치다가 그 숱 많은 잎사귀 속을 헤어나지 못해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이리 갈리고 저리 갈리면서도 애써 제자리에 부지하려고 매어달려 악을 쓰는 잎사귀들 ―그것은 꼭 세상 사람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자기도 분명히 저 나무 잎사귀가 이리 갈리고 저리 갈리면서도 애써 제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악을 쓰듯이 속세의 세파에 쫓기어 시달리는 존재에 틀림없다고 생각을 하는 순간, 마침내 한 잎의 떡갈나무 잎사귀는 더 저항할 힘이 없이 그만 제자리를 떠나 바람 쫓아 공중으로 뜬다.
성눌의 눈은 그 잎사귀를 따라간다. 잎사귀는 바람에 풍겨 그냥 그냥 하늘 높이로 솟아오르더니 한 마리의 새같이 키를 돌리어 서쪽 하늘로 방향을 꺾어 돈다. 성눌은 웬지 그 잎사귀가 가는 방향을 알고 싶어서 가슴을 넘는 풀밭 속
을 허방지방 헤치며 맞은편 언덕까지 쫓아 넘다가 뜻 않았던 인기척 소리에 문득 발길을 멈추었다.
“엄메야 ! 여긴 멀구가 그대루 있구나? 막.”
머루와 다래 덩굴이 엉킨 경사진 언덕 아래, 언제 올라왔는지 산지기 늙은이
모녀가 머루를 따며 지껄 이고 있었다.
얌전이는 일찍 이도 머루나 다래 사냥을 다니는 일은 있었으나, 아무리 집 뒷신이라고는 해도 늙은이가 이 험한 산길에 얌전이를 대동하고 올라옴을 본 적은 없다. 그리고 머루 따러 온 모녀가 다 새 옷을 갈아입고 떠난 것은 수상하다. 얌전이는 전에 볼 수 없던 자주 길소매를 단 흰 옥양목 적삼에 구김살도 가지 않은 섯누른 삼베 치마를 입 었다. 웬일일까, 성눌은 한 그루의 커다란 소나무에 등을 지고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아무 말이 없고, 늙은이는 회도라진 모롱고지의 좁은 길을 이따금씩 기웃거리며 넘석 거리는 품이 필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
었다.
조금만에 한 30 이나 되어 보이는 장태한 농군 한 사람이 역시 바구니를 들고 무엇을 찾는 듯이 일변 모릉고지 길을 살피며 걸어 내려오는데 보니 그 어머니인 듯한 역시 백발이 흩나는 늙은이 하나가 그 뒤에 덧달렸다.
이 사람들을 본 산지기 늙은이는 별안간 얌전이에게 눈을 주며 바람에 약간 거슬린 머리칼을 고이 쓸어 재우고 저고리 앞섶까지 단정하게 여며준다.
산턱까지 미친 농군은 뚝 떨어진 언덕 위로 올라가고 늙은이만이 그냥 풀밭길을 지팡이로 헤치며 산지기 늙은이의 앞까지 오더니 지팡이에다 힘을 잔뜩주며 우뚝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뒤로 편다.
“후우, 여긴 멀구가 많기두 많수다 ! 후우, 노친은 어디서 오셨나요?”
그리고 얌전이를 힐끗 한 번 쳐다본다.
“우린 요. 아래서 와서요. 노친은 어디서 왔소?”
“난 더 넘에 샘골 사는 늙은이우다. 그래 이 각신 댁집 딸이오? 아이구 머리두 끔찍이두 자랐수다레 !”
엉덩이 밑까지 치렁치렁하게 땋아늘인 머리채를 탐스러운 듯이 쓸어 본다.
“예에, 딸이우다.”
“저고리두 꼭 맞게두 지어 입었다 ! 옷은 네가 다 지었니?”
“그러문요. 걔가 못 하는 일이 없답네다. 베두 잘 짜구요.. 김두 잘 매구요.
뭐 못 하는 일이 있나요.”
얌전이는 대답할 겨를도 없이 어머니는 딸의 칭찬이다.
