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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18구간 제1부
오미마을-배틀재-하사마을-상사마을
20260707
1.운조루에서 모래그림마을 하사마을과
쌍산재 당몰샘으로 가는 길
1주일 만에 지리산둘레길 18구간을 탐방하기 위해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에 다시 왔다. 지리산둘레길 구례 구간에서 오미-난동과 오미-방광 구간은 구례 지역을 순환하는 탐방로이다. 지난 번 오미-난동 구간은 구례 지역의 섬진강과 서시천을 따라 토지면, 마산면, 구례읍, 용방면, 광의면의 들녘을 탐방하였다면, 이번 오미-방광 구간은 토지면, 마산면, 광의면 지역의 지리산 서쪽 산자락길을 따라 화엄사 화엄계곡과 천은사 천은계곡을 지나 천은계곡 아래 광의면 방광마을 참새미골에서 마친다.
지리산둘레길 사이트에서는 오미-방광 구간을 이렇게 개략한다.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과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방광마을을 잇는 12.3km의 지리산둘레길 오미-방광 구간은 전통마을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구간 중 하나이다. 오미마을과 상사마을에서는 운조루, 곡전재, 쌍산재 등 고택의 정취와 효와 장수의 고장다운 인정을 느낄 수 있다. 화엄사 아래 지리산탐방안내소에서는 지리산의 자원과 역사를 살피고, 종복원센터에 들러 반달곰도 만날 수 있다. 구례분지를 조망하며 농로와 숲길을 주로 걷는 아기자기함이 재미있다. 구간별 경유지와 거리는, 오미마을 운조루 (1.1km) 용두갈림길 (1.6km) 상사마을 (5km) 지리산탐방안내소 (3.2km) 수한마을 (1.4km) 방광마을이고, 전체 거리 12.3km, 예상 탐방 시간 5시간, 난도 中이다." 지리산둘레길 18구간 탐방 체험을 3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1부(오미마을~상사마을) : 지리산둘레길을 탐방하며 세 번째로 오미마을에 왔다. 배롱나무 붉은 꽃들이 활짝 피어 마을을 물들인다. 오미마을은 이제 이웃마을처럼 낯익고 정답다. 지리산 왕시루봉 능선, 운조루와 곡전재, 드넓은 오미리 들녘, 섬진강 건너의 오봉산과 계족산이 오랜 친구처럼 다정한 눈빛으로 길손을 반긴다. 지리산씨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마을 농산물 구판장에 낯익은 할머니가 앉아 계신다. 운조루를 지키는 종부(宗婦), 올해 93세이신 할머니께서 구판장 의자에 홀로 앉아 여름날의 고적함을 즐기신다. 외할머니처럼 반가운 모습이시다. 재회 인사와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작별 인사를 올리며 헤어졌다. 103세로 돌아가신 외할머니 모습이 눈에 자꾸 어른거렸다.
날씨는 맑아 보이는데, 미세먼지 때문인지 시계(視界)는 투명하지 않다. 지리산둘레길 18구간 탐방 지역은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와 용두리, 마산면 사도리와 광평리, 마산리, 황전리, 광의면 수월리와 방광리 지역으로, 구례군 3개 면(面)과 8개 리(里) 지역이다. 그렇지만 이들 마을과 이웃해 있고, 바라볼 수 있는 지역을 포함한다면 이번 탐방로는 구례 분지(盆地) 전체를 살피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지리산씨 협동조합 기와건물 위쪽에 오미마을 유래비가 서 있고, 그 옆에 소나무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소나무공원 입구에 마을주민을 비롯하여 길손들이 쉬어갈 수 있는 오미정(五美亭)이 규모 있게 세워져 있고, 그 옆에 지리산둘레길 상징조형물 벅수와 지리산둘레길 16·17·18 구간 시종점 안내판이 서 있다. 이곳에서 지리산둘레길 18구간 탐방을 출발하며 오미마을과 아쉽게 작별한다. 너와 재회할 날이 언제일까?
운조루길을 따라 뽕잎시골백반으로 유명한 들녘밥상, 한옥민박촌, 생명수한의원을 지나 오미저수지 제방으로 올라갔다. 제방에서 지리산 왕시루봉 능선, 토지면 들녘과 섬진강 건너편의 오봉산과 계족산, 동쪽의 국사봉을 다시 바라보며 감회에 젖는다. 전남 구례군 송정에서 역방향으로 출발하여 불무장등 능선을 넘어 동쪽 경남 하동군 화개에서 15구간을 마쳤고, 송정을 출발하여 송정계곡 의승재를 넘어 지리산 왕시루봉 문수골 자락의 오미마을로 내려와 16구간을 마쳤다. 고통에 힘겨웠지만, 한편으로 환희의 축제에 잠겼던 기억들이 되살아온다.
지리산둘레길 17구간은 오미저수지 제방을 오른쪽으로 돌아 지리산구례명차 가공공장 뒤 산길을 따라가서 삼밭재 등산로와 만나 국도 제19호선 섬진강대로의 토지주유소 앞으로 내려오게 되어 있다. 길손은 지리산둘레길과 헤어져 구례명차 가공공장 앞을 지나 섬진강대로로 나갔다. 섬진강대로 옆 용두저수지를 지나 토지면 용두리 토지주유소 앞에서 지리산둘레길과 재회하였다. 이 고개를 배틀재라 이른다고 한다.
