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년 3월 남한강 내양리 탐석기
2003.03.02.
작년 10월 남한강 다그린(다음 그린 수석회)에 소모임으로 처음 발족한 남한강 동호회가 나름대로 서서히 정착되어 가는 중에 금일 총회가 소집되었다. 필자는 매월 참석하지 못하다 이번에는 총회가 있어 만사 제쳐두고 참석했다. 이번엔 또 수석계에서 유명한 운곡 윤석모 교감님께서도 가입하시어 처음으로 참석하시는 모임이라 많은 기대가 되었다. 내양리 지리를 잘 모르는 회원들이 8시에 여주 IC에서 총무 정병화님과 만나기로 했다. 아침에는 막히지 않아서 조금 일찍 여주 IC에 도착하였고 곧 이어 정 총무님, 대구에서 취선 김윤연님, 서울에서 정형옥님께서 오시어 바로 내양리로 출발하였다. 내양리는 여주IC에서 여주방면으로 가다 이천→이포→새종대왕릉→내양리쪽으로 교통표지판을 보며 찾아갈 수 있다. 내양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왕터, 백석2리를 지나면 강변에 넓은 내양리 돌밭에 펼쳐진다.
이곳은 여름에 비가 오면 돌밭이 많이 물에 잠기고 겨울에는 돌밭이 많이 들어 난다고 한다. 8시경에 도착했는데 우리 일행뿐이 없어서 먼저 탐석하며 기다리기로 하였다. 모이는 시간은 2시 돌밭 입구에 있는 남한강 송어회집으로 하였다. 시간이 많은 관계로 열심히 탐석하며 처음 오는 돌밭이라 모처럼 명석에 대한 꿈을 갖고 열심히 보물 찾기를 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앞 사람들이 보았다 놓은 돌이 보이고 수석 같은 돌은 보기 어려워 점점 실망이 되었다. 정말로 이제는 건천에서 좋은 경석 보물찾기는 또또 복권보다 더 확률적으로 어려운가 보다. ㅋㅋ. 그러다 보니 돌 하나 들고 돌과 수석의 차이를 연구하게 된다. 이것이 돌이가 수석이가. 끙끙, 몇몇 분들은 물 가운데 들어가서 열심히 탐석 하시는데 가슴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완전무장 해야 가능하다.
내양리 돌밭
그나마도 완전무장하고 탐석을 해야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볼 수 있다. 필자는 짧은 장화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데 정말 어렵다. 그런데 어디서 (좋은)돌 봤다! 소리가 들렸다. (실은 '용 봤다'라고 했는데 좋은 돌 봤으니 '돌 봤다'가 맞을 듯) 나중에 알고 보니 늦게 수석을 배우신 포이돌 최순구님께서 오석 관통하셨고 이것이 오늘의 장원이 되었다. 석륜이 오래되었다고 좋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그리고 운이 따라야 한다. 역시 돌 임자는 따로 있었다. 더욱 자신을 격려하며 탐석하던 중 소품 꽃 문양석 한 점이 눈에 띈다. 아! 이것이다. 물에 담가 보니 역시 줄기에 동그란 꽃이 핀 그림이다. ㅎㅎㅎ 와 됐다. 필자는 속으로 '돌 봤다'를 외쳤다.
어떻게 이렇게 돌에 꽃 문양이 그려져 있을 수 있을까. 신기하다. 사람이 신의 뜻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저 자연이 주신 선물 경외로운 마음으로 고마워하며 감상하면 될 것이다. 아쉬운대로 빈손으로 가는 것 보다 이나마 한 점 하였으니 다행이다. 역시 수석감은 눈에 띌 때부터 무엇인가 강한 메세지를 준다. 물에 묻혀보기 전이라도 감으로 알 수 있다. 돌밭이 넓어 다른 돌밭으로 넘어가 또 탐석 삼매경에 빠지는데 조용한 강에서 이상한 소음이 들린다. 얼굴을 들어보니 차가 빠졌는지 사람들이 모여있고 차 한대가 끌려고 애를 쓴다.
빠진차 견인하기
이런 돌밭까지 차를 가져와 빠지는 사람들이 있나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고 탐석하면서 슬슬 다가가니 아무래도 느낌이.., 어? 우리 일행차가 아닌가. 어이쿠. 정봉화 총무님 차가 빠져 안희님 왜곤으로 끄는데 이것이 잘 돼지 않고 차가 자꾸 빠져든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도 안돼 난감해 하다가 왜곤으로 끌고 모두 붙어서 하나,둘,셋에 동시에 맞추어 밀고 끌기로 하였다. 하나, 둘, 셋 여~엉차! 동시에 힘을 써서 그런지 차가 겨우 빠져 나왔다. 뒤에서 민 사람들의 옷이 말이 아니다. 그 후 돌밭을 나오는데도 아슬아슬 하여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조이며 빠져나가 다행이었다.