하는 양이 꼭 얌전이의 선을 보러 온 것 같다. 사나이도 머루 딸 생각은 아니하고 얌전이를 볼 것만이 하여야 할 일인 듯이 언덕 위에 마음 놓고 앉아서 주의 깊은 시선을 얌전이에게로만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얌전이의 간선 ! 하고 깨닫는 순간 성눌은 새파란 칼날이 가슴 한복판을 스쳐가는 것처림 오싹하고 전신이 위축됨을 느낀다. 이상한 감정 이었다. 얌전이
의 선을 보이는데 자기의 마음에 동요.가 생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분명히 가슴이 뛰고 있음을 제 자신 인식한다. 그러면 일찍 이 자기는 얌전이를 사랑하고 있었나, 성눌은 생각해 본다. 그러나 결코 그러한 생각을 가져 본 일이 기억에 없다. 다만 속정에 물들지 않은 순진한 그 마음씨가 좋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으로 얌전이의 간선에 마음이 흔들릴 이치는 없는 것이다. 무슨 때문인가? 그렇게 순진한 처녀가 아무것도 모르고 땅이나 파는 우둔한 농부의 손 안에서 구애될 것임이 얌전이를 아끼는 동정심에서 생기는 마음일까? 성눌은 제 마음이면서도 제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늙은이는 너도 가까이 와서 얌전이를 자세히 보라는 듯이 두어 걸음 떨어진 낭떠러지 섶으로 걸어가며 다래는 여기가 많다고 아들을 불러내린다. 그리고는 무어라고 소곤거리며 아들도 어머니도 얌전이 편을 힐끗힐끗 바라본다.
이런 눈치를 살필 때마다 얌전이는 모르는 체 그저 수굿하고 머룬지 다랜지를 따기는 따나 어딘지 그 몸가짐은 더욱 조심성을 요하는 듯하고 또 초조해 하는 빛이 역연히 눈에 뜨인다.
틀림없는 간선이다. 성눌은 진정되지 않은 가슴에 물결을 뛰놓이며 애써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려고 일거 일동에 주의 깊이 살피었으나 그들이 돌아갈 때까지 이렇다 한 마디도 비밀한 내용 이야기는 엿들을 수가 없었다.
4
산막으로 내려온 성눌은 전에 없이 얌전이가 그리움을 느낀다. 용모에서보다
그 소박한 순결한 마음씨가 자기의 마음을 붙잡는 것 같다. 눈 코 입 그 어느 것에 흠잡을 곳이 없다고는 해도 결코 미인은 아니다. 어디서든지 찾아볼 수 있는 한 평범한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얌전이가 이제 그렇게도 그립 다. 그리고 얌전이를 그 사나이가 아무렇게나 제 마음대로 할 수 있겠거니 하니 그 사나이가 못견디게 밉기까지 하다.
아니, 내 마음이 왜 이럴까? 생각에 잠겨 보는 동안, 얼씬하는 그림자에 주위를 살피니 어느 새 밥상이 들어온다. 얌전이는 저녁 상을 조심스레 들고 문턱을 넘어서 사뿐사뿐 성눌의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상을 놓는가 하
니 어느 새 얌전이는 벌써 문 밖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성눌의 눈앞에는 여전히 얌전이가 있다. 환상임을 깨닫고 밥그릇을 연다. 따뜻한 김 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이밥 속에도 얌전이는 있다. 고사리 나물 위에도 있다. 조기 토막 위에도 있다. 눈이 가는 곳마다 얌전이는 있다. 성눌은 정신을 깨닫는다. 마지막 넘어가는 해 그림자가 불그레하게 밥상 위에 물을 들인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뿐이다. 얌전이는 그대로 있다. 승늉에다 밥을 뜨니 밥숟갈 위에까지도 얌전이는 떠올라온다.
“상 가져가거라.”
실로 성눌은 얌전이가 차마 그리워 이렇게 밥숟갈을 놓기가 바쁘게 소리를 질러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곧 달려온 얌전이는 떠 넣었던 밥을 채 씹어 삼키지도 못한 것같이,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비밀히 처리하려는 것처럼 입 안을 꼭 다물었다.