"토지면 용두리 배틀재는 섬진강물이 현재 용두리까지 넘쳐 하동 방면에서 섬진강을 이용하여 각처의 상선이 이곳으로 왕래하게 됨에 따라 문물교환 장소로 배를 매었다고 하여 배틀재라고 하며 대상이라고도 부르며, 베를 짜는 베틀의 형국(옥녀직조형)이라 하여 베틀재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구례군청) 노고단 남쪽의 형제봉에서 월령봉, 삼밭재, 천황재로 내려오는 산줄기는 배틀재를 거쳐 섬진강으로 빠지며, 섬진강변에 절벽을 이루는 용머리를 이룬다고 하여 이 지역 이름이 용두리이며, 섬진강 언덕에 용호정이 서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이 삼밭재 능선 서북쪽 자락의 하사마을과 상사마을을 지나 삼밭재 능선 중턱의 산길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삼밭재 능선은 구례군 토지면과 마산면의 경계를 이루는데, 이 능선 동쪽에 빨치산이 처음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는 토지면 문수리 문수골과 문수제가 있다. 예전에는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과 하사마을 주민들이 삼밭재 능선을 넘어 토지면 문수리 지역으로 왕래하였다고 하며, 현재는 배틀재에서 출발하여 삼밭재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배틀재 교차로에서 섬진강대로와 작별하고 당몰샘로를 따라 마산면 사도리로 넘어갔다. 사도리의 원래 이름은 모래돌이었는데, 어느 이인이 이곳에서 모래 위에 그림을 그려 도선국사에게 풍수지리를 설명하며 고려의 후삼국 통일을 예언하였다고 하여 모래그림마을, 한자로 사도리(沙圖里)가 되었다고 한다. 사도리는 상사마을과 하사마을로 구성되고, 하사마을은 삼밭재 능선 서쪽 똥뫼산 자락에 자리한다.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은 똥뫼산을 마을 할머니에게 알아보니 하사마을 체육공원 뒤쪽 울창한 소나무숲을 똥뫼산이라 이른다고 한다. 똥뫼산 남쪽 마을은 아랫마을, 그 북쪽 마을은 윗마을이다.
하사 아랫마을의 하사저수지 북쪽에 작은등샘이 자리한다. 할머니 한 분이 샘 주위를 정결하게 치우고, 길손에게 작은등샘 물 한 바가지를 떠 주셨다. 인심과 물맛이 길손의 마음과 몸에 녹아 흐르며 작은등샘의 가치를 드높인다. 사도리 상사마을의 명품은 쌍산재 앞 당몰샘이다. 당몰샘이 '천년고리(千年古里) 감로영천(甘露靈泉)'(천 년 오랜 마을의 이슬처럼 달콤하고 신령스러운 샘물)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명천(名泉)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하사 아랫마을의 작은등샘은 당몰샘의 유명세를 넘어서는 따스한 인심과 시원한 물맛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역에서는 터를 뜸이라 일러 큰터를 큰뜸, 작은터를 작은뜸이라 이르고, 쉼터정자를 유상각이라 이른다. 그리고 남녀를 구분하여 남자경로당과 여자경로당, 남자유상각과 여자유상각이 따로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 하사 아랫마을은 작은뜸, 윗마을은 큰뜸이라 이른다. 아랫마을 작은등샘 건너편 하사저수지 일대에 연꽃 못(蓮池)이 있었다고 하는데, 1992년 마을주민들이 이곳에 작은뜸 유상각을 건립하여 유상각 이름을 연호정(蓮湖亭)이라 붙였다. 이제는 찾을 수 없는 연지(蓮池)에 대한 그리움이 연호정(蓮湖亭) 이름에서 느껴진다.
연호정을 지나 사도리 하사마을의 중심 윗마을로 올라갔다. 윗마을 체육공원에서 보면 삼밭재 능선이 벋어내리고, 능선 아래 똥메산이라 이르는 울창한 소나무숲이 있다. 이 똥메산 북쪽에 자리한 하사 윗마을에는 여자경로당, 마을회관&남자경로당, 중앙유상각, 큰뜸 남자유상각과 여자유상각이 설치되어 있어 풍요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조선 정종대왕의 12번째 왕자 도평군의 위패를 봉안한 효헌사(孝獻祠), 동몽교관과 정려를 받은 효자 이규익 정려(旌閭)가 있어 마을의 품격을 한껏 높인다. 길손에게는 그러한 품격보다는 큰뜸을 지키는 오랜 연륜의 팽나무와 그곳에 자리한 남자유상각 흥덕정(興德亭)이 마을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덕정은 1994년 마을주민들이 건립하였다고 하는데, 전망이 좋다. 앞으로 드넓은 들녘이 펼쳐지고 서시천 건너 봉성산과 산성봉 사이에 자리한 구례읍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흥덕정 앞에서 사도리 들녘과 그 너머 풍경을 바라보면 흥덕(興德)의 뜻이 절로 살아난다.
당몰샘로를 따라 아이들농장 출입구를 지난다. 아이들농장 표석 위에 생명평화 조형물이 서 있고, 표석면에 반달곰 사진이 붙어 있으며, 지리산둘레길 생명평화무늬가 그려져 있다. 지리산둘레길 탐방을 처음 출발할 때 지리산둘레길 탐방은 순례의 길이며 순례의 목적은 생명평화 사상이라는 근본적 의미를 가슴에 새겼었다. 그런데 지리산둘레길을 탐방한다는 자족감과 국토의 지리적 위치 확인에 몰두하여 그 근본 의미를 잊곤 한다. 아이들농장 출입구의 표석을 보며 잊고 있던 지리산둘레길 순례의 근본 사상인 생명평화의 의미를 다시 되새긴다.
