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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강적>의 제목(‘强敵’)은 아이러니하다. 이유는 이 영화가 두 남자의 대립과 대결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두 남자가 어떻게 서로를 인간적으로 끌어안고 보듬어주느냐를 드라마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배신한 조직에게 복수하려고 감옥을 탈옥한 수현(천정명)과 아들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경마 도박을 벌이다 동료를 잃은 형사 성우(박중훈). 두 남자 모두 인생의 진창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박중훈 천정명이 삶의 벼랑 끝에 매달린 것 같은 두 남자로 분해 ‘강적’같이 우직하게 스크린 앞에 섰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실제로도 형과 아우처럼 서로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두 남자를 만났다. |
조우
14년의 경력차, 14년의 나이차. 박중훈과 천정명을 숫자의 차이로 비교한 수치다. 조합 자체가 생경해 보이는 이 두 남자의 매력은 그러한 차이와 다름에서 오는 시너지다. 박중훈 정명이는 20대가 가질 수 있는 전형적인 매력과 특징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때론 욱하기도 하고, 해맑고 순수하고. 잘생겼고, 에너지가 넘치는 배우예요. 정열도 있고 패기도 있고요. 처음 봤을 때는 깔끔하고 어려운 것 하나 없는 강남의 귀공자인 줄만 알았는데, 같이 지내보니 자기 나름의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은 아이더라고요.
천정명 처음에 만날 때 긴장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막상 만나 뵈면서 긴장이 많이 풀렸지요. 영화 속의 선배님은 좀 강한 이미지였는데 실제로 보는 첫인상은 너무 선한 이미지여서 좋았어요. 그리고 피부가 어찌나 좋으신지. 처음 뵙고 깜짝 놀랄 정도였다니까요(웃음). 세대별 다른 액션 번화가의 쇠락한 이면, 종로 내 인생의 강적 |
박중훈-“나는 소망한다, 가늘고 긴 배우 인생을” |
박중훈은 유독 남자와 ‘짝패’를 이루는 버디영화에 출연한 이력이 많다. 속된 말로, 여배우 복보다는 남배우 복이 많은 편이다. 개봉을 앞둔 <강적>에서는 한참 후배인 천정명과 한패를 이루어 삶에 지치고 찌든 강력계 형사를 연기했고, 촬영 중인 <라디오 스타>에서는 안성기와 짝을 이루어 한물간 80년대 록 가수를 연기한다.
이 두 영화의 흥미로운 앞뒤 라인업은 현재 충무로에서 ‘허리’ 역할을 하는 그의 입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필모그래피다. 그런 허리 역할로서의 그의 바람은 좀 더 오래 배우로서 자리매김해 모시는 선배들?아끼는 후배들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해서 이젠 배우로서 가늘고 길게 가고 싶어요.
면발이 두꺼운 칼국수 보다는 길고 가는 잔치국수를 만들고 싶다고나 할까요. 배우로서 할 수 있는 한 오래 활동하는 것, 그게 내 인생에 가장 큰 훈장이 아닐까 싶네요.” 그런 그의 마음가짐과 긴 호흡법 덕분일까.
그는 최근 충무로 흥행 순위 리스트에 박중훈의 영화가 없었다는 사실도 비교적 겸허한 태도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배우의 삶은 마치 늘 요동치는 파도와 같아요. 그건 또 어찌 보면, 야구 선수의 삶과도 비슷하죠. 모든 배우의 인기와 흥행력이 늘 10타수 10안타일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주연배우 입장에서 난 그런 흥행에서 초월했다고 외면하는 건 책임감 없는 이야기고요. 하지만 강박을 가질 필요도 없는 것 같아요.” 이런 박중훈의 유연한 코멘트는 어찌 보면, 그의 무대가 충무로뿐만이 아니라 할리우드까지 널리 걸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간 언론에 끊임없이 회자된 대로 그는 늦어도 올해 안에 <나의 그리스식 웨딩>의 각본가이자 여주인공이었던 니아 바르달로스와 함께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 <비빔밥>을 촬영할 예정이다. 그의 바람대로 영화배우 박중훈의 허리는 길고 광대할 것이다. |
천정명-“나는 질주한다, 20대의 폭렬하는 청춘을” |
불과 1년 사이에 한 배우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쇼 프로그램에서 강조되고 각인된, 보듬어주고 싶은 유약한 남자, 천정명은 이제 사라져 버리고 없다. 어느 순간, 180도 턴을 하듯 변해버린 천정명의 달라진 얼굴에 대중들은 뜨거운 연민과 애정을 쏟아냈다. 영화 <태풍태양>은 그 변화의 전초전이었고, 그 변신의 도화선이 됐던 작품은 드라마 <패션 70s>였다. <패션 70s>의 빈을 연기하는 천정명은 여전히 연민이 느껴지는 남자였지만, 날이 선 듯한 마초성으로 매혹적이게 무장을 한, 그런 남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전의 이미지와 그의 달라진 이미지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듯이 내달렸던 작품은 금년에 방영된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굿바이 솔로>, 그리고 그 이미지 변신의 폭발을 보여주는 작품은 개봉을 앞둔 <강적>이다.
“<패션 70s>를 마치고 나서, 좀 더 강한 캐릭터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조직 폭력배같이 거친 삶을 살았던 사람의 인생을 연기해 보고 싶었죠. 그때 마침 <강적>의 시나리오가 눈에 들어오게 됐어요. 시나리오를 읽어보는 순간 ‘딱 이거다’ 싶었어요.” 목숨을 담보로 하는 아주 위험한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영화 속 액션의 대부분을 본인이 직접 소화해 내는 열정을 보여준 이 청춘배우는 극중 수현의 캐릭터에 물처럼 녹아들었다. “누나가 많은 집의 막내아들이어서 섬세한 이면도 있지만, 반대로 누나들을 괴롭히는 동네 아이들로부터 누나들을 지켜주기 위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싸움박질을 좀 했다”고 말하는 그. 누구한테도 지는 걸 싫어해서 한번 마음먹은 사람과의 승부는 꼭 이겨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이 폭렬하는 청춘은 오늘도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속에 감추고, 그것을 발산할 또 다른 기회만을 넘보고 있다. |
[NETIZEN Q&A] |
>> 영화마다 생기는 본인만의 징크스가 있는지. 천정명(이하 천) 지금 영화를 세 편째 찍고 있는데 영화 찍을 때마다 별것도 아닌 일에도 부상을 당한다. 박중훈(이하 박) 그렇게 극명한 징크스는 없고, 행운과 불행은 한 덩어리로 겹쳐서 오는 것 같다. 되는 영화는 될 만한 운이라는 것이 마치 징크스처럼 합쳐져서 하나로 온다.
>> 도저히 연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캐릭터가 있다면? 박 세상을 삐뚤게 바라보는 시니컬한 시각의 영화 속 캐릭터는, 이제 연기하지 못할 것 같다. 천 개인적으로 공포영화를 못 본다. 그러니 출연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다.
>> 월드컵 우승 예상국은? 천 (1초의 망설임 없이) 한국! 박 모두들 브라질이라고 하는데,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따지면, 독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글 김수연 | 사진 이보경 2006.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