“너 낯에 머루 얼마나 따 왔니?”
돌연한 질문에 얌전이는 밥상을 들다 말고 멈칫 선다.
“너 낯에 머루 따러 산에 올라왔두나.”
별안간 얌전이는 홍당무같이 발개지는 얼굴을 말없이 숙인다. 그럼 낯에 성눌은 자기가 그 사내에 선을 보이는 꼴도 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처녀의 마음에 더할 수 없이 수줍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또 성눌은 얌전이의 그 난처해하는 태도에 자기의 마음도 똑같이 난처하다. 공연히 그런 말을 하였나 보다, 얌전이의 난처해함이 스스로 변해될 그러한 말은 없을까 생각에 바쁜 동안,
“이예.”
대답을 남긴 얌전이는 어느 새 벌써 허리를 굽히어 상을 집어든다. 그리고는 돌아서기가 바쁘게 한 걸음 한 걸음 물러나는 얌전이. 그렇게 물러나서 부엌으
로 사라지니, 또 뒤이어 허공에 나타나는 얌전이, 그 얌전이도 마찬가지로 수줍음에 고개를 숙인 얌전이었다.
사나이의 버릇인 탐욕이 이렇게도 얌전이를 자꾸만 눈앞에 끌어 내 놓는 것인가? 성눌은 생각해 본다. 그러나 결코 그러한 종류의 탐욕이 아닌 것을 곧 양심은 증명한다. 지금까지 알뜰히도 마음이 괴롭게 찾아오던 그것은 얌전이를
찾는 데 있었던 것 같고, 또 얌전이를 찾았다고 안이 비었던 마음에 그 무엇이
꽉 들어차는 것 같았다.
성눌은 언제나처럼 불을 켜고 책을 펴놓는다. 그러나 책 위에도 얌전이는 따라온다. 그리고 책보다도 얌전이를 보는 것이 더 마음이 즐겁다. 만 가지의 공상도 얌전이와 같이 아름다위 본 적이 없었고, 책 속에서도 얌전이와 같이 아름다운 구절을 일찍이 찾아본 적이 없다. 얌전이를 영원히 자기의 것을 만듦으
로 아름다움에 주린 공허한 마음을 얌전이로 채우고 싶다. 그리고 그것은 못견
디게 마음을 짓다룬다. 며칠을 두고 누를래 누를 수 없는 마음이었다.
마침내 성눌은 사람을 내놓아 혼담을 전하기로 한다.
5
이튿날 성눌은 전에 없이 명랑한 기분을 안고 산으로 올라온다. 얌전이와의
청혼 교섭 전말을 여기서 들려주기로 그 사나이와 약속하였던 것이다.
산토끼처럼 제 길을 잊지 않고 제 발부리에 닦여진 풀밭 길을 성눌은 언제나 같이 밟아서 언덕 위 바위 위에 자리를 잡는다.
바위의 주위는 여전히 어지럽다. ‘지리가미(휴지)’ 조각·담배 꽁다리·성냥개비·말라붙은 가래침, 근 한 달 격이나 버릴 줄만 알고 쓸어 보지 않은 생활의 찌꺼기다. 누가 보든지 그것은 뚜렷하게도 사람이 살아난 자취로 아니 볼 수 없으리라.
그러나 여기서 살았다는 자취는 오직 그것을 뿌려 이 산 속을 어지럽힌 것 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성눌은 이 산 속에서 무심히 낙엽만을 지우고 있는 자신이 아니었던 것을 믿고 싶다. 그것은 얌전이를 찾은 때문이다. 많은 여자 가운데서 흔들려 보지 못하던 마음이 얌전이를 위해서 흔들린 것이 아닌가. 분명히 자기는 바람에 시달리다 시달리다 못해서 제자리를 떠나 공중으로 끝없이 날아올라가는 낙엽을 쫓아가다가 머루를 따는 얌전이를 보고 마음에 동요가 생겼던 것이다. 그것은 결코 자위도 아니、요 공상도 아닌 버젓한 현실인 것을 다시금 따져 보며 통혼의 보고가 올라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초조한 것도 아니었다. 언제나 생각해도 그것은 자기의 위신에 미루어 산지기 늙은이 내외는 일언에 쾌히 승낙을 하리라 믿는 까닭이다.