"지리산둘레길은 '사람과 생명, 성찰과 순례의 길'입니다.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 둘레를 잇는 길에서 만나는 자연과 마을, 역사와 문화의 의미를 다시 찾아내 잇고 보듬는 길입니다. 지리산 둘레길을 통해 만나는 사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모든 생명들의 속삭임을 귀 기울여 들어 보세요. (중략) 한때는 좌와 우로 나뉘어 낮과 밤을 달리 살아야 했던 아픈 상처도 지리산 길은 품고 있습니다. 지리산 길의 출발은 순례길, 2004년 ‘생명 평화’를 이 땅에 뿌리고자 길을 나선 순례자들의 입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지리산 순례길이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그 제안이 다듬어지고 구체화된 게 지리산둘레길입니다. 지리산길은 이 길 위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평온함과 평안, 공존과 화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2000년 시작된 ‘지리산마음으로 세상을 배우자’ 지리산공부모임과 실천방향을 그림으로 담은 것이 생명평화 무늬입니다. 지리산 둘레를 걷다 보면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단순 소박함을 깨우치게 됩니다. 그대 없이 내가 있을 수 없다는 지리산의 가르침은 시대를 넘는 진리입니다."(지리산둘레길)
당몰샘로의 쌍산재와 평전언덕 갈림목에서 시간의 억압에 쫓겨 평전언덕 방향으로 올라간다. 쌍산재와 당몰샘을 살피지 못하는 아쉬움이야 크지만 혹시라도 제한 시간을 넘기고 제 시각에 들어가지 못하여 다른 탐방객들에게 피해를 줄까 하는 걱정이 더 크다. 길동무가 있다면 용감하게 쌍산재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을 것이다. 사전에 지리산둘레길 정코스를 벗어나 쌍산재를 들러 우회하는 길을 탐색하여 두었더라면 여유롭게 당몰샘과 쌍산재를 탐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리산둘레길은 평전언덕을 지나 삼밭재 능선의 천황재 방향으로 올라간다. 평전언덕 위쪽에 광산 탁씨 등의 여러 가족 묘지들이 조성되어 있으며, 어느 곳은 파묘하여 폐허처럼 버려진 곳도 있다. 천황재 등산로는 아들바위를 거쳐 삼밭재 능선의 천황재로 올라가는데 천황재 등산로 갈림길을 지나 조릿대 터널 두 곳을 지나면 평택 임씨 묘지가 나오며, 삼밭재 능선의 천황재가 이마 위에서 내려본다. 삼밭재 능선 뒤쪽은 토지면 문수리 문수골 지역으로, 지난 16구간 탐방 때 지났던 곳이며, 지리산 빨치산이 시작된 곳이다.
여순반란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시에 주둔 중이던 14연대 군인들이 제주 4·3 사건 진압을 위한 출동 명령을 거부하고 무장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1948년 10월 25일 반란군 패잔병들이 문수골에 들어와 문수골은 지리산 빨치산 역사가 처음 시작된 곳이라고 한다. "반란군은 문수골에서 주변 마을을 보급지로 삼아 인근의 구례읍·마산면·산동면 등을 습격했다. 주민들은 밤이면 반군의 총부리 아래 식량을 바치고 운반하고 부역했으며, 낮이면 군경들에게 반군에 협력했다는 죄목으로 책임을 추궁당했다. 이처럼 문수골과 인근 마을은 총구로 강요되는 부역과 이념 선택의 강제에 시달려야 했고 이 과정에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으며, 아예 삶의 터전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1948년 10월부터 1955년 5월까지 6년여 동안 그들은 총 맞아 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고, 굶어 죽어야 하는 혹독한 운명을 마주해야 했다."(황부호 작가) 그들이 왜 반란을 일으켰고, 문수골을 시작으로 하여 지리산 곳곳으로 흩어져 혹독한 운명을 마주했을까?
평택 임씨 묘지 맞은편 서쪽에 해주 오씨 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 묘지는 아마 쌍산재(雙山齋)를 건축한 해주(海州) 오씨(吳氏) 문양공후(文襄公後) 23세손 쌍산(雙山) 오형순(吳炯淳, 1865~1940)의 문중묘지인 것 같다. 해주 오씨 문중묘지 앞에서는 서쪽으로 풍경이 활짝 열린다. 아래쪽에 사도리 상사마을이 보이며, 그 아래쪽에 쌍산재가 있을 것이다. 더 멀리 서시천 건너편에 봉성산과 산성봉이 남쪽과 북쪽에서 그리움으로 마주하고, 그 사이에 구례읍 시가지가 펼쳐진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3.1km
전체 소요 시간 : 4시간 28분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 민가의 배롱나무 붉은 꽃이 탐스럽게 예쁘다.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운조루길에서 구례관광 안내도와 농산물 구판장, 그 옆 오미마을 버스정류소를 바라보았다. 구판장에 운조루의 종부(宗婦) 할머니께서 앉아 계시며 그 맞은편에 지리산둘레길 벅수가 서 있다.
오미-송정 10.4km, 오미-방광 12.3km를 알리는 지리산둘레길 벅수가 농산물 구판장 맞은편에 서 있다.