더 이상 탐석할 마음이 사라져 그 부근에 있던 사람들은 그냥 올라갔다. 멀리서 오신 대구의 김윤연님은 부부가 같이 오시고 길이 멀어 곧 가신다고 하여 식사를 빨리 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불렀다. 먼저 기념사진 찍고 식사하러 가려 하니 김윤연님은 아무래도 멀어서 가야겠다고 하시며 인사를 하고 먼저 가셨다. 멀리서 오셨는데 변변히 대접을 못해드려 아쉽다. 식사를 하기위해 횟집에 들어가니 운곡 윤석모님께서 미리 와계셨다. 총무님 차 밀어주시다가 옷이 흠뻑 젖어 먼저 오셨다고 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신입 인사를 하셨는데 역시 연륜이 있으시어서 다그린 남한강 동호회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동호회의 발전을 기원하며 부라보를 외쳤다.
왼쪽에서 세 번째 운곡 윤석모 교감선생님과 함께
다그린의 특성상 회원들이 가입 신청을 쉽게 하게 되는데 바로 바로 응답을 못해주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어 준 회원제를 도입 가입과 동시에 준회원이 되고 그 이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탐석과 사이버 활동을 열심히 하면 그때 정회원으로 등급업하는 것으로 했다. 또 그 이외에 남한강 뿐만 아니고 섬에 들어가자는 등 여러 가지 좋은 제안들이 나왔다. 품평회를 하였는데 포이돌 최순구님의 오석 관통석이 장원, 열심히 하시던 단곡 우정현님의 쌍봉석이 준장원, 정형옥님의 호박석 음석이 3위가 되어 수반을 상품으로 받았다.
4시경쯤 집이 먼 사람들은 출발하고 이천 멤버들은 다시 강에 들어가 탐석 하기로 하여 필자는 먼저 출발 했다. 올 때는 시간이 많이 걸려 3시간 가량 걸렸다. 8시경에 안회장님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는데 운곡 윤석모 교감 선생님께서 이천 멤버들 2차로 술 한잔 하고 가자 하여 또 한잔 한다며 그곳에서도 좋은 이야기가 많이 나와 앞으로 잘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역시 돌밭에 있으니 어려운 보물 찾기를 하고 돌과 수석의 차이를 연구하다 보니 탐석 삼매경에 훔뻑 빠져 모든 시름이 잊혀진다. 또 동호인들을 만나 만남의 기쁨 또한 즐겁다. 회원들이 본 회에 발전적으로 이야기 하니 모든 것이 즐거운 하루였다.
fool 임동훈, 단곡 우정현, 취선 김윤연, 꺼병이 한경식, 고산 김환성, 정봉화 총무
재수 이재수, 안희 회장, 포이돌 최순구, 광산 김택수, 정형옥
장원석. 석명: 관통석, 크기: 높이 8cm, 소장자: 포이돌 최순구
오석에 관통이 뚫렸고 좌측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것이 멋진 경이다.
준 장원석, 석명: 부부 바위, 크기: 13x12, 소장자: 단곡 우종현
오석에 변화 있고 마치 부부가 마주보고 있는 듯하다.
3위, 석명: 음석: 크기: 높이 12cm, 소장자: 정형옥
음석으로 잘 생겼다.
◎ 필자가 탐석한 수석 ◎
필자는 키가 작은 신체적 조건과 장비부족으로 물속 탐석은 어려웠고 건천과 물가에서의 탐석으로
어렵게 몇 점을 탐석했다. 완전 무장하여 물속에서 탐석 하지 않는 한 건천에서는 좋은 것을 하기가 어려웠다.
석명: 흰국화(白菊), 크기: 8x9x4, 산지: 내양리
흰 국화 한 송이, 흰 꽃이 순결을 의미한다. 열심히 의미가 있는 돌을 찾아 나서다
겨우 이 돌 한 점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부른 놈이다. 검은 바탕의 모암에
흰 꽃 한 송이 외롭게 피어 있다.
석명: 一, 크기: 8x9x5, 산지: 내양리
실은 숫자석이 잘 모아지지 않아 수집하기 어려운 "4"자도 다른 분을 드리고
중단하였는데 숫자로써 일자가 이석의 석질이 들어가 잘 생겼다.
갑자기 모으려면 부족한 것도 모으게 되는데 장기전을 갖고 모아 보려 한다.
명: 산수화, 크기: 14x11x7, 산지: 내양리
이 돌은 솔직히 고민을 많이 했던 돌이다. 호박석질인데 문양이 밝지 않고
그림도 선명하지 않다. 워낙 돌이 없어 고민하다 그림이 좋아 가져왔다.
석명: 추상, 크기: 10x16x6, 산지: 내양리
강돌에서는 이런 돌을 별로 하지 않는다.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계속 강돌에서 나름대로 이런 곡선미를 연구하고 있다.
첫댓글 한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ㅎ, 지나간 옛날 이야기인데 고맙습니다.^^
돌밭이 엄청 넓었군요 얼마전까지 내양리 선별기 타면서 마무리른 했습니다
돌향기님께서 마무리를 잘 하시는군요.
그냥 돠두면 자갈로 사라져버리는 것 자연 유산 하나라도 찾아내어
수석으로 오래 보존해야 하는 것이 우리 수석인의 사명이죠.
잘 하셨습니다.^^
추억의 사진첩을 넘기는 것 같습니다.
ㅎ.~ 예. 맞습니다.
다시 올 수 없는 추억의 사진첩입니다.^^