오히려 근심은 이런 데 있었다―
얌전이로 더불어 어디서 어떻게 살림을 차려야 할 것인가? 서울은 싫다. 얌전이의 마음을 더럽히지 않을 이 산 속에서 차라리 농사를 지으리라. 그리하여
속세에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무거운 짐을 벗는 듯이 한결 몸은 가벼워질 것 같고 따라서 마음은 한결 후련해질 것 같다. 생활의 진리를 담은 껍데기 같게도 우울하던 마음은 여기에 완전히 벗겨지고, 가슴 속 깊이 들어찬 정열은 샘물처럼 터저 흘러서 우울과 고독을 깨끗하게 씻어 낼 것 같다. 아름다운 공상 속에 여념 이 없는 동안, 보고를 안은 사나이기 언덕으로 기어오른다.
성눌의 가슴은 뛰었다. 그러나 L 사나이가 안고 올라온 보고는 뜻밖에도 성눌의 뛰는 가슴을 여지없이 짓밟아 놓는다. 산지기 늙은이 내외의 말은, 성눌이와 얌전이는 마치 기름과 물과 같아서 도저히 서로 합할 수가 없는 존재이니 그것이 어떻게 작혼이 될 수 있겠느냐고 일언에 거절을 하더라는 보고다. 그래 얌전이를 농갓집으로 출가를 시켜서 고생을 시키느니보다는 성눌이와 작혼을 하여 월급 생활로 고칠 팔자를 왜 마다느냐고 따지어 권해도 보았으나 산지기 내외는, 월급 생활보다 땅을 파서 먹는 것이 더 귀하다고 하면서 손 발 두었다가는 무얼 하는 것이냐고, 성눌이 같은 사람이야 모 한 대 김 한 이랑 꽃고 맬 줄 알 것인가, 우리 얌전이는 백이 백 말 해도 모 잘 꽃고 김 잘 매는 농갓집의 장정 일꾼을 얻어 주겠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성눌의 가슴은 그냥 뛰었다. 뛰는 의미만이 달랐을 뿐이다. 말을 듣고 나니 자기는 과연 얌전이에게 있어 손틉만한 필요도 없는 존재인 것을 순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자기의 존재성은 어디 있는 것일까, 성눌은 생각을 해 본다. 아무데도 없다. 앞날의 일은 추측할 바 못 되지만 현재에는 없다. 과거에도 없었다. 모 한 대 밭 한 이랑을 임의로 처리할 줄 아는 능력을 이미 배양하지 못했다. 그것만 배웠더라도 이렇게 불필요한 존재로 얌전이에게서 일언으로 거절은 아니 당하였으리라 ! 성눌은 자책의 부끄러움에 가슴이 더한층 뛰었다. 이 한 달 동안의 자기의 생활로 미루어 보더라도 산지기 늙은이의 눈에서뿐이 아니라, 자기 자신 무능한 한 개 생활의 패배자에 틀림없었다. 얌전이는 늙은 어버이를 위하여 있는 정성과 노력을 다 들여 하루갈이에 가까운 터앝에서 옥수수를 혼자 거둬들이던 것을 빤히 눈으로 보았다. 그러나 자기는 그 동안 무엇을 하였던가, 밤이나 낯이나 계속해서 하는 독서, 그리고 공상, 그러나 책 속에서도 공상 속에서도 이렇다 얻어진 것은 없다. 역시 보람 없는 그날의 생을 보내고 있었을 뿐이다.
성눌은 피워 물었던 담배를 한숨과 같이 저도 모르는 사이, 바위 등에다 힘없이 썩썩 비벼 다시 못 올 그 순간의 생애를 표시하는 한 토막의 자취를 또 무심히 바위 위에 기록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것이 자기임을 그 순간 또 인식할 뿐이었다.
6
성눌은 힘없는 발길을 또 산막으로 돌린다.