왼쪽에 농산물 구판장, 오른쪽에 지리산둘레길 벅수, 정면에 운조루가 있고, 맨 뒤에 왕시루봉 능선이 보인다.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는 본래 오동이라 불리다가 조선 중기에 유이주가 이주하면서 오미리라 개칭해 지금에 이른다. 오미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을 담았는데, 월명산, 방장산, 계족산, 오봉산, 섬진강이 그것이다. 이곳 오미리는 남한의 3대 명장 중 한 곳으로 꼽히는 길지다. 풍수지리에서는 금환낙지(金環落地)의 형국이라 한다. 즉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곳으로 부귀영화가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풍요로운 곳이라는 뜻이다. 조선 중기의 양반 가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운조루와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담은 곡전재가 유명하다. 이에 맞추어 마을에 한옥민박촌이 형성되어 있어 숙박하기에 좋다. 운조루 앞에 마을 특산물을 판매하는 구판장이 마련되어 있다. - 지리산둘레길
곡전재길이 길게 이어지고 배롱나무 붉은 꽃들이 피어 있다. 곡전재길 오른쪽 아래에 운조루유물기념관 출입구, 더 아래쪽에 곡전재가 보이며, 섬진강 건너편에 오봉산이 길게 이어지고, 왼쪽 맨 뒤에 계족산이 솟아 있다.
오미마을 버스정류소 맞은편에 오미마을 유래비와 지리산둘레길 벅수, 그 왼쪽에 지리산씨 협동조합 건물, 중앙 뒤에 오미정과 지리산둘레길 16·17·18 구간 시종점 안내판이 있다. 운조루길을 따라 오미정 앞으로 이어간다.
오미마을 유래비 옆에 송정 10.4km, 방광 12.3km를 알리는 지리산둘레길 벅수가 서 있다.
오미마을은 영조 2년(1776년)에 문화 류씨 류이주(柳爾胄)가 풍수지리설에 의한 금환락지(金環落地)에 운조루(雲鳥樓)를 지으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 전에는 오동이라 불렸다. 오동은 내죽, 하죽, 백동, 추동, 환동을 말한다. 마을의 안산이 되는 오봉산이 기묘하고, 사방으로 둘러싼 산들이 길하며, 물과 샘이 족하고, 풍토가 모두 질박하며, 터와 집들이 살아가기에 좋다고 하여 오미리(五美里)라 불리고 있다.
오미정(五美亭) 난간에 지리산둘레길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지리산둘레길 상징조형물 벅수 옆에 지리산둘레길 16·17·18 구간 시종점 안내판이 서 있다. 지리산둘레길 18구간은 운조루길을 따라간다. 오른쪽에 뽕잎시골백반으로 유명한 들녘밥상 출입구가 보인다.
지리산둘레길 상징조형물 벅수 앞에서 오미정을 돌아보았다. 왼쪽 뒤에 지리산씨 협동조합 기와 지붕이 보인다.
정면에 강녕재(康寧齋) 현판이 붙어 있는 민가, 그 오른쪽에 오미녹색농촌체험관&들녘밥상이 자리한다.
운조루길을 따라가며, 섬진강 건너편의 오산(鰲山)을 살핀다. 지리산둘레길은 정면 앞 산자락길로 이어간다.
오미마을 운조루길 북쪽에 앞의 고연락을 비롯하여 한옥민박들이 밀집한 한옥민박촌을 살펴 보았다.
한옥민박촌 옆에 자리한 생명수한의원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치료 방식을 중요시하며, 이 지역의 청정자연에서 직접 재배한 신선한 한약재를 사용하여, 한약의 효능을 극대화한다고 한다.
오미리 들녘에서 섬진강 건너편의 오봉산의 다섯 봉우리를 살폈다. 왼쪽 맨 뒤에 계족산이 솟아 있다.
오미저수지 제방길으로 올라갔다가 지리산둘레길을 벗어나 운조루길을 따라간다. 지리산둘레길 정코스는 오미저수지 제방길을 오른쪽으로 돌아 저수지 뒤 산자락길로 이어간다. 섬진강 건너편에 오산이 우뚝하다.
지리산둘레길 정코스는 오미저수지 제방을 오른쪽으로 돌아 산자락길로 올라간다.
국도 제19호선 섬진강대로가 구례군 토지면 들녘을 가로지르고, 들녘 건너편에 금내리 원내마을이 자리하며, 섬진강 건너편에 오봉산이 이어지고, 중앙 왼쪽 맨 뒤에 계족산이 솟아 있다.
왼쪽 앞 대나무숲에 곡전재가 자리하고, 왼쪽 뒤에 국사봉, 중앙 맨 뒤쪽에 호남정맥 산줄기, 오른쪽 맨 뒤에 계족산이 솟아 있다.
운조루길에서 운조루유물전시관과 오미정, 한옥민박촌을 돌아보았다. 왼쪽 뒤에 왕시루봉 능선, 오른쪽 중턱에 솔까끔마을이 보인다.
지리산둘레길 정코스를 벗어나 운조루길을 따라 지리산구례명차 가공공장을 지나 국도 제19호선 섬진강대로로 나간다.
지리산둘레길 정코스는 지리산구례명차 가공공장 왼쪽 뒤 산자락길을 돌아가는 탐방로이다.
국도 제19호선 섬진강대로를 따라 구례읍 방향으로 이어간다. 지리산둘레길 정코스는 오른쪽 산자락길을 따라가는 길이다.
구례군 토지면 용두리 용두저수지가 섬진강대로 남쪽에 조성되어 있고, 오른쪽 뒤에 사성암이 있는 오산이 우뚝하다.
지리산구례명차 가공공장 옆 운조루길에서 나와 국도 제19호선 섬진강대로를 따라 용두저수지 앞으로 이어왔다.
국도 제19호선 섬진강대로를 따라 토지면 용두리 배틀재에 자리한 용두골 식당과 GS칼텍스 토지주유소를 지나간다.
2025년 10월 25일 토지초등학교 개교100주년 기념행사 알림막이 아직도 걸려 있다. 왼쪽에 삼밭재 등산로 나들목이 있다.
지리산둘레길 정코스는 오미저수지 뒷산 산자락길을 돌아 삼밭재 등산로 나들목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배틀재에서 천황재를 거쳐 삼밭재까지 3.2km 거리이다. 삼밭재는 형제봉 아래에 있고, 형제봉 뒤에 노고단이 솟아 있다.
용두리 배틀재의 토지주유소 앞에서 걸어온 섬진강대로를 뒤돌아보았다. 세차장 왼쪽에 삼밭재 등산로 나들목이 있다.
배틀재의 토지주유소와 지리산제일콩국식당을 지나 배틀재 교차로로 내려간다. 건너편에 용두마을 버스정류소가 있다.
옛날에는 섬진강 물이 지금의 옥지교를 지나 마산면 사도리 앞까지 물이 범람하여 배가 닿았으며 배를 매는 재라고 하여 배틀재라 하였다. 해방 전후 1970년대까지 교통이 원활하지 못하여 걸어서 다닐 때는 하동 방면에서 구례장을 보러가기 위하여 이곳 배틀재를 지나게 되는데 소를 파는 사람은 새벽장을 보아야 되기 때문에 전날 밤 배틀재 주막집에 와서 하룻밤을 자게 된다. 이때 주막에서는 사람에게 민박을 시키고 소에게는 소죽을 끓여 주어 상업을 하였는데 많은 사람이 주막을 왕래, 주막이 성행되기도 하였다. - 구례군지
토지면 용두리 섬진강대로의 배틀재 교차로에서 오른쪽 당몰샘로를 따라 마산면 사도리 하사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섬진강대로의 용두마을 출입구에 용두리(龍頭里) 표석이 서 있고, 그 오른쪽 뒤에 용두마을이 자리하며, 뒤에는 오산이 솟아 있다.
용두(龍頭)마을은 임진왜란 초기 1,600년경 서산 유씨(瑞山柳氏)가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후 경주 김씨(慶州金氏) 등 각 성씨가 풍수지리설에 의해 금환락지를 찾아 이주하면서 큰 마을이 이루어졌고 배틀재, 상촌(쇳골), 하촌(굴뚱, 대상)으로 마을이 산재했으나 배틀재 마을은 국도확장으로 폐촌되고 토지주유소와 2개의 식당이 있다. 지리산의 용맥이 노고단 형제봉을 경유하여 내려오다가 섬진강에 이르러 머물렀는데 지리산 줄기가 강물에 침식되어 깎아 세운 듯한 절벽이 강물에 잠기듯 굽어보고 있었다. 절벽의 형상이 용머리 같다고 하여 용두(龍頭)라 부르게 되었다. - 구례군청
당몰샘로에서 배틀재 교차로를 뒤돌아보았다. 맨 왼쪽에 용두마을 버스정류소, 교차로 남쪽 용두길은 용두마을로 이어진다.
당몰샘로를 따라 하사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중앙 뒤에 형제봉이 보이지만 그 뒤쪽의 노고단은 구름 속에 숨어 있다.
토지면 용두리에서 당몰샘로를 따라 마산면 사도리로 넘어간다. 왼쪽 뒤에 삼밭재 능선이 내리벋는다.
마산면 사도리 하사마을이 천왕재 아래 산자락에 자리하고, 그 위쪽에 삼밭재와 형제봉이 어림되지만, 노고단이 보이지 않는다.
마산면 사도리 들녘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 뒤쪽에 광평리와 냉천리, 마산리 지역이 있다.
마산면 사도리와 그 뒤 광평리와 냉천리 들녘이 펼쳐지고, 왼쪽 뒤 나즈막한 봉성산 자락에 구례읍 옛 시가지, 중앙의 산성봉 자락에 구례읍 신시가지가 조성되어 있다.
하사마을이 길게 펼쳐져 있고, 오른쪽 산자락 무성한 소나무숲을 똥뫼산이라 이르며, 바로 앞에 하사저수지가 있다.
하사마을은 신라 흥덕왕 때부터 형성된 오래되고 큰 마을이다. 하사저수지를 품고 넓은 들을 바라보는 마을 정경이 아름답다. 본래 누군가가 모래 위에 그림을 그려 도선국사에게 풍수에 대해 전한 곳이라 하여 사도리(沙圖里)라 불렸던 것이 일제 때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구분해 상사리와 하사리가 되었다. 모래그림마을이라는 별칭의 유래다. 저멀리 들판너머 보이는 섬진강물이 예전에는 이 마을까지 닿았음을 알 수 있다. 마을샘 맞은편에 있는 저수지 정자 옆에는 그늘이 풍성한 느티나무와 보기 드문 자색 아까시나무가 있다. - 지리산둘레길
당몰샘로를 따라 꿀따다 양봉영농조합법인 앞을 지나간다. 뒤쪽에 삼밭재능선 배틀재로 내리벋는다.