돌릴 때까지는 조용한 틈을 타서 자기가 직접 한 번 산지기 늙은이에게 말을 건네 보리라 은근히 마음을 먹었던 것이, 먹었던 마음을 건네 볼 겨를도 없이, 건네 볼 용기를 잃고 말았다. 들어오는 저녁 밥상이 전에 없이 얌전이의 손에서 그 늙은 어머니의 손에 바뀌어 들려 들어왔던 까닭이다. 그러니, 그것은 도시 자기라는 인물은 인제 다시는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니 얌전이를 예전대로 함부로 들여보낼 수가 없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성눌은 상을 받기보다 짐을 꾸리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란 생각이 앞서 들었다. 창피하기가 이를 데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얌전이는 눈앞에서 깡그리 사라지는 것 이 아니다. 하지만 자리끼도 여전 늙은이의 손에 들려 들어오기를 잊지 않는 것을, 그리고 얌전이
의 그림자는 마당으로도 한 번 얼씬하지 않는 것을…….
성눌은 밤을 두고 생각하여 보았다. 그러나 다시 말을 건네 본다는 것은 그것은 결국 낯만 더 무지는 쑥스러운 짓만이 될 것 같아서 이튿날 아침에도 의연히 늙은이의 손에 잊지 않고 들려 들어오는 밥상을 낯간지럽게 받아 물리고는 도망이나 치듯 산막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7
집에서는 뜻하지도 않았던 한 장의 편지가 성눌을 기다리고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한 단체를 만들어 놓았으니 지체 말고 빨리 서울로 올라오라는
예의 그 벗 여섯 사람의 편지로, 김군이 대표가 되어 있었다.
성눌은 이 편지를 읽는 순간 저도 모르게 낯이 뜨거워 옴을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자기의 마음이 끌리는 얌전이에게는 절대로 필요치 않은 존재가 믿기지 않는 벗들에게서는 이렇게도 신임을 받게 되는 것이다. 미더운 데서는 버림을 받고 미덥지 못한 데서는 신임을 받는다. 그것은 결국 자기라는 인물은 그런 유에서나 신용할 수 있는 그러한 존재임에 틀림없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성눌은 순간 그것을 마음 아프게 깨달은 때문이다.
즉석에서 성눌은 회답을 썼다.
이 순박한 농촌의 자연처럼 자기의 마음을 살찌워 주는 데는 없다. 차마 농촌을 떠나기가 싫다. 내일부터 나는 농촌의 자연인의 한 사람이 되어서 머리에 수건을 동이고 낫을 들고 들로 벼 가을을 나서련다. 군들과 나는 인제 너무나 차이가 있는 동떨어진 사람이 되련다. 나 같은 사람은 서울 장안에도 그득 들어찬 게 그것일 테니 나는 인제 아주 잊어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는 두 번 세 번 당부하고 바랄 뿐이다.
이런 사연이었다.
그리고 성눌은 며칠 후에는 실제로 낫을 들고 들로 나섰다.
늙은 아버지가 자기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하시고 생전 쥐어 보지 못하던 낫을 들고 여름내 피땀을 흘리며 지어 놓은 벼 가을을 또한 손수 하시고 그것의 마당질품으로 남의 품벼를 베다가 그만 서투른 낫에 다리를 상하여 꼼짝 못하고 누워 있으니 마당질만은 혼자로서는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일인데 이제 품을 들여놓지 못하면 아버지 혼자로서 하여야 될 앞날의 마당질 처리를 내다본 때 성눌은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벼 가을이 바루 그렇게 헐한 줄 아니? 너마자 어디 또 다지려부?”
아버지는 한사코 말리는 것을 성눌은 뿌리치고 품벼를 베러 나섰다.
천여 석의 씨를 뿌린다는 이 넓은 들에는 논배미마다 모두 다리와 팔뚝을 걷어올리고 무슨 진리를 거두기나 하는 듯이 오직 거기에만 정신을 쏘고 낫들을 놀린다.