꿀따다농원 출입구의 달마시안 조형물이 귀엽다. 그 왼쪽에는 돌절구들과 돌확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당몰샘로를 따라 꿀따다 양봉영농조합법인과 그 맞은편의 굴따다농원 앞을 지나왔다.
당몰샘로는 토지면 용두리 섬진강대로의 배틀샘 교차로에서 마산면 사도리 쌍산재의 당몰샘 앞을 지나 마산면 마산리 화엄사로의 마산파출소까지 이어지는 도로명이다.
마산면 사도리 당몰샘은 쌍산재의 샘이다. 7년 가뭄, 3년 장마에도 수위가 일정한 이 샘의 물은 맑고 깨끗할 뿐 아니라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샘은 원래 쌍산재 담 안쪽에 있었으나 마을 주민들이 물을 자유롭게 떠갈 수 있게 담의 위치를 안쪽으로 들여놓으면서 담 바깥에 위치하게 됐다. 샘 위에 ‘천년고리(千年古里) 감로영천(甘露靈泉)’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오래된 마을의 이슬처럼 달콤하고 신령스러운 샘물이라는 뜻이다. - 국민일보 남호철 기자. 2026. 4. 2.
하사제(上沙堤) 텃밭에 참깨꽃이 피어나고, 그 위쪽에 꿀따다농원이 자리하며, 오른쪽 섬진강 건너편에 오산(鼇山)이 솟아 있다.
하사저수지 앞에서 서시천 건너편 중앙 봉성산 자락의 구례읍 구시가지, 그 오른쪽 산성봉 자락의 구례읍 신시가지를 살폈다.
마산면 사도리 하사 아랫마을 출입구에 작은등샘이 있고, 그 뒤에 당집 해월당이 보이며, 그 뒤 무성한 소나무숲이 똥뫼산이다.
할머니께서 작은등샘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시다가 길손에게 샘물을 한 바가지 떠 주신다. 샘물맛이 달콤 시원하다.
하사 아랫마을에 연호정(蓮湖亭)이 있다. 옛날에 이곳에 연꽃 못이 있었으며 1992년 마을 주민들이 이 정자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이 정자를 작은뜸 유상각이라 부른다.
하사마을 체육공원 앞에 쓰레기집하장, 그 왼쪽에 하사마을 유래비와 안내도 등이 설치되어 있다.
오미 1.9km, 방광 10.4km 지점, 하사마을 체육공원에 배롱나무 붉은 꽃이 고혹적으로 피어 있고, 왼쪽 뒤에 똥뫼산이 보인다.
체육공원 앞에 하사마을 유래비와 하사마을 위치안내도 및 모래그림마을(沙圖里) 하사마을 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신라 흥덕왕 시대부터 있었던 마을로 추정되며, 1535년경 봉성 장씨가 문척에서, 1685년경 재령 이씨가 진주에서, 경주 이씨가 장성에서, 1740년경 전주 이씨가 남원에서, 1775년경 광산 김씨가 나주에서 이주해 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상사마을과 같이 신라말기 중 도선의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사둘이라 하였고, 고려 때 사등촌(沙等村)과 사도부곡(沙圖部曲)이 있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용두리 일부를 병합하여 사도리라 하였으며 , 이 때 상사, 하사가 통합되었다고 한다. - 하사(下沙)마을 유래비
이 안내도를 통해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沙圖里) 하사마을의 전체 위치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
당몰샘로는 북쪽으로 이어지고, 하사 여성경로당 오른쪽 하사3길을 따라 하사마을로 올라가 살핀 뒤 되돌아온다.
하사3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하사마을회관과 남성경로당이 자리하고, 그 뒤쪽 삼밭재 능선에 천황재가 보인다.
하사마을회관을 살피고 하사 여성경로당 앞으로 내려와서 중앙 유상각(쉼터정자) 뒤의 무성한 숲의 똥뫼산을 확인한다.
당몰샘로의 하사마을 버스정류소 앞에서 삼밭재 능선을 살폈다. 중앙 뒤에 천황재, 그 왼쪽 뒤에 삼밭재가 가늠된다.
당몰샘로 동북쪽에 홍살문이 있어 위쪽의 사당으로 올라가 살피고 되돌아온다.
올라와서 살피니 구례군 향토문화유산 1호 효헌사(孝獻祠)이며, 그 앞에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외문은 잠겨 있다.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375-2번지에 위치한 효헌사는 조선조 2대 정종대왕의 12번째 왕자이신 도평군과 배위 2분의 위패를 봉안한 부조묘(不祧廟)이다. 도평군은 1402년 8월 9일에 성빈 지씨의 소생으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효심이 지극하고 총명하여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왔다. 1872년 3월에 고종황제는 왕자 중 가장 효성이 지극하고 총명한 어른이라 하시고 도평군 겸 영정정경부사증 시효헌공이란 증직을 내리셨다. 그리고 1874년 3월에 도평군의 후손이 살고 있는 사도리에 위패를 봉안하고 제례를 년2회 봉향토록 하였는데 1910년 이후 왜관의 감시로 중단되었다가 해방 후 후손들이 제향을 올리고 있다. - 안내판
중문 앞에 정종대왕왕자 도평군부조묘비, 효헌사위 토답찬조금기비, 효헌사중수기념비가 서 있다.