성눌이도 그들과 같이 발을 뽑고 논배미로 들어섰다. 이른 새벽 이라 아직 햇볕을 완전히 보지 못한 아침 물은 어지간히 차다. 발바닥에 집히는 물이 산 듯 산듯 소름을 끼쳐 주는 정도거니 하였더니 차츰 발가락에는 얼음이 꽃히는 듯이 아려왔다.
그러나 이 논에 같이 들어선 7, 8 인의 가을꾼들은 그런 것쯤은 느끼지도 못하는 듯이 홍에 실린 낫만이 그저 분주하였다. 발가락은 못견디게 아려 왔으나 성눌은 그것을 참기 어려워서 뛰어나와서는 안 된다. 강잉히 이빨에 힘을 주어가며 그들과 같이 의연히 한편 쪽으로 열을 지어 가며 낫을 놀려야 했다. 그러나 일꾼들을 따를 수는 없다. 겨우 다섯 단을 묶어 놓고 보니 그들은 벌써 십여 단씩이나 뒤로 남겨 놓고 서너 발 가량이나 앞서 나가고 있다. 성눌은 좀더 속력을 내어 일단의 정열을 다해 본다. 그러나 그러한 속력으로도 손 익은 그들의 일에는 미치지 못했다. 맞은편 논둑까지 다 나가서 허리를 펄 때 보니 성눌은 겨우 논배미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동안의 일이었다. 낯밥을 지나고 났을 때에는 끊어져 내는 허리를 펄 수가 없었다. 그런 것을 그대로 우기자니 기력 이 당해 내질 못한다. 일의 능률은 오히려 처음보다도 나지 않았다. 그래도 성눌은 시늉이라도 하게 남아 있는 힘이 제 자신 기적 같음을 느끼면서 견디어 냈다. 그리고 그런 힘이나마 해껏 남아 있기를 바랐으나 온 몸은 땀에 뜨고 코로는 단 김이 몰려나왔다. 해가 지기까지 베는 시늉을 하고 또 베어 놓은 볏단을 등짐으로 메어내다가 배까지 치고 났을 때에는 실로 촌보의 자유도 능치 못하게 전신의 동맥은 굳어진 듯이 제대로 움직여지질 않는다.
농사일이란 눈으로 보고 상상하던 짐작의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미치지 못할
일임을 성눌은 이제 깨달았다. 그리고 얌전이에게서 거절을 당하게 된 이유의 일단도 여기서 서언히 밝아지는 듯하였다.
일꾼들은 논둑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씩 피워 물고 또 내일의 품꾼들을 제각기 따지고 다들 일어섰다. 그러나 오늘의 일꾼 중에서 내일의 품에 빠진 사람은 다만 성눌이 한 사람뿐이었다. 오늘 수고를 하였다는 인사가 있었을 뿐 누구나가 하나같이 성눌에게는 내일의 품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성눌은 모욕이나 당한 것같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여기서도 그들은 무언 중에서 자기는 의연히 필요치 않은 인물인 것을 말해 주었던 것이다. 마음이 붙지 않는 곳에서는 반겨 청하고 마음이 붙는 데서는 거역을 당한다. 성눌의 눈 앞은 또다시 어두워졌다. 이 넓은 세상에서 자기의 마음은 여전히 담을 데가 없는 것이다. 숨이 막히는 듯이 가슴이 답답했다.
그러나 숨이 끊기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히 숨을 쉬고 있는 것으로 공기를 호흡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마음의 호흡이 괴로운 것을 보면 분명히 세상의
공기는 탁해진 것 같았다.
가슴이 막힌 것 같은 답답한 날을 보내는 며칠 동안, 자기의 답장이 강경함을 안 벗들은 성눌을 기어이 끌어올리려고 김군이 그 대표로 성눌을 찾아 내려오기까지 하였다.
자기를 이처럼 기어이 끌어올리려는 벗들의 그 우정에는 아니 감사할 수 없었다. 그들의 주위에도 실직으로 밥을 땅땅 굶고 있는 친구가 수두룩함을 모르
는 바 아닌데 하필 자기를 끌어올리자는 것은 자기에게 대한 그들의 정의 발로 이외에 다른 아무 생각도 있는 것이 아니리라 생각을 하니 성눌은 주위의 탁하던 공기가 얼마쯤 완화되는 듯이 가슴이 좀 후련해지는 것도 같았다. 그리운 서울이 아니었으나 벗들이 벗을 위하는 그 충정에 성눌은 반항할 용기를 문득 잃는다. 어디를 가도 자기의 마음은 담을 데가 없다. 그럴진대, 터럭만한 도움도 되지 못하는 존재가 피땀을 홀리어 벌어 놓은 늙은 아버지의 등을 파먹고 있기보다는 다시 서울로라도 올라가 자기의 손으로 벌 수 있는 일을 하여 먹는 편이 차라리 나으리라, 생각을 돌려 굳히게 된 성눌은 두말 없이 이튿날 아침 차에 김군과 같이 몸을 싣기로 했다.
8
진고개의 어느 요정이다. 성눌이가 올라오는 바로 그날 저녁에 벗들은 또 명색 성눌의 환영회를 열었던 것이다.
밤늦도록 소리하고 마신다. 성 눌은 오래간만에 얼근히 취해 본다. 괴로움을
잊는 즐거운 밤이었다.
한 시가 가까이 좋은 기분에 벗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귀로에 나섰다. 깊은 밤의 장안 거리는 어지간히 고요하다. 행인이 딱 끊긴 바는 아니나, 이 성눌의 환영회 일행의 세상인 듯이 아스팔트 바닥에 그들의 구두 뒤축 닿는 소리만이 장안에 찬다.
좀 신중하지 못한 벗 한 사람은 기분일 탓일까, 목이 찢어져라 소리 높이 유행가를 불러도 보고, 타지도 않을 택시를 손을 들어 스톱도 시키고, 지나가는 영인의 옷자락도 부딪쳐 보고…….
하지만 거리 사람들이 그의 주기에 다같이 호의로 그를 대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한 번은 지나가는 행인의 어깨를 길을 어이다가 잘못 된 채 힘껏 들이받
았다. 그러나 받고 보니 그건 안되었다. 싸움을 건 셈이다. 옳거니 굻거니 밀치며 젖히며 시비를 서로 따지어야 하게 되는 판.
성눌은 중재를 위하여 나선다. 붙은 싸움을 떼고 사이에 들어섰다. 그러나 들어서고 보니 친구는 날쌔게도 빠져나 구두 소리 높이 거리의 정적을 깨치며 도망을 친다. 그 친구를 놓친 적은 분함을 참지 못하는 듯이 성눌에게로 돌려 붙는다.
“이새끼 ! 그래 네가 쌈을 도맡을 작정이냐? 템벨템 템베라 !”
볼 새도 없이 들어오는 주먹은 턱 하고 번개같이 성늘의 턱 밑을 받아 낸다. 그뿐이면 좋았다. 단 한 주먹에 성눌은 쾅 하고 뒤로 나가둥그러지며 돌같이 단단한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받쫏는다. 그것뿐이면 또 좋았다. 두부에서는 검붉은 피가 계제하게 홀러서 순식간에 머리는 피 속에 파묻힌다. 성눌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혼돈한 채 일어나지를 못한다.
잘못은 어느 편에 있었든지간, 죽었는지 살았는지 나가둥二I러진 그대로 꼼짝 못 하고 피만 쏟아 내는 벗, 이 벗을 위하여 일행은 응당히 복수의 의무를 느껴야 옳을 것이나, 일견 적진의 행색은 거리의 불량배에 틀림없다. 즈봉을 땅에다 찰찰 끌며 셔츠바람에 캡을 비스듬히 쓴 사람이 둘, 노타이에 머리를 반반히 재워서 바른 골을 쪽 갈라붙이고 모자도 없이 와이셔츠 소매를 팔뚝까지 걷어올린 사람이 하나. 싸움에는 아무런 기술도 갗지 못한 벗들은 그들에게 손을 대기커녕은 도리어 그들의 손이 올까 두렵게 말로라도 한 마디 대항해 볼 용기조차 잃고 다만 자기네의 신변을 지키기에만 급급해서 쩔쩔매고 있는 동안,
“이쌔끼들아 ! 다음엘람 술은 먹더라도 점잖게 먹고 다녀라 !”