본래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 묻어야 하지만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는 불천지위(不遷之位)가 된다. 부조묘(不祧廟)란 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을 이른다. - 다음백과
효헌사(孝獻祠)를 살피고 홍살문을 나와 당몰샘로를 따라오다가 효헌사 홍살문을 뒤돌아보았다.
당몰샘로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정자 두 곳이 있다. 오른쪽은 큰뜸 여자유상각이고, 왼쪽은 남자유상각이라고 한다.
수령이 오랜 팽나무 2그루가 자라며, 전망이 좋고 시원하여 1994년 마을주민들이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름은 흥덕정(興德亭)이다.
흥덕정(興德亭) 앞에서 하사마을과 중앙의 똥뫼산, 그리고 뒤쪽의 삼밭재 능선을 살폈다.
당몰샘로로 나와서 큰뜸의 여자유상각과 그 오른쪽 남자유상각 흥덕정(興德亭), 왼쪽 뒤의 삼밭재 능선을 돌아보았다.
이규익 정려와 설명안내판이 오른쪽에 있고, 왼쪽 앞에 1954년 표창을 받고 1979년 세운 효부 광산 김씨기행비가 있다.
향토 문화유산 제21호 이규익 정려(旌閭)는 효자 이규익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규익은 천성이 순박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평상시 집 안에 연못을 파서 고기를 길러 부모님을 모셨다. 80세인 고령의 아버지가 노환으로 병석에 눕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드렸으나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규익은 자신의 살을 베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드려 아버지가 3일을 더 살게 했다고 한다. 이후 잇따라 초상이 나자 이규익은 6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효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꿩이 묘막에 들어오기도 하고 호랑이가 옆에 와서 함께 지내 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마침내 이 효성을 나라에서도 알게 되어 이규익은 고종 18년(1881)에 동몽교관의 벼슬과 정려를 받았다. - 안내판
孝子 贈 童蒙敎官 全州李公 圭翊之閭(효자 증 동몽교관 전주이공 규익지려)라고 적혀 있는 정려비(旌閭碑)가 서 있다.
이규익 정려(旌閭) 앞 당몰샘로에서 삼밭재 능선 서남쪽 자락에 평화로이 자리잡은 사도리 하사마을을 돌아보았다.
당몰샘로에서 하사마을 들녘을 바라본다. 송전탑 뒤 푸른 숲 언덕에 용호정이 자리하고, 그 오른쪽에서 마산천이 섬진강에 합수한다. 왼쪽 섬진강 건너편에 오봉산 1봉과 2봉, 2봉 뒤에 계족산, 오른쪽에 오산이 솟아 있다.
마산면 사도리(沙圖里) 들녁 너머 왼쪽의 구례읍 구시가지에 봉성산, 중앙의 구례읍 신시가지에 산성봉이 솟아 있다.
사도리 들녘 위쪽에 상사마을이 자리하고 그 왼쪽 뒤에 마산면 사도리와 광평리를 잇는 사도교가 마산천 위를 가로지른다.
당몰샘로211번길 출입구에 아이들농장 표석이 서 있다. 오른쪽에 천왕재, 중앙에 삼밭재, 그 왼쪽 뒤에 형제봉을 가늠한다.
아이들농장 표석 위에 생명평화 조형물이 서 있으며, 표석면에 반달곰 사진이 붙어 있고, 지리산둘레길 생명평화무늬가 그려져 있다. 바위 틈새에서는 사철채송화 송엽국(松葉菊)이 자주색 꽃을, 그 앞에서는 도라지가 보라색 꽃을 피우고 반긴다.
맨 왼쪽 푸른 숲 언덕에 용호정이 있고 그 오른쪽 뒤에 오산이 솟아 있다. 바로 앞 왼쪽 수로가 마산천에 합수하는 수문 왼쪽 뒤에 구례군 공공하수처리장 건물, 그 오른쪽 광평리에 모래공장 건물이 보이며, 맨 오른쪽에 봉성산이 나즈막하다.
지리산둘레길은 당몰샘로 앞 갈림길에서 오른쪽 당몰샘로181번길로 이어간다. 갈림길 뒤에 작설차 체험장이 있고, 그 뒤 무성한 숲 뒤쪽에 당몰샘과 쌍산재가 있는 듯. 왼쪽 뒤에 산성봉, 그 왼쪽 뒤에 순천완주고속도로 고가도로가 보인다.
마산면 사도리(沙圖里) 상사(上沙)마을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사등촌부곡(沙等村部曲)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천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승(僧) 도선(道詵)이 마을 앞 강변에서 우연히 이인(異人)을 만나 세사(世事)를 두고 담론을 나눴는 바, 이인이 모래 위에 삼국도(三國圖)를 그려 삼국통일(三國統一)을 암시하자, 도선이 이를 깨닫고,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창업에 기여하게 된다. 모래 위에 그림을 그렸다고 하여 그때부터 사둘(沙圖)이라 칭하였다. 고려 현종(顯宗) 11년 5월 지리산이 무너지고 1519년 조선 중종(中宗) 14년 구례에서 지진이 발생하는 등 산사태로 인해 임씨(任氏) 성의 마을이 쓸려간 것으로 추정하는데 평전(平田) 지역에 현재는 실존하지 않는 '서당골', '방죽안'이라는 이름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후 해주 오씨가 남원으로부터 중종 때(1524년) 들어오고, 영천 이씨가 순천으로부터 1780년경에 이주해 와 집성촌을 이루었다. 1535년경 문척에서 봉성 장씨가 들어와 아랫사둘(下沙)을 이루면서 윗사둘, 아랫사둘로 불려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따라 사도리가 되었다. - 구례군청
오미 2.7km, 방광 9.6km 지점, 당몰샘로에서 오른쪽 당몰샘로181번길로 이어간다. 중앙 뒤 지리산 종석대 능선을 가늠한다.