약점을 본 그들은 사람을 피 속에 묻어 놓고도 오히려 삐젓이 버티고 서서 큰소리를 치면서 세세히 골목 안으로 사라진다.
그제서야 일행 중의 한 사람이던 조군은 제 자신 모욕을 느꼈는지, 실로 벗의 치명상이 분했던지, 또는 성눌에게 대한 자기의 체면을 유지하자는 데선지 위통을 벗고 넥타이를 끄르며 고함을 친다.
“이자식들아 ! 네 자식들이 가면 어디로 갈 테냐? 템멜뎀 뎀베 보자 !”
그러나 사람을 피 속에 묻혀 놓고 그들이 설사 이 소리를 들었댔자 돌아서 대들 이치 만무하다. 반응이 없는 데 조군의 기세는 더 높아진다.
“이자식들아 ! 내 단주먹에 가루를 만들리라 ! 어디를 숨어? 이자식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하여 땅바닥이 깨어져라 발을 탕탕 구른다.
남은 벗 세 사람은 여기에도 격동할 용기가 없는 듯이 어리둥절해서 조군의 태도만 묵묵히 바라보고 섰다가 움찍하고 몸을 뒤채는 것 같은 성눌의 거농이 눈에 뜨이자 죽지는 않았다는 그 동작이 그지없이 반가워서,
“성눌이 ! 성눌이 ! 정신차려 응? 성눌이 ! ”
제각기 부르짖으며 김군은 성눌의 팔목을 잡아당긴다. 성눌은 일어서려고 전신에 힘을 주는 눈치였으나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빗둑 모으로 쓰러진다. 피를 너무 많이 쏟은 탓일까, 달빛에 어린 얼굴이 몹시도 창백하게 보였다.
조군은 혼자서 덤비나 마나, 겁이 시퍼렇게 난 세 사람의 벗은 성눌을 부축하여 병원을 찾아 내달았다.
9
하얀 붕대로 머리를 겹겹이 둘러 감고 병원 침대에 고요히 몸을 누인 성눌은 또다시 한 번 무심히 눈을 떴다. 천장에 매달린 휘황한 150촉 전등이 번개같이 눈에 꽃히며 시력을 압도한다.
주위에는 여전히 벗들이 졸리는 눈에 잠을 싣고 그린 듯이 앉았다. 그 모양은 자기에게 대해 심히 미안해하는 거동같이 짐작되었다. 그것이 그에게는 한
껏 불쌍하게 보였다. 이미 받은 상처니 앉아서 밤을 새며 졸아야 자기에게는 하등 필요가 없는 것을 인사상 자기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졸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신변에 위험 이 미칠 염려가 있을 경우에는 인사에 그렇게 무디다가도 신변의 위험을 느끼지 않을 때에는 이렇게도 마음놓고 거룩하게 인사를 베푸는 벗들이다. 이 벗들이 자기의 벗이요, 자기는 또 그 벗들의 벗이 된다. 그리고 자기는 그들에게 절대의 우정의 대상이 된다. 절대의 우정의 대상이 됨으로 서울로 다시 올라오게 되어 받은 상처가 지금 머리에 크다. 아니, 마음에 크다. 성눌은 한숨과 같이 다시 눈을 내려감았다.
“꼭 의사의 지시대로 치료를 받아야 하네.”
벗의 손에 흔들림을 받고 또 힘없이 눈을 떴을 때는 어느 새 불은 전등에 없고, 동편 유리창을 통하여 아침 햇발이 줄기차게 들여쏘고 있었다. 그적에야 벗들은 돌아갈 채비인 모양이다.
“진단은 3 주간이 래두 보름이면 퇴원이 될 게라.”
“어젯밤 일은 말끔한 신수야.”
그리고 돌아갔다가 다시 찾아온 김군의 손에는 미캉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이것을 본 성눌은 떴던 눈을 힘없이 또다시 내려깔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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