당몰샘과 쌍산재는 오른쪽 숲 뒤쪽에 있는 듯. 왼쪽 뒤에 구례읍 신시가지와 산성봉, 그 왼쪽 뒤에 순천완주고속도로가 보인다.
오른쪽 명다원 갈림길 위 언덕에서 지리산둘레길은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왼쪽 뒤 지리산 종석대 능선을 가늠한다.
사도리 마산천 건너에 광평리와 냉천리 지역이 있고, 서시천 건너에 구례읍 시가지가 펼쳐지며, 왼쪽에 봉성산, 오른쪽 숲 뒤쪽에 산성봉, 그 왼쪽에 순천완주고속도 고가도로가 보인다.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이 똥매산 자락에 자리한다. 상사마을은 한국 제일의 장수촌이라고 한다. 왼쪽 뒤 종석대 능선을 가늠한다.
오미 2.8km, 방광 9.5km 지점, 명다원 갈림길 위 언덕에서 언덕길을 따라 평전언덕으로 올라간다.
평전언덕에 묵밭과 양봉장이 있고, 삼밭재 능선이 하사마을 쪽으로 내리벋는다. 능선 뒤쪽에 토지면 문수리 문수제가 있을 것이다.
왼쪽 지리산둘레길 벅수가 서 있는 대나무숲길로 올라간다. 오른쪽에 천황재, 왼쪽 위에 삼밭재와 형제봉이 가늠된다.
오미 2.9km, 방광 9.4km 지점, 대나무숲길 입구에 지리산둘레길 이정목 벅수와 지리산둘레길 오미-방광 안내판이 서 있다.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에서 광의면 방광리 방광마을을 잇는 12km의 지리산둘레길은 마을을 가장 많이 오가는 구간 중 하나이다. 구례분지를 보면서 농로와 숲길을 걷는 아기자기함이 재미있다. 지리산탐방안내소에서는 지리산의 자원과 역사를 살피고 종복원센터에 들러 반달곰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운조루, 쌍산재, 곡전재 등 고택의 정취와 효와 장수의 고장다운 인정을 느낄수 있다. ▶상사, 하사마을 - 신라 흥덕왕 때 승려 도선에게 이인이 모래 위에 그림을 그려 뜻을 전한 곳이라 하여 사도리라 불렸으며,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구분해 상사, 하사 마을이 되었다. ▶화엄사 - 신라 진흥왕 5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했으며 화엄경의 두 글자를 따서 절이름을 붙였다. ▶매천사 - 매천 황현(1855-1910)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황현 선생은 선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몸소 실천하신 대표적인 인물이다.
대나무숲 위쪽에 광산(光山) 탁씨(卓氏) 가족묘원이 향나무에 둘러싸여 있고, 삼밭재 능선 천황재가 내려보고 있다.
광산 김씨 가족묘원 위쪽으로 올라와서 사도리 들녘을 내려보았다. 왼쪽 삼밭재 능선이 배틀재를 거쳐 송전탑 뒤 용호정으로 내리벋고, 그 능선 서북쪽 자락에 하사마을(맨 왼쪽)이 자리한다. 왼쪽 오봉산 뒤에 계족산, 오른쪽 뒤에 오산이 솟아 있다.
오미 3.3km, 방광 9.0km 지점, 숲길을 통과해 골짜기로 나가 골짜기를 건넌다.
골짜기의 나무다리를 건너 직진하지 못하고 지리산둘레길 벅수 앞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오미 3.5km, 방광 8.8km 지점, 왼쪽 아래는 상사마을로 내려가고, 지리산둘레길은 벅수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상사마을과 천황치 등산로 갈림길(상사마을 왼쪽 0.3km, 천황치 오른쪽 1.3km)에서 지리산둘레길은 위쪽으로 올라간다.
조리를 만드는 재료로 쓰이는 조릿대가 뒤덮은 터널 두 곳을 통과해 나간다.
조릿대 터널을 통과하면, 동쪽으로 평택 임씨 묘지들이 자리하고, 그 뒤에 천황재가 솟아 있다.
평택 임씨 묘지 맞은편 서쪽에 조성된 해주 오씨 묘지는 쌍산재(雙山齋)를 건축한 해주(海州) 오씨(吳氏) 문양공후(文襄公後) 23세손 쌍산(雙山) 오형순(吳炯淳, 1865~1940)의 문중묘지인 듯.
해주 오씨 문중묘지 앞에서 사도리 상사마을을 내려본다. 아래쪽에 쌍산재가 있을 것이며, 서시천 건너편 중앙 뒤의 봉성산과 오른쪽 산성봉 사이에 구례읍 시가지가 펼쳐진다.
해주 오씨 문중묘지에서 평택 임씨 묘지 앞으로 되돌아와 왼쪽 숲길로 이어간다. 중앙 뒤에 삼밭재 능선의 천황재가